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76)
마법소녀 아저씨 76화(76/671)
76. 요즘 애들은 노오력이 부족해(2)
-선….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기 위해 감각을 넓히며, 옆자리의 괴인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지금도 안 들리냐?”
“무슨 소리를 말씀하시는지 전 모르겠습니다만?”
벽 너머의 대화도 들을 수 있던 개 괴인이 그리 말한다면, 정말로 내게만 들리는 목소리일 것이다.
“…나갔다 오마.”
“환각이라면 오염구역에선 흔한 일입니다. 그리 낙담하지 않으셔도.”
말투가 짜증 나는군.
“그거 아니니까 입 다물어.”
“예.”
내가 쏘아붙였기 때문일까. 조금 전까지 친한 척을 하며 달라붙던 이르아는 몸을 굳히며 입을 다물었다.
얌전히 무릎을 붙이고, 허리를 곧게 펴며 손을 무릎 위에 올린 채, 안구를 이리저리 굴리는 모습.
뭔가가 연상될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며 계속 지켜보자, 곧 떠올릴 수 있었다.
개.
주인에게 칭찬받을 때 달라붙고, 한 번 혼나자 몸을 굳힌 채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는 움직임이 딱 개와 비슷한 모양새였다.
“…자리 잘 지키고 있어라.”
개에게 명령을 내리는 듯한 말투로 말을 건네고 경비실을 나가는 동안, 이르아는 작별 인사를 하는 대신 손을 들어 올렸다.
입 다물라는 명령 때문인가. 쓸데없는 데에서 개 같군.
경비실에서 나온 후, 곧바로 분대장을 찾아 주변을 돌아다녔다.
금방 찾을 수는 없었지만, 눈에 띈 경비대원에게 물어보자 친절하게 분대장이 있을법한 장소를 알려주었고, 빠르게 그를 찾을 수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제자 상태 좀 보고 싶어서 그러는데. 안내해 줄 수 있나?”
내가 용건을 말하자, 분대장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십니까?”
“아니, 뭐 경비대원님들 못 믿어서 그러는 건 아니고.”
어차피 몇 번 볼 얼굴인데, 괜히 감정이 틀어질 필요는 없기에, 기름칠을 위한 넉살을 부리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제자가 새로운 힘을 얻었는지 시끄럽게 하고 있어서 말입니다.”
-선배님… 선배님….
지금도 들리는 한아빈의 목소리.
대체 뭐가 있다고 이리도 나를 애타게 찾는지 원.
“…새로운 힘 말씀입니까?”
분대장은 묘한 표정으로 내 말을 그대로 질문으로 바꿔 되물었고.
“지금도 절 찾는 말이 환청처럼 귀에 들려서 말입니다. 아마 정신계나 현실조직계 마법일 것 같네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분대장은 측은한 눈길을 나에게 향해왔다.
“오염구역에서 환청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이하람 영웅님. 저만해도 매일같이 감봉이라는 상사의 환청이… 지금도 들리는군요.”
댁 개인 사정은 관심 없는데.
그리고 이건 환청이 아니다. 그쪽은 20년 가까이 시달리면서 더 악의적으로 변했으니까.
-어디… 계세요.
적어도 이런 가벼운 환청은 들리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환청이 아닌 건 잘 아니까, 그냥 좀 얼굴이라도 보게 해주시길.”
“그냥 제자가 걱정된다고 솔직하게 말씀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환청이라니, 변명치고는 별로시군요.”
분대장은 그리 말하고는, 훈훈한 표정으로 걷기 시작했다.
“어디 가십니까.”
“한아빈 영웅 보러 가셔야 하지 않습니까? 안내해드리죠!”
…뭔가 크게 오해한 것 같지만 좋은 게 좋은 거겠지.
* * *
침대 위에 누워있는 한아빈은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자기보호가 발동된 건지 마법소녀로 변신한 상태였고, 몸 여기저기에 충돌로 인한 내출혈이 보였지만, 그 또한 깊은 상처는 아니었다.
그나마 눈에 띄는 것은 눈꼬리를 따라 피눈물이 굳은 자국. 눈 안쪽의 실핏줄이라도 터진 것이겠지.
“안구에 손상은?”
“없습니다.”
그럼 닦아줘야겠군.
이불에 약간의 침을 덜어, 한아빈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주었다.
“좀 더럽지 않습니까?”
“침이 뭐가 더러워.”
“…알콜 솜 있으니 그걸 쓰시길.”
내 그런 모습을 보다 못한 것일까. 분대장이 건네준 알콜 솜 봉지를 몇 개 뜯어 그녀의 얼굴을 닦았다.
그렇게 그녀의 얼굴을 닦아나가던 중. 이상한 현상이 눈에 띄었다.
뭐지.
그녀의 눈가에 달라붙은 피 일부가, 진한 눈 문신이라도 한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매우 얇게 그려져 있어 잘 보이지 않지만, 분명한 붉은 선.
다시 솜을 뜯어 닦아내 보았다. 실수하지 않도록, 강하게 힘을 담아.
손에 들린 흰색 솜에 붉은 얼룩이 생겨났다. 분명히. 피가 지워졌다.
그러나, 그런 나를 비웃듯 눈 사이에서 약간의 피가 흘러나왔다. 조금씩 움직이던 피는 다시 눈에 붙으며, 붉은 선을 그렸다.
“….”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분대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그리 물어왔다. 내 험악한 분위기를 느껴서 그런 것이겠지.
“잠깐 나가줄 수 있나? 제자의 프라이버시에 관련된 일이라서.”
그래. 이건 그녀의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문제다.
절대로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 되는. 그녀의 문제.
“뭔가 있나 보군요. 알겠습니다.”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조용히 의무실을 떠났다. 아까 어느 정도 지식이 있단 것도 그렇고, 조용히 물러나 주는 것을 보니, 의사로서 징집이라도 된 것일까.
-선배님. 선배님.
허튼 생각은 그만두자.
한아빈의 가까이 있어서일까. 더욱 커지고, 명확해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찾는 존재가 아니다. 아빈이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거기 있지? 해피니스 드롭.”
침묵이 감돌았다.
질문을 바꿀까.
“아니면 라우페이라고 불려주랴?”
여전히 답이 없었다.
영웅명을 싫어해 별명으로 불러줬는데도 싫은 것일까.
아니면, 여기에 없는 것일까.
내 예상이 틀린 것일까.
한 번만 더 말해볼까.
“리사 달그렌. 거기 있나?”
아무런 답변이 돌아오지 않았다. 아빈이의 이상한 목소리가 그쳤을 뿐. 달라진 건 없었다.
조금 더 기다려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들려오는 것은 한아빈의 얕은 숨소리뿐.
그녀의 숨소리를 따라 시트가 오르내리긴 했으나 그뿐이었다.
착각했나. 해피니스 드롭이 한아빈의 몸이라도 차지해서 텔레파시를 쓰는 줄 알았건만.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의무실 책상 앞의 의자에 앉았다.
싸구려인지 허리 부분도 제대로 굽혀지지 않는 등받이를 억지로 기울이며, 안정세를 되찾은 한아빈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가정이 머릿속을 스쳤다.
해피니스 드롭이 한아빈의 몸을 차지해서 부활하려 했다.
한아빈의 정신에 틈이 생긴 것을 계기로 해피니스 드롭과의 모종의 연관이 생겼다.
이 모든 것은 단순한 우연이고, 한아빈은 중첩 현실이라는 고난을 극복하고 새로운 힘에 눈을 떴다.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우연이라.
우연일 리 없지 않은가.
우연히 해피니스 드롭의 정신 마법을 각성했으며, 우연히 그녀의 빌런 특징이었던 피의 마법도 다루는 거겠지.
모두 우연히 겹쳤을 뿐.
내가 생각했지만,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절대로 없다. 이번 사건은 해피니스 드롭과 연관 있음이 분명.
하지만, 해피니스 드롭은 내 부름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가 나를 부르지 않았다면, 한아빈이 나를 부른 것일까?
어째서 나를 찾을 필요가 있었지?
왜 텔레파시는 갑자기 잦아들었지?
모르겠다. 생각할수록 의문만이 뻗어 나간다.
끼이익.
내 힘을 견디지 못하고, 의자의 등받이가 크게 젖혀졌다. 나는 그런 의자에 누워 생각을 이어나갔다.
그만두자. 어차피 아빈이가 깨어나면 모두 알 수 있을 것이다. 해피니스 드롭이 그녀의 몸을 차지했는지 아닌지도, 얼마나 관여하고 있는지도, 왜 나를 불렀는지도.
지금 생각해봐야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는 모두 뒤로 미루자.
양손을 겹쳐 만든 깍지로 뒤통수를 받치고 몸을 의자에 맡기었다.
“리사 달그렌. 거기 있냐?”
나지막한 중얼거림.
여전히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어째서 그녀를 부른 것일까.
그녀에게 묻고 싶어서일까? 제정신인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온전한 그녀에게, 그녀의 정의를 묻고 싶어서일까?
“다 시덥잖구만.”
은은한 알코올 향기를 코로 느끼며, 눈을 감았다.
* * *
“살펴 가시길!”
우리는 경비대의 배웅을 받으며, 오염구역으로 들어섰다.
【철은….】
【공기는….】
【시간은….】
그리고, 들어서자마자 이계침식의 조각들이 우릴 반겨주었다.
“힉! 선배님 이거 뭔가요!”
갑작스러운 괴현상에 놀랐는지, 한아빈이 내 몸을 붙잡고 늘어졌다.
부드러운 무언가가 몸에 매달리는 것이 옷감 너머로 느껴졌다.
“붙지 마라.”
깨어난 이후부터 수시로 나에게 달라붙으려는 그녀를 떼어냈다.
억지로 달라붙으려는 마음은 없는지 쉽게 떨어졌지만, 한아빈의 살짝 불만스러운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묘하단 말이지.
“정말 잠들었을 때의 기억 없냐?”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제 마지막 기억은 제가 손을 뻗은 장면에서 끝났어요. 그리고 깨어나니까 선배님이 의자 위에서 졸고 계셨고요.”
그래.
깨어나자마자 펑펑 울며 날 향해 뛰어들었지. 견딜 수 없는 상실감과 슬픔을 느꼈다고 했던가.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지금 무슨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냐.’는 관리국의 정신검진 표준문항을 통해서 얻은 대답이니 확실할 것이다.
그 문답에서 얻은 답은 그녀는 확실히 한아빈이라는 것.
내 전문분야는 아니지만, 적어도 해피니스 드롭은 아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묘하게 뭔가가 걸린다.
굳이 표현하자면 생수에서 이상한 단맛이 느껴지는, 단순한 착각이라고 할 수 있을법한 미묘한 위화감.
그런 고민이 내 얼굴 위에 드러난 것일까.
-무슨 생각 하세요?
발랄한 감정이 머리에 박혀왔다.
일반적인 텔레파시가 아닌, 해피니스 드롭이 쓰던 감정이 포함된 상위 정신마법.
“…가까이서 텔레파시 쓰지 마라.”
“그렇지만, 재미있는걸요. 제 표현이 명확히 전달된다고 해야 하나? 말로 하기 힘들던… 것들을 쉽게 전할 수 있어요.”
흥분된 감정을 목소리로 다 표현하지 못한 것일까. 그녀의 얼굴에 붉은 홍조가 떠올랐다.
감정 과다인가.
한아빈치고는 이상하단 말이지.
한아빈이 저렇게 감정을 잘 드러냈던가?
정신마법을 얻은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다. 새로운 힘에 눈뜨는 것은 그리 희귀한 일이 아니니까.
정말 문제 되는 점은, 방금 얻은 정신마법을 본래 가지고 있던 힘처럼 능숙하게 사용한다는 점.
평생 말을 하지 못했던 벙어리가 처음으로 말을 내뱉는 것처럼. 엄청난 기쁨의 감정을 담으며.
그 감정출력이 어찌나 강한지, 그 텔레파시 하나로 두통이 생길 지경.
-또 뭔가 생각하시네요. 선배님.
감정이 또다시 내게 전달되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 말하긴 했지만, 엄청난 위화감이 내 몸을 감싼다.
너무 적극적이다. 한아빈답지 않아. 벌벌 떨던 것이 그녀 아니었나?
그런 생각을 하며, 힘을 담아 한아빈을 째려보았다.
“힉!”
내 따가운 시선을 직접 마주한 한아빈은 리어카 구석으로 파고들며 내 눈길을 피하기 시작했다.
“무… 무슨 일 있나요…. 선배님?”
“아무것도 아니다.”
“아까부터 아무것도 아니라고만 말씀하시고….”
이 격차는 뭐지.
한아빈인가 싶으면, 그녀가 아닌 모습을 보여온다.
그녀가 아닌가 싶으면, 한아빈의 모습을 보여왔다.
분명 한아빈이 아닌 것 같은데, 내 감은 한아빈이 맞다고 말하고 있다. 감각을 펼쳐보아도 그녀가 따로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고.
종잡을 수가 없군.
“이런 거 좋아하신다고 들었는데….”
저건 또 무슨 소리지.
“뭐라고?”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보다 아까 그 이상한 이계침식 뭐에요?”
방금 뭔가 내가 좋아하는 어쩌고 했던 것 같은데.
워낙 맥락이 없어서 무슨 소린질 모르겠다.
나중에 옥시모론한테 던져줘서 본인이 맞는지 검정하도록 하고, 지금은 평소처럼 대해주자.
본인이 아님이 발각된다면, 고문 풀세트로 정신 원위치를 시킬 테니.
“아까 그 이계침식은, 누군가의 의지가 담기지 못해 헛되이 흘러나온 외침이다. 즉, 쓸모없는 문장이지.”
“무슨 말씀이신지… 잘….”
귀찮게.
나 대신 설명하라고 이르아를 째려보았지만, 이르아는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저도 이계침식 쪽은 그리 자세하지 않아서 말이죠. 부디 이게 어떻게 나온 건지 듣고 싶군요.”
“…쯧.”
나는 혀를 차고, 최대한 압축해서 그 내용을 입에 담았다.
“이계침식은 주변 존재의 의지에 어느 정도 좌우된다. 그리고 이 주변에 그만한 의지를 담을 존재가 없으니 발동이 되다 만다는 뜻이다. 끝.”
자, 됐지? 계속 가자.
정확하게는 의지가 있다 해도, 자기 마음대로는 고르지 못하는 모양이지만. 심상이나 정신구조, 현실 부정에 따라 다르다나 뭐라나.
【금속은….】
“그럼 저 들리다 마는 건….”
“주변에 누군가는 있긴 한데 세계를 바꿀 정도로 강한 녀석은 아니란 소리다. 신경 쓸 필요 없다.”
그런 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사람은 얼굴이 없으니】
아니, 잠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