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99)
마법소녀 아저씨 99화(99/671)
99. O급 참여기록 -『종말병』(4)
【정말 그걸 원하나?】
감각이 늘어져 간다.
몸이 대지에 닿기 직전, 목소리가 들려온다. 눈앞에 손을 뻗어 나를 붙잡으려는 아저씨의 얼굴이 보인다.
항상 웃던 얼굴과 다른 슬픈 얼굴. 처음 보는, 비통한 표정.
【행복을 모른 채, 죽을 건가?】
목소리가 들려온다.
행복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면.
【살고 싶지 않나?】
괜찮다. 구할 수 있다면.
【정말로 살고 싶지 않나?】
아저씨의 얼굴이 보인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나보다 조금 큰 아저씨. 아저씨는 어째서 웃을 수 있을까. 왜 웃을까.
계속 산다면 이해할 수 있을까.
【그것도 살아야 가능하지.】
이제, 더는 싫다.
“살고… 싶어….”
단. 한마디. 죽고 싶지 않다.
감정이 흘러넘친다.
그렇지만, 이미 늦었다.
콰직.
나는 내가 땅에 부딪혀, 박살 나는 소리를 들었다.
* * *
“너는 정말로 그것을 바라는가?”
“누구…세요?”
“그 질문은 정보로서 가치를 지니지 못하는군. 기억하지 못하는 존재에게 이야기해 준다 한들 나에게 어떤 가치도 없지 않은가?”
“누구냐니까요!”
“음. 역시 너무 어리군. 재능이 있다 한들, 자신을 자각함이 불가능한 이에게 힘을 주는 것에 무슨 의미가.”
“….”
“뭐, 답은 해주마. 어차피 우리에게 시간은 무한하고, 항상 늦을 뿐이니까. 지(支)다. 다음에 만날 때는 이름에 가치가 있기를 빌지.”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요.”
“극(㘌)의 생각이 이해가 안 되는군. 아니, 이 병을 만든 건 마(麼)인가? 쓸데없는 짓. 협정 위반이다.”
“….”
“그런 것은 넘어가도록 하지. 너는 우리의 말단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예지와 다른 미래였지.”
“저기… 좀 더 설명을….”
“본래의 너라면 그러한 힘이 아니다. 누군가를 보살피고 치료하는. 죽은 자도 살릴 수 있는 생사를 초월하는 힘을 얻었을 것이다. 그런 씨앗이고, 그런 심성이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그래, 그런 참상을 겪은 순간, 그런 자비로운 이미지를 떠올릴 수 없었겠지. 마(麼)는 그걸 노린 건가.”
“제가, 또 잘못한 건가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아니. 세상 모든 일에 잘못은 없다. 모든 일에는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지. 너는 네가 걷고 싶은 길을 가거라. 설령 이 대답을 기억하진 못하더라도. 너는 끝에 도달할 가능성을 지녔으니.”
“…제 잘못이 아니에요.”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럼 가거라, 다시 태어날 우리의 아이여. 파(破)에게 안부 전해주거라.”
* * *
살아있다.
어째서인진 모르겠지만, 내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이해한 순간. 뭔가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내가 모르는 단어와 거기서부터 이어지는 모든 힘과 사용법들.
‘수술실.’
그것을 마음속으로 중얼거린 순간.
뭔가가 빠져나가는 감각과 함께, 몸에서 흰색 그림자가 퍼져나갔다.
흰 그림자는 모든 것을 뒤덮었다.
회색빛 시야도.
회색빛 건물도.
회색빛 하늘도.
회색빛 피부도.
회색빛 감정도.
회색빛 영혼도.
회색빛 외침도.
검은 꿈도.
모든 것이 하얀색으로 뒤덮였다.
나를 향해 비난을 퍼붓던 사람들은 세계가 흰색으로 변함과 동시에 그 목소리를 멈추었다.
모두 몽롱한 표정으로 천천히 바닥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무언가가 부딪히는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 정도로 자연스러운 쓰러짐. 마치, 침대에 눕는 것처럼.
그렇게 사람들이 쓰러져나간 흰 대지는 부드러운 담요처럼 표면이 일그러지며 모두를 감싸 안았고, 사람들은 서서히 눈을 감았다.
숨소리가 퍼져나간다. 조용한 숨소리. 평온하게, 고르게, 안정되게.
평화를 되찾은 숨소리가 공터를 가득 채워 흐름을 만들었다.
평화롭고, 잔잔한 흐름을.
모두가 잠들었다.
고통을 잊고.
내가 구해주었던 사람들처럼, 모든 걱정을 잃어버렸던 사람들처럼, 마침내 죽음의 공포가 사라져 피로를 느낄 수 있자 잠에 빠졌던 그 사람들처럼.
그렇지만 그들과 이 사람들은 다르다. 치료되지 않고, 그저 죽지 않을 뿐인 사람들. 이 사람들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새로운 꿈을 가져버렸기에.
그들을 치료하지 못했기에.
“…S급인가.”
“그런 것 같군.”
그렇게 수많은 사람이 죽은 듯 잠든 공간에서, 색을 지닌 두 사람이 걸어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거 뭐냐?”
“수술실이요.”
정확한 의미는 모르지만 발음하는 법을 알아 그대로 입 밖으로 내어 알려주었다.
“…본래 있던 기술?”
“아뇨. 죽기 직전에 떠올랐어요.”
“쯧. S급 맞네.”
아저씨는 다 들리게 혀를 차고는, 이 상황이 짜증 나는 듯 주름이 가득한 얼굴로 나와 시선을 맞추셨다.
“왜 뛰어내렸냐.”
내가 잘못했다고 지적하는 듯한, 낮으면서도 단호한 목소리가 내 귀를 두드렸다. 역시, 잘못한 걸까.
“…제 피에는 타인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어요.”
“그게 무슨 상관이냐? 네 피라도 사람들이 받아먹으라고?”
그런 게 아니에요. 저는 제물.
“제가 죽으면, 주변 사람들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어요. 피가 흩뿌려지고, 공기에 섞이면서….”
제 죽음으로 사람들은 구원받아요.
“아, 그럼 네가 죽으면 저 사람들이 다 치료될 거였냐?”
“예….”
“애새끼가 죽는다는 소리나 내뱉고, 세상 꼬락서니 잘 돌아간다.”
“세상은 진작 망가지지 않았습니까? 이제야 그러셔도 의미 없죠.”
“알게 뭐냐, 전쟁터에는 애는 없었어. 근데 간만에 보니 가관이네.”
두 사람은 평소와 다르게, 날카롭고 높은 소리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마치, 싸움하는 듯한 말다툼.
내가 잘못한 것 같아 고개를 숙이고 흰 땅바닥을 바라보았다.
“그럼 지금은? 이 기술 이름이 수술실이라고 했던가? 이거 효과가 뭐냐가 문젠데.”
“…제가 죽지 않기를 원하는 대상이 죽을 상황에 처하면 가사 상태로 만들어서 죽지 않게 만들어요…. 영원히….”
추가로, 나는 수술실 안에서는 절대 죽지 않는다. 무슨 짓을 하건, 무엇을 당하건. 하지만, 고작해야 나에겐 의미가 없는 힘. 설령 죽지 않는다고 해도, 고통받을 뿐.
나는 아무런 힘이 없으니까.
“영원히라. 푸는 조건은?”
“그 사람이 죽지 않게 될 때요.”
이상한 것은 나도 알고 있다. 죽을 사람이 죽지 않게 될 때라니.
“…그럼 이 수십만은 계속 잠만 자겠구만. 쯧. 엿됐네.”
아저씨가 다시 혀를 찼다. 몇 번째인 걸까. 다시 눈을 뜨고 나서부터, 계속해서 아저씨의 기분이 나빠 보인다. 역시 나 때문일까.
내가 잘못한 모양이다. 내가 거기서 죽어서, 모두를 치료했어야 했다.
그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한 각성자였으니까.
그것을 떠올리고 더욱 고개를 숙였다. 이제 아저씨의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다. 흰 땅바닥만이 보인다.
어째서 살고 싶다고 생각한 걸까.
내 모든 것은 잘못되었다.
툭.
머리 위에서 충격이 느껴져 왔다.
누군가가 머리를 두드린 것 같은 충격. 하지만, 아프지 않았다. 머리에 손을 올리기만 한 것처럼.
“뭐, 잘했다. 죽지 않았으면 된 거지. 아무도 안 죽고, 전염병은 멈췄다. 나쁘지 않네.”
그 말에 놀라 고개를 들어 올리자, 아저씨는 머리 위에 손을 올려 내 머리를 엉클어트리고 계셨다.
“저. 잘했어요…?”
“사람들을 설득해서 거기서 치료하는 것이 최선이었겠지만, 별수 있냐. 그걸 어떻게 해결해.”
나는. 잘못하지 않았어?
화내지. 않는 거야?
“그러니까, 잘했다. 잘 견뎌줬어.”
처음 듣는… 아니, 어제도 들었던 말이었다. 잘했다는 말.
내 잘못이 아니고, 내가 잘해주었다고. 아저씨는 말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그렇기에, 나는 살고 싶어졌다.
마지막에, 죽고 싶지 않아졌다.
모두가 죽지 않는 선택을 하였다.
눈앞의 아저씨를 껴안았다.
아저씨 또한, 나를 껴안아 주었다.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 * *
“이거 뭐라고 말해야 하냐? 사람들이 안 죽었으니 놔두면 됩니다?”
“희생자 없음이라고 우기면 되지 않겠습니까?”
“잘도 되겠다.”
“S급 각성자 하나 늘었다면 위쪽에서도 정상 침착하겠죠.”
“야. 쟤를 각성자로 신고하자고? S급 기술을 얻긴 했지만, 전투랑 전혀 관련 없는 기술 같은데?”
“병사들이 죽지 않는다면 살릴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전선 유지가 더 쉬워지겠군요.”
“지랄 말고, 너도 마음에 없는 말 하지 마라. 애새끼가 전쟁터에서 구르게 하라고? 보고서에서도 빼서 없는 셈 치자고. 저건 그냥 이상한 일 일어났다고 우기자. 어차피 그런 일 한두 번인가.”
“그건. 저 아이에게 선택하게 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만.”
“뭘 선택해?”
“각성자로 싸울 것인지 말입니다.”
“쟤가? 그 꼬락서니를 보고 다시 싸울 리가 없잖냐. 이야기가 멈춰버린 바람에 각성자 은퇴는 못 시켜주겠지만, 평화롭게 살라고 해.”
“직접 물어보시길. 생각과 다를 가능성도 있지 않습니까?”
“뭔 소리야. 그래 내가 물어본다.”
“야. 우리랑 같이 전쟁터에서 구르고 싶냐? 거긴 진짜 뭐 좋은 게 하나도 없거든? 지금이라면 그냥 후방으로 보내줄 수….”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아저씨.
* * *
관리국 5급 기밀지정 정보.
옥시모론 – 종말병 사건 기록.
이하 정보를 열람 시, 영구적으로 관리국 데이터베이스에 접근 기록이 남습니다. 권한이 없는 경우에도 접근 기록이 남습니다. 이에 동의하신다면 고유 등록번호와 비밀번호, 지문을 입력해 주십시오.
확인되었습니다. 박현석 한국 지부장님. 기밀 해제까지 남은 기간은 44년 11개월입니다. 유의해 주시길.
사건 기록 10-O-003번 보고서.
보고서 작성자 : 황왕.
사건 경과 6년. 당시 크림슨★해머와 칼라베라, 그리고 옥시모론의 보고에 따라 정보통제가 일어났던 사건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남기기 위해 작성. 이에 황왕의 연극이 사용되었으나, 사용 내용 기록 거부.
해당 사건을 발생시킨 옥시모론은 어린 나이와 겪은 사건을 고려하여 정보통제를 시도하였으나, 본인의 강한 의지에 따라 전선에 참가. 이후 신변 보호를 위해 모든 인적사항을 새로이 하고, 새로이 각성자 등록번호를 발급. 이후 05-253-P 기록을 폐기. 10-1432-P를 부여.
… … … … …
체코슬로바키아 일대는 현재 접근 금지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옥시모론의 수술실에 의해 봉인된 상황. 공식적으로는 오염구역으로 표기하나, 이를 알고 있는 치유계 종사자와 연구직을 파견. 현상을 유지한다.
… … … … …
-이하 자료는 기밀 해제 시 관리국 협약에 따라 폐기 요망.
종말병에 대해선 당시 해당 사건을 처리한 크림슨★해머, 칼라베라, 옥시모론이 보고했던 내용과 다른 추가적인 사항이 밝혀졌다.
이는 일명 『지하』에서 행해졌던 실험으로 확인된 것으로. 각성자는 해당 병에 면역이라는 점에 오류가 있었다. 이는 단순히 각성자가 일반인보다 정신과 감정이 무감각하여 일어난 일로. 실제로는 각성자 또한 충분히 감염될 수 있다.
이해 더하여. 이미 인류의 상당수가 종말병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감염자나 재와 접촉에 의한 감염은 단순히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어 그리 발병했을 뿐. 실제 감염 경로는 관계성에 있었다.
즉 감염자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 사람을 통해 감염되며,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종말병에 감염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증상이 시작된다.
다행인 점은 정신에 작용하는 병이기에, 자신이 죽을병에 걸렸다고 생각하지 않는 한, 체코슬로바키아와 같은 대규모 판데믹 사태는 일어나지 않는다.
현재로서는 이 병을 완전히 치료할 방법이 없기에, 발병 시 단순한 병으로 위장하도록 처리한다. 이후 현재 유일한 치료법인 옥시모론의 피 10mg 정제를 처방한다.
이를 위해, 전 의료 데이터베이스는 관리국의 통제를 받아야 하며, 해당 병과 연관된 모든 정보는 엄격히 통제한다. 이는 생물학적으로 인간이 아니게 되어 종말병에 면역이 된 황왕을 주축으로 처리하며….
… … … … …
이상의 자료를 다루는 관리국 임원들은 정기적으로 약 복용을….
삑.
알약을 꺼내.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 맛이 느껴질 리 없지만, 어쩐지. 짜고, 씁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