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633)
마법소녀 아저씨 외전 30화(633/671)
030. 유밀(04) – 어딜 가도
“꿈이길 빌었는데.”
사실 어제 도착했던 도시는, 무언가 탈것을 타고 온 게 아니라, 눈밭을 내달려서 도착한 도시였다.
평소라면 아직도 원리를 모르겠는 내 능력, 씹어먹고 내뱉는 방식의 순간이동으로 이동하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가 모르는 장소로 순간이동은 어려운 데다가, 확실한 아군도 아닌 스베틀라나에게 내 능력을 보여주고 싶진 않았다.
그렇기에 선택한 것은, 언제나 믿음직스러운 내 두 발로 달리는 것.
스베틀라나 또한 이런 일이 익숙한 듯 나와 함께 눈밭을 내달렸다.
문제가 있다면, 얼마 달리지도 않았는데 스베틀라나가 전혀 피곤하지 않은 얼굴로 피곤하다고 말한 뒤 내 말을 완전히 무시하고 호텔 방을 잡아서 하는 수 없이 이 도시에서 하룻밤을 머물게 된 것.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았기에, 이렇게 된 김에 한밤중에 내 빌어먹을 애비 동상을 파괴할 생각이었지만.
그만뒀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짓을 했다간 내가 아버지만큼 막 나가는 인간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깨달음이 한순간 머리를 스쳤기에.
제 성질 못 버리고 설치다가 짐승만도 못한 존재가 된 부모의 길을 따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 난 망할 아버지보다 이성적이고, 똑똑하며, 냉정하다.
물론, 그렇다고 동상이 짜증 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고, 볼 때마다 파괴하고 싶은 충동이 일지만, 지성체라면 자신의 충동을 다스릴 줄도 알아야 하는 법.
도시를 떠나며 바라본 동상에 그런 감정을 남긴 채, 스베틀라나의 뒤를 따라 또다시 눈밭을 달렸다.
이번 작전 목표에 대해서는, 어젯밤 몇 번이고 스베틀라나를 닦달해 대략적인 설명을 들었다.
이해한 바에 따르면, 요즘 이상한 집단이 자주 포착되고 있다.
평소처럼 자기 사욕을 챙기는 빌런 집단인 줄 알았으나, 집단의 근거지를 청소하면 수상할 정도로 그들의 행동이 깨끗하다.
하는 짓이 멀쩡하다는 것이 아니라, 뒷배를 봐주는 집단의 존재나, 큰 계획의 증거, 타 국가나 소련 내부 부패와 연결점이 없다는 뜻.
단순한 깡패 집단 수준의 조직이 이상하리만큼 큰 힘을 가지고, 약이나 인신매매, 대규모 조직원 모집 등을 행하고 있는 것에 의심을 풀고 KGB가 온 힘을 다해 그들을 턴 결과, 어떤 한 거점의 존재와 이하람의 이름이 나왔다고 한다.
이 시점에서 소련은 관련된 모든 정보를 기밀로 지정하고, 스베틀라나 혼자만을 해당 거점에 정보 확인차 보내기로 했다.
문제는, 이러한 작전행동에 흔히 따라오는 비밀공작이나 내부 정치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내가 대충 들어도 그녀가 받은 임무는 스베틀라나 혼자 수행해야 하는 것이 분명할 임무건만.
막상 해당 임무를 받은 스베틀라나는 혼자 하기 귀찮다며 나라는 인물을 새로 고용하고, 기밀을 대놓고 다 말해버렸다는 것이다.
스베틀라나는 이에 대해, 어차피 내가 이런 정보 떠들고 다닐 타입도 아니고, 관리국 귀에만 안 들어가면 된다고 정말 대충 넘겨버렸지만.
아무튼.
내가 뭐라고 한들 이미 들어버린 이상 그건 어쩔 수 없고, 이야기에서 특별히 문제가 될 만한 요소도 발견하지 못해 거래를 취소하지 않고 함께 움직이게 된 것.
다만, 눈밭을 내달리는 지금도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다.
…그 새끼들 아니겠지?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겠지?
이하람, 묘하게 수상쩍은 소규모 점조직. 향의약 거래.
아무리 생각해도 그놈들이지만.
설마. 아니겠지.
“여기야.”
그리 생각하는 사이, 목표로 삼은 지점에 도착했다.
온 사방이 눈으로 뒤덮인 장소.
그런 순백의 세계 사이로 회색 건축물이 보인다.
장식 하나 없는, 콘크리트 덩어리.
심지어 멀쩡한 것도 아니다.
다 무너져서 여기저기 구멍이 뚫리고 깨진 조각 사이로는 녹슨 철근이 여기저기 튀어나온 폐허.
아마, 과거의 대전쟁이나, 이계 침략 때 사용했던 벙커가 아닐까.
“그냥 폐헌데.”
나는 해당 풍경에 대한 짧은 감상을 내뱉었다.
건물이 큰 것도 아니고, 뭔가가 숨겨져 있다는 느낌도 없었기에.
“…아니. 사람이 드나든 흔적.”
그렇지만, 스베틀라나가 보기엔 무언가 다른 모양.
그녀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귀찮음과 피곤함이 묻어나고 있지만, 행동과 눈빛만큼은 날카롭게 다듬으며 천천히 움직였다.
앞장선 그녀는 폐허 내부로 들어가 여기저기 둘러보거나, 바닥과 벽을 손으로 쓸었다.
“입구. 눈이 덜 쌓여 있고, 불규칙적. 열원과 출입의 흔적.”
“…그냥 우연 아닌가.”
“이 철골 녹이 없어. 최근 사고로 표면이 깨져서 드러난 것.”
“…우박이라도 맞았나 보지.”
그렇게 스베틀라나는 폐허를 여기저기 둘러보며, 내게는 전혀 수상하게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하나씩 근거 없는 코멘트를 했고.
그러한 편집증적 발언 하나하나에 무어라 한마디씩 덧붙이는 것도 귀찮아질 때쯤.
“신발 물때. 공기 흐름. 여기다.”
스베틀라나가 갑자기 지면에 손을 박아 넣었다.
내게는 아무것도 감지되지 않은 평범한 장소에.
손날을 콘크리트에 박아 넣은 것은 좀 많이 놀랍지만, 또 뻘짓….
쿵.
두꺼운 콘크리트 문이 뜯어지고 지하로 가는 계단이 나타났다.
“….”
“가자.”
아무래도 집에 돌아가는 건 늦어지겠네….
* * *
지하는 좀 많이 수상하다.
위쪽 폐허와 다르게 깔끔하게 마감된 콘크리트, 조금 전까지 난방이 되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따스한 공기, 불태우다 남은 변색이 일어나지 않은 흰 종이.
사람은 아직 한 명도 발견할 수 없지만, 빠르게 내부를 정리하고 도망쳤다는 정황 증거는 여기저기서 발견할 수 있었다.
지하도 규모가 꽤 되고, 여기저기서 타다 남은 종이 조각 내지는 파괴된 컴퓨터 부품이 발견되는 것을 보아 스베틀라나가 말하는 조직의 중요 거점인 것은 분명하지만, 아무래도 한발 늦은 모양.
“….”
그에 스베틀라나는, 아쉬운 듯 타버린 조각이나 컴퓨터 부품이라도 조금씩 챙기고 있었다.
뭐, 저만한 조각만 있어도 온갖 이능을 쓰면 어느 정도 복원할 수 있을 테니까.
복원된 물건에 중요한 정보가 담겼는지는 운의 영역이지만.
아무튼 우리 둘이 지하를 뒤진 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기대하던 정보는 발견할 수 없었고.
“….”
“….”
우리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마지막 남은 장소, 눈앞을 가로막은 거대한 문을 바라보았다.
지하 비밀 기지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거대한 문.
이보다 더 수상쩍은 장소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 둘은 마지막이 될 문 앞에서 잠시 숨을 가다듬었고.
스베틀라나가 나서, 천천히 문을 열었다.
기이이익.
문의 경첩에서 약간의 소리가 나긴 하였으나, 문은 그 거대함에 어울리지 않게 부드럽게 움직였고.
열린 틈 사이로 우리가 만든 빛이 스며들자, 문 너머의 전모가 드러났다.
비밀 기지의 끝자락에 있던 것은, 거대한 방이었다.
방 끝 면 중앙에 자리한 높다란 연설대, 그 뒤로 이어진 석제 의자와 여러 장식물.
…종교 집회용 강당?
난 그렇게 짧게 생각한 후, 천천히 주변을 살피고자 시야를 돌렸고, 연설대 위쪽에 자리한, 눈에 확 띄는 문양을 발견했다.
색이 바래긴 하였으나, 여전히 진한 색을 간직한 거대한 붉은 달.
달 아래 자리한 눈이 달린 삼각형.
그렇지만, 삼각형은 내가 아는 것과 달리 밑변이 위로 향하고, 꼭짓점이 아래로 내려가 있는 것이었고.
삼각형 꼭짓점의 끝단에는, 익숙한 문양이 있었다.
“절 문양… 아니, 다른가?”
만(卍)자 문양. 그렇지만, 그것과 비슷하게 생긴 것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저건 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니까….
음…. 그러니까, 시계 방향이 그거고, 반 시계 방향이 절 문양….
아니, 반대였나?
그에 잠시 고민하고 있자.
“하켄…크로이츠….”
분명 알고 있는 목소리건만,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해당 단어를 내뱉은 것은, 내 옆에 자리한 스베틀라나.
그렇지만, 목소리엔 평소와 달리, 나태와 무감정함이 섞이지 않았다.
늘어지는 발음이나, 길게 뿜어내는 숨소리 없는, 또박또박하고 깔끔한 목소리.
이 여자의 진짜 목소리는 이랬구나 하고 곧바로 내가 놀랄 정도인 예쁜 목소리.
그렇게 그 목소리가 텅 빈 강당에 울려 퍼졌고.
“그래. 하켄크로이츠. 영광스러운 시대의 상징이지.”
메아리침으로써 작아진 스베틀라나의 목소리는, 처음 듣는 목소리에 잡아먹혔다.
뚜벅. 뚜벅.
무거운 발소리가 강당을 울리고.
아무도 없던 것이 분명한, 스베틀라나의 그림자에도, 내 감각에도 잡히지 않은 존재가 연설대에 나타났다.
붉은 망토와 흰 도자기 가면으로 모습을 감춘 존재. 목소리 덕에 높은 확률로 성별이 남성이라는 것 정도는 추측할 수 있지만, 그것 말고는 적에 대해 밝혀낼 수 있는 정보가 하나도 없다.
내가 모르는 강자.
그에 곧바로 적의 정보를 얻음과 동시에, 돌발 상황에 대비하고자 이성을 퍼올리고 감정을 차갑게 만들며 사고 패턴을 전투용으로 바꿨지만.
“…영광스러운 시대?”
아무래도 옆에 있던 스베틀라나에게는, 저 말이 역린이었던 모양.
짧은 인연이긴 해도, 그녀의 평소 모습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열기가 피어난다.
그렇게 스베틀라나가 적에게 강한 적의와 살의를 내비치지만.
“안타깝군. 2대. 그쪽에 붙다니.”
붉은 존재는 스베틀라나의 기운을 완전히 무시하며 내게 말을 돌렸다. 그 말에 의해, 나는 내가 애써 외면하던 진실에 도달하였다.
“…크림슨 나이트?”
“그래, 크림슨 나이트. 우리 조직의 이름이지.”
씨-발.
미친 거 아니야 정말?
애비 숭배에 마약 팔이를 넘어서 이제 나찌라고?
대체 뭐 하는 조직이야 너희….
“2대. 또다시 제안이다. 이번이 마지막이겠군. 우리와 손을 잡지 않겠는가?”
그런 막장 조직의 수장 내지는 간부께서 또다시 내게 보낸 러브콜.
내가 저쪽 조직에다 내고 날린 거대한 가운뎃손가락을 모르는 것은 아닐 텐데….
“해에, 내 이름이 그렇게나 중요한가 봐?”
아직도 날 스카우트하려고 하다니.
“이름에는 가치가 없지. 그보다는 믿음이다. 1대가 잘못된 길을 걸어도 결국 올바른 길에 도달했듯, 너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란 믿음이지.”
“으엑.”
그게 올바른 길이라고 말한다고?
그런 말을 하는 녀석이랑 절대 손을 잡을 리가 없잖아.
“아버지처럼 답해 줄게. 엿 머거. 두 번 머거. 세 번 머거. 먹다 목에 걸려서 뒤져.”
중지를 들어 올릴 손이 천 개 정도 있었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내겐 두 개밖에 없다.
“안타깝군. 그럼…. 볼일도 끝났으니.”
붉은 존재가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 손을 흔들기 시작한다.
동시에.
“어딜 가려고.”
“동감.”
스베틀라나와 내 움직임이 겹쳤다.
적이 만든 일순간의 빈틈.
찰나를 노리는, 빠른 공격.
나는 곧바로 망치를 휘둘렀고.
스베틀라나는 손을 모자이크 형태로 만들면서 무언가를 준비했다.
그리고.
“오늘은 이만 실례하겠네.”
캉. 캉.
둘의 공격은, 붉은 존재 주변에 펼쳐진 반투명한 보호막에 가로막혔다.
힘을 예열할 시간이 없어 최대치보다 약하긴 해도, 나름 최대한 힘을 담아 내려친 망치건만, 적의 보호막을 뚫지 못했다.
스베틀라나가 날린….
…이 표현이 맞는진 모르겠지만, 다른 색의 완전한 검정으로 이루어진, 모자이크 형태의 네모난 그림자 창도 적의 보호막에 가로막혔다.
차이가 있다면, 내 공격은 보호막에 튕겨 나가 영향을 끼치지 못했고, 그림자 창은 보호막을 잠식하는 것인지 투명한 역장이 동영상 화면이 깨지는 것처럼 네모난 뒤틀림을 수없이 발생시켰으나, 결국 관통하지 못했다.
“호오. 나와 마찬가지로, 너머를 본 자인가.”
그 광경에 붉은 존재는 흥미롭다는 감정을 내보였지만.
“또다시 안타깝군. 그런 존재가 공산주의자라니.”
결국 그러한 감정 또한 실망하는 목소리로 되돌린 뒤.
“그럼, 약속의 날. 다시.”
핏.
작은 깜빡임만을 남긴 채,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강당에 남은 것은, 이 정보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고민하는 나.
그리고, 길길이 날뛰며 나찌 문양에 그림자 창을 쏘아내는 스베틀라나뿐.
…나찌라니.
아무리 그래도, 나찌라니.
대체, 내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