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after returning home RAW novel - Chapter 23
23화 바위는 단단하다
“꾸루루루룩!”
연이은 공세에 빠르게 무너지기 시작한 보스 프로그맨.
그 모습에 공략팀에서 딜 포지션을 책임지고 있던 도적과 궁수가 빠르게 서로를 마주 본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잘 알고 있다.
츠츠츠츠-
보스를 마무리 짓기 위해 스킬, 파워샷을 차징하는 궁수.
게다가 시위에 메겨진 화살은 평범한 것도 아니다.
연금 협회에 특별 제작 주문을 넣은 것으로 비싼 돈까지 들여서 관통력을 수십 배는 더 극대화시킨 유니크 등급 마법 화살.
값어치만으로도 이미 E등급 보스 몬스터의 시체보다 비싼 값을 자랑하는 놈답게 이 화살이 꿰뚫을 목표는 프로그맨 따위가 아니다.
‘고 년들 참. 그냥 죽이기엔 보면 볼수록 아깝단 말이지.’
정령을 이용해 물의 흐름을 조정하고 있는 두 청발 청안의 소녀.
화살이 그녀들에게 향하는 동안 도적이 맡은 역할은 뒷정리와 만약을 위한 가능성의 배제다.
그래도 나름 물의 중급 정령인 운다이르.
제아무리 마법 화살이라고 해도 만약의 경우라는 게 있지 않겠는가?
한 발에 죽지 않는다 해도 단검으로 목을 따면 그만일 뿐.
물론 그 전에 소리 소문 없이 다른 방해물들부터 처리할 생각이다.
일반적인 필드였으면 모를까.
물의 정령사가 죽는다면 수중 공간으로 달아날 수도 있는 일.
목격자가 존재하면 암살이 아닌 법이지 않겠는가?
‘가엾은 것들. 따라오지만 않았어도 목숨은 건졌을 것을. 특별히 고통 없이 보내 주마.’
타닷- 타다다닷-
민첩한 발놀림과 은신.
거기에다가 미리 섭취해 두었던 날개 슬라임의 영약까지.
가히 폭발적인 속도와 함께 도약한 도적의 날카롭게 벼려진 단검이 사내의 목을 향해 내찌른다.
인간인 이상 목이 잘려 나가면 죽을 수밖에 없을 터.
허나,
후욱-! 카가가각-!!!
“……!?”
예상했던 ‘서걱’의 파육음이 아닌 마치 바위를 긁어내는 듯한 감촉과 튀기는 불똥.
“호오? E등급 주제에 제법이구나?”
꽤나 쓸만한 탱킹력에 호기심이 동한 도적, 한태호였지만 지금은 인재 영입보다도 의뢰가 우선이다.
올해 받은 의뢰금 중 가장 큰 금액이었다. 한탕 제대로 하면 수십 년은 놀고먹는 것은 물론이요, 잃었던 주식과 코인도 복구할 수 있는 일.
그러나 그의 공격은.
아니, 정확히 그의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질 수 없었다.
촤학-!
“……어?”
섬뜩한 파육음과 함께 분수처럼 솟구치는 선혈.
붉은 피는 다름 아닌 한태호의 ‘손’이 있던 곳에서 뿜어지고 있었다.
손에 쥐고 있던 무기도 날아갔으니 당연하게도 이제 한태호에게 남은 승산은 0%.
어차피 암살자의 숙명이란 것이 죽이지 못하면 죽는 법.
“신분을 속인 건가? 아니, 힘은 대체 어떻게…….”
그래도 죽기 직전.
자신을 죽인 ‘짐꾼’인 작은 소녀에게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었으나,
“감히 내가 있는 앞에서 진우 님을 해치려 들어?”
촤하하하학-!
“끄아아악!”
어림도 없다는 듯이 그의 어깻죽지를 잡고 말 그대로 쥐어뜯어 버리는 소녀.
그것으로 절명했다면 행복했겠지만, 한태호는 어째서인지 쇼크사도 하지 못한 채 두 눈을 부릅뜬 채 살아남은 상태.
허나 그렇다고 해서 기쁘다는 소리는 결단코 아니었다.
“같잖은 것. 내장과 뼛조각도 남김없이, 마지막까지 숨 쉬며 죽어라.”
“끄흐으! 이미 늦었어. 죽더라도 목표는 이루었거든.”
“개소리.”
까악- 까아악-
까아아악-!!!
분수처럼 솟구치는 한태호의 피에서 생성되는 수십 마리의 핏빛 까마귀.
권속으로 보이는 녀석들은 본래 자신의 몸으로 돌아가려는 듯.
엄청난 기세로 한태호의 내부로 파고들었다.
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끔찍한 고통.
“진우 님! 괜찮으십니까?”
“나는 괜찮아. 그런데 지금 내가 중요한 게 아니야.”
도적이 죽고 싶어서 날뛰고 있던 사이 목이 날아갈 뻔했던 진우는 재빠르게 상황을 판단했다.
갑작스럽게 공략팀의 멤버에서 적으로 돌변한 인원.
3년의 짐꾼 생활을 하며 별의별 꼴을 다 겪어 본 진우는 단박에 현재 입장을 파악했다.
‘뒤치기인 건가?’
레이드 파티를 진행할 때면 헌터 사회에서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행위가 뒤치기다.
보스가 거의 공략될 때 즈음 팀원의 등 뒤에 칼을 꽂아서 모든 전리품을 독식하고자 하는 얄팍한 수작 중 하나.
그러나 의아한 것은 이번 강남 게이트는 환경이 복잡할 뿐.
보스 몬스터는 기껏해야 E등급 게이트의 개체에 불과하다.
그런 놈의 전리품 때문에 굳이 사람의 목숨까지 취하려 든다? 그것도 전성의 정수아는 물론이요, 미국과 관련된 유리 자이스를 해치면서까지?
아니, 그렇다면 오히려 이번 뒤치기의 목적은 보스몹의 전리품이 아니다.
보스 몬스터는 미끼에 불과할 뿐.
진짜 목표는 정수아와 유리 자이스로 굳혀진다.
막말로 사회의 인지도 부분에서 진우라던가 A등급 탱커들을 노릴 이유는 없지 않겠는가?
츠츠츠츠츠-!!! 피이잉-!
아니나 다를까.
도적이 죽어 가는 모습에 궁수가 즉각 화살의 목적지를 두 정령사 소녀에게로 향한다.
오랫동안 차징한 만큼 그 위력은 상상 이상일 터.
심지어 화살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공기의 변화는 결코 평범한 화살이 아님을 보여 주고 있었다.
“허수진!”
“막겠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뛰어가서는 늦는다.
유리 자이스의 운다이르가 물의 파도를 일으켜서 최대한 화살의 속도를 늦추고 있지만, 눈으로 보기에도 명확한 한계.
하필이면 진우도, 허수진도 민첩의 수치는 그다지 높지 않은 입장이다.
그러나 방법은 있다.
인내의 숲이 아니었다면 결코 학습하지 못했을 방법인 인간 포탄.
물론 그때의 가속도를 붙여 줄 폴튼 트렌트는 없지만, 놈을 대신해 줄 친구는 따로 있다.
꺄아- 꺄아아-!
허수진이 가지고 왔던 배낭 속에서 튀어나온 약초 한 뿌리.
혹시나 해서 데려왔는데 그 선택이 옳았던 모양이다.
“날 저쪽으로 강하게 던져 줄래?”
꺄아!(응!)
농지에서 팜오리들과 놀 때부터 알아봤지만 천년묵은 핑크 인시리움은 기본적으로 염력을 부릴 줄 알았다.
“이 미친 짓거리를 또 하게 될 줄은…….”
꺄아! 꺄아아!(엄마랑 하는 재밌는 놀이!)
염력으로 떠오른 진우의 육체는 있는 힘껏 내던진 천묵이에 의해 그대로 공중을 유영했다.
우그그그극-!
날아가는 속도에다가 물속의 수압까지 더해진 이중 압박.
일반인이었으면 충격만으로도 백이면 백 쇼크사 행일 터.
그래도 진우가 누구던가?
무엇보다도 경험이란 다 쓸 데가 있다는 말처럼.
세계수와 인내의 숲에서 겪었던 중력에 비하면 지금의 압력은 어린아이의 장난 같았다.
‘……그렇다고 해도 문제는 따로 있지만.’
도달하는 것은 사실상 준비 운동에 불과할 뿐.
진짜 문제는 엄청난 기세와 함께 날아오는 화살이다.
척 보기에도 A등급 헌터의 탱커들도 박살이 날 정도의 위력.
사실상 정신 나간 자살 행위와 다름없다.
평상시 짐꾼이었더라면 정수아든, 유리 자이스든 간에 ‘남’을 위해서 목숨을 거는 행동 따위는 하지 않겠지만 지금의 진우는 각성한 드루이드다.
탱커라면 응당 탱커다운 행동을 취해야 하기 마련인 법.
치이이이익-
[태초의 알이 각인된 존재의 욕구에 반응합니다. 거센 돌풍이 몰아칩니다.] [바람의 ■■■ 미네르바가 당신의 바람 활용에 흥미를 가집니다.]순간적으로 무언가의 메세지가 눈앞에 떠오르며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빠르게 도착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걸 확인할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지, 진우 씨?”
“여긴 뭣 하러 왔어요! 같이 죽으려고 환장했어요?”
“지금 그런 거 따질 여유가 어딨습니까!”
진우는 인간 포탄이 되어 화살보다 먼저 도착했다.
실전은 많이 겪지 못했던 것인지 당황한 기색이 여실히 느껴지는 정수아와 어떻게든 화살 공격에서 정수아만큼은 지키려고 했던 유리 자이스.
그러던 찰나에 진우까지 얹어졌으니 유리 자이스로서는 환장할 노릇이었으나 진우는 짐 덩어리가 아니다.
치덕치덕-
기름 코팅으로 회피율을 극대화하고,
“나와라!”
꾸득- 꾸드드득 -!
진우의 다리 부근에서 솟아난 폴튼 트렌트의 덩굴은 땅속에 깊숙이 박혀 들며 꼿꼿하게 고정해 준다.
몸과 연결되면서 한층 더 질긴 내구성을 지니게 된 덩굴.
그리고 이제 마지막은 노움들의 ‘바위처럼 단단하게’면 되는데…….
[땅의 ■■■ 테라웰이 대지모신의 요청에 응답합니다.]“어?”
노움 때와는 뭔가 다른.
가히 비교가 안 되는 충만한 기운.
– 아아, 위대한 분이시여…….
– 자, 작은 바위가 태초의 흙을 뵙습니다.
바위 방패를 형성해야 할 노움들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넋을 잃고 있었고,
(바위는 단단하다.)
이후 이어진 짧고 굵은 한마디.
그러나 짧은 말 치곤 진우의 몸에서 빠져나가는 마나 양이 가히 폭발적이다.
콰콰콰콰콰-
쿠우웅-!
나타난 것은 거대한 크기의 바위 파편.
아니, 이건 더 이상 방패라고 볼 수도 없다.
그야말로 하나의 장벽.
태산이요, 만리장성 크기 정도의 건축물이라고 해도 믿을 법한 거대한 바위 파편은 이내 거인의 손 모양으로 변화해 날아드는 화살을 간단히 움켜쥐었다.
날아들던 기세가 허무할 정도로 무력화된 화살.
허나 거인의 손은 진우의 마나가 부족한 탓인지 오랫동안 유지되지 못하고 신기루처럼 스르르 바스러진다.
“이게 무슨…….”
“지, 진우 씨? 방금 건 대체……?”
그와 함께 나를 향한 의문의 시선.
그런데 말이다.
나도 내 마나로 펼친 것이긴 한데…….
‘이제 뭐라고 하지?’
어떻게 한 건지는 내가 제일 모르겠다.
* * *
갑작스러운 딜러들의 태세 전환.
순식간에 적으로 돌아서서 받았던 위협이지만, 도적에 이어서 궁수까지 화살 발사 이후 달아나려다가 결국 허수진의 손아귀에 붙잡혔다.
사실 이제서야 안 건데 허수아비였던 탓에 숨 쉴 필요도 없었다고.
“이거, 역시 마법 처리가 극한까지 적용된 화살이었습니다.”
“……미친 그걸 막았다고? 그건 나도 못 막는 건데?”
“그거 제대로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도 없는 VVIP물품이잖아? 그게 대체 왜 여기에? 아니 그 전에 이걸 막았다니…….”
그저 짐꾼 신분으로 함께했던 허수진이 암살자들을 때려잡고, E등급 헌터인 진우가 웬만한 S등급의 헌터도 맞으면 죽음을 맞이할 정도의 관통력을 지닌 마법 화살을 간단하게 막아 냈다.
그리고 당시 소환되었던 방패 장벽의 웅장함이란 가히 인간의 것인지 이해가 불가능할 정도.
표정으로 보건대 묻고 싶은 것이 한가득이지만 타인의 힘을 캐묻는 것은 실례인 법이다.
게다가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신원은 확실하게 파악했던 이들인데. 대체 왜 이런 짓을 한 건지 알 수가 없군.”
이번 공략팀의 멤버를 짠 것은 어디까지나 유리 자이스, 그녀 본인이다.
물론 몇몇 인원은 한국의 대형 길드로부터 추천받은 이들이긴 하지만 설마 이런 식으로 목숨을 노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분명히 개인적인 목적 때문만은 아닐 거다.
제아무리 전리품이 탐났다 해도 이 정도의 마법 화살을 사용할 정도면 배보다도 배꼽이 더 크다.
속된 말로 가성비가 맞지 않는 일. 그렇다면 답은 하나뿐이다.
누군가의 사주를 받아서 벌인 것일 터.
다행히 궁수는 사로잡았기에 추궁할 수는 있었지만, 이들을 사주한 측도 만만한 존재들은 아니었다.
꺄아! 꺄아아아!(엄마! 불길한 기운!)
“……진우 님. 피하십쇼.”
무언가를 느낀 것인지 앞을 막아서는 허수진과 기존의 애교 섞인 울음이 아닌, 비명을 내지르는 천묵이.
천묵이가 센스 있게 염력으로 궁수를 위로 들어 올리자 궁수의 몸이 이리저리 뒤틀리기 시작한다.
우둑- 우두둑- 뿌드드득-!
“케흑! 컥, 커, 커허헉! 사, 살려…….”
X-ray처럼 인체의 내부 기관을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겉으로만 봐도 알 것 같다.
뼈나 장기는 이미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박살이 났을 테니 사실상 죽은 자나 다름없다.
전 세계에서 회복으로는 가장 특출 나다는 프랑스의 성녀가 와도 살리지 못할 중상.
이미 인간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둥그런 고깃덩어리가 된 궁수.
콰직-!
천묵이의 염력에 의해 공중에 떠 있던 고깃덩어리는 그대로 폭사한다.
“애초에 버리는 패였다는 건가.”
“처리 방법 참…….”
사탄도 울고 갈 정도의 처리 방식.
적어도 이 정도의 보험을 미리 깔 정도면 보통내기가 아니다.
“후우, 이것 참 면목이 없네요, 진우 씨.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충분한 보상을 치르도록 하겠습니다.”
“아뇨, 어쨌든 살았으니 괜찮습니다.”
유리 자이스의 요청으로 따라온 진우다.
결코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어떻게 보면 위험에 끌어들이게 된 셈.
누구에게나 목숨은 소중한 법.
화가 날 만한 일이었지만 애당초에 직접적인 ‘표적’이었던 그녀들이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을 턱이 없다.
“그리고 감사해요. 덕분에 목숨을 구했습니다. 보상은 꼭 받아 주세요. 이건 저만의 문제가 아닌 미국의 자존심입니다.”
“전성도. 아니, 저희 아버지도 이 일을 가만히 넘어가진 않을 거예요.”
“정 그렇다면야 뭐…… 과하지만 않게 주세요.”
무슨 일이 있어도 보상을 얹어 주겠다는 의지가 다분히 보이는 유리 자이스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마찬가지로 의지를 다져 보이는 정수아.
솔직히 상위 종 프로그맨의 혈액만 챙겨도 나쁘지 않았는데, 이거야 원.
글로벌하게 챙겨 받게 생겼다.
하긴, 그 대상이 촉망받는 인재인 미국의 보석 유리 자이스와 대기업 전성의 정수아였으니 오죽할까?
“같은 탱커로서 감명받았습니다.”
“난생처음으로 그렇게 질긴 고기 방패는 처음 봤습니다.”
“아하하…….”
그 밖에도 탱커들은 진우의 말도 안 되는 고기 방패 성능에 혀를 내두르며 칭찬하기 바빴다.
아니, 그나저나 이거 칭찬이 맞긴 한 거지?
보스몹인 프로그맨의 어그로를 끌던 탱커들이니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원.
“어쨌든 공략은 마무리했으니 돌아가도록 하죠.”
보스 레이드보다 더한 놈들이 날뛰긴 했지만, 희생 없이 마무리된 판.
‘드디어…….’
또다시 인간 포탄이 되어서 날아다니긴 했지만, 마침내 손에 넣은 대량의 질 좋은 프로그맨 혈액.
오늘따라 유난히 팜오리들이 더 보고 싶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