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78)
마법소녀 아저씨 78화(78/671)
78. 얼굴 없는 자들의 노래(2)
쨍그랑.
공간이 깨지기 시작했다.
깨져나간 보호 마법의 잔해가, 유리 조각처럼 몸 위에 흩뿌려지고, 작은 조각들은 내 몸에 닿는 순간 빛을 발하며 사라졌다.
한 걸음을 내딛자. 세계를 가르던 보호막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내가 억지로 뚫고 들어온 구멍에서부터 실금이 빠르게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찌르르르르.
수많은 울림이 겹친 탓일까. 보호막은 벌레의 울음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내며 깨어졌다.
망치를 휘두를 필요도 없었다. 그저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깨트릴 수 있는, 나에게 있어서는 연약하디 연약한 보호막. 이따위 마법에 농락당했다는 사실이 우스울 뿐.
고개를 들자,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무너진 빌딩들.
인류가 여기 살았었다는 증거물.
흉하게 뒤틀린 철골들과 콘크리트, 그 사이로 재미난 물건들이 보였다.
빌딩과 빌딩 사이에 연결된 강철 와이어, 그 위에 걸쳐져 바람에 흩날리는 옷감들.
폐허와 빨랫감이라.
너무나도 전형적인 이미지 아닌가.
여기서도 사람이 살아간다는 증거.
“누…누구냐!”
그리고, 그걸 뒷받침하듯 들려오는 사람의 목소리.
역시, 사람이 한 짓이었나.
“이계침식. 쓰고 있는 놈 불러와.”
고개를 돌려, 그들을 바라보았다.
살아있는지 붉은 살로 이루어져 맥박이 뛰는 총, 철골과 덩굴로 만들어진 활과 화살, SF에서나 볼법한 녹색 스파크가 튀는 밋밋한 총.
들고 있는 물건은 좀 특이하지만, 그들은 사람이 분명.
“…그전에 네가 누군지를 밝혀라!”
앞으로 나서서 목소리를 높이는 남성, 아마 대장이라도 되는 거겠지.
그가 앞으로 걸어 나오자, 손이 흔들리며 나를 겨눴던 총구가 땅으로 향하는 것이 보였다.
실전 경험이 없는 것일까, 내가 이들을 습격하러 온 악한이라면 곧바로 목을 딸 수 있을법한 큰 빈틈.
조금 더 바라보았지만, 총구는 여전히 고정되지 않은 채였다.
암만 봐도 그냥 민간인 같은데. 왜 이계침식을 편 거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조합에 조금 머릿속을 굴리자, 한 가지 추측이 떠올랐다.
“혹시, 너희 이르아라고 아냐?”
그렇게 말을 내뱉자, 다들 무기를 내리고 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정답인가.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르아와 무슨 관계냐!”
그의 이름이 나와서인지 잠시 적대감이 옅어지긴 했지만, 아직 나를 적으로 인식하는 모양.
뭐, 민간인을 패는 건 내 취향도 아니고, 평범하게 가야겠지.
“보급물자를 운송해 오던 이르아가 너희 이계침식에 당해, 지금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중이다. 빨리 해결해주었으면 한다만.”
이 말이 결정타였던 것일까.
이 구역의 경비를 담당하는 것처럼 보이는 남자들은 총구를 내리며, 토론을 시작했다.
“어쩌지?”
“일단 시린 님에게 보고하는 편이 좋지 않아? 우리가 판단하기엔….”
“저놈이 뭐 하는 놈일 줄 알고?”
“아까 못 봤어? 걸어서 보호막을 파괴한 놈이야. 어차피 못 막아.”
“이르아의 이름을 알고 있잖아? 적대적이진 않지 않을까?”
자기들 딴에는 소리를 줄인다고 저러고 있지만, 내 귀는 못 속인다.
어찌 되었건, 토론 내용을 보니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모양이다.
그렇게 2~3분 정도 지났을까.
“하나만 묻지.”
가장 먼저 앞으로 나섰던, 살아있는 총을 든 남자가 나에게 물어왔다.
“빨리 결정된다면 뭐든.”
애당초 그 둘이야 몇 시간이고 버려놔도 멀쩡했으니. 몇 분 정도는 더 참아줄 수 있다.
“아까 이계침식에 휘말렸다고 했는데…. 그게 정말인가? 이 주변에 이계침식이 펼쳐졌다고?”
뭔가 이상한데.
“…너희들이 펼친 것 아니었나?”
“그건 답해줄 수 없다. 묻는 말에 답해라.”
“…하.”
쿵.
힘을 담아, 땅을 크게 밟았다.
머리를 숙이는 것은 하루 한 번으로 충분하지.
“보호막을 깨고 들어온 거론 모자랐냐? 난 맘만 먹으면 다 쓸어버릴 수 있는데, 모조리 쓸어버리고 이계침식을 일으킨 놈을 찾아볼까?”
내가 땅을 밟는 것 만으로 멀리 서 있는 빌딩의 꼭대기에서 돌조각이 떨어지고, 여기저기에 쌓인 돌무더기가 무너지며 짙은 먼지 더미를 하늘로 피어올랐다.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와, 너무 심했나 싶어, 경고의 의미로 다리를 한 번 더 짧게 구르고, 다시 감정에 빗장을 걸었다.
“자. 다시 이야기를 나눠 볼까?”
막대한 힘을 마주하고 공포심이 든 것일까, 나에게 총을 겨눴던 이들은 모두 땅을 향해 총구를 늘어트린 채 벌벌 떨고 있었다.
아니. 모두는 아닌가.
한 명.
살아있는 총을 들고, 나와 계속해서 대화했던 그는 흥미로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더 할 생각인가?”
“…아니. 그만두지.”
그는 총구를 내리고는, 왼손을 나에게 뻗으며 입을 열었다.
“이 생존자 집단의 경비대장인 레사쿠라고 한다.”
왼손 악수라.
슬쩍 그의 오른손을 쳐다보고, 나 또한 왼손을 내밀었다.
“영웅 이하람이라고 한다.”
짧은 악수가 끝나고.
“그럼, 다시 묻지. 이계침식은 너희가 펼쳤나? 아니면 뭔가 아는 거라도 있나?”
“우리가 펼치진 않았다. 다만….”
“다만?”
“짐작 가는 것은 있다.”
그리 말하는 그는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지금부터 거기로 너를 안내할 생각이다.”
“빨리도 결정하셨군.”
진작 그랬으면 이런 협박을 할 필요도 없었잖아.
그런 마음을 한껏 담아 비꼬아보았지만.
“이번 결정은 우리에게도 이례적이다. 어차피 우리로서는 당신을 막을 방법이 없고, 정말로 이르아가 얽힌 일이라면 무시할 수도 없지.”
비꼰 것을 모르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무시하는지 그는 담담히 말을 되돌렸다.
“잘 생각했어. 빨리 끝나면 좋은 거지.”
뭐, 어찌 되었건 빨리 풀려서 나쁜 것 없다.
나만 해도 아까까지 촉수로 꾸물거리던 것이 정신건강에 안 좋았는데, 지금 그걸 겪고 있을 한아빈과 이르아는 오죽할까.
경비대장을 재촉하며, 그를 따라 빠르게 폐허 사이를 걸어갔다.
그렇게 조금 걷자, 내가 만들었던 비명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여러 밝은 모습들이 눈과 귀를 간지럽혔다.
어린이들이 철골을 들고 칼싸움을 하며 웃는 모습. 낡은 천막 앞에 질서정연하게 줄을 서서, 잡담을 나누며 통조림 배급을 받아 가는 모습.
모두 사람이 사는 모습들.
동훈이가 말했던 게 무슨 뜻인지 알 것 같군.
‘오염구역도 사람이 사는 장소.’
이 밝은 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은 쉽게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들이 얼마나 피폐한가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슬쩍 바라본 공터에는, 흙과 밀가루를 섞는 사람들이 보였으니.
“…우리 삶이 신기한가?”
내가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게 신경이 쓰였던 것일까. 경비대장이 그리 물어왔다.
“뭐 그렇지. 말로는 들었지만, 어떻게 살아가는지는 몰랐으니까.”
“‘말로 들었다’라 약간 신기하군.”
그는 그리 말하더니, 걸음을 멈추고, 나를 향해 고개를 들이밀었다.
“왜, 우리 모습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지?”
그의 목소리에 고통이, 증오가, 절망이 섞였다.
아마, 그들이 겪어온 모든 것에 대한 감정이 목소리에 섞였다.
핏발선 눈이 나를 향한다.
가르쳐 달라며, 왜 당신은 왜 당신은 다른 이들과 다르냐고.
그 답을 알려달라고.
안타깝지만, 나에게 있어서 그 질문은 답하기 그리 어렵지 않았다.
“엉? 얼굴에 촉수 좀 나고, 눈이 세 개 달리고, 팔 하나가 총이랑 융합된 게 뭔 대수라고. 내 친구 중엔 몸이 촉수가 된 놈도 있다만.”
내 말에 할 말을 잃은 듯, 그는 멍하니 날 바라보았다.
좀 다르긴 하지만, 공감대를 만들어볼까.
“내가 몇 살로 보이냐?”
“열…은 질문할 리 없군. 스물.”
“거의 쉰이다. 나도 너희랑 똑같이 모습이 조져진 종류니까. 그러니 닥치고 안내해.”
“…믿을 수 없다. 처음엔 모두 그리 말했으니. 국제연합에서 온 그놈들도….”
아, 마음에 상처가 있으세요? 그런데 어쩌나. 난 널 설득하려고 여기 온 게 아닌데.
“믿고 말고는 네 자유고, 난 외모에 편견은 눈곱만큼도 없으니까 빨리 안내나 계속해라.”
“…그럴 리….”
뒤쪽에서 뭔가를 중얼거리는 그를 무시하고, 그가 나아가려던 방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앞서나가면 알아서 쫓아오겠지.
“…이봐! 누가 멋대로 움직이라고 했나!”
예상한 대로, 조금 발을 옮기자 그는 손에 달린 총을 겨누며 나를 향해 달려왔다.
“먼저 가시죠.”
앞서나가도록 자리를 비켜준 후, 그를 따라 계속해서 나아갔다.
위로. 더 위로.
계단을 타고, 사다리를 타고.
콘크리트 정글 속을 거니는 나와 그는, 그렇게 위를 향해 나아갔다.
* * *
“여기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높디높은 빌딩 위, 유일하게 남아있는 마천루. 푸른 하늘조차 오염지대 특유의 물리 왜곡에 휩싸여 역겨운 색으로 보이는 허공 속.
“뭔 이딴 데에서 사는 거지.”
정상적인 사람은 아니겠구만.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렇게 높은 장소에 거주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나마 튼튼한 것 같은 저 경비대장이라는 작자도 여기까지 올라오는 대에 10여 분이 걸렸다.
그나마 살만한 건물이라도 지어져 있으면 이해할 수 있겠지만, 보이는 것이라고는 다 낡아빠진 군용 텐트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을 뿐.
“….”
그 처참한 모습에 내가 할 말을 잃은 와중에도, 경비대장은 가만히 서서 날 쳐다볼 뿐이었다.
“…가봐도 되나?”
“마음대로.”
데려와 놓고는 마음대로라….
어차피 다른 방법도 없어, 텐트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나를 향해,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날 보고도 혐오감을 가지지 않은 너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긴 하다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똑바로 하시지?”
텐트의 입구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편견을 가지지 말아다오.”
“고려해보지.”
대답과 함께 입구의 천을 걷어내고,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습기 찬 공기, 어두운 방.
묘하게 퀴퀴한 곰팡내를 느끼며, 앞으로 걸어갔다.
“여긴 손님 대접도 안 하나?”
물론 내가 무단침입자긴 하지만, 이계침식에 휘말린 피해자가 아닌가. 이건 피해자로서의 권리다.
그런 당당함에 반응한 것일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끈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어두운 방 가운데에서 흐물거리는 무언가가 보였다.
“아까 그놈이 편견을 가지지 말라고 한 이유를 알겠군.”
“제 예상보다 더 평온하시군요. 이하람 님.”
내가 당황해야 할 이유라도 있나.
나로서는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았는지가 더 놀라운데.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지?”
“이 구역은 제 손안에 있으니까요. 사람 한 명. 침입자 하나. 이계의 존재 하나까지. 모두 제가 보고, 들을 수 있답니다.”
구역 전체의 장악이라. 생각보다 더 뛰어난 녀석이구만.
“그럼, 질문 하나 하셨으니, 저도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마음대로.”
나도 생각해야 할 게 있으니까.
“왜. 절 보고 놀라지 않으시는지 알려주셔도 될까요?”
그거라면 간단하지.
“내 아는 사람 중에 너랑 똑같이 생긴 녀석이 있거든. 성별은 다른 것 같다만.”
이리저리 촉수가 흩날리는 문어 머리, 그리고 그 아래에 붙어있는 호리호리한 인간의 몸. 그리고 그 종족 특유의 주변을 불쾌하게 만드는 전파.
그놈이랑 같은 종족이 확실.
문어 대가리가 좋아하겠구만.
제 동족이 이쪽 세계에 있는 데다가, 여성이란 걸 알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