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663)
마법소녀 아저씨 외전 60화(663/671)
060. 매직 카르텔(11)
따르르릉.
“흐갸악?!”
비명을 내지르며 잠에서 깼다.
“…어? …어?”
따르릉.
계속해서 전화 소리가 호텔 방에 울리지만, 나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흘린 침의 뻣뻣함에 얼굴이 굳고 머리도 기름기로 조금 끈적이지만.
지금 그건 별로 중요한 정보가 아니다.
…꿈?
지금 여기는, 루프? 아니면 현실?
일단, 다시 루프 된 상황은 아니야.
로그에 루프의 기록이 남아 있지만, 지금 내 기억은 로그를 통한 게 아닌, 평범하게 마지막 루프로부터 이어지고 있다.
따르릉.
그래. 시계.
전화 소리가 계속해서 울리지만, 머릿속이 혼란한 나는 전화를 들지 않고 루프의 시작 지점이었던 시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분명. 7시 42분….
“어…라?”
거기에는 눈에 익은 아날로그 시계가 아닌, 디지털시계가 걸려있었다.
디지털시계에 나타난 시간은, 11시 35분.
…루프가 달라졌나?
그럼, 내가 할 일은. 전화를…. 받는 것?
그런 생각에, 무심코 오른손을 울리는 전화기로 향했다.
따르릉.
그렇게,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또 눈치챘다.
오른손도 돌아와 있네….
분명 잘랐었던 오른손이 멀쩡하게 돌아와 있다.
루프가 되었다면, 몸이 복구될 테니 이상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로그 상 내 의식은 계속해서 이전 루프로부터 이어지고 있고, 끊어지지 않고 계속 기록되는 로그도 분명 내가 손을 잘랐다고 알려온다.
너무 많은 정보.
그에 따른 혼란.
나는 그 속에서, 전화가 무언가 실마리가 되리라고 믿으며, 수화기를 들어 올려 귓가로 옮겼다.
“여보세요.”
“아. 받으셨군요. 안녕하세요. 프론트 데스크입니다. 체크아웃 준비되셨을까요? 원하시면 체크아웃 시간을 연장해 드릴 수 있습니다.”
“아….”
나는 잠시 고민했다.
혹시 이것도 루프가 아닐까.
그렇다면, 무어라 말해야 할까.
루프는 내가 호텔에 남는 것을 원한다.
그렇다면, 다시 루프하는 선택지는….
“아. 죄송합니다. 체크아웃할게요. 몇 시까지 나가면 될까요?”
몇 초가량 고민한 끝에, 그렇게 답을 내놓았다.
그리고.
“저희 호텔의 체크아웃 시간은 오후 1시입니다. 추가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예. 감사합니다.”
뚝.
전화가 끊겼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평범한 대화를 통해.
나는 멍하니 수화기를 내려놓았고.
천천히 방을 둘러보았다.
어설픈 벽 파괴 방지 종이쪽지가 붙었던 벽은, 밖으로 나갈 수 있을 만큼 큰, 안전이 걱정되는 넓은 창문이 달린 벽으로 되돌아와 있고.
더러움이라고는 작은 먼지만이 내려앉은 침구류는 피가 흩뿌려진 적이 없다는 듯 깨끗한 흰색을 여전히 보여주고 있다.
…내 침이 조금 얼룩으로 남았지만.
그리고… 시계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벽에서 시계를 때 뒤편을 바라보았다.
디지털시계의 뒤편에 있는 것은, 시간 조절용 스위치와 건전지를 넣는 장소뿐.
쪽지 같은 것은 눈에 띄지 않았다.
나는 시계를 되돌리고, 멍하니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지금도 그 고통이 생생한, 잘려 나갔던 오른손.
하지만 잘린 자국도, 그렇게 생생했던 고통도.
지금은 없어.
내가 루프를 했다는 증거는…. 로그에 남은 부정확한 문장들과.
쪽지뿐.
천천히 가방을 살펴보았다.
혼란스럽지만.
당황하지 않고, 실수 없이 얌전하게.
힙색의 열린 틈 사이로 흰 조각들이 보였다.
손가락에 닿는 감촉도 존재하는, 종잇조각.
바스락.
종이들이 손가락 사이에 들려 올라왔다.
하나. 둘. 셋….
…그리고 열셋.
내게 남은 종잇조각은, 열세 장.
루프가 현실이었음을 증명하는, 증거.
다른 종잇조각은 루프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던 것인지, 아니면 제 할 일을 다 해서 사라진 것인지.
내게 남은 열세 장의 종잇조각을 침대 위에 흩뿌린 후, 천천히 손에 넣은 순서에 따라 배열했다.
【책은 하나의 세계 . 손에 넣음으로서 . 권리를 가진다】
【대의 앞에서 우리는 고뇌한다】
【알의 시기 . 세계의 규칙이 새로 쓰여지는 날】
【너희의 가치를 증명하라고】
【너희의 믿음아래 . 새로 창조된다】
【언젠가 다시 잃어버릴 것을 되찾았다는 증거】
【혼란 속에서 모든 존재는 . 자신의 의지를 문장으로 적어 내려간다】
【잊어버린 것을 되찾는 행동은 맹독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최후의 심판을 내린다】
【죄는 죄가 아니였다 되찾기 전까지】
【펼치는 것은 소유자의 권리 . 써 내려가는 것은 모두의 권리】
【만장일치의 새로운 규칙】
【모든 존재는 씨앗을 품었다】
마지막은 첫 번째로 가야 하나?
잠시 그런 생각이 들어 위치를 옮겨보았지만.
…별 차이 없을 것 같은데.
어찌 되건 문장이 성립되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이게 정상적인 문장인지도 모르겠다.
쪽지에 적힌 각각의 내용도 이해할 수 없는 데다가, 이게 이어지긴 하는 건지도 의문인 문장.
어쩌면, 이 문장들은 서로 별개의 내용을 담고 있고, 하나하나가 중요할지도 모르지만.
“….”
나는 입을 다물고, 천천히 쪽지를 옮기며 여러 조합을 시험해 보았다.
왠지, 이 문장들이 하나로 이어질 것 같다는 생각에.
하나의 문장이라기에는, 서로를 연결하는 고리가 보이는 듯한 착각에.
그렇게 몇 번이고 여러 조합을 시험해 보았고.
조금 시간이 지난 것 같아, 시계를 힐끔 바라보았다.
12시 3분.
곧 나가야겠네.
아직 시간에 여유가 있지만, 씻을 시간도 필요하고, 바쁜 것보다는 넉넉하게 움직이는 게 맞다.
그리고….
아직 루프가 끝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어.
그렇다면, 준비하고 다시 마음을 다잡을 시간이 필요하다.
…사실 이미 반쯤 루프가 끝났다고 확신하고 있지만, 정신, 시간, 공간계의 악의는 무한하게 끔찍해질 수 있다.
“일단…. 사진이나 찍어두자.”
지금 놓인 것은 평범한 쪽지들.
그렇다면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자료로 남겨야 할 필요가 있고, 매번 생각할 때마다 종이를 흩뿌릴 수도 없는 노릇.
너무나도 타당한 결론 속에서, 나는 핸드폰을 들어 올려 쪽지 열셋이 모두 담기도록 화면을 조절했다.
그리고.
툭.
찰칵.
화면을 터치해 사진이 찍혔음을 알리는 소리와, 짧은 빛의 점멸이 지난 뒤.
나는 손가락을 계속 움직여 갤러리를 열어 지금 찍은 사진을 열었다.
확실하게 찍혔는지 확인하기 위해.
사진은….
“…뭐야 이게.”
쪽지가 찍힌 사진은, 정상이 아니었다.
우선 가장 중요한 쪽지.
쪽지들은 제대로 사진에 찍혀있었지만, 쪽지에 적힌 문장이 문제였다.
【?긝肕拗⅔鬾¤갮托맕?兀ⓐ?™】
문장은 대체 이게 뭔지도 알 수 없는 문자로 바뀌어 사진에 나타났다.
열세 개의 쪽지가, 모두.
사실 쪽지만 그랬다면, ‘무언가 기묘한 기술이 적용된 거 아닐까.’ 하고 의심하였을 것이다.
비슷한 기술을 관리국에서 본 적 있기에.
하지만, 사진의 상태는 쪽지의 내용은 아무래도 좋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반투명한 검은 손이 쪽지를 가져가려는 것처럼 쪽지 주변을 둘러싸고 있고.
화면 한구석에는, 공막 부분이 검고, 홍채 부분이 노란 눈이 쪽지를 향해 바라보고 있다.
대체 어떻게 찍혔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각도로.
“….”
사진의 상태를 본 나는 곧바로 사진을 삭제했고.
이어 다시 쪽지 사진을 찍었다.
이번에는, 정상적으로 나오길 빌며.
“하아….”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쪽지는 여전히 엉망에, 반투명한 검은 손은 여전히 쪽지를 둘러싸고 있고.
사진 한구석의 눈은, 왠지 나를 향해 움….
…………………………….
삭제.
그리고, 핸드폰 전원을 눌러 완전히 종료한 뒤, 쪽지를 촬영하고자 하는 마음을 접었다.
몇 번 더 찍으면 큰일 날 것 같지….
근거는 없다.
이성과 정보를 중시하는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내 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어쩌면 생존본능에 가까운….
그 생각을 끝으로 사진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쪽지를 향해 손을 뻗었다.
“….”
손이 멈췄다.
솔직히, 아무리 생각해도 이거 저주받은 물건이지?
차라리 쪽지 내용을 로그에 필수 정보로 유지 기록하고, 여기서 폐기 처분하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 아닐까.
잠시 진심으로 그렇게 고민하며, 마법소녀의 힘이 아닌, 마법사로서의 불을 손가락에 피웠지만.
“관두자….”
포기하고 쪽지를 힙색에 담았다.
불태워 재로 만든다고 이 저주받은 물건이 어떻게 될 것 같진 않다.
오히려, 재가 흩날려 더 큰 문제를 만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먼저 일어날 정도.
그리고, 로그도 완전하지 않다는 걸 이번 사태로 잘 알았으니까.
열두 번째 쪽지를 얻었던 호텔 파괴 루프.
기록 로그가 망가질 정도라, 나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는 모르는 루프.
로그는 완전하지 않다.
그렇다면, 정황상 쪽지도 남겨두는 것이 현명한 선택.
그렇게 결론 내리고, 쪽지를 힙색에 담은 나는 몸을 씻기 위해 옷을 벗었고.
힙색도 침대 위에 내팽개친 채 샤워실로 들어갔지만.
“….”
혹시나 하는 생각에, 다시 돌아와 힙색을 들고 샤워실로 향했다.
* * *
호텔을 나온 나는 전철을 타고 사무실로 복귀하고 있다.
시간으로 따지자면, 화를 못 이겨 뛰쳐나온 뒤로 약 하루.
다르게 생각하면, 무작정 가출한 뒤 하루 만에 돌아오는 비행 청소년이네….
그 생각에 부끄러움이 일어, 허리를 펴고 전철 천장을 바라보았다.
…나에게는 하루가 아니지만.
비록 루프 대부분을 로그로 접했을 뿐이긴 하지만, 로그의 가동률과 동조율이 매우 높았기에, 일반적인 시간보다는 훨씬 긴 시간을 경험한 느낌이 지금 내 몸에 남아있다.
시간 감각 상 대충 20일에서 한 달?
그 정도의 시간 감각.
그만한 시간이 있었기에, 내 행동을 돌아볼 여러 기회는 충분했다.
난 여전히 많이 모자란다.
생각하는 것이 너무 많고, 그런 주제에 덜렁대는 성격.
영웅으로서의 능력도 보유한 힘에 한참 모자란, 주역은 되지 못하는 어중간한 한 명의 존재.
…이건 너무 자기 비하려나.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내 자기 비하는 내 가장 근본적인 행동 방식.
나는 항상 최악을 생각하려 노력한다.
그렇기에 한 발짝 느리게 움직이고, 너무나도 뻔한 것을 놓치게 된다.
지금 와 돌이켜보면, 내 성장이 늦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지 모른다.
선배님은 자신에게 마법소녀의 재능이 없는 것을 눈치채고, 우직하게 자신의 길을 걸었다.
그것이, 나쁜지, 비효율적인지 생각하기 이전에, 눈앞에 있는 길을.
하지만, 난 그런 길에서 최악을 생각하고, 순수한 마법소녀로 남았지.
지금 와서야 그 선택은 옳은 길이 되었지만.
결과론적인 이야기일 뿐.
나는 최악과 부정에 사로잡혀, 오랫동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렇기에, 나는 반쪽짜리 어중간한 존재.
하지만, 그것이 가치 없다는 뜻이 아니다.
한때는 가치 없다고 여겼던 내 성격과 사고방식은.
밝고, 본능적이며, 활발한 이들과 만나 서로를 보완해 주게 되었다.
백시현, 매직 카르텔.
그 둘처럼.
다만, 난 여전히 그들의 그런 충동적이고 단편적인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겠고, 여전히 거슬리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 애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동료들의 시선에서 보면, 내가 너무 비관적이고, 우유부단하게 느껴질 것이다.
…이것도 자기 비하인가?
…아무튼, 결국 서로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단 걸 알았다는 거다.
우리는, 한 팀이니까.
그러니, 집으로 돌아가도….
“…어?”
주변에서 힘이 불어나는 것이 느껴진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위급한 상황.
…그리고 여긴 민간인이 있다.
“변신!”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최악을 상정하며.
휘리릭.
급하게 변신한 탓에 붉은 핏방울이 사방에 튀고, 마력 조율도 엉망이다.
하지만, 조금도 지체할 수 없었기에.
양어깨에 손톱을 박고, 옷째로 피부와 살을 찢어내며.
“윽…!”
온 사방에 흩날리는 내 피를 매개체로, 벽을 만들었다.
부디, 늦지 않기를 바라며.
그렇게 피의 방패가 생성되어 가는 와중.
시야는 눈 부신 빛에 삼켜졌고….
충격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