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652)
마법소녀 아저씨 외전 49화(652/671)
049. 매직 카르텔(4)
자칭 성녀에게 붙잡혀 선배님의 무덤 앞으로 이끌렸다.
멀리서 볼 땐 몰랐지만, 가까이 와서 살펴보니 옛날 기억과는 상태가 좀 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상당 부분 부서져 원래의 형상을 잃어버린 흔적과 누군가의 정성스러운 손길로 복원된 흔적.
무덤 앞에 놓인 무수한 비난성 발언과 옹호성 발언이 적힌 신문, 잡지, 인쇄물 등.
비판이 더 강세지만, 극단적으로 평가가 갈리는 선배님을 그대로 나타내는 듯한 무덤.
나도 어느 쪽이냐 하면 비판 쪽이지만 말이지.
나름대로 존경하는 것과 별개로, 끝이 너무 엉망이었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이 항상 맞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선배님에 대해서는 적절한 문장이 아닐까.
…그 전까지의 행적이 멀쩡하다는 건 또 아니지만 말이지.
암살팀이라.
항상 좀 이상해도 올곧은 줄 알았던 선배님에게 그런 면모가 있을 줄이야.
그런 과거도 분명….
그렇게 무덤을 바라보고 생각에 잠긴 나에게.
“하람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갑자기 자칭 성녀의 질문이 날아들었다.
독심술도 사용할 줄 아는 건가…?
마치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하듯 절묘한 타이밍에 날아든 질문.
“….”
무어라 답해야 할까.
상황에 맞기는 해도 갑작스러운 질문인 건 둘째치고, 물어 보는 질문이 너무 광범위하다.
어떻게 생각하냐니. 그걸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을까.
“흐음.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사람의 행동은 여러 가지를 보여 준답니다. 특히나 우리처럼 자신의 의지가 외부로 뿜어진다면 더더욱 그렇죠.”
“…그럼, 제가 답하기 힘들어한다는 사실도 눈치채셨겠네요?”
“거짓말이랍니다. 저는 그 정도로 정밀도가 뛰어나지 않으니 말이죠.”
…뭐야 이거….
“하람이는 유독 타인의 의지를 읽는 걸 잘하는 것 같았고, 그게 전문인 능력도 있었지만, 제가 읽을 수 있는 건 약간의 희미한 감정과 표층에 드러난 한두 단어뿐. 하람이 쪽은 능력이라기보단 살면서 그런 거에 민감해진 것에 가까운 것 같지만요.”
갑자기 쏟아지는 언어의 물결.
맞장구를 쳐야 할지, 그냥 계속 들어야 할지 알 수 없게 만드는, 지금 상황에 잘 어울리는 것 같으면서도, 뭔가가 어긋난 듯한 성녀의 말.
“뭐, 제가 이렇게 설명하는 것도 이상하긴 하지만요. 생선에게 헤엄을 가르치고, 태양에 촛불을 들어 올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그렇지 않나요. 최상위 정신계 각성자이자, 의지에 특화된…. 해피니스 드롭.”
…뭐?
갑자기 튀어나온 성녀의 말에 놀라, 나도 모르게 성녀를 똑바로 바라보고 말았다.
성녀와 시야가 마주친다.
짓궂은 얼굴의, 텅 빈 동공의 성녀.
무얼 바라보고 있는지, 무엇이 비치는지 알 수 없는, 텅 빈 눈.
이질적이고, 무섭다.
자료로 봤을 뿐, 직접 마주한 적은 없지만.
과거의 성녀가 이랬다면, 성녀라는 호칭이 이 사람에게 붙을 리가 없다고 생각될 만큼 크나큰 허무.
“아니면, 리사 달그렌? 하긴 저는 리사가 타락한 걸 직접 보진 못했죠. 뭐 그래도 그전부터 정신 계통은 저보다 뛰어났으니까.”
“….”
어떻게 안 거지?
왜 그걸 여기서 말하는 거지?
지금 이 만남도 우연이 아닌 건가?
성녀는 자신은 정신 계통 능력이 별로라고 했지만, 사실은 뛰어난 게 아닐까?
갑자기 생겨난 불만이나, 내가 선배의 무덤으로 찾아온 것도 전부 유도된….
“아하하, 얼굴 풀어요. 역시 관록이 부족하네요. 이 정도의 유도에 세상이 다 끝난 것처럼 굴다니. 그래서는 언젠가 한 번 크게 다칠지 몰라요? 찔러본 건데, 그렇게 나오면 다 티 나잖아요.”
성녀의 웃음기 섞인 말과 함께.
팡.
허리가 크게 휘어졌다.
등에 내리박힌 강렬한, 그렇지만 아프진 않은 충격.
아니, 정확하게는, 아픔만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 같다.
허리가 나갈 정도의 강한 충격이 내리박히고, 실제로 허리가 크게 휘어졌지만, 아픔만은 없는 이상한 경험.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자칭 성녀는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맥락을 알 수 없는 말을 계속 꺼내며 대화의 주도권을 잡아가고, 허리는 아픈 것 같으면서도 안 아프고, 상황은 혼란스럽고, 성녀의 변화도 종잡을 수가 없다.
현실이 아닌, 악몽이나 초현실적 희극의 한 장면에 강제로 올라온 기분.
“음. 정말로 죄송하네요. 이래선 안 되는 걸 알지만, 이계 쪽 존재는 혼돈의 영향이 강하기라도 한 건지 이런 몸이 되고 나서는 뭔가 상대를 곤란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잔뜩 들거든요. 뭐라고 해야 하나, 혼돈을 탐미? 상대가 내게 곤란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한 쾌감? 그런 게 슬슬 피어올라서 참을 수가 없어서 말이죠. 본래 성녀가 이랬다고 생각하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어요.”
…말이 너무 엉망이야.
과거의 성녀랑 본인을 따로 취급하는 것 같으면서, 동시에 동일한 존재처럼 취급하니 대체 무슨 장단에 맞춰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적어도 뭐라고 반응할 시간은 주세요…. 템포를 따라갈 수가 없….
“아, 참고로 한눈에 알아본 건, 제가 그런 쪽에 특화된 덕이랍니다. 내면에 지인의 모습이 보이니 뭐 떠보는 정도야 간단하죠. 그러니까…. 이름이…. 분명….”
…잠깐만요. 성녀님. 제 이름도 모르고 그러셨던 거예요?
“하아아아아…. 한아빈이에요 성녀님. 영웅명은 매직….”
“아아. 그렇죠. 매직 카르텔. 하람이의 제자.”
“….”
혹시, 지금도 놀리는 중인가?
이름은 기억하지 못했으면서 껄끄러운 영웅명은 바로 말하다니.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어디까지가 연기인지 모르겠다.
“그럼, 성묘는 끝났나요?”
‘계속 끼어드는 통에 아무것도 못 했는데요.’
그리 한마디 쏘아주고 싶지만, 속으로 삼켰다.
괜한 짓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예,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었어요. 성녀님. 그럼, 이만.”
최대한 빨리 이 자칭 성녀에게서 멀어지고 싶다는 마음도 한몫했고.
그러니 인사를 남기고 최대한 빠르게 무덤에게 멀어졌지만.
“스승으로서 하람이는 어땠나요?”
자칭 성녀는 내 옆에 바싹 붙어, 계속 말을 걸어 왔다.
“제가 다른 스승이 없었던지라 비교는 못 하겠지만, 뭐 그럭저럭.”
저는 대화를 그만두고 도망치고 싶습니다.
“흐음. 참 무난한 답변이네요.”
예, 예. 무난해서 죄송합니다. 그럼 이만.
“흐음. 하긴 뭔가를 얻기 위해서라면, 뭔가를 내놓아야 하는 법이죠. 그러니, 이러면 어떨까요?”
떠나 주신다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막 영웅이 된 시절 하람이 이야기라면 어떨까요? 본인도 부끄러워서 거의 이야기를 안 했을 것 같은데.”
“좀 더 시간을 내도 괜찮을 것 같네요.”
성녀는 내 답에 옅은 미소를 짓고, 주변을 둘러보며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이야기가 좀 길어질 것 같기도 한데….”
성녀의 시야를 따라 나 또한 고개를 돌려 보았지만, 보이는 것은 무덤과 무덤과 무덤뿐.
“앉을 만한 장소도 없으니 걸으면서 이야기하죠.”
성녀는 지금까지처럼 자기 멋대로 결론짓고 발을 옮겼다.
이제 상대를 따라가는 것은 성녀가 아닌, 나.
“어디 보자. 우선 가장 말하기 쉬운 건 외모일까요. 변신하기 전 외모는…. 그건 뭐 비밀로 남겨두도록 하죠. 파헤치기 싫은 비밀도 있는 법이니까. 그럼 마법소녀 외형인데, 이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죠. 정말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네요.”
성녀는 나보다 조금 앞서가며 즐거운 듯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지만, 내용은 내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이었다.
첫 시작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다니.
영양가도 없고, 별로 재미도 없….
“다만, 재미있는 변화가 있었죠. 지금은 세상을 다 산 것 같은 지친 얼굴에, 잔뜩 찌푸린 얼굴이지만, 당시에는 밝게 웃기도 하고, 꽤 귀여웠답니다? 개인적으로는 사진 같은 걸로 보여 주고 싶지만, 아쉽게도 그런 자료는 남아 있지 않겠죠.”
“…웃는 얼굴이라….”
꽤 괜찮은 정보에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 보려 했지만, 떠오르는 것은 아이가 귀엽게 웃는다기보다는 광소하는 모습.
피투성이가 된 채 양손에 상대의 내장을 휘감고, 허공을 향해 포효할 법한 이미지만이 떠올랐다.
으으으음.
“어떻게든 상상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이네요. 과연, 제가 없던 사이 하람이의 표정은 그런 얼굴뿐이었나 보군요. 친한 상대에게는 그런 웃음 정도는 보여 주지 않을까 했지만, 역시 없었나 보군요.”
성녀는 뭔가 맥이 빠진 목소리로 내게 그리 말했고.
“예, 아쉽게도, 전혀. 표정은 무뚝뚝하다 정도까진 아니지만, 성녀님이 말하시는 그런 표정을 본 적은 없네요. 사진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상상이 잘….”
정말 어떤 모습일까.
사람은 무언가를 상상하기 위해서는 생각을 이어갈 수 있는 자그만 파편이라도 필요하다고 하는데, 그 이론대로라면 난 정말 선배님에게서 그런 편린을 느끼지 못한 모양이다.
“너무나도 오래전 일이라 관리국에서도 그런 사진은 찾기 힘들겠죠.”
“아쉽네요.”
선배님 외모는 귀여운 편이니, 한번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은데.
“뭐, 사진이 없을 뿐이지만요.”
“그게 무슨 말….”
“복원.”
파직.
마력.
아니, 그와 비슷하지만 무언가 다른, 따스한 느낌이 주변에 흘러들었고.
동시에, 꺼림칙한 느낌이 목덜미를 타고 올랐다.
지네나 거미, 그런 다족류가 피부를 기어가는 듯한 짧은 감각과 함께.
파직.
허공에 이미지 한 장이 나타났다.
현실에 존재하지만, 그렇게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아닌 공중 홀로그램
그와 비슷하지만, 좀 더 선명하고 깔끔한 이미지로서 나타난, 한 장의 사진.
거기에는 훈련 직후인지 어깨에 망치를 메고 땀을 흘리고 있는, 정말, 정말로 밝은 표정의 선배님이 서 계셨다.
무어라 표현하면 좋을까.
어린이다운, 밝은, 천진난만한, 티 없는.
아이의 외모에 걸맞은, 내가 가진 선배의 이미지. 핏기, 폭력, 광소와는 전혀 다른 한 장의 이미지.
“제 기억을 사진의 형태로 복원했답니다.”
“…치유 마법인가요?”
성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사진에 시선을 집중하며 질문 하나를 돌렸다.
눈앞에 일어난 현상에 대한 호기심이 존재하긴 하였지만, 눈앞의 이미지에서 눈을 뗄 수 없었기에.
“치유를 기반으로 한, 복합 기술이죠. 아, 마법으로는 가능은 하지만 힘들 거예요. 이건 신성력의 한 계통수니까.”
치유에 기반.
내 능력이 약하기는 해도 같은 치료 능력자라 그런 것일까, 성녀가 하는 말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치유라는 이름하에, 기억이라는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개념을 타인이 볼 수 있는 이미지로서 재현한다.
자료를 통해 성녀가 주먹으로 발생시킨 에너지나 이미 생체 활동이 멈춘 신체조차 복원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거는 이미 치유라기에는 너무나도 아득한 무언가.
본래라면 그 기술에 대해 무수한 의문을 품고 조사해 보겠지만.
지금 내 눈앞에 떠오른 사진이 너무나도 매혹적이였기에.
나는, 다른 것을 되묻고 말았다.
“계속, 이야기해 주세요.”
“좋죠. 저도, 제가 사라진 뒤의 하람이 이야기를 듣고 싶으니까요.”
잔뜩 신이 난 듯한 성녀의 답.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이 옳은 일은 아닌 것 같다는 양심의 찔림이 조금 있다.
이미 떠난…. 아니 선배님 성향상 죽진 않고 어딘가에 있을 것 같긴 하지만.
여기 없는 사람을 두고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건, 조금…. 그렇지만.
뭐, 아무렴 어때.
선배님도 항상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고 다녔으니.
“그럼, 제 첫 수업 때의 이야기인데요….”
나도, 할 말이라면 잔뜩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