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632)
마법소녀 아저씨 외전 29화(632/671)
029. 유밀(03) – 기립하십시오!
“…저건 뭐야.”
지금 여기는 스베틀라나의 안내를 받아 찾아온, 정확한 지명은 잘 모르겠는 소련의 한 도시.
큰 도시처럼 어마어마하게 개발된 건 아니지만,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모습을 보면 꽤 안정된 거주지역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기에, 적어도 먹을 거나 잠자는 것에 대한 걱정은 없으리라 생각하고 안심하던 찰나, 어떤 것을 보고 말았다.
어깨에는 거대한 망치.
촌스럽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롱코트 형태의 옷.
시대착오적인 금속 어깨뽕.
무서울 정도로 안 어울리는, 이곳저곳에 자리한 날개 모양 장식.
즉, 이하람.
물론 본인은 아니다.
그렇지만, 더 끔찍하다고 할 수 있는 것.
바로, 동상이다.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된 것을 자랑하기라도 하는지 색이 변한 부분이 없는 내 애비의 동상은, 세밀한 묘사에 더해 지금 당장이라도 앞을 향해 달려 나갈 것 같은 역동적인 전투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물건이 현실에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도 끔찍하지만, 가장 기묘하게 느껴지는 것은, 동상에 새겨진 자애로운 표정.
적을 향해 돌진할 것 같은 자세와 전혀 안 어울리는 자애로운 표정은, 내가 장담하는데 절대 그 멧돼지는 평생 만들지 않을 표정이다.
그렇지만, 저걸 조형한 미친 예술가는 상상력이 굉장히 뛰어나신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표정의 동상을 만들고 말았다.
혹시 지금 내가 정신 계통 능력에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할, 정말 끔찍한 동상.
그에 내가 볼을 꼬집어 이게 꿈은 아닌지 확인하려던 찰나.
“아, 대장님 동상. 벌써 여기까지 설치됐네.”
내 옆에 자리한 스베틀라나는 이 광경이 너무나도 익숙한지 목소리에서 아무런 감정 변화도 느껴지지 않는 말을 내뱉었다.
“…이하람 동상?”
“모스크바엔 이미 많지.”
많다고? 저런 게?
이게 무슨 소리지.
“설명…. 해주실 수 있나요?”
들어서는 안 될 내용 같지만, 용기를 쥐어짜 질문을 건넸다.
그런 내 잘못된 행동에, 스베틀라나는 귀찮다고 느끼는 것이 분명한 표정을 내보였지만.
“그. 책. 알지?”
결국 입을 열며 내 질문에 답을 해주기 시작했다.
너무 대답이 짧아 무슨 말인지 이해하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지금 이야기 주제와 엮어 생각하니 곧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영웅 이하람 일대기’
그 끔찍한 책.
“아…. 알죠. 다 읽진 못했지만.”
좀 더 정확하게는, 문장 하나하나를 읽을 때마다 속이 이상해지는 바람에 스무 페이지도 넘기지 못했다.
지금 여기 없는 소림 언니는 그걸 다 읽은 모양이지만.
“그래서, 최고 인민 영웅.”
“….”
너무나도 짧은 답이었지만, 무슨 뜻인지 이해하였다.
해당 책을 발간한 것은 소련 지도층이라 할 수 있는 소련 최고 회의.
그 사람들이, 진심으로 이하람이라는 멧돼지를 자국 최고 영웅으로 취급하기 시작했는 뜻.
“그…. 프로파간다 아니었나요? 그거? 영웅 훈장을 받은 존재가, 세상을 멸망시키려 하던 대악당이란 사실을 덮으려고….”
소련 최고 회의도 바보가 아닌 이상, 이하람이 순수하게 영웅으로 추앙받을 만큼 멀쩡한 존재가 아니란 건 잘 알 텐데….
“진심…. 일걸?”
아하.
진심이시군요.
진심으로 이하람이라는 멧돼지가 소련을 구원하신 영웅이라 생각하는 거군요. 그래서 저런 끔찍한 동상을 소련 여기저기에.
“혹시 소련의 높으신 분들이 단체로 미치셨거나 정신 지배를 당하고 있는 건가요? 그래서 당신만 수상함을 눈치채고 음모를 파훼하고자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하던 와중, 저를 발견하고 도움 요청을 하신….”
무언가 거대한 음모가 진행 중임이 분명하다.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국가라고 하면 소련과 미국.
그중 하나인 소련 상층부가 어떤 악의적인 집단이나 개인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건 분명 심각한 문제.
관리국이라고 해도, 소련 전체가 적으로 돌아선다면 사건을 해결하려 해도 분명 힘들 것이고….
“왜 그러는지 이해는 되지만, 진정하는 게 어때.”
“지금 이걸 어떻게 진정해!”
진정할 수 있다면 내가 유밀이 아니고, 이하람이겠지!
그 아저씨도 진정할 리 없지만!
“목소리 낮춰, 시끄러워. 그리고, 그런 일 아니야.”
“집에 가고 싶어.”
시베리아는 추워.
오늘따라 더 추운 것 같아.
찬바람은 불고, 돌아다니는 여자애들은 투사이드업이고.
눈과 함께 난반사되는, 반짝이는 금속 장신구는….
…날개 브로치?
그것도 어디서 많이 본 디자인의?
“■■! ■■! ■■ ■■■?! ■■■! ■■!”
만약 이성을 수치화할 수 있다면, 내 이성 수치가 쭉쭉 깎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리라.
이제 눈치챈 거지만, 눈 덮인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이 이상하다.
모두가 똑같지는 않지만, 여자아이들에게 유행하는 헤어스타일은 투 사이드 업이고, 남녀 가리지 않고 날개 모양 브로치를 달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왜 이제야 알아차린 걸까.
아니, 다르다.
눈치챘지만, 이성이 그것을 이해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이 세상에서 미친 것은 소련 최고 회의가 아니라.
소련 전체라는 것을.
일반 시민들조차 진심으로 이하람이 소련 영웅이라 믿고 있지 않다면, 저딴 것이 유행할 리 없으니까.
“이 미친 나라에서 벗어나야 해.”
“익숙해지면 돼. 사람. 적응의 동물이니까. 나도 처음엔 그리 생각했어.”
“그리 생각하셨으면 말려야죠! 당신 내 망할 애비 부하라면서! 절대 그 양반이 그런 사람이 아니란 걸 잘 알 텐데!”
당신이라면 이 미친 흐름을 막을 수 있었잖아!
댁 지위가 소련에서 어느 정도인진 모르겠지만, 뭐라도 했어야지!
“…귀찮기도 하고, 그냥 놔두면 나한테 나름 떡고물도 있고.”
떡고무우우울?
“댁은 관리국에 가서 영웅 자격 반납해!”
이 세상은 망했어!
그 양반은 이런 취급을 받을 정도로 멀쩡한 사람이 아니야….
“뭐…. 시베리아 전역을 지킨 영웅인 건 사실이니까….”
“그럼, 미샤를 썼어야지! 소련 출신 영웅! 자연의 수호자! 외모도 딱 소련 취향에, 저 망할 양반만큼 불상사도 없구만!”
화가 나서 막 내뱉은 말이지만, 설득력이 넘친다.
자국 출신 미샤가 있는데, 굳이 미치광이를 영웅으로 추대할 이유가 대체 어디 있다고.
“은둔하시느라 인지도가 별로…. 난 누군지 알지만.”
망할 산중광인.
망할 미샤.
“아.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그분도 모스크바에서 저런 동상 보고 정신적 쇼크를 받아 3분 정도 행동이 멈추셨었지.”
역시, 당사자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 광경이 정말 쇼크인가보다.
“내가 안내했었는데, 정신을 차리시자마자 혹시 자신이 평행세계 전이를 한 것 아닌가 하고 이것저것 여쭤보셨지.”
“여기 평행세계 아니죠? 혹시 이하람이 쿠테타를 일으킨 뒤 인류의 황제가 되었다거나 하는….”
결국 그 미친 아저씨가 일을 벌이고 말았군.
내 그럴 줄 알았다.
“미안하지만, 아니야.”
“제길!”
이게 내가 사는 현실이라니.
“으아아아…. 지금이라도 사실을 알리면, 이 망할 흐름을 바꿀 수 있을까요.”
저 책 제작에 조금이라도 거든 것이 나인 게 원망스럽다.
김현새 기자에게 저런 책을 쓰도록 유도하고 접촉한 것이 나니까.
다만, 나는 정보 제공만 했을 뿐이고, 내용을 뜯어고치거나 변경한 것은 문어와 김현새 기자 둘.
만약 내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에게 그러지 말라고 소리칠 것이다.
그 책은,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미래로 이어질 큰 변환점이라고.
…물론, 과거로 가는 것이 세상에 어떤 악영향을 일으키는지 잘 아는 나는 그럴 생각이 없지만.
무척 어렵긴 해도 과거로 가는 방법을 알지만, 해선 안 된다.
“이미 늦었어. 그 양반 어록도 이미 퍼진 지 오래거든.”
내 애비 입에서 나오는 것의 9할은 헛소리거나 언어적 쓰레기인데, 그중 어록이라 할 만한 게 있었나.
“…일단 물어는 볼께요. 어떤 어록이 있죠?”
“서양 돼지 새끼들은 지기들만 얼마나 잘 먹고 잘살았는지 배때기에 지방에 꼈네. 우린 씨벌 먹을 것도 없는데.”
“어록이 아니라 그냥 욕….”
그 순간, 내 머릿속에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
내 아버지가 그 말을 내뱉었을 당시의 상황.
세상이 뒤집히고 긴 시간 미국과 연락이 끊겼었으나, 결국 연락이 닿아 다시금 물류를 연결하기 위한 바닷길 청소 협동작전에서 그들을 만난 뒤 내뱉은 말.
약간 어투가 다르지만,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거의 똑같다.
문제가 있다면.
“…소련 거지새끼들은 윗대가리들만 처먹어서 죄다 영양실조 해골인데 말이지.”
그때 내 아버지가 내뱉은 말은 미국만 깐 것이 아니라, 뒤이어서 소련까지 욕하던 내용이었다는 것.
“아. 과연, 이제 이해가 되네. 대장님이 할 법한 말이야.”
그런 내 말을 들은 스베틀라나는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이 말을 처음 들은 것처럼.
“…몰랐어요?”
“나야 모르지, 거기 있던 것도 아니고. 저 말도 참전용사들 증언에서 나온 거니까.”
즉, 이런 것인가.
내 애비인 이하람은, 평소에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보면 온갖 헛소리가 섞인 욕설을 내뱉곤 했다.
그러다 보니 미국과 관련해서도 온갖 소리를 하고 다녔고, 그중 소련의 프로파간다에 적절한 것만을 추려서 어록을 만들었다는 이야기.
그 과정에서, 우상화에 불필요한 소련 관련 욕설들은 모두 사라졌고.
“…본인이 이 광경을 보면 뭐라고 할까요?”
내 아버지는, 소련은 정말 끔찍이 싫어했는데 말이지.
정확하게는, 모든 존재를 싫어한 것 같지만.
“소련 곰 새끼들이 눈이랑 눈싸움만 하더니 결국 미쳤구나.”
“…그것도 본인이 말한 거죠?”
이번 말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닌지, 기억의 피드백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어쩐지 그런 느낌이 든다.
“그래. 내가 직접 들었던 거.”
“하아.”
한숨이 나온다.
그리고, 그 한숨은 시베리아의 차가운 공기에 얼어 내게 되돌아왔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동상을 올려다보았다.
드넓은 눈밭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흉물이라 할 수 있는 동상을.
어쩌면, 동상은 표정을 제외하면 그때의 광경을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언제나 눈 위에서 저렇게 서 있었으니까.
가장 빨리 돌진하고.
가장 늦게 후퇴한다.
조금이라도 인류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어쩌면, 이 도시 또한 아버지가 그렇게 지켜 낸 도시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이 지역에서 지니는 인지도도 이해가 되고.
편견을 벗고,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바라보았다.
아버지와 가장 연이 깊은 것은, 소련이었다.
자기가 태어난 나라에서 떨어져, 가장 오랫 동안 함께 싸운 동료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상황은 소련의 프로파간다 말고도 여러 요인이 섞여 있었을 것 같다.
인간 이하람을 직접 눈으로 본 이들 중 대다수는 소련 병사였을 것이고, 그들은 그 이야기를 점차 주변에 퍼트렸다.
자기보다 한참 어리건만, 망치를 들고 물러서지 않는 철의 영웅을.
자신들과 잘 어울리고, 사고도 치던 한 마법소녀를.
어쩌면, 전장에서 살아 돌아온 이들을 통해, 그런 이야기가 퍼진 결과가 아닐까.
그렇다면, 이 동상에도 가치가 있을지 모른다.
한때, 진심으로 인류를 위해 싸웠던, 아버지에 대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빌어먹을 소련 새끼들.’
음. 역시 구려.
나중에 박살 내야지.
이런 게 수없이 많이 있다니 별 의미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 기분은 나아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