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657)
마법소녀 아저씨 외전 54화(657/671)
054. 매직 카르텔(5)
“뭐야?”
성녀가 들었으면 버릇없다고 했을지도 모르는 혼잣말이, 당황해 제어하지 못한 큰 목소리로 공동묘지에 울려 퍼졌다.
무덤의 정적을 파괴한, 메아리조차 돌아오지 않는 내 의문 섞인 고함.
그리고 짧은 시간이 지난 뒤, 무덤은 다시 고요해졌다.
조금 전까지 있던 일이 모두 환상이었다는 듯.
어쩌면, 정말로 환상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묘지는 고요했지만.
바스락.
손에 남은 사진의 뻣뻣한 감촉이, 이 모든 일이 현실임을 상기시켜 주었다.
천천히 손을 올려 사진을 바라보았다.
사진에는 나도 알고 있는 몇몇 유명한 영웅들의 얼굴이 자리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모르는 얼굴.
모르는 얼굴 사이에서 웃고 있는, 선배님의 얼굴.
“….”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시대는, 어떤 시대였을까.
한번 묻어두었던 질문.
사실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다.
선배님이 그렇게 된 이후, 선배님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자료를 찾아보았으니까.
세간에 알려진 정보, 어느 정도 기밀이 섞인 정보.
실제로 그 시대를 살았던 내 팀원, 매직 카르텔 멤버의 증언.
대충 찾아본 것도 아니다.
깊게, 그리고 진심을 담아 찾아보았다.
하지만, 결국 찾을 수 없었던 시대의 이야기.
기록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해당 시대의 기록은 사회의 혼란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뤄지고 있었다.
작은 분쟁이 있었지만, 그래도 평화로웠다고 할 수 있던 세계가 얼마나 빠르게 무너지고 망가졌는가.
그리고 각 나라는 어떻게 대처했으며,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그 정도의 이야기는 노력하면 쉽게 찾을 수 있고, 자료도 방대하다.
해당 시대를 깊게 분석하는 논문도 굉장히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자료 속에서도, 개인의 삶에 대한 정보는 찾을 수 없었다.
변화의 흐름에 잡아먹히고, 남는 것은 사회의 결과뿐.
세계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이들의 흔적은, 동방전선다국적연합특수작전부대라는 기록으로 남아있을 뿐.
실존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하지만, 어떤 이들이 속해있었으며,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없었다.
의도적으로 말소된 것처럼.
심지어 여러 국가와 관리국의 치부와 기밀이 잔뜩 적혀있다는 선배님의 일대기에도, 이 시절의 이야기는 거의 적혀있지 않다.
그런 부대에서 종군했다는 증언과 전투 기록이 소수 삽입되었을 뿐.
…이건 사실, 나만의 생각은 아니다.
책이 발매되고 그런 부대의 존재를 알게 된 수많은 전공, 아마추어 역사 연구가가 흥미를 지니고 연구했지만.
그들이 건진 것은 거의 없었다.
오죽하면 각국의 위키에 잊힌 부대라고 부를 정도로, 기록이 제거된 집단.
그들은 해당 집단에 속한 개개인의 문제.
특히 선배님의 광란에도 불구하고, 집단으로 보면 인류를 지키기 위해 최전선에서 분투한 진정한 영웅들이라 평가받고 있지만.
“…조금, 달랐지.”
세상의 평가와 성녀의 이야기에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세간에서는 정의감과 명예에 불타는 정의로운 집단이라는 이미지가 정착되어 있고, 각종 창작물이나 서적에서도 그리 평가하고 있지만.
성녀의 이야기에서는 그런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불평불만이 가득한 채, 서로 다투고, 화해하고, 반발하든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
선배님이나 지금도 알법한 영웅들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았다면, 그냥 조금 특이한 일상 이야기가 아닐지 싶은, 그런 이야기.
그것은 나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였고.
머릿속을 채운 그런 생각들과 함께, 성녀의 이야기를 곱씹으며 선배님의 묘비를 잠시 바라보았다.
짧지만 깊은 생각과 함께.
그리고, 묘비 그림자가 조금 움직였다는 사실을 인지할 정도의 시간이 지난 뒤.
“…아니 그래도, 이건 아니지.”
내 안에 차오른 것은 어떤 깨달음이나, 흥미가 아니었다.
분노 혹은 짜증과 같이 불타는 감정.
“가장 중요한 부분이 빠졌잖아요.”
이야기를 끊고 도망간, 성녀에 대한 분노.
성녀는 언젠가 다시 이야기해 준다고 말하며 사라졌지만, 과연 그건 언제일까.
한 달 후? 아니면 몇 년 후?
아니, 저 사람을 평생 다시 못 볼 가능성은?
과연 나는 그녀의 목소리가 자아내는 과거 이야기를 다시 듣는 게 가능하긴 한 걸까?
“…아아아아아아. 정말!”
짜증이 솟구친다.
딱 흥미가 솟아날 부분에서 끊어버리고 도망친 성녀에 대해.
대체 얼마나 중요한 볼일이길래 말하다 말고 사라진 거야?
아니, 정말로 볼일이 있긴 한 걸까.
성녀가 직접 자기 입으로 남을 놀리는 걸 즐기게 되었다고 했으니, 이것도 의도적으로 한 일일 가능성이….
“후우….”
열심히 생각한다 한들, 의미가 없잖아.
무엇이 진실이건 간에 성녀가 갑자기 돌아오지는 않을 테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돌아가자.
할 일이 없어 충동적으로 행동한 것 치고는 나쁘지 않은 만남이었지만, 따져보면 제대로 얻은 건 사진 한 장뿐.
그렇게 발걸음을 돌리려는 순간, 생각 하나가 머리에 스쳤다.
그러고 보니, 제대로 인사도 못 했네.
여기 온 이유는, 선배님의 무덤을 추모하기 위해서였는데, 성녀에게 휘둘리는 바람에 제대로 된 추모를 하지 못했다.
짧게 하고 가자.
그렇게 결정한 나는 주름이 생기지 않게 사진을 조심스럽게 지갑에 담은 후, 빠른 발걸음으로 무덤으로 돌아간 뒤,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곧바로 머리를 들 수도 있지만, 십여 초 정도 침묵 속에서 고개를 숙였고.
“또 올게요.”
듣는 사람도, 답하는 이도 없는 허무한 인사와 함께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빠직.
굉장히 불길한 소리와 함께.
“…어….”
그리고 당황한 내 목소리와 함께.
투둑.
묘비에 금이 갔다.
아니, 금 정도가 아니다.
부서졌다.
갈라졌다.
묘비가 박살이 나진 않았지만, 누가 내리친 것처럼 쪼개졌고, 내 손바닥만 한 파편 하나를 지면에 흩뿌렸다.
마치, 내가 묘비를 힘껏 치기라도 한 것처럼.
다시 말하지만.
아니 내가 누구한테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다시 한번 생각하자면.
난 아무것도 안 했어.
정말로 아무것도, 하늘에 맹세코 정말로 아무것도.
그런데, 내 눈앞에서 묘비가 쪼개졌다.
본래도 여기저기 금이 가고 온전한 형태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이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파손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깔끔하게, 완벽하게, 돌이킬 수 없을 수준으로 손상되었다.
“…어….”
이게, 대체 뭐야.
예정에도 없던 일들이 연달아 일어나고 있잖아.
성녀를 만났고, 선배님 묘비는 박살.
아니 박살은 아니지 아무렴. 박살은 아니야.
쪼개진 거지.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아마 재활용할 수 있을 거야.
돌은 재활용을 어떻게 하지? 녹일 수 있나?
주조? 담금?
“으아아아아….”
짝.
당황 속에서 소리가 들린다.
잔디 짓밟는 가벼운 발소리.
그에 놀라 뒤돌아보니, 사람 두 덩어리의 형체가 보인다.
중절모를 쓴 검은 인간.
옆에 자리한, 검은 상복의 작달막한 응어리.
공동묘지의 가장 깊숙한 여기까지 오는, 희귀한 조문객.
설마 여기로 오는 건 아니겠지?
그런 우연이 일어날 리는 없지만.
아마도, 그럴 리 없지만.
나는 허리를 굽혀서 떨어져나온 묘비 조각을 주워 가방에 황급히 쑤셔 넣었고.
그들이 부유해 오는 길의 정 반대쪽에 난 다른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주치지 않도록, 눈에 띄지 않도록.
당황 속에서 이게 올바른 행동이라 생각하며.
어쩐지 그들이 나를 보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여 고개를 돌렸지만, 그들은 그저 천천히 앞으로 미끄러지고 있을 뿐이었고.
그런데도 나는 발걸음을 재촉하며 길을 내달렸다.
불안과 혼란 속에서 발걸음을 다시 옮겼고.
멀리, 관리사무소가 보인다.
어쩐지 굉장히 긴 시간이 지난 것 같지만.
휴대폰을 통해 시간을 확인해 본 결과, 평범하게 묘지를 횡단할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였고.
“휴우….”
그제야 좀 침착해진 나는 자신의 행동을 반성했다.
왜 그렇게 당황했지.
갑자기 여러 사건이 동시에 일어난 것도 맞고, 혹시나 일이 꼬이면 설명하기 어려웠던 것도 맞지만, 그 정도까지 정신을 못 차릴 사건은 아니었다.
애초에 거짓말을 하는 방법도 있다.
내가 처음 왔을 때부터 이랬다고.
그게 잘 먹혔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자기변명을 하며 걷는 사이, 묘지 출입구에 자리한 관리사무소가 점차 가까워졌다.
본래라면 시위로 출입구 주변은 항상 소란스러워야 할 테지만, 입장할 때 시위하던 이들도 시간이 지나 해산했는지 관리사무소 주변은 묘지처럼 조용했다.
…혹시, 관리사무소에도 아무도 없는 건….
그런 불길한 예감과 함께, 관리사무소의 문을 열고 들어섰지만.
“아. 한아빈 영웅님. 볼일은 끝나셨나요?”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들어올 때와 똑같은 얼굴의 직원이 밝은 얼굴로 날 맞아주었고.
“예, 감사합니다.”
직원의 말 한마디에 모든 긴장이 풀린 나는 웃으며 답을 해주었다.
“그렇군요. 아, 퇴장 절차 때문에 오신 건가요? 출입구에서 체크하고 있으니 가실 때는 그냥 가셔도 상관없었는데….”
“아, 그건 아니고요. 말씀드릴 게 있어서.”
나는 친절한 직원의 말에 답하며, 머릿속으로 문장을 만들어 나갔다.
“그 제일 안쪽에…. 크림슨 해머의 묘비가 있잖아요?”
“예, 그렇죠.”
“제가 가보니 그게 크게 파손되어 있었요…. 절반으로 쪼개진 수준으로….”
“…네? 제가 어제 확인할 때만 해도 그 정도는….”
그야… 그렇겠죠….
제 눈앞에서 박살 났으니까….
“아무래도, 다른 사람이 그사이 뭔가를 하고 간 모양이네요…. 아까도 다른 분들을 묘지에서 봤….”
특성상 인적이 드문 묘지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사람이 적진 않을 거야….
그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제 변명에 휘말려 주세요.
조사하면, 혐의가 없다고 금방 확인될 테니….
“…흐음.”
관리인은 내 말에, 굳은 표정과 함께 컴퓨터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눈에 담으며, 나는 생각을 뻗어 나갔다.
정말 괜찮은 걸까?
거짓말을 한 직후에 피어나는 의문.
지금이라도 사실대로 말하는 게 좋을까?
의심을 받는다면, 차라리 내가.
타인에게 그런 민폐를 끼칠 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잠시 흔들린 양심을 되찾고자 입을 열었다.
“사실….”
“이상하네요. 제가 오후 담당자라 오전 기록도 확인해 봤는데, 오늘 신청을 넣으신 분은 한아빈 영웅님 한 분뿐….”
…네?
“잠시만요. 수녀 복장의 여성이나, 검은 상복을 입은 큰 키의 여성과 두건을 쓴 작은 키의 여자아이….”
“없었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오늘 입구를 통과하신 분은 한아빈 영웅님 한 분뿐이군요.”
성녀는 성격상 그럴 수 있을 것 같긴 하니 그렇다고 해도….
나머지 둘은?
검은 남성과 단신 여성은.
대체.
누구지?
“뭐. 그렇게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몰래 묘지에 숨어드는 사람이야 흔하니까요. 아마, 묘비를 망가트린 것도 그런 녀석들일 겁니다. 나름 관리를 하고 있는데, 매번 그런 일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군요.”
그렇…군요.
뭔가, 굉장히 수상하지만.
그것 말고는 따로 설명할 길 없는 단순명쾌한 해답.
아마도, 그게 정답이겠지.
“그럼, 잘 부탁드려요….”
나는 무언가 꺼림칙함을 느끼면서도, 인사와 함께, 묘지를 떠났다.
기분 탓이겠지만, 올려다본 하늘에 보랏빛이 섞였다고 느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