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84)
마법소녀 아저씨 84화(84/671)
84. 동아시아 라인 공방전(2)
쿠르르릉.
추락하는 돌 소리. 퍼지는 먼지.
작은 구멍이 댐 전체를 무너트리듯, 시야에 있는 모든 장벽이 무너져내렸다.
대장벽의 이데아가 사라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데아가 없더라도 굳건한 건축물인 대장벽이 무너진 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마법식과 비슷한 구조이기 때문.
서로가 서로를 순환 참조하는 거대한 건축물이 무너지자, 억제되었던 생명체들이 풀려났다.
밤의 어둠에 가려져, 검게 물든 이계의 존재들이 장벽 너머로 달려나간다. 자신의 해방을 기뻐하듯.
전장에 울려 퍼지는 고함과 포효. 그 사이로 깔리는 관리국의 사이렌 소리. 그 모든 것이 합쳐져, 전쟁터에 돌아온 기분이 되었다.
다른 점이라면, 이번에는 내가 이계 측에 속해 있단 점일까. 이계의 군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알’셸.”
“예?”
“속도 조절하라고 린슈아에게 전해라. 너무 빠르다.”
이대로라면, 미리 앞서나간 피난민들이 따라잡히게 생겼으니.
“죽여도 된다고 하신 건 이하람 님이 아니십니까?”
“목적을 잊지 마라. 별의 문어.”
그러자, 웃던 알’셸은 머리를 180도 회전시키며 나를 바라보았다.
저게 자력으로 되는 거였구만.
“방금 별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래.”
긴 시간 관계해왔던 그의 얼굴이, 처음 보는 표정으로 변하였다. 눈꺼풀이 한계까지 들어 올려지고, 온 피부에서 점액이 삐져나왔다.
점액이 흘러내리며 눈을 덮었지만, 그는 눈꺼풀조차 깜빡이지 않고 나를 바라보았다. 미미한 진동도 없는, 고정된 안구.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이놈은 참모장인데 자기들 신입도 모르는 건가?
“네 동족을 만났다. 자칭 별의 무녀라고 하더군.”
피부색이 변했다. 보라색.
처음 보는 색이군.
“저기… 그 이하람 님? 제가 하나 여쭙고자 하는데…. 혹시 그녀의 이름이 시린입니까?”
문어 대가리는 갑자기 어마어마하게 비굴한 목소리로 그리 물어왔다.
“그래. 알’시린. 아는 사람….”
주르르르륵.
신기할 정도로 대량의 점액이 뿜어져 나왔다. 아래에 누군가 있을진 모르겠지만, 운 없이 저걸 뒤집어쓴다면 온종일 기분이 나쁘리라.
“혹시. 피난민의 대장이라던 괴인이 시린은… 아니겠죠…?”
“그녀 맞다만. 아마 지금은 후방에서 우리가 약속을 지키나 미친 듯이 노려보고 있겠지.”
“정지이이이이이이이!”
문어가 끔찍한 포효를 내지르며 하늘을 날았다.
성난 군세를 어떻게든 제어하려는 듯, 미친 듯이 명령을 연호하는 모습.
저럴 시간에 린슈아에게 연락 한 번 넣으면 되는 것 아닐까. 그리 생각하며, 싸늘한 눈초리로 알’셸의 뒷모습을 쫓았다.
…괜찮은 협박 재료를 얻었군.
무슨 관계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둘이 아는 사이인 모양이다.
하긴, 저 녀석은 인간이 좋아서 결사에 있는 게 아니었으니, 인간에게 호감이 있는 그녀가 붙어준다면 좋은 짝이 될 것 같다.
하필 저 녀석이 지휘 담당이라, 멋대로 풀어놨다가 계획을 모조리 망칠지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잘 풀릴지도 모르겠군.
멀어져가는 문어에게 크게 소리를 내질렀다.
“난 언제 나가면 되냐!”
“적당한 타이밍에 호출해드리겠습니다! 그때까지 숨어계시길!”
텔레파시를 쓸 겨를조차 없는지, 목소리를 내지르는 그가 멀어져가는 걸 바라보며, 나는 내 날개로 몸을 감싸 안았다.
마치, 본래부터 달려있던 것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검은 날개. 어둠을 형상화한 듯한 그것이 나를 둥글게 감싸 안았고.
나는 밤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 *
“영상 잡았습니다!”
“빨리 비춰!”
관리국의 홋카이도 지부.
본래라면 평화로운 후방 거점이어야 했을 장소가 오늘따라 유난히 소란스러웠다.
기지 전체에 울리는 사이렌 소리는 당직을 끝내고 침대에 누우려던 사람도 다시 일어나 무장하게 만들었으나, 그에 불평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무기고가 텅 비고, 무전실이 가득 찬 것은, 지부가 설립된 이래 처음.
행정병에게도 자살용 권총이 배부되고, 날로 먹는 병과라고 놀림당하던 공병도 탑을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폭탄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본래라면 공병들도 총을 들고 전선에 나가야 하지만, 이제야 자폭용 폭탄을 설치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 지휘관조차 이 사태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리라.
삑.
그렇게 현실도피를 하는 지휘부 모니터에 영상이 비쳤다.
“이런 엿 같은….”
“미친….”
평소라면 누군가 지적할법한 욕설이 지휘부에 흐르지만, 아무도 지적하는 이가 없었다. 그만큼, 눈앞에 비친 영상이 당황스러웠기에.
무너진 대장벽, 쏟아지는 괴물들.
지휘실의 상석에 앉은, 이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명령을 내려야 할 지휘관은 팔걸이를 쥐어뜯으며 창백한 얼굴로 영상을 바라볼 뿐이었다.
“왜… 하필… 이럴 때.”
그는 한 달만 더 있으면, 보직이 변경될 예정이었다. 관리국의 높은 자리로.
관리국이 설립되기 전부터 어느 군부대의 장교였던 그는 관리국 방위대로 소속을 변경한 이후에도 엘리트 취급을 받았다.
그런 그가 변방인 홋카이도 지부에 배치된 것은, 경력을 쌓기 위해.
대장벽의 바로 옆이라는 중요한 지부 중 하나이면서도, 사건이 없는 지부. 즉, 경력을 몰아주기에 딱 맞는 장소라는 뜻.
그의 뒤를 보아준 이들도 그리 말하였다. 몇 년 쉬고 오면 앞이 보장될 것이라고.
‘그래서 이 지루한 장소에서 몇 년을 썩었는데! 왜 하필!’
자리에 앉은 지휘관의 생각이 빠르게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 사건의 해결책이 아닌, 보신을 위한 방법을.
‘이렇게 큰 사건인데 예언도, 전조도 없었어. 그러면 중앙 관리국의 책임 아닌가? 차라리 여길 버리고, 도망치는 편이….’
지휘관의 얼굴이 푸르죽죽하게 변하였다. 지휘부 인원 모두가 자신을 지켜보는 것도 모른 채.
‘하지만 어떻게? 여기서 그냥 지부를 버리면, 분명 실책으로….’
아무런 의미 없는 생각. 그에게 남은 길은 하나였다. 어떻게든 지부를 사수하며, 올지 안 올지 모르는 지원병력을 기다리는 것.
“중령님.”
얼마나 깊이 생각에 빠진 것일까. 지휘관은 자신을 부르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 눈알을 굴렸고.
“중령님!”
“뭐…뭔가!”
몇 번이고 불렀음에도 돌아오지 않는 답변에 작전 장교가 폭발하자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본부와 연락이 닿았습니다.”
지휘부 모두가 기다리던 소식. 마지막 희망인 본부의 지원.
대장벽이 파괴되면서 쏟아진 이계의 힘 탓에 잘 연결되지 않았던 통신이 드디어 이어진 모양이다.
“지원군은? 사태는 파악했다고 하는가? 걸리는 시간은?”
지휘관의 입에서 빠르게 질문이 쏟아졌다. 두서없고, 엉망진창인 질문.
그런 엉망인 모습에 작전 장교는 혀를 차며 지휘관에 대한 마지막 기대를 내버렸다. 하지만, 이미 정신이 반쯤 나간 지휘관은 작전 장교의 행동이 눈에 보이지 않았고, 작전 장교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최소 12시간 예정. 그때까지 틀어막으라고 합니다.”
12시간. 사실상의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시간.
귀 한쪽에 헤드셋을 붙이고 통신하던 통신관도, 어떻게든 개개인의 행동을 통제하려 했던 행정관도.
모두 얼굴을 파랗게 물들이고, 작전 장교에게 향했던 얼굴을 모니터에 되돌렸다.
공중에 떠 아래를 내려보는 시점. 즉, 하늘에서 내려다보아도, 대지가 보이지 않을 만큼 빽빽이 들어찬 적.
저 군세를 상대로 12시간?
가능할지도 모른다. 영웅들과 병력. 그 모두를 소모한다면.
그리고 모두가 죽은 자리에 관리국이 도착할 것이다.
모두 입을 열지는 않았지만, 그런 생각이 일치하였다.
“그럼 버텨야죠! 12시간입니다! 충분히 버틸 수….”
누군가가 영웅심을 가지고 일어나 그리 외쳤지만, 절망적인 지휘부의 분위기를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임이 분명해 보였다.
혹여, 영웅들이 지휘부에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지 모른다. 그들이 비장한 분위기로, 출전하며 앞장섰다면, 아니, 영웅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지휘관이라도 그리 나서 입을 연다면.
“쯧.”
그런 지휘부를 보고, 이 장소에서 유일하게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가지는 한 사람이 혀를 찼다.
작전 장교. 이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중앙 관리국과 연락을 취하고, 각 부서의 담당자들을 모은 그.
“이렇게 상의하셔도 아무 소용 없습니다. 중앙에서 12시간이라는 통보가 내려온 이상. 우리는 12시간을 지켜야 합니다.”
“자살이나 마찬가지야! 차라리 전선을 유지하는 걸 포기하고, 바다로 나가면….”
이제 자신의 본분을 지킬 생각조차 없는 지휘관이 그리 입을 열자. 다수가 그에 동조하였다.
“중앙이 정보를 다 전달받지 못한 것 아닌가? 이 상황에서 12시간이나 지켜내라는 것은 불가능하네!”
“현장 판단으로 불가능하다고 다시 항의해보세, 우선 다시 중앙과 연결하여 새로운 지시를 받고….”
대화가 거듭될수록, 중앙이 잘못된 명령을 내렸음이 분명하다는 의견이 지휘관들 사이에 흐르기 시작했다.
“전선을 뒤로 미루며. 배로 퇴각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그리하면 우리는 지부를 지켰다는 명분도….”
쾅.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들을 경멸 어린 시선으로 관찰하던 작전 장교가 책상을 후려치며 소리를 내질렀다.
“그럼. 누가 남아서 지키시렵니까? 퇴각하는 동안에도 누군가는 남아서 전선을 지키셔야 할 텐데요.”
그 한마디에 지휘부는 다시 침묵에 휩싸였다.
‘제기랄. 이래서야, 시간만 낭비될 뿐인데.’
작전 장교는 생각을 이어나갔다. 너무 몰아붙인 나머지 전의 자체를 잃어버리게 만든 것을 후회하며.
그들이라고 그것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단지, 그런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싶었을 뿐.
그들은 무능한 것이 아니다. 관리국의 중요한 거점을 관리하는 인물들인 만큼, 한 명 한 명은 뛰어난 인간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그들은 죽음을 각오한 사람들이 아니란 점일 것이다.
관리국 방위대.
영웅의 관리와 권리증진을 위해 설립된 집단이라는 명목상, 군대를 가지지 못해 방위대라는 이름으로 모집된 이들은. 그만큼 안일했다.
대우가 좋아서, 돈을 많이 받을 수 있어서, 사회적으로 대우받을 수 있기에. 그런 생각으로 고른 이들.
‘그걸 어떻게든 제어해야 할 인물이, 군 출신 지휘관이지만….’
각국에서 병사와 함께 파견되어, 방위대를 지휘하는 지휘관. 혹시나 그가 마음을 고쳐먹지 않았을까 기대하며 작전 장교는 지휘부의 상석을 바라보았지만.
“쯧.”
작전 장교는 또다시 혀를 찼다.
그의 눈에 보인 것은, 마지막 남은 기력마저 소모하고 무기력하게 의자에 붙어있는 찌꺼기.
군 지휘관의 도움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관리국의 인원들도 전의를 잃어버린 상황.
‘이래서야 그냥 개죽음이겠군.’
마지막으로 전의를 불태우던 작전 장교도 그리 포기하려던 순간.
쾅.
지휘부의 문이 열리며, 무전기를 짊어진 방위대원이 달려 들어왔다.
“긴급연락입니다!”
긴급연락? 이 타이밍에? 설마 전선이 벌써 무너지기라도 했단 말인가? 아니면 관리국은 12시간 지원이라도 포기했나? 그렇게 다들 부정적인 생각을 이어가는 와중.
“빠르게 용건만 말해라.”
유일하게 전의를 불태우던 작전 장교가 그를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실례했습니다. 급한 일이라.”
“용건만.”
용병은 지휘부의 어두운 분위기와 달리 밝은 표정이었고, 그것이 두 사람이 대비되어 보이게 했다.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만….”
그제야 용병은 지휘부에 흐르는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침을 삼키며 말을 끊었고.
“민간인 피난민이 발견되었습니다. 현재 보호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뒷말은 지휘부를 뒤흔들기 충분했다.
“민간인? 지금 여기에 민간인이 남아있었단 말인가?”
“그. 있지 않은가. 대장벽 너머 봉사단체인지 뭔가 하는 놈들.”
“그 사람들이라면, 상황이 발생하자마자 지부로 대피했다만….”
“그럼, 어디 숨어 살던 사람들이라도 있단 말인가?”
“오염지대에서 온….”
“그게 말이나 되는가?”
각자가 의견을 내놓는 사이, 조용해졌던 지휘부가 다시 달아올랐고.
쾅.
누군가가 책상을 내리쳤다.
갑자기 들려온 큰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모이자, 시선을 받은 당사자가 입을 열었다.
“지휘관으로서, 퇴각을 제안한다. 민간인이 남아있다면, 교리상 그들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일 터.”
얼굴이 활짝 핀 지휘관의 입에서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 흘러나왔다.
영웅심, 보신, 정당성. 그 모든 것이 포함된 말이 지휘부에 퍼져나갔다.
“안 됩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누군가는 후방을 지켜야….”
‘이대로 후퇴하는 분위기가 된다면 돌이킬 수 없….’
어떻게든 그 분위기를 돌려보고자 작전 장교가 입을 열었지만.
“아.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연락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의 의견은 무참히 찢겨 나갔다.
“이게 두 번째 연락입니다만, 영웅들이 나타나셨습니다. 영웅명은 모르겠지만, 번개를 사용하는 영웅과 검은 그림자를 사용하는 영웅이라고 합니다. 두 분 스스로 후방을 지키시겠다고 나서셨습니다.”
보고를 온, 용병의 입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