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89)
마법소녀 아저씨 89화(89/671)
89. 나 때는 슬퍼할 시간도 없었어.(1)
-다음 소식은 최근 있던 홋카이도 사태에 관한 내용입니다.
귓가에 꽂은 이어폰에서 뉴스 앵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관리국은 홋카이도 일대를 공식적으로 포기하기로 결정. 일본 정부가 크게 반발하였습니다만.
탁.
누군가가 어깨를 내리쳐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려보자, 옆자리에 앉은 서양인 아주머니가 자신의 귓구멍을 향해 손가락을 툭툭 두드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만져 소리를 줄이자, 그녀는 만족했는지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답지 않게 정신을 집중했었나 보다. 소리가 새어 나가는 것을 지적당할 만큼 음량을 올리다니.
다시 눈을 감고,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에 관리국은 일본 정부에 방위대 투입 숫자 증가, 영웅 배치 우선권, 아오모리현에 새로운 지부 건설을 약속하였습니다.
새로운 지부라. 관리국치고는 통 크게 쏘셨군. 무한성주 그 영감탱이도 이제 힘들 텐데.
-이에 일본 내부에서 대장벽이 없는 것은 그대로가 아닌가 하는 비판이 있었지만, 별다른 방법도 없어 결국 이를 받아들이기로….
정치적인 이야기가 계속해서 들려오지만, 내가 관심이 있는 것은 이런 내용이 아니었다.
일본과 관리국. 뒤이어 각국의 이해관계가 얽히는 복잡한 내용이 지루하게 이어지기를 십여 분.
옆자리에서 이어폰 소리를 지적했던 외국인도 내렸을 때쯤.
-이 사건으로 관리국 내부에서도 말이 많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각국의 대처를 주제로 토론하던 뉴스 앵커의 입에서 마침내 기다리던 말이 흘러나왔다.
-말이라고 하시면…?
-평화의 시기가 끝나고, 과거처럼 다시 이계의 존재들이 몰려오는 시대가 돌아오는 게 아니냐, 하는 우려감이 섞인 목소리였습니다.
아무래도, 총소림과 유밀이 잘해주고 있나 보군.
인터뷰를 흩어보긴 했지만, 관리국 내부 사정에 대해서는 굳이 정보를 모으지 않았다.
그 행동에 대해 굳이 자기변호를 해보자면, 어째서인지 해야 할 생각이 들지 않기에.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다만, 관리국에 내 행동에 관한 결과를 물어보기 두려웠다. 어쩌면, 내 행동이 실패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듣기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잘라내고 얻은 결과가, 잘못되었다면 어찌 되었을지.
-말도 안 됩니다. 이계의 존재가 쳐들어오는 것은 자연현상이나 마찬가지죠. 지금 평화로운 시대는 관리국이 대처를 잘했기에….
-하지만 홋카이도 지부는 결국 무너지지 않았습니까?
-….
본래라면, 무너질 일은 없었겠지만 말이지. 의도한 대로 이야기가 잘 흘러가고 있다.
-그 때문에 관리국 내부에서도 이번 사태에 대해 반성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반성이라… 함은?
-관리국 내부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주장이지요. 과거, 세계를 지켰던 영웅들처럼 철저한 단련과 정의감을 가지고, 영웅과 소속 인원들을 다시 단련해야…
아무래도 총소림이 내 사상을 곡해하지 않고 퍼트린 모양이군. 자칫 잘못해서 영웅은 영웅다워야 한다면서 개인을 억압하는 파시즘적 헛소리를 하면 어쩌나 걱정했건만.
-마치 최근 어떤 괴인이 말했던 선언문 같군요. 영웅은 영웅다워야 한다는 말에 공감이라도 하시나 봅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있지 않습니까? 관리국도 이번 사태에 대해 정확한 사유를 밝히지 않아 시민들의 불만이 쌓인 상황….
목소리가 높아지는군.
-그만큼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 것 아닙니까? O급 괴수가 몰려와도 끄떡없던 대장벽입니다. 당연히 원인을 모를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번 사태와 영웅이 영웅다워야 한다는 것이 무슨 상관이….
논점을 잘 꼬집었군.
관리국 내부에 그런 사상을 뿌린 것은 총소림과 그 일파지, 실제로 그런 사상이 이번 사건과의 연관성이 없는 것이 맞다. 하지만….
-모를 수도 있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여러 폭로가 있지 않았습니까? 홋카이도는 사실 사수할 수 있었지만, 민간인들을 핑계로 도망쳤다는 이야기라던지, 홋카이도 지부는 사실 베테랑들이 배치된 지부이기에 자기 연줄이 닿는 사람들의 커리어 쌓는 용도로 쓴다는 등, 수많은 폭로가….
문어 대가리가 일을 잘 처리해줬어. 단순히 녹화해서 날 놀려먹으려는 줄 알았더니, 내부 폭로 용도로 사용할 줄이야.
덕분에 시민들의 호응이 좋아졌다. 물론, 이 사태로 인한 내부자들의 자진 신고도 있었지만. 그를 통해 관리국 내부가 얼마나 평화에 절여져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예! 말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난장판이군.
화면을 보지 않은 채 소리만 듣고 있지만, 뉴스 스튜디오의 혼란은 충분히 느껴졌다.
뉴스 생방송 중에 서로에게 고함질이라니. 뭔가를 때리는 소리가 들리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쳐도 저리 흥분할 줄이야.
설마 내가 모른다뿐이지, 논란이 크게 일고 있나?
아무래도 상상 이상으로 일이 잘 풀린 것 같아,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서로를 향해 고함을 지르고 있는 뉴스 영상을 내리며 인터넷 창을 열었다.
관리국을 거쳐 로밍 중이라 추가 요금이 부과될 수도 있다는 경고창이 흘러나왔지만, 내 알 바 아니다.
내가 돈 내는 것도 아니고, 요금 폭탄이 떨어져도 문어에게 떨어지지 내게 떨어지나.
하얀 검색창 위에, 몇 가지 단어를 타이핑했다.
관리국. 파벌. 홋카이도.
그 사건이 있던 이후, 처음으로 하는 검색.
주르륵 흘러내리는 검색창 중, 눈에 띄는 포털사이트 하나를 누르자, 댓글 수백 개가 달린 글이 화면에 나타났다.
며칠 지난 글인지 더 이상의 갱신은 없었지만, 리플이 수백 개가 달린 것만으로도 그 열기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터미널 35.
종점인가.
프랑스어로 뭐라 말하는 차내 방송을 들으며, 핸드폰을 들고 천천히 지하철에서 몸을 빼내었다.
정면을 보지 않고, 인파를 헤치며 천천히 내린 스마트폰 스크롤.
별다른 논리 없이 어떤 영웅이 지지하니 옳다, 그르다는 멍청한 내용.
단순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의견에, 이때다 싶어 영웅 혐오를 퍼트리는 이상한 놈에.
영웅들의 자유를 막는다는 의견에, 반대로 약간 자유를 제약해야 사람을 지킬 수 있다는 생산적인 의견까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웅에 대한 무조건적인 옹호가 주류였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의견이 떠돌고 있었다.
몇몇 뉴스나 사이트를 둘러본 결과, 새로운 의견은 아직 소수파이며, 관리국의 공식 의견은 아니라는 말이 있었지만, 그런 사실은 사람들에게도, 나에게도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새로운 방향성을 인지했다는 사실 하나.
그것만으로도 약간 기분이 좋아져 계속 사이트를 둘러보며 점차 파리의 골목길을 향해 가는 내 시야 속, 유난히 시선을 끄는 리플이 있었다.
-유출 정보, 홋카이도에서 적들 막은 거 블랙 머라우더라고 하더라.
-뻥을 쳐도 정도껏 쳐라, 괴인이 거길 왜 감? 애초에 지들끼리 왜 싸움?
-자기들끼리 싸우기도 하는데. 근데 블랙 머라우더가 거기 있단 건 안 믿긴다.
그렇게 작성자가 거짓말쟁이 혹은 어그로로 취급받기 시작했고, 그렇게 글은 묻히나 싶었지만.
-진짠데. 이거 봐라.
글의 작성자는 어두운 밤에 찍힌 것 같은 짧은 영상을 올렸다.
검은 옷을 흩날리며, 병사와 괴수 사이에 끼어들어 빠루를 휘두르는 사람 형상의 무언가.
영상의 화질도 나쁘고 카메라가 마구 흔들리는 것이, 아무래도 병사에게 달린 개인 캠의 녹화본인 모양이다.
이 이상 리플이 존재치 않아 작성 시간을 보니, 시차를 고려하면 방금 올라온 글인 것 같았다.
그런 생각에 글을 새로고침하자.
-뭐임? 이거? 진짜 같은데?
-당연히 조작이지. 이걸 속음?
-어떤 멍청이가 전투 영상을 구해서 조작을 쳐? 진짜 같은데?
-진짜라 치자. 블랙 머라우더가 왜 저기 있냐?
-생각을 해봐라. 블랙 머라우더가 인터뷰했던 거. 곧 무슨 일이 생길 거라고 했잖아. 그래서 간 거겠지.
-블랙 머라우더한테 신통력도 있어? 그냥 쟤가 저지른 거 아냐? 그럼 쟤가 범인이네. 박수.
-쟤한테 무슨 이득이 된다고 저런 짓을 하겠냐.
의외로 정곡을 찌르는 리플이 갱신되어, 한 번 더 보고자 다시 갱신을 눌렀지만.
‘삭제된 게시글입니다.’
사람 냄새 나는 글과 리플들은 어디로 가고, 그런 비인간적인 문구가 출력될 뿐이었다.
“….”
조금 전까지 열심히 리플을 쓰던 글 작성자가 자진 삭제했을 것 같지는 않고….
관리국의 정보통제인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이 사건은 관리국 역사상 다시 없을 실수.
완벽주의를 주장하던 관리국으로서는 있어서 안 되는 사건이다.
그런 장소에 괴인이 나타나 자신들을 도와주었다?
비공식적으로 존재하는 관리국 관리 하의 괴인이어도 사단이 일어날 판에, 적대적인 괴인? 당연히 관리국은 정보통제에 들어가겠지. 하지만.
“저런 영상자료가 하나만 있을 리는 없지.”
이미 한번 올라온 이상, 걷잡을 수 없이 의문이 퍼질 것이다.
자료를 삭제한다 한들, 언젠가는 백기를 들기 마련, 계속 정보를 감출수록 관리국은 신뢰를 잃어가겠지. 그리고, 블랙 머라우더의 주가가 더욱 오를 거고.
이건 예상치 못한 소득이구만.
처음으로 집중을 풀고 고개를 들어 올리자 눈앞에 어두운 골목길이 펼쳐졌다.
어찌나 좁은지, 사이로는 햇빛도 비추지 않을 것 같은 어두운 골목.
“여긴가.”
관리국에 목격정보가 올라온 장소.
그리고, 동시에 해당 괴인의 자유 토벌 허가가 내려온 장소.
“자유 토벌 허가는 내가 손써서 억지로 뺏었지만.”
덤으로 결사 녀석들 손을 빌려, 정보가 늦어지도록 손을 썼다.
덕분에 서울에서 파리까지 급히 달려오는 꼴이 되었지만.
“어쩔 수 없지.”
그런 혼잣말로 역겨운 장소에 들어가는 나 자신을 납득시키며,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들어오자마자 느껴진 것은 퀴퀴한 오줌 냄새와 쥐들이 발아래로 달려가는 감촉, 날파리가 들러붙어 앵앵대는 소리.
옛날보다 더 심해졌구만.
각국에 하나쯤은 있는 슬럼가.
프랑스는 수도 쪽에 있다는 점이 특이하긴 하지만, 그 외에는 별다를 것 없는 흔한 슬럼가의 냄새다.
입구 쪽은 아무도 관리를 하지 않아 이렇게 개판이지만, 그래도 사람 사는 장소라고 조금만 몸을 옮기자 사람 사는 냄새가 풍겨왔다.
대로를 따라 쭉 펼쳐진 이계 오염 물품을 거래하는 노점상. 척 봐도 거래금지 품목들.
거기서 고개를 돌려 다른 쪽을 바라보면, 괴인이 양아치 짓을 하며 삥을 뜯는 모습이 보였다.
정말 여긴 달라지질 않는군.
아. 칼 맞았네.
삥을 뜯던 괴인이, 갑자기 나타난 빛의 검에 배를 찔려 쓰러졌다.
탈주 영웅도 있나 보구만.
슬럼가에서는 평범한 그런 광경들을 보며, 발길을 옮겼다.
내 모습을 보고 접근하는 녀석들이 있긴 했지만, 그때마다 죽빵을 날려 강냉이 수확을 한 후, 하수구에 거꾸로 처박고 길을 떠났다.
그렇게 정의구현을 몇 번이나 더 했을까. 이 답 없는 장소에 대해 불평을 싸지르려는 찰나.
파직.
짧게 들리는 번갯불 소리.
조그만 그 소리는, 이 불안정한 슬럼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전기누출 스파크 소리와 전혀 달랐다.
찾던 것을 발견한 나는, 곧바로 그 소리가 들린 장소를 향해 몸을 던졌다. 이 소리를 찾기 위해 프랑스에 온 거니까.
파직.
“으아아아아그가가각.”
스파크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내지르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아니길 빌었건만.
파직.
더욱 커진 번갯불 소리.
그 소리는 모퉁이 너머에서 들려왔고, 내가 급히 모퉁이를 돌자.
“으아아아아악!”
누군가가 검은 번갯불에 불타는 모습이 보여왔다.
정밀하게 전기를 다루는지, 목 아래쪽이 굳어버린 채, 머리 위만 미친 듯이 경련하는 상황.
“쯧.”
아니길 빌었는데.
급히 뛰어들어 전기고문을 당하는 남자를 발로 차서 떼어낸 후, 어리둥절한 표정의 그녀를 바라보았다.
내 기억 속의 얼굴로, 웃으며 방긋거리는, 검은 그녀를.
“뇌신.”
“오랜만이네요. 이하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