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96)
마법소녀 아저씨 96화(96/671)
96. O급 참여기록 -『종말병』(1)
“그래서, 이 거지 같은 도시에 왜 왔더라?”
창문을 열고 창틀에 뛰어올라 거리를 내려다보자, 음울한 분위기의 조용한 도시가 보여왔다. 아무도 돌아다니지 않고, 회색빛으로 물든.
주변 건축물이 회색빛의 돌로 된 탓도 있겠지만….
“맥베스가 이계와 관련이 있을 거라고 해서 왔다네.”
그래. 그놈의 맥베스.
“그놈의 예언이 언제 맞은 적이 있던가? 해석도 제대로 못 하겠더구만, 예언은 무슨 예언.”
“심오한 예언이니, 믿을 만하다고 본다네. 그 예언을 받고 어제 복권으로 점심값을 벌었지.”
“…거참 신묘한 예언이네.”
복권 당첨 수준의 신뢰도를 가진 예언이라. 그걸 어떻게 믿어.
“그것보다는 몸을 숨기는 게 어떤가, 일단은 비밀활동이니.”
아, 벽 뒤에 숨어서 고개만 빼꼼 내민 게 그런 이유였어?
난 무슨 강령술 의식인가 했지.
“그건 걱정하지 말고. 주변에 아무도 없으니까.”
도시를 봉쇄하고, 행인을 무차별 사살하던 사람들도 주변에선 느껴지지 않았다. 그건 아마.
“사람 죽이는 놈들도 시체 위에서 걸어 다니고 싶진 않겠지.”
“내 평소 죽음은 끝이 아니라고 하고 다니지만, 이건 죽음보다 더한 무언가로군. 무덤에 누일 시체조차 없다니.”
칼라베라는 그리 말하곤, 창가에 쌓인 재를 손으로 흩뿌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며 노래를 부르는 것은 그 특유의 애도 방식.
“뿌리면 되는 거 아닌가?”
화장한 재처럼.
“영혼이 남아있지 않네. 화장과는 달라. 이건 말 그대로 아무것도 남지 않은 무언가라네.”
“별 차이 없는 것 같은데.”
애당초 영혼이 존재하긴 하나?
창문틀 위에 오르느라 손에 묻었던 재를 창밖으로 털어내고, 방 안으로 돌아와 창문을 닫았다. 아무리 나라 한들, 시체로 된 재를 빨아들이는 취미는 없었기에.
그렇다. 도시를 회색빛으로 뒤덮은 수많은 재. 이것은 전부 한때 인간이었던 자들의 마지막.
이계와 연관된 전염병이 돌았고, 그것을 막고자 주변국은 체코슬로바키아 전역을 봉쇄하였다.
“증상이 뭐라고 했지? 칼라베라.”
윗대가리들의 감시를 피해 은밀하게 달려온 덕분에 자료조차 제대로 못 받았다. 아는 것이라곤 저 재가 인간의 최후라는 정도.
“몸이 회색으로 변해 점차 굳어가고 마지막엔 살이 재가 되어 떨어져 나가고 뼈만 남게 되네. 그나마 다행은 통증은 없다는 점이지.”
“척 봐도 이계와 관련된 병이구만, 그딴 게 어디 있어.”
이계의 힘으로 변이된 전염병이던가, 아니면 이계의 존재가 뿌렸겠지.
아, 최악의 상황으로는 이계의 병 그 자체가 들어온 거려나? 그럼 생태계 망가지기 딱 좋겠네.
“하람. 죽음은 뭔가?”
“할 말 있으면 그냥 해라.”
얜 다 좋은데 가끔 이런 뜬금없는 선문답을 한단 말이야.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고는 입을 열었다.
“저 병은 저게 끝이 아니네.”
“뭐? 살이 떨어지고 뼈만 남은 꼬라지 이상으로 뭐가 더 있어?”
“재가 되는 것에 얼굴은 포함되지 않는다네. 마지막까지 얼굴만 남아서 자신의 몸이 재가 되는 것을 바라보다가. 마침내 얼굴을 제외한 뼈마저 바스러지면, 그제야 얼굴이 굳기 시작하지.”
뭐 저딴 사디스틱한 병이 다 있지? 그 와중에 고통은 없어서 순수하게 공포만 느끼게 하는 무언가?
“…그딴 게 자연적으로 발생할 리가 없잖냐.”
“하지만 각국 정부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지, 도시 하나로 끝나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걸세.”
미친 새끼들. 만약 이걸 퍼트리는 주체가 있다면 봉쇄 따위로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인구가 어떻게 되지?”
“100만.”
100만이라. 만약 다 죽으면, 이계 관련 단독 사망자 수로는 최대급 기록 아닌가? 어지간한 O급 피해랑은 비교도 안 되는데?
“전염 루트는?”
“감염자 혹은 죽은 지 얼마 안 된 시체의 재와 접촉.”
“우리 방금 재 만지지 않았냐?”
“만졌다네, 친구여.”
이 미친놈이 지금 뭘 하는 거야. 너만 알고 있으면 처 막았어야지.
“야이 씨….”
“일정 등급 이상의 각성자는 감염되지 않음이 확인되었다네.”
“그걸 미리 말해야지 미친놈아.”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내 각성자 인생 마지막이 침대에 누워서 팔다리 썩어가는 꼬락서니일지 모른다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버렸다.
“그놈의 예언이나 펼쳐봐라.”
“믿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는가?”
“지랄 말고, 그거 믿고 왔는데 그것도 모르면 어떻게 해.”
“그도 그렇군.”
그는 허리에 달린 가죽 주머니를 열어 쪽지를 나에게 건넸다.
평범하게 A4용지를 접은 물건.
예언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 치고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물건이긴 하지만, 이것 말고는 방법도 없기에.
너저분한 종이쪽지. 거기에는 잉크가 엉망으로 번진 문구가 있었다.
어지간히 급히 썼나 보군.
그럭저럭 읽을 순 있었기에 그 문구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시작의 역병이 과거 신성한 제국의 수도에 풀릴지니.』
『종말을 막기 위해 분투하는 자 핍박받으리라.』
『그리하여. 모든 것이 늦어진 회색빛 도시에서. 유일한 열쇠는 선택해야 하리라. 제물 혹은 무덤을.』
“나 대신 좀 알아먹기 쉽게 써달라고 물어봐 주는 건 어때?”
“본인 말로는 자신도 어찌 쓰는지 모른다고 하더군.”
“아, 그러시군요.”
여기 없는 사람에 대한 불평을 멈추고, 예언의 해석을 시작했다.
과거는 역병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현재는 이걸 막을 방법이 있는 자가 있다는 것. 다만 미래가….
나는 그 문장을 보고 씁쓸해져서 담배를 베어 물고 불을 붙였다.
“이 호텔은 금연이라네.”
“아무도 없는데 금연은 무슨 놈의 금연.”
말이 좋아 호텔이지, 이미 여기 지배인이나 직원도 모두 도망쳐서 우리가 무단점거한 상태인데.
“그보다 예언에 관해서 말인데, 과거는 너무 뻔하고, 현재는…. 종말을 막는 자가 칼라베라 너나 나는 당연히 아닐 테고.”
“죽은 자와 대화하는 법은 알아도, 질병과 협상하는 법은 모른다네.”
죽은 자라. 지금 외부에 자욱한 저 재에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지. 뭐가 다른 걸까.
잠시 창가로 시선을 옮기자, 창밖에 흩날리는 재가 보여왔다. 실내에 감도는 담배 연기보다 더욱더 짙은 농도로 안개처럼 흩날리는 재.
“그럼, 이 사태는 누군가의 이야기고 우린 그 각성자를 찾아야 하는 건가? 걔를 도와야 뭐가 되니까?”
“혹시 아는가? 영화처럼 면역자가 있어 보호하는 전개일지.”
“그런 B급 영화만 보다간 성격 망가진다.”
유혈이 낭자 하는 건 전장으로 충분한데, 뭐하러 영화에서까지 보려는 건지.
나는 허리를 숙여 미래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근데 여기 미래를 보면 예언이 바르다는 가정하에 이미 망하는 것은 확정된 거 아니….”
삐이이익.
불길한 소리가 들렸다.
“말하지 않았는가.”
그런 칼라베라의 꾸중과 동시에.
쏴아아아.
화재경보기에서 물이 뿜어져 나왔다. 차갑고, 뜬금없어 기분 나쁜 물.
덕분에 입에 물린 담배는 젖어 허리를 숙이고, 손에 들린 쪽지는 잉크가 번지며 나에게 엿을 먹였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사태에 망연자실하며 자리에 앉아있자.
“예언이라면 베껴 써뒀으니 걱정하지 말게, 그리고 미래 예언에 관해서다만, 아마 맥베스는 그 선택에 뭔가 의미가 있을 거라고 우릴 보낸 거겠지.”
“…희생자를 줄이라는 거냐.”
“그래.”
탕-.
바깥에서 들려오는 총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비가 내리는 실내에서 얼굴을 검게 물들였다.
누군가가 또 총에 맞아 죽은 모양이지만. 그리 신경 쓰이진 않았다.
이 도시에 들어온 이래, 누군가가 도망치다 총에 맞고, 길거리에서도 자신에게 다가오지 말라고 총을 겨누는 장면은 흔했으니.
* * *
나흘이 지났다.
아무런 수확 없이.
한숨을 내쉬며 숙소에 돌아오자, 칼라베라가 나를 반겼다.
“재의 도시에서 원하던 것은 찾았는가 어린 소녀여.”
재가 잔뜩 묻은 상황에서도 빛나는 미소를 지어 올리며, 밝은 치아를 자랑하는 미치광이.
“헛소리 말고, 특이사항이 있었으면 진작 연락 넣었지.”
안 그래도 수확이 없어서 짜증이 솟구치는데, 라틴계 특유의 능글거림까지 추가되니 참기 힘들군.
창문을 열어 재가 잔뜩 묻은 코트를 털어보았지만, 오히려 재가 더 묻어날 뿐이라, 옷을 터는 것을 관두고 소파에 몸을 던졌다.
“칼라베라 너는 어쩌던?”
“내 밝은 미소를 보면 모르겠는가? 수확이라면 있었다네.”
그런 걸 좀 먼저 말해 이놈아.
나는 앉은 자세를 고쳐, 경청할 준비가 되었음을 알렸고.
“감염자에게 뭔가를 하고 있던 아이를 보았네, 아직 살 수 있을 거라고 울부짖더군.”
“별거 아닌 거 같은데? 아는 사람이라도 쓰러졌겠지.”
“그게 아니라네 친구여. 무려 그 아이가 뭔가를 한순간, 환자의 몸이 복구되었다네. 일부분뿐이라 죽는 것을 막진 못했지만.”
“이 망할 놈아, 넌 우선적인 걸 늦게 말하면 죽는 병이라도 있냐?”
참다못해 폭발하고 말았다.
이 녀석의 농담은 전쟁터에서야 재미있지, 사람이 죽어나는 장소에서도 이러면 속이 뒤집힐 뿐이다.
“어쩌겠는가. 그것이 내 영혼인 것을. 이제 와서 바꾸기에 지난 삶이 너무나도 길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욕설을 꾹 참으며, 다른 고함을 내뱉었다.
“아 됐고, 그럼 그놈이 이야기의 각성자네. 어디 있어? 잡아 왔지?”
“놓쳤다네.”
아니. 망할 진짜.
“야 이 XX새X가 진짜 평생 XXX이러고 살 놈을 차라리 뇌신이나 무한성주를 데려와야지 이런 XX없는 XX놈을 가지고 XX.”
한번 무너진 욕설의 물결은 도저히 멈출 수 없었다. 쏟아내라는 욕설의 폭류.
“XXXXXX”
“어쩌겠는가? 친구여, 나는 그대만큼 강인하지 않다네. 그 아이를 쫓아보았지만, 한계가 있더군.”
“자랑이다. S급이라는 놈이 지나가던 각성자한테도 밀리고 XX.”
기껏 잡은 단서를 놓쳐? 죽어.
“그러니 나와 함께 가서 찾아주지 않겠는가. 그대의 감지 능력과 신체 능력이라면 어떻게든 될 테니.”
“이 XXX놈아. 어디야. 안내해.”
빌어먹을 건 빌어먹을 거고, 일은 해야지. 망할.
* * *
“그래서 이게 그 시체냐?”
“그러하네.”
칼라베라의 괴상한 말투를 무시하고, 시체를 들어 올려보았다.
회색으로 변했음에도, 재로 변하지 않고, 평온한 얼굴로 죽은 남자. 시체를 흔들어보아도 주변의 시체처럼 부스러지는 현상이 없었다.
“확실히 치료된 것 같군.”
죽은 이유는 모르겠지만, 너무 늦었거나 치료가 부족했으리라.
“뭔가 느껴지는 것은 있나?”
느껴지는 거라…. 그런 거라면 산더미처럼 있지.
“칼라베라.”
“왜 그런가?”
“옆에 쓰러진 시체. 뒤집어봐.”
칼라베라는 내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변하긴 하였지만, 충실히 내 말을 따라주었다.
약간의 힘이 사람의 몸에 가해지자, 바스락거리며 재가 날리는 소리와 함께, 한때 사람의 몸이었던 재가 허공에 흩날리며 주변을 잠식하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런 악몽 같은 광경 속에서, 뒤집힌 당사자는 미약한 숨을 내쉬며 자신이 살아있음을 증명하였다.
비록 몸 대부분이 소실되고,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하는 산 송장이라 하여도 살아있는 것은 살아있는 것.
그런 사람의 말로 옆으로 이동하여,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이 주변에서 어린아이 하나 못 봤나? 이 주변을 뛰어다닌다던데.”
“ㅈ…ㅇ….”
뭔가 조그만 목소리가 나오긴 하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하긴, 죽어가는 사람이 목소리가 크진 않겠지.
그렇기에 귀를 가져가, 그녀의 목소리를 귀에 담았다.
“치료… 사람 여기 있다고….”
과연, 이 주변에 그런 아이가 있다는 소문이 도는 건가.
“우리도 그 녀석을 찾고 있다. 아무래도 당신도 못 본 모양이군.”
“못…살려?”
“미안하군. 아무래도 우리는 치료보다는 전투 위주라.”
“어…흐…익.”
귓가의 숨소리가 더욱 격해졌다. 비탄이 담긴 숨결. 그와 동시에.
바스락. 바스락.
귀에 거슬리는 소리와 함께, 그나마 형체를 유지하던 그녀의 몸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의지가 사라짐에 따라 몸이 부서지는 듯.
“죽여…줘….”
“….”
“아파…사라져가. 내가 사라져….”
통증은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럼 이 여성은 어디서 통증을 느끼는 것일까.
“…정말 아프다면 끝내줄 수 있다만, 그걸 원하나?”
“아파… 뭔지 모르겠지만… 아파… 차라리 죽여….”
그녀가 말을 내뱉을 때마다, 몸이 부스러졌다. 마치, 말을 짜내기 위해 몸 자체를 소모하는 것처럼.
“칼라베라. 이 여자의 영혼은?”
“아직 남아있다.”
영혼이라는 존재를 믿진 않지만, 아마 그녀가 말하는 고통은, 칼라베라가 영혼이라 칭하는 의미 모를 무언가가 사라지는 것이겠지.
“이 죽음은 구원인가? 칼라베라.”
그 말에 돌아오는 답변은 없었다. 다만, 감각을 통해 그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느껴질 뿐.
붕. 철컹. 철컹.
손에서 망치가 뻗어 나오며 공기를 갈랐다. 그녀가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변형된, 요철 하나 없는 순백색의 망치.
처형 도구처럼 보이고 싶지 않다는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변형된 망치를 양손으로 치켜들었다.
“네 영혼은 구원받을 거다.”
내 말에 그녀는 미소 지었다.
마지막 힘을 담은 미소일까.
이미 얼굴도 잠식되어 부스러져가는 그 미소를 향해 나는 망치를 내려쳤고.
“멈춰어어어!”
어디선가 작은 아이가 튀어나왔다.
피부 여기저기에 잿빛으로 변색된 상처를 가지고, 마구 흐트러진 검은 머리를 한 작은 여자아이.
그녀가 나와 재 사이로 뛰어들었다. 휘둘러지는 망치가 무섭지 않은 듯, 나를 보지 않고, 눈앞의 재에게만 시선을 고정한 채 뛰어든 그 아이는 나에게 뒤통수를 내밀었다.
“쯧.”
끼극.
금속에 과한 부담이 가해지는 소리와 함께, 망치의 머리가 그녀의 머리에 닿기 직전에 멈춰 세웠다.
망치 자루가 휘어져서 그녀를 타격하지 않도록, 역방향으로 힘을 불어넣어 조절했기에 생긴 금속음.
“각성자냐?”
그런 내 노력이 담긴 공격 정지도, 질문도 무시하고, 그녀는 부스러지는 머리를 양손으로 움켜잡았다.
…손가락이 없군.
뜯어진 모양을 보아하니 날카로운 뭔가로 잘라낸 모양인데.
“아직, 살 수 있어요! 떠올려주세요. 행복할 때, 아직 병에 잠식되지 않았을 때의 자신을… 제발….”
어떤 이계의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 들려오는 것은 단순한 아이의 비통함.
그러나 어째서일까, 그녀의 손길이 닿은 장소에서부터 회색의 재는 인간의 살결을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조금씩 분홍색이 퍼져나가고, 마침내 혈색이 돌아온 머리는 조용히 입을 달싹거리기 시작했다.
“…이름이 뭐니?”
단순한 질문. 폐와 목이 없음에도, 정상적으로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이 전염병의 기괴한 점이리라.
하지만, 더 이상한 점이 있었으니, 그런 단순한 질문에도 눈앞의 아이는 몸을 움찔거리며 답하지 않았다.
뭔가가 두려운 양, 입술을 떨며. 자신의 이름을 입 밖으로 내기를 주저하였다. 그런 고뇌가 얼마나 이어졌을까.
“알… 알’리브에요.”
회색빛 침묵 속에서, 조용히 울려 퍼지는 그 목소리.
동시에, 분홍빛을 되찾던 그녀의 얼굴이 다시 회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조금 전처럼 빠른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눈에 띄는 속도로.
“그래… 네가 그 아이구나. 우리가 처음부터 네 말만 들었어도.”
뭔가를 아는듯한 말을 남기며, 천천히 그녀의 얼굴이 사그라들었다. 슬픈 미소를 남긴 그녀는.
“부디. 우리를 용서해주렴. 그리고, 우리를 구해주려무나… 미안했다.”
그런 유언을 남기고 바스러졌다.
천천히 흩날리는 바람이 과거 인간이었던 재를 훑고 지나가며 그 형상을 무너트렸으니.
인간의 얼굴은 그렇게 바람 앞에서 흐릿한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누군가의 손에 묻어, 작은 흔적만을 남기고.
“아…아아아.”
우리가 찾아낸 작은 실마리는 눈앞의 사람을 구하지 못한 채, 땅에 주저앉았다.
흔한 일이었다.
이 도시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