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83)
마법소녀 아저씨 83화(83/671)
83. 동아시아 라인 공방전(1)
“자! 그럼 제 완성된 기술을 보여드릴게요! 뇌신 언니! 스승님!”
저 너머에서 기운차게 손을 흔들며 목소리를 높이는 백시현.
“쟨 어떻게 항상 기운차지?”
분명 요 몇 주간 뇌신에게 얻어터지기만 한 것 같은데?
그런데도 계속 웃는 표정인 걸 보면 내가 더 무서울 지경이다.
“쟤는 알고 있는 거야. 누군가의 옆에 있으려면,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뇌신은 그런 이상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나를 힐끗 바라보았다.
“어찌 보면 부럽네. 나는 한번 포기했었는데. 젊어서 그런가.”
아무리 나라지만, 이럴 때 해야 할 말 정도는 알고 있다.
“너도 한참 젊어 보이니까 나이 신경 쓰지 마라. 이 짓거리 하면서 유일하게 좋은 점 아니냐. 젊은 시절 길어진다는 거. 그러니까….”
조금 입을 열기 힘들었다. 평생 꺼내고자 노력해본 적이 없는 말.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응?”
그런 내 서투름을 민감하게 잡아낸 것일까. 뇌신은 얼굴을 들이밀며 짓궂은 미소를 보여왔다.
“…그보다 시현이 하는 거나 보자고, 쟤도 왜 자기 쪽 안 보는지 궁금해서 우리 쪽 빤히 쳐다보잖냐.”
손을 쭉 내밀고 우리가 바라보기만 기다리는 불쌍한 제자 녀석.
그 처량한 모습은 이야기의 주제를 돌리기에 충분한 모습이었다.
“흐음. 하나만 물어볼게. 옛날 모습. 지금 모습. 어디가 더 좋아?”
그건 당연한 질문 아닌가.
“지금 모습. 예쁘니까 걱정하지 마라. 다시 묻지 말고.”
질문을 듣자마자 튀어나온 빠른 답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애당초 제대로 크지도 못했을 때와 지금이랑 비교할 수나 있나.
“하람이치고는 괜찮은 말이었어.”
뇌신은 그리 말하며 백시현 쪽으로 고개를 돌리긴 했지만, 이미 목소리에서 부끄러움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내 쪽에선 보이지 않지만, 아마 얼굴도 붉게 달아올랐겠지.
아무리 나라고 해도 몇 주나 같이 부대끼면, 이 녀석이 좋아할 말과 행동 정도는 이해한다.
그리고, 그녀의 감정도.
“잘하셨어요. 선배님.”
그런 우리의 행동을 들은 것일까. 한아빈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넌 또 뭐냐.”
제자가 스승을 아무렇게나 만지고 기특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네?
어째 요즘 제자가 막 나가는 것 같은데?
“제자로서 스승이신 선배님의 행복을 기원해서 그러는 거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하도 그 말이 어처구니가 없어, 답하는 것을 포기하고 백시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관객들의 시선이 쏠린 것을 눈치챈 것일까. 백시현은 마침내 얼굴에 웃음을 띠며 손을 흩뿌렸고.
파직. 파직. 파지지직.
그녀의 손을 따라 퍼져나간 아름다운 전기 꽃들이 봉우리를 열었다.
확실히 아름답긴 하다. 그렇지만….
“낭비 아닌가?”
전기로 만든 반구형 구체. 저렇게 깔끔하게 만든 것은 대단하긴 하지만, 위력이 떨어질 것이 분명.
전기로 필드를 만들어도 위력이 약하면 의미가 없다.
들어간다고 제약을 주는 것도 아닌, 의미불명의 기술. 그리 생각하고 동의를 구하고자 뇌신을 보자.
“조용히 해봐.”
뇌신은 창백한 얼굴로 입을 가리며 그리 내뱉었다.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
“정말로…. 분명 이론상으로는 그렇지만 그게 인간의 머리로 연산이 될 리가 없는데….”
아무래도 전기능력자인 뇌신의 생각은 나와 다른 모양이다. 전문가만이 알 수 있는 그런 것인가.
그렇게 혼잣말을 늘어놓는 뇌신을 놔두고, 한아빈과 나 둘이서 멀뚱거리며 전기필드를 바라보길 5초가량.
“핫!”
숨을 가다듬던 백시현이 탄성을 내지르며 몸을 움직였다.
끝없이 이어지는 밝은 섬광, 그리고 그 번쩍임 한 번마다 백시현은 계속해서 자신의 위치를 바꾸었다.
“꺄앗.”
옆에 선 한아빈에게서 세찬 비명이 새어 나왔다.
밝은 섬광에 눈이 견디지 못한 것일까. 그와 반대로, 나와 뇌신은 빤히 눈을 뜨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그만큼 대단했기에.
“…저게 된다고?”
“천재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네. 단순히 제자 자랑인 줄 알았더니.”
아니, 저런 건 나도 모른다. 저게 천재라는 말로 끝날 문제인가.
전기의 반구 속에서, 그녀는 말 그대로 전기 자체가 되어 움직였다.
노란 반구, 백시현이 만들어낸 자신의 영역. 그 안에서 자유자재로.
순간 속도는 뇌신보다 느리지만, 급가속이나 급정지가 없는,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움직임.
뇌신이 단거리 주자라고 한다면.
저것은 마라톤을 뛰듯 계속해서 이어지는 기본속도.
위험한 기술이다. 저건 어떻게 막아야 하는 거지?
내 몸에 피해를 주지 못할 정도일 때는 상관없다.
하지만, 만약 백시현이 내 몸을 뚫을 수 있는 공격력을 얻는다면?
내가 저것에 대한 대처법을 빠르게 머리에서 떠올리고 있자.
“하람아.”
지친듯한 뇌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
“저 기술을 사용하는 백시현과 나. 어느 쪽이 싸우기 힘들 것 같아?”
…그녀가 바라는 것은 어느 답일까.
“네 급가속.”
솔직한 답이었다. 현시점에서는.
“좀 더 실력이 나아진다면?”
…그래. 그녀도 알고 있겠지. 저 기술은 아직 성장할 수 있다.
얼핏 보아도, 제어가 모자라고 속도도 그리 빠르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게 더 정밀해지고, 더 빨라진다면.
“….”
그렇지만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것을 입 밖으로 꺼냈다가는. 무언가가 끝날 것 같았기에.
“그래.”
하지만 그런 침묵조차 뇌신에게는 하나의 답이었던 것일까. 그녀는 백시현을 바라보았다.
힘이 빠졌는지, 제어가 실패했는지, 아니면 둘 다인지. 전기필드 밖으로 튕겨 나가며 바보처럼 땅을 구르는 백시현을.
그녀는 슬퍼 보였다.
* * *
“같이 가자.”
이별의 순간. 입 밖으로 낸 말.
“거절할게.”
어째서일까. 나는 그녀에게 계속 입을 열었다. 나답지 않게, 추해 보일 정도로.
“프로히비션도 그러더라. 이 주변에 뭔가 있을 거라고, 지금 나라면 어느 정도 여유가 있으니까. 백시현도 아직 더 배울게….”
“그만.”
그런 내 말을 가로막은 것은 그녀의 여린 손가락이었다. 입 위에 놓인, 실리콘 장갑으로 감싼 손가락.
“나로서는. 아직 안될 것 같아.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해.”
그녀는 그리 말하고는, 내 머리를 쓰다듬고 날 넘어서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 목표는 내 제자 백시현.
“언젠가 내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네가 그 옆을 지켜주렴.”
저건 무슨 뜻일까.
“으에?”
백시현 또한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멍청한 소리를 낼 뿐이었다.
“이럴 때는 그냥 ‘알겠습니다.’ 하는 거야 시현아.”
한아빈이 지원사격을 해주었지만, 흐르는 분위기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백시현과 비장한 분위기의 뇌신.
“이상하지? 널 처음 봤을 때는 ‘너 따위가.’ 하는 생각이었어. 그런데….”
잠깐의 망설임.
“지금은 아니더라고. 그러니까. 그때까지는 양보할게.”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정말로 무슨 뜻일까. 요 몇 주간의 경험을 통해 뇌신을 이해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모자랐나 보다.
* * *
다시 고무보트를 타고 돌아온 집.
제자들은 험난한 바다 여행이 힘들었는지 집에 돌아오자마자 자기 방으로 사라졌다.
째깍.
째깍.
시계의 초심 소리만이 거실 내부를 채우고.
째깍.
그 시계가 자정을 가리킴과 동시에, 나는 조금 전까지 쓰다듬던 운호를 무릎 위에서 소파로 옮기고 몸을 일으켰다.
“정말 가실 건가요?”
이건, 몇 번째 문답일까.
“그래.”
“…적당히. 부탁드려요.”
대답하지 않고, 집 문을 열었다.
“모시러 왔습니다.”
촉수 하나하나에 총기를 들고, 양손으로 마법 지팡이를 든 알’셸.
“상황은?”
쾅.
집 문을 닫음과 동시에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준비는 끝났습니다. 유밀에게 이쪽으로 와서 하람 님으로 변장하라는 이야기도 끝냈고, 총소림이라는 영웅에게 난민이 있다는 정보도 흘려놓았습니다.”
“유밀의 상태는? 나로 위장할 수 있을 것 같았나?”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이다. 이 작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만약 내가 없다는 것을 들켰다가는….
“간부진과의 교차실험 결과. 분간할 수 없었습니다. 린슈아 님만 알아차렸더군요.”
그 정도면 문제없겠군.
“그럼. 가자.”
“예.”
알’셸의 마법 지팡이가 흔들리고, 발밑의 마법진이 짧게 빛났다.
한순간 느껴진 공간 이동의 멀미.
그것을 참고자 눈을 감았다 뜨자, 회색빛 벽이 보여왔다.
대장벽. 그것이 눈앞에 나타났다.
“쉬는 시간도 없이 바로 작전 시작인가.”
“그걸 원하지 않으십니까?”
눈앞에 있는 문어 대가리의 피부가 조금씩 붉어지기 시작했다. 흥분의 감정. 너도 오랜만이구나 그거.
“그래.”
마지막 걸음을 옮겼다.
1m 정도 앞에 있는 대장벽이었지만, 빠루를 휘두르기 위해서는 더 다가가야 했기에.
“마지막 질문입니다만. 관리국이 후퇴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요?”
그의 몸이 붉게 물들었다. 이 문어의 본성. 어째서 이런 녀석이 인류를 지키고자 하는지 모르겠군.
“뭐 말이냐?”
“저희도 되도록 죽이지 않도록 노력해보겠지만. 관리국의 방위대라던지, 남아있는 영웅들 있지 않습니까? 특히. 뇌신 님도 있고 말이죠.”
저 마지막의 뇌신은 의도적인 발언인가. 그렇지만, 그 말을 듣고도 내 감정은 평탄했다. 이상하리만큼 가라앉은 감정.
상관없다.
그리 생각한 순간.
촤악.
질척거리는 잉크가 뿌려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오염지대에 쌓여있는 막대한 이계의 힘이 모여 옷에 깃들고, 한계를 넘은 이계의 힘은 등에서부터 퍼져나가며 거대한 날개를 이루었다.
묘하게 출렁거리고 끈적거리는 액체 날개. 그것이 거칠게 펄럭이자 나는 공중으로 뜨기 시작했다.
이상한 기능이군. 덜 큰 애들 상상에나 나올 법한 외형과 모습이야.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었다. 왜소한 몸을 거대하게 보이기엔 충분한 기능 아닌가.
날개를 출렁거리며 날아오르는 내 손에 붉은 빠루가 쥐어졌다.
인류의 보호막을 들춰내기에 적합한, 피로 더럽혀진 무기이자, 파괴의 도구.
그것을 등 뒤로 넘기며 힘을 모았다. 내가 힘을 모으기 시작하자, 옷은 내 의도를 읽었는지 검은 입자를 모아 발판을 만들었고, 나는 허리를 굽히며, 오른팔을 길게 뻗었다.
쿵. 쿵. 쿵.
리미터가 한 단계씩 풀어지며, 충격파가 퍼져나간다.
힘이 모일수록, 모든 감각이 증폭되기 시작한다.
애애애애앵.
저 너머, 검은 탑, 관리국에서 들려오는 경보음이 들린다.
시야가 뒤틀린다.
보이지 않아야 할 것을 보았다.
회색빛으로 가득 찬 세계.
감정을 잃어버린 세계.
인간이 고깃덩이가 된 세계.
아무것도 없는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가 흘러가고.
찾던 것을 발견했다.
“….”
모아진 힘이. 발사되었다.
쿵. 가가가가각.
빠루의 끝부분에 그것이 달라붙었다. 물리적인 장벽이 아닌, 다른 현실에 존재하는 중첩된 장소.
대장벽이 15년 가까이 무너지지 않는 철벽으로 남게 해준, 다른 현실에 존재하는 대장벽의 이데아.
그 불멸의 기록을 내 손으로 처음 파괴하기 위해.
내 온 힘이 담긴 빠루가. 끝없이 갈고닦은 감각이 그것을 포착했다.
대장벽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낡디 낡은 장벽.
언젠가의 누군가가. 여기를 지키기 위해 만들었을 나무 울타리. 자신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 그들이 목숨을 걸고 만들었던 영토의 증명.
그깟 건 내 알 바 아니고.
콰드득.
한순간이었다. 붉은 빠루가 그것을 파괴하는 데에 걸린 시간은.
그리고, 장벽의 불멸성이 사라졌다.
동시에, 벽을 향해 공격이 가해졌다. 괴인들이 가하는 마법. 괴수들의 돌격. 괴물들의 이해 못 할 역겨운 촉수질. 그 모든 것이 합쳐진 결과.
꽤 아름다운 광경이 되었다.
짜 맞춘듯한 순차 공격.
“…어떻게 하신 겁니까?”
그것은 열심히 구경하던 날 현실로 되돌린 말 한마디.
“뭐 말이냐.”
고개를 돌려, 허공에 떠 팔짱을 끼고 있는 알’셸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장벽을 부수신 겁니까?”
“단련해라.”
“그게 답니까?”
“그럼 뭐 특별한 능력이라도 있을 줄 알았냐? 공간을 뚫을 정도로 힘을 단련하고, 그것을 파악할 정도로 감각을 길러라. 그뿐이다.”
“….”
‘그게 되면 저희가 이렇게 고생하겠습니까?’
그런 문어의 혼잣말을 무시하고. 나는 그의 질문에 답해주었다.
“그리고 아까 질문 말이다만.”
아마. 이것으로 나는 악당이 되는 거겠지.
“죽여도 좋다.”
“관리국도 말입니까?”
“애초에 그 녀석들 수당엔 위험수당도 들어있으니 말이지. 방위대. 영웅. 나까지 모두 죽기 위한 이들이다. 도망갈 수 있도록 건수도 잡아줬는데, 남겠다면 할 수 없지.”
붉게 달아오른 문어의 피부가 더욱 붉어지고, 입가가 거칠게 뒤틀렸다. 나쁜 본성을 숨기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내듯이.
“이하람 님. 저는 뇌신 님에 관해서도 물었습니다만.”
“상관없다.”
그래. 상관없다.
그녀 또한, 각오하였으니.
내가 그 말을 내뱉은 순간.
쾅.
장벽이 무너져내렸다.
침공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