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670)
마법소녀 아저씨 외전 67화(670/671)
067. 매직 카르텔(
)
“내가 시켜줬냐? 이름이 생긴 걸 나보고 어쩌라고.”
“아하하. 전제조건 없이 이름이 존재를 증명한다고 하면 요즘 철학자한테는 뺨 맞는데에?”
“맞는데 그거.”
“…혹시 미치셨나요? 그럼, 큰일인데.”
대체 서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몇 가지는 확실하다.
지금 한창 비꼬는 것은 익숙한 목소리의 지인, 해피니스 드롭이고.
목소리나 어투만 들어보면 그리 화난 것 같지 않지만, 단어 사이사이에 분노라는 의지가 스며있는 상대.
…다만 상대에 대해 한 가지 의문이 있다.
상대는 내게도 익숙한 목소리의 소유자다. 과거 매일 같이 들었던 것 같은, 친숙한, 곧바로 누구인지 알아차릴 수 있는 목소리.
하지만, 정확히 누구인지 머리에서 떠오르질 않는다.
알고 있지만, 떠오르지 않는, 무언가 강한 장막에 가로막힌 상대와 해피니스 드롭.
둘의 대화는 내 바로 옆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또렷이 들려오지만, 대화를 나누는 둘의 모습이 내게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시선을 잡고 앞으로 걸었다.
질퍽거리고 끈적이는, 밀도 높은 피바다 위를.
“미친 건 당연히 아니고, 정확한 사실을 알려줬을 뿐이다. 경고 같은 거지. 믿기 싫어도, 믿어야 할 내용을.”
“내가 하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그렇게 되는 걸까?”
“그건 나우리너도 모르지. 중요한 건 이름이 생겼다는 절대적인 사실이며, 이것은 네가 태어날 확률이 잡혔다는 뜻이기에, 다수의 주시가 시작되었다는 의미지.”
“뭐라는 걸까요? 뭐라는 걸까요? 뭐라는 걸까요? 뭐라 씨부리시는 걸까요?”
“…아. 거 더럽게 귀찮네. 그 새끼들 설명이 모호한 이유가 있었어. 이 정도로 시선의 차이가 있으니까 대화하기 더럽게 힘드네. 망할.”
“그럼 때려치우시죠? 필멸의 삶도 좋답니다?”
“필멸? 니가 말할 처지냐? 아 하여튼, 이름이 생겼다는 의미는 높은 확률로 올라왔다는 거지, 반드시 되는 건 아니니까, 되기 싫으면 지금부터 잘하시던지.”
무슨 이야기일까.
절반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가끔 깨지거나 잘못 사용되는 것 같은 단어가 있지만, 사용하는 단어는 명확하고, 문장 또한 의미가 있게 성립한다.
다만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다.
마치, 그 쪽지처럼.
“제 이름 어떻게 쓰시는지는 아시나요? 거짓말쟁이씨?”
“이 세계의 기준으로 보면, 피 바를 회(
), 왼쪽에 피 혈(血)자가 있고, 오른쪽 위에서부터 내려가면서 가운데 중(中), 한 일(一)자, 마지막으로 조개 패(貝). 다시 말하지만, 이 세계 기준이다. 보는 방법과 지식의 소유와 글자에 따라, 존재치 않는 글자가 될 거다. 그건 나도 모르겠고.”
“나는 안 보이는데, 오른쪽의 그건 귀할 귀(貴)라고 읽는 거예요.”
“…너 이 새끼 다 보이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요. 파괴자 씨.”
부글.
발아래 피바다에서 거품이 솟아오른다.
그리고, 몸이 달궈지기 시작한다.
격정의 분노에 반응하여, 주변 온도가 급격하게 상승하기 시작한다.
…응?
…어떻게 …알았지?
방금 자신의 생각에, 의문을 품었다.
‘격정의 분노에 반응.’
이것은 이해가 된다.
이만큼 강렬한 감정이라면, 의지를 이제 막 감지하기 시작한 나라도 곧바로 알아차릴 테니까.
그렇지만, 그 뒤는 인과관계가 없다.
분노에 반응하는 열기.
그런 현상이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뜨거운 열기와 감정에 대해서, 곧바로 인과를 선언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곧바로 생각하고, 단언했다.
어떻게?
내 생각임에도, 왜 그런 결론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마치 문제와 답만 있는 답안지처럼, 중간 해설이 없는 결과물.
…그러고 보니, 병실에서도 이런 경험이….
그때, 대화하느라 빠르게 사라졌던 위화감이 다시 떠올랐다.
분명 옵시디언에게 가로막혀 상대가 보이지 않았지만, 상대의 외모와 성별을 정확하게 인지했었다.
목소리를 통해 성별을 이해했다는 변명이 있을 수 있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명백하게 이상한 상황.
물론 내가 그런 능력을 보유하고 있긴 하지만, 그때는 부상으로 내 능력의 파편조차 발동할 수 없었다.
그때는 여러 상황에 쫓겨 잠시 잊어버리고 말았지만, 지금 이런 비슷한 상황에 처하니, 그때의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
슥.
“…?!”
갑자기 차가운 한기가 느껴져 몸이 움츠러들었다.
무언가가 나를 바라본 것 같은, 차가우면서 끈적한 감촉.
…방금 생각도 이상한데?
무언가가 나를 바라본 것 같은?
어떻게?
그리 고민한 순간.
들끓던 분노와 끓어오르던 피거품이 사라지고.
주변은 썩은 피비린내, 어쩌면 녹슨 철과 같은 악취의 피 안개가 흩뿌려졌다.
피가 기화한, 시야를 가리는 안개.
격정의 열기도, 시선의 차가움도 잡아먹어 버린 듯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두꺼운 안개 속에서.
“제대로 들을 생각이 없어 보이긴 한데, 다시 한번 설명해 주마. 너는 이름을 받았고, 너의 행동에 따라 그게 현실이 될 가능성이 생겨났어.”
“응. 안 할 건데.”
“닥치고 들어. 아무튼, 이건 특이사례다. 썩은 씨앗으로부터 싹이 자라난.”
씨앗.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 단어.
그 목소리를 목표로 잡고, 피 안개를 헤치며 앞으로 걸었다.
“썩은, 오염된, 발아를 멈춘 씨앗이라도, 의식 깊숙한 곳에서 새로운 씨앗과 연을 맺으면, 다시금 싹이 필지도 모른다는 증거. 그렇기에, 이 상황은 무수한 시선을 모으고, 뒤틀림을 유발하고 있지.”
잠시 이야기가 멈추었다.
짧은, 그렇지만, 몇 걸음은 걸을 수 있는 시간의 뒤.
“여기까지, 이해했냐?”
“응? 아니. 몰라. 안 할 거니까.”
“….”
잠깐의 침묵.
분노가 느껴지지만, 이번에는 그 분노가 주변 환경에 영향을 끼치진 않았다.
아니, 어쩌면 영향을 끼쳤지만, 그 영향은 내가 모를 정도로 약했다.
스륵.
이어 또다시 냉기 서린 시선이 느껴지고.
“그리고, 이건 네놈 때문에 설명이 한참 지체된, 다른 사건에 대한 경고다.”
“생선회 이야기 아니지?”
“닥치라고 좀. …아니긴 하지만.”
“그럼? 뭔데?”
부글.
잠시 피바다에 거품이 일었지만, 그 변화는 잠깐뿐.
“끝이 내릴 거다. 종막이.”
익숙한 목소리의 상대가 내뱉은 짧은 한마디가 끝나자.
“컥.”
나는 피를 토했다.
구토와 같은 감각에 반사적으로 입가를 막았고, 입에서 튀어나온 축축하게 응어리진 붉은 덩어리는 손바닥 위에서 무게감을 지니며 맥동 치고 있다.
무슨 일이.
시선이다. 전혀 모르겠다.
모른다. 너머의 시선이다.
안개에 가려진. 요소결핍.
판단 유보. 약화 된 시선.
시선이 내리쬔다.
차가웠던 시선과 다른, 끈적이고 허무하며 무거운 시선.
하지만, 무수한 시선들이 피 안개에 가려져 그 위력이 약해졌기에.
이 정도로 끝났다는 사실을, 결론했다.
“내 쪽 수호대가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지만, 그걸로는 부족해. 그러니, 너도 인지해 두는 게 좋을 거다.”
“그렇게나 잘 아시면, 미리 막아버릴 방법을 알려주면 되는 거 아냐?”
시선들의 엉킴 속에서, 이야기가 들려온다.
직전과는 다르게 장난기 없는 진지한 대화.
“하아….”
깊은 한숨이 들린 후.
“수레바퀴가 이미 굴러가기 시작했으니까. 그리고, 무수한 초월자가 여기 얽히기 시작했지. 시선도, 관심도, 사건도. 그렇기에 이건 확정된 미래다. 반드시 일어나는 사건이자, 모든 가능성이 얽힌 특이점.”
“흐으으응.”
“사소한 부분은 달라질 수 있지만, 일어난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변하지 않는단 소리다. 정 안되면 사건 자체를 처음부터 없던 것으로 할 수 있지만, 그 방법을 선택하려면 이 세계 전부를 파괴해야 할 수준으로 인과를 작살내야 할 걸.”
“네가 잘하는 방법이 그것뿐인 게 아니고?”
차가운 얼음송곳 같은 해피니스 드롭의 말에, 다음 분노가 오리라 예측해 경계했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부정은 못 하겠네. 여왕이라면, 다른 방법을 찾을 수도.”
어쩐지 아련한, 미련 섞인 답만이 돌아올 뿐.
“그러니, 아까 이름을 경고한 거다. 네가 원하면 너에게 내린 가능성을 부정할 수 있도록. 우리는, 이름에 묶인 자들이니까.”
“너희는 함께 맞드는 존재가 많을수록 좋은 거 아니었어? 그거 있잖아. 왕관도 같이 쓰면 나만 고통스러운 게 아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겠지. 아무튼…. 글쎄다. 무한을 유한으로 나눠봐야 무한 아닌가. 그놈들의 대의까지 부정하지는 않겠지만. 되고 싶은 놈은 되라고 하고, 되기 싫은 애는 하지 말라고 해.”
■■■■.
몸에 서린 압력이 사라진다.
내게 내렸던 무수한 시선들이 거두어졌다.
“쯧.”
그 순간, 반대편에서 말을 잇던, 익숙한 타인이 고통 섞인 신음과 함께 혀를 차는 것이 느껴졌다.
“그 꼴을 보니, 좀 힘든가 봐?”
“지금도 실시간으로 대가를 치르는 중이지. 그러니까, 내가 한 말 좀 제대로 들어 처먹어.”
“알았네요. 알았어요. 기억할게. 내가 알아봐야 무슨 소용이 있나 싶지만.”
“아니, 의미는 있다.”
“흐음?”
의문이 끝나자.
차가운 시선이 다시 한번 내 몸을 훑었고.
“회(
). 난 간다. 이다음은, 네가 해결해.”
“갑자기 무슨 소리? 그리고 난 생선회 아니….”
붕.
거친 바람이 불어온다.
짙게 깔린 피 안개도, 내리쬐는 시선도.
거기 존재했던 익숙하지만, 알 수 없는 목소리도 모조리 함께 이끌고 사라지는.
태풍과도 같이 격렬하고 파괴적인 바람.
그에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뜬 뒤에는.
시야에 남은 것은 언제나 보았던 광경처럼, 저 너머 지평선까지 맞닿은 붉은 대지와 검은 하늘의 공간.
마치 내가 겪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텅 비어 있는 공간에서.
“…쟨 갑자기 나타나서 뭔 소리야?”
내가 온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하늘을 올려다보며 혼잣말하는 해피니스 드롭 뿐.
그녀가 불렀건, 내가 찾아갔건, 언제나 내가 온 것을 곧바로 알아차리던 그녀가 멍하니 있는 것은, 꽤 신선한 광경이었고.
언제 그녀가 눈치채나 하고 발걸음을 옮겼지만.
“흐으으음? 으으으으으음?”
해피니스 드롭은 자신의 머리칼이 피에 잠길 만큼 허리를 좌우로 굽히는 기행과 함께 길고도 깊은 목울음을 울릴 뿐, 내가 온 것을 몇 걸음을 걸어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답지 않게 깊은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그렇기에.
“흠. 흠.”
일부러 헛기침하며, 내가 여기 있음을 알렸다.
그러자 해피니스 드롭은 갑자기 행동을 멈추고,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극단적으로 허리를 우측으로 기울여 머리카락이 피에 잠긴 상태에서.
몸을 그대로 굳힌 채, 고개만을 움직여 시선을 내 쪽으로 향했다.
그러한 움직임이 신체 구조상 불가능함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몸 어딘가가 우드득거리는 불길한 소리와 함께.
“…흐그러그억?”
본래 뭐라고 하려고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원인은 알겠다. 아마 목뼈와 척추가 박살 난 바람에, 기도가 피로 막혔을 것이다.
그렇게 잠시 서로 마주 보았고.
우득. 뿌득. 우드득.
인간의 몸에서 들려서는 안 될 소리가 몇 번 들린 뒤.
“아빈아 안녕.”
평범한 인간의 자세로 돌아온 해피니스 드롭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인사를 건네왔다.
인사를 위해 흔드는 손이 중간에 부러져 나를 향해 흔드는 것이 아니라, 아래를 바라보고 중력과 관성의 영향을 받아 진자처럼 흔들리고 있다던가.
무리한 신체 움직임으로, 온갖 구멍에서 피가 흘러나온다거나 하는 문제는 있지만.
아무튼.
“안녕하세요.”
우리는 인사를 나누었고.
평소라면 내가 말하건 말건 폭포수처럼 이야기를 쏟아낼 해피니스 드롭이 한참이나 눈알을 굴리는 시간이 지난 뒤.
“방금 왔지? 연락도 없이 웬일이야?”
해피니스 드롭은 내가 조금 전 이야기를 들지 않았으리라 생각하는 것처럼, 입을 열었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희망하고 있을지도.
평소라면, 그녀의 정신건강을 위해 말을 맞춰주겠지만.
오늘은 이야기가 달랐기에.
물어볼 것이 너무나도 많았기에.
“회라는 이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을 때부터요.”
나는 정직하게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