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92)
마법소녀 아저씨 92화(92/671)
92. 대참극의 끝. 술을 나누며.(2)
“살아있는 걸 축하하며!”
“오랜만에 만난 대장님을 위해!”
“오랜만에 받은 휴가를 위해!”
“이혼한 친구 놈을 위해!”
“이게 술이냐. 쓰레기들아.”
“건배!”
“이것들이 내 말을 씹네.”
쨍.
유리잔이 성대하게 머리 위에서 부딪히고, 그 여파로 넘친 맥주가 흩날리는 난장판.
모두가 신나게 자기 맘대로 떠드는 축하사와 건배의 폭풍 속에서, 나는 조용히 유리컵을 흔들었다.
“대장님은 왜 혼자 구슬프게 들이켜고 계십니까?”
정신 나간 놈들 같으니, 그걸 물어봐야 직성이 풀리나.
“손이 안 닿는 걸 어떡하냐.”
“아. 옛날엔 낮은 탁자나 둘러앉아서 마신 덕분에 미처 생각지 못한 맹점이었군요.”
“아, 그러시겠죠. 우락부락한 남정네들 사이에 젊은 마법소녀가 있어서 죄송합니다. 예.”
“젊….”
쨍그랑.
“뭐?”
“아무것도 아닙니다.”
유리잔이 깨졌지만, 이런 난장판에 익숙한 대원들은 재빠르게 유리 조각을 대야 안으로 밀어버리고, 다시 술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덕분에 내 불만은 아무도 듣지 못한 모양. 타들어 가는 속을 달래고자 잔을 기울였다.
투명한 잔이 조명을 가리고, 그 안의 갈색의 음료가 목구멍으로 흘러들어온다. 물에 물을 탄듯한 무언가. 그 맛에서는 맥주의 풍미라고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었다.
이건 진짜 못 참겠네.
“어떤 망할 놈이 이딴 맥주를 주문한 거냐? 당장 머리 박아라.”
치약 뚜껑도, 소주병도 없네.
그럼 만들어야지.
딱. 떼구르륵.
하늘에서 나타난 쇠구슬이 바닥을 구르고, 거기에 대고 범인은 자수하라는 의미에서 고개를 까딱였다.
“뭐해? 안 박고. 이딴 술을 사 왔으면 너희도 불만일 거 아냐.”
내가 그렇게 닦달했건만, 서로 눈치를 볼 뿐,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시선이 오가길 십여 초, 결국, 헨리가 한숨을 내쉬며 진실을 고했다.
“그건 그냥 탄산숩니다.”
아 그래? 탄산수라…. 마셔보니 그런 것 같긴 하다만.
조명 위로 잔을 들어 올려 비춰보았지만, 색도 비슷해 명확히 구분하는 것은 힘들어 보였다.
그럼 진짜라고 치고, 왜 나한테 탄산수 따위를 내주었는지 물어봐야 하겠지.
“근데 왜 나한텐 탄산수냐? 알콜 어디 있어 망할 놈들아.”
너희만 술 마시니 좋아? 취하지 못한 자의 술주정을 보여주랴?
“큼. 큼. 그… 그게.”
“저희도 그… 난처해서 말이죠.”
이놈들 왜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돼서 몸을 비비 꼬고 있어?
“너희 다 행정병으로 전직이라도 했냐? 왜 말에 매가리가 없어.”
“솔직하게 말했다간 대장님에게 죽을 것 같아서 그럽니다.”
“설마 죽이겠냐?”
생사고락을 함께한 팀원들에게 그런 무례한 짓을 할 리 없잖냐.
“미성년자로 보이는 마법소녀가 술집에서 병나발을 분다는 민원 신고가 들어와서, 마법소녀에게는 나이를 불문하고 알콜 접대 금지라는 내부공문이 떨어졌습니다.”
그런 뻔뻔한 놈이 영웅이라고 설치고 다녔다고?
“어떤 미친 마법소녀 놈이 그따위로 행동해서 내 행복을 말아먹어?”
“크림슨 해머라고 하더군요.”
응? 누구?
“사진도 찍히고, 동영상으로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모습까지 찍혀서 보내졌습니다. 대체 술병에 숟가락은 왜 꼽는 겁니까?”
“아, 그거야 마이크….”
어라? 나네?
“그 민원 어디로 들어왔냐?”
근래에 그런 꼴사나운 행동을 한 것은 몇 번 없다. 민원이 들어온 창구와 기억을 조합한다면 역추적이 가능할 터.
떠올려라, 내 뇌여. 주변 인물들의 인상착의와 당시 행동을….
“보복하실 생각이라면 그만두시길. 꼴사납습니다.”
“안 해. 날 뭘로 보고.”
대신 너희 술을 맛없게 만들어주마. 탄산이 담긴 물이라니.
이걸 누가 마셔. 몇몇 애들은 좋아하는 것 같긴 하다만.
그렇게 잔에 담긴 탄산수를 은근슬쩍 다른 부대원들 잔에 흘려 넣으며 비워버리자. 그 꼴을 보지 못하겠는지, 헨리는 가방에서 생수통을 꺼내 내 잔에 물을 따라주었다.
“웬 물이냐.”
“마셔보시길.”
마셔보라니 마셔는 보겠다만.
천천히 맥주잔을 들어 올리자, 자극적인 향이 코를 간지럽혔다. 휘발성이 강한 그 액체 특유의 그 냄새.
천천히 잔을 기울이자, 바라지 마지않던 자극이 흘러들어왔다. 그토록 바라고 원하던, 목이 타는듯한 통증의 자극.
그래, 이거지.
“…좋은 물이군.”
“예. 물입니다.”
부대원들이 일시 분란하게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내 부하라면 이래야지. 윗대가리가 뭐라 하든 우리랑 뭔 상관이야.
그렇게 각자에게 알콜이 돌아가자, 모두의 얼굴이 달아오르고, 그 얼굴색만큼 대화도 타오르기 시작했다.
“너네 어떻게 다들 살아있다?”
“전 대장님이 은퇴 안 하신 게 더 신기합니다만.”
“나라고 하기 싫어서 안 하겠냐! 요즘은 좀 생각이 달라지긴 했다만. 근데 너희 월급은 얼마나 나오냐? 호봉 미친 듯이 쌓였을 것 같은데?”
“그게….”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 부하의 수당 내역. 이놈도 나보다 많이 받네?
“왜 나보다 많이 받냐?”
“그야 대장님은 워낙 떼이시는 게 많잖습니까. 기….”
“아 꿀꿀한 소리는 하지 말고. 말하면 안 되는 말 했으니 한잔 쭈우욱 들이켜라.”
꿀렁. 꿀렁.
잔에 맥주가 절반, 물이 절반 채워지기 시작했다. 미묘하게 색이 옅어져 진저에일처럼 변한 맥주.
“봐줬다! 물을 절반이나 탔으니 한잔 쭉 들이켜.”
“….”
오. 마셨다.
쿵.
오. 죽었다.
“이놈 끌어내, 방해된다.”
“예! 보스!”
질질 끌려가는 시체 하나. 그것을 시작으로 분위기는 더더욱 달아올랐다. 음식이 하늘을 날고, 욕설과 폭언, 주먹질이 난무하는 대축제.
역시, 사람은 분위기에 취하는 것이다. 요즘 꿀꿀한 술자리가 많았던 부작용인지, 이렇게 막말이 오고 가는 술자리도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축제의 탈락자가 하나둘씩 늘어나고.
“내가 왕년엔 말이다. 유탄으로 A급 괴인도….”
“내 유탄이야 븅아….”
갑자기 ‘왕년의 내가 말이다’ 대전이 시작되었다. 바보들인가. 그 왕년에 너희들 같은 부대였잖아.
“다들 늙었냐. 왜 벌써 쓰러져.”
“대장이 이상한 겁니다.”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와 동시에, 헨리가 다시 술자리로 복귀하였다.
언제 나갔었지?
“어디 갔었냐?”
“잠깐 통화 좀 하고 왔습니다.”
하도 난장판이다 보니 누가 빠졌는지도 몰랐던 모양이다. 나도 부하들 사이에서 굳이 감각을 세우고 있지도 않았으니.
“애인이냐?”
술잔을 기울이며, 그에게 그런 헛소리를 해보았지만.
“아, 바빠서 못 온다던 녀석들 있다고 하지 않았었습니까?”
그랬지.
“꿀꺽.”
대답 대신 일어난 술잔의 거품.
그것을 긍정의 답으로 받아들였는지 헨리는 계속 입을 열었다.
“그중 한 놈이 대장님 있으시다니까 급히 온다고 하더군요.”
“꺼흑. 그래?”
평소라면 트림을 참았겠지만, 이 남성미 넘치는 바보들 사이라 절제하지 않고 본능 그대로 행동하였다.
헨리 또한 신경 쓰이지 않는지 조용히 비어있는 자리에 앉아, 누구 것인지 모르는 맥주잔을 기울였다.
많은 숫자가 탈락하긴 했지만, 아직 계속되는 왕년에 내가 대회.
결국, 주먹질이 벌어져. 또 반수가 떨어져 나갈 때쯤.
드르르륵.
“늦어서 죄송합니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그가 나타났다.
“오, 이반 아니냐? 바쁘다더니 넌 관리국 방위대로 간 모양이다?”
동양계 외모를 가지고, 고급 장교 마크가 달린 회색 디지털 복을 입은 남자. 얼핏 보면 군인이지만, 국기가 달려야 할 장소에 관리국 방위대 마크가 달려 있었다.
“예. 불참 연락을 드린 건 죄송합니다. 요즘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서 말이죠.”
“뭐 어떠냐. 어서 와서 앉아.”
“읏샤.”
그런 아저씨다운 말을 입 밖으로 내며 내 옆에 앉은 그는 맥주잔에 담겨있는 투명한 물을 들이켰다.
“아 그거….”
내가 말리려 했지만, 이미 절반가량이 입안으로 들어간 상황.
“….”
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예의를 차리는지 한번 입안으로 들어간 걸 뱉을 수도 없고, 마시기도 뭣하니 고민하는 모양.
내가 도와줄 방법도 없어 그걸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 이반은 결국 마시기로 선택했는지, 그의 목울대가 울리며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커흑. 어흑 허억.”
물의 처리가 끝나고, 과장된 기침을 내뱉으며 흔들리는 그.
반쯤 내 잘못이기에 그의 등을 두드려주자, 이반은 금세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치켜들었다.
“뭡니까 저건 물이 아니라 수….”
그 말을 꺼내지 마라.
“물이야.”
“아니 저걸 물이라고….”
“물이야.”
아니면 네놈이 기억을 잃을 때까지 코로 물을 마시게 해주겠다. 그런 무언의 압박으로 물이 담긴 유리병을 그의 얼굴 가까이 가져갔다.
“…물이로군요.”
그런 내 진심을 알아챈 것일까, 이반은 조용히 입을 다물며 어깨를 늘어트렸다.
이반 이 녀석, 늦게 와서 작전을 망치려 하다니.
축 늘어져 취기를 달래는 이반을 무시한 채 내가 왕년에 준결승전 대결을 보고 있자니, 이반이 고개를 들어 올리고 입술을 달싹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든 모양이다.
“그래서, 요즘 뭐 하느라 바쁘냐?”
그래서 내가 대신 말의 물꼬를 터주었다. 대장으로서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전 얼마 전까지 홋카이도에 있었습니다.”
“아, 그래? 고생이었구만.”
나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감정을 감추고 그리 답하였다.
“예, 큰일이죠. 위쪽에서는 누군가에게 죄를 찾아서 뒤집어씌우려고 하고, 정보조작에, 민간인도 어떻게 거주할 장소를 마련해줘야 하고, 난리도 아닙니다.”
흠. 말만 들어서는 바빠서 자면서도 일해야 할 것 같은데, 분명 내가 있다고 하니까 갑작스럽게 참가했다고 했지?
“…암살부대로 이동하고 싶나?”
책임을 뒤집어쓰기보다, 차라리 빠르게 신분을 세탁하고 부대를 이전하기 위해 나에게 부탁하러 온 것일지도 모른다. 내 말이라면 그쪽에서도 어느 정도 받아들일 테니.
그는 내 말을 듣자 묘한 표정을 하고는 맥주잔을 들어 올려 입을 적셔나갔다.
그렇게 잠시 기다리자, 맥주잔이 쿵 하고 내려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입이 열렸다.
“제가 그리 멍청한 녀석일 것 같습니까? 제 책임소재라면 이미 정리가 끝났습니다. 멍청한 지휘관 머리가 날아가면 모를까, 저는 기껏해야 진급이 한참 밀리는 정도겠죠.”
큰 책임이구만, 별거 아니라고? 박봉인 방위대에 남아있을 이유라면 진급 말고 없지 않나?
내가 천천히 머릿속으로 생각을 가다듬는 사이, 그는 입을 작게 조이고, 입 안쪽으로 말을 오물거렸다.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나에게 비밀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 같다. 나만 들을 수 있는 작은 소리로 우물거리다니.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그에 답하였고.
‘사실 이번 홋카이도 공방전에서 최후방을 지킨 건 대장님의 복제 괴인. 블랙 머라우더였습니다.’
“….”
나는 그에 무반응을 유지하며, ‘내가 왕년엔 말이다.’ 결승전을 바라보았다.
남자 사이의 주먹이 오간다.
날뛰는 땀과 각종 액체.
‘뭐. 관리국에서 기밀 처리하여 나돌지 않는 정보긴 합니다만.’
더럽게 말 빙빙 돌리네.
“하고 싶은 말이 뭐냐.”
이반처럼 모깃소리는 아니지만, 주변에 들리지 않을 소리로 속삭여 답을 돌렸다.
그에 반응하고 싶지 않은 것일까. 이반은 조용히 맥주잔을 들어 올리고, 맥주를 마시는 척 흘러 넣으며.
‘복제 괴인은 본래의 성격을 많이 따라갑니다. 뭐, 크게 왜곡되는 경우도 많긴 합니다만….’
본론만 이야기하라니까 아직도 빙빙 돌리네.
‘그런 블랙 머라우더의 인터뷰를 읽어보았습니다. 과거의 정의. 강력하고 절제된, 단련을 거듭한 힘을 가진 완벽한 영웅만이 이 이계의 파도에서 인류를 수호할 수 있다.’
나 또한 조용히 물을 삼켰다.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듣게 된 나의 작전계획과 사상.
‘그런 사상이 관리국 내부에서 퍼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옛날 대전을 경험한 사람에게는 그쪽에 더 익숙하니까요.’
탕. 탕.
두 술잔이 책상에 놓이고.
‘그래서, 대장님에게 물어볼 생각입니다. 이런 걸 물어봐도 화내지 않고 답을 들려주실 분이니까요.’
날 믿는 게 너무 과하군.
‘전, 이쪽 파벌에 설 생각입니다. 대장님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
내가 조용히 침묵을 지키는 것을 중립이라 생각한 것일까.
‘중립이라고 하셔도 상관없습니다. 다만, 만약. 정말 만약의 상황에, 블랙 머라우더의 사상에 공감하신다면, 저희 쪽의 손을 들어주시길.’
나는 싸움의 결판을 보았다. 승자는 소총으로 O급 초능력자 괴인의 눈알을 저격했다고 주장하는 부하.
그가 승리의 포효를 지르는 동안, 나는 이반에게 고개를 돌려. 입을 열었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