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after returning home RAW novel - Chapter 284
285화 말괄량이 세계수
터전이 바뀌고, 살아가는 방식이나 성격도 다 제각각인 종족들.
진우 혼자였다면 이들 중에서도 분명 농장을 떠나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한 일.
진우의 몸은 하나뿐이지만 해야 할 일은 그저 작물을 수확하는 것 외에도 신경 써야 할 것이 한두 개가 아니지 않던가?
허나.
“팜오리가 진짜 만능일세.”
팜오리라는 존재 하나로 분쟁 없이 이뤄진 관계.
여기에는 그저 힘으로 찍어 누르거나 공포를 준 것만이 아니었다.
꾸왁, 꾸와아아악!
삐삐! 삐삐삐!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차원과 종족을 가리지 않고 필요한 솔선수범.
그런 의미에서 팜오리들은 누구 하나 노는 일 없이 열심히,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해내는 워커 홀릭들이었다.
뭐, 그게 팜오리들에겐 놀이이자 즐거움이겠지만, 과정이 어찌 되었든 결과가 좋으면 다 좋은 법 아니겠는가?
[오해다. 선지자여. 팜오리가 만능인 게 아니라 그대가 이 농장의 주인이기에 팜오리들도 저만큼 성장한 것이지.]“하하, 그렇게 따지면 대지모신님 덕분인 거 아닌가요?”
[그럴 수도 있지.]“흠흠, 솔직하신데요?”
[잘난 것을 숨길 이유는 없으니까.]하여튼 우리 여신님.
겸손이랑은 거리가 안드로메다급으로 머시다니까.
물론 그렇기에 믿음직스러운 것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여하튼 이렇게 차근차근히.
느리지만 문제없이 지구의 생활에 익숙해지는 숲의 일족들.
“이번 녀석들은 제법 버티긴 했는데 시시하더구만. 어디 좀 더 상대해 볼 만한 적수는 없는 건가?”
“앗, 그럼 이번에는 이쪽으로 가 보시겠어요?”
“오호라. 재밌겠는걸? 맡겨만 달라고.”
아, 물론 단순한 농사 외에도 진우가 보유 중인 게이트의 사냥 등.
다재다능하게 써 먹히고 있는 선배님들 되시겠다.
* * *
어머니의 숲이 붕괴하고 난 이후, 어느덧 2주라는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충분히 길다고 할 수 있을 시간.
그동안 진우의 농장에는 혼자 지내던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변화의 바람이 찾아올 수밖에 없었으니.
깡- 까아앙- 깡!
“모름지기 건물은 기초 토대부터 튼튼해야 하는 법이지, 암!”
진우의 농장 내.
각자의 종족들의 특색에 맞게 건설된 건물들.
당연한 말이지만 2주 남짓의 짧은 시간 동안 이 정도로 많은 건물을 올릴 수 있었던 건 다 드워프라는 인재가 있는 덕분이었다.
물론 추가로 재료로 두둑하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을 터.
어디 그뿐만이겠는가?
[자연의 시르봉 페퍼X(전설)]* 분류 : 소모품, 재료
* 사용 조건 : 없음
* 효과 : 150분 동안 마력+25(최대 5중첩)
– 자연의 기운이 깃든 시르봉 페퍼X입니다. 감칠맛의 풍미가 극대화되어 혀에 큰 자극을 줍니다. 또한 다량 섭취하더라도 섭취자가 원할 경우 고통이 동반되지 않습니다.
※ 자연의 시르봉 페퍼X 하나만 섭취하더라도 효과를 부여받을 수 있습니다.
[자연의 상추(유니크)]* 분류 : 소모품, 재료
* 사용 조건 : 없음
* 효과 : 40분 동안 체력+20
– 물의 정령들의 마르지 않는 이슬이 맺힌 상추로, 항상 신선함을 유지합니다. 특별한 요리할 필요 없이 쌈을 싸 먹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효율을 누릴 수 있습니다.
……
숲의 일족인 드루이드들이 다양하게 존재함으로써 풍족해진 자연의 기운.
특히 그중에서도 어머니의 숲의 핵심이라 할 수 있을 세계수가 진우의 농장 중심부에서 사방으로 영양분을 뿜어낸다.
그야말로 농장이 풍요로워질 수밖에 없을 선순환.
이에 대한 반응은 시장에서 즉각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을 터.
아니나 다를까?
“진우 씨! 이거 이 샘플들 정말 사실이에요?”
“아, 직접 오실 필요는 없다고 말씀드렸는데.”
“아니, 이걸 보고 어떻게 안 와요! 모두 성능이 적어도 기본 1.5배는 뛰었는데!”
다른 건 몰라도 지구.
그중 대한민국의 참 좋은 점 중 하나인 당일 배송.
그것도 어지간히 평범한 중소기업이 아닌 대기업인 전성이 맡아 준 덕분에, 거의 수확하고 보내자마자 받아 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 성능을 보고 놀란 수아 씨가 달려오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일.
게다가 수아 씨는 혼자서 온 게 아니었으니,
“오랜만이네요.”
“유리 씨도 오신 겁니까?”
“알잖아. 그나마 자이스 가문에서는 친분이 가장 있는 편인 거. 그 덕에 한국 관련 외교는 다 책임지게 됐죠, 뭘. 아, 러브콜 관련해서는 걱정 마세요. 진우 씨 덕분에 저도 얼마 전에 미국에서 정식으로 SSS등급으로 인정받았으니까요.”
“그거 잘됐네요.”
시원한 물의 정령사.
그것도 SSS등급에 달하는 두 명의 등장.
그들에 대한 반가움은 진우뿐만이 아니다.
꾸왁! 꾸와아아악!
“아앗! 그래! 얘들아 오랜만이야!”
“벌써 이렇게 컸나?”
물 만난 오리.
그 단어가 딱 어울리는 녀석들의 행동거지.
어른 응애 할 것 없이 귀엽기 그지없는 팜오리들의 애정 공세를 싫어할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복슬복슬 부드러운 오리털에 감싸이는 것도 잠시.
정수아의 시선이 서서히 진우의 농장.
정확히는 그 중심에 있는 어머니의 세계수로 향한다.
평상시라면 잔나비들을 비롯한 드루이드들의 기가 막힌 결계 덕분에, 그저 조금 더 거대한 물푸레나무 정도로 보이는 세계수의 형태.
허나.
“그런데 농장에 뭔가 많이 추가된 것 같은데요?”
“예?”
“뭐라고 해야 할지. 기운이 좋아졌다고 해야 하나? 생명이 더 늘어난 기분인데요?”
“확실히…… 수아가 말하니까 나도 그렇게 느껴지는데?”
“…….”
명색이 진우와 물의 정령왕의 힘으로 SSS등급의 헌터로서 각성한 정수아다.
덧붙여 유리 자이스 또한 마찬가지.
솔직히 이미 대지모신의 신도이자 뒤통수 걱정할 필요 없는 확실한 아군이기에 세계수를 보여 줘도 딱히 어디 가서 떠벌리고 다닐 인물들은 아니겠으나, 문제라면 세계수에 접근할 경우 필시 다른 드루이드들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란 점이다.
이들 둘은 진우의 지인들일 뿐.
숲의 일족들에게 있어서 둘은 외지인.
조금 심하게 말하면 침입자로 보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일이다.
그래도 먼저 접근하지 않는다면 공격하지는 않겠지만 세계수에 가까이하면 얘기는 달라질 터.
물론 진우가 떡하니 눈뜨고 있는 마당에 최악의 상황으로 가게 될 가능성은 없을 테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않겠는가.
“뭐가 있는지 궁금하신 겁니까?”
“아뇨, 꼭 확인하고 싶은 건 아닌데…….”
“흠흠.”
말과는 달리 표정은 그 반대로 호기심으로 가득하다.
하긴, 어느 정도 눈치가 있다면 진우의 작물들의 효과가 강화된 것의 원인이 농장에서 느껴지는 저 풍요로운 기운일 확률이 높을 터.
다만, 헌터 사회에서의 능력과 특성은 대부분 비밀시되는 것이 국룰이다.
농부인 진우에게 있어서는 작물이 바로 거기에 속하는 일.
툭 까놓고 진우도 보여 주기 싫다고 하면 땡이었지만, 약간의 고민 끝에 진우는 생각을 정리했으니.
“좋아요. 단, 저 안에서 보게 된 것들은 절대로 비밀엄수입니다.”
“당연하죠!”
“저 입 엄청 무거운 거 모르시나요?”
어차피 같은 편.
그리고 지구 중 인간 종족에 한해서는 가장 강력한 아군인 두 여인.
그들에게 세계수.
더 나아가서는 숲의 일족들까지 전부 보여 주기로 마음을 다잡은 진우다.
* * *
진우가 이들에게 숲의 일족을 소개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사실 무척 간단하다.
‘실제로 드루이드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
엘프나 드워프는 이미 지구상에도 알려진 편에 속하지만, 숲의 일족 대부분은 표면적으로는 알려지지 않은 편에 속한다.
그도 그럴 것이 지구에 들른 적이 없으니 알려질 방법도 없을 수밖에.
당장에 잔나비인 엔코만 하더라도 모르는 이들이 태반이지 않던가?
별의별 몬스터를 마주해 본 헌터들조차 엘프나 드워프를 보면 놀라는데, 꼬리 달린 아인 형태의 너구리 일족과 여우 일족, 원숭이를 보면 기가 차고도 남을 터.
뭐, 솔직히 혼자 있을 때는 아무 상관 없었지만, 이제는 이야기가 전혀 달랐다.
하나의 부족, 마을 단위를 넘어서 차원 하나가 통째로 넘어온 꼴.
그나마 다행이라면 소수 정예가 대부분인 덕분에 진우의 농장.
그 밖에도 보유 중인 게이트만으로도 충분히 수용이 가능하다는 정도?
단, 그렇다곤 해도 앞으로 지구에서 수월하게 생활하기 위해선 진우에게만 정체를 밝혀 둘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언제까지 숨어서 지낼 수는 없으니까.’
진우가 늘 농장에 붙어 있지 않기도 하거니와, 이들이 무슨 죄를 짓고 온 것도 아니지 않은가.
하나 있다면 불법 밀입국 정도랄까.
뭐, 여하튼 아니나 다를까.
“……이, 이게 대체?”
“원래 진우 씨 농장이 이 정도로 거대했던가요?”
“일종의 환술 같은 건데 마나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서 더 알아보기 힘들었을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죠. 이건 거의 하나의 도시 수준인데요?”
“드워프 분들께서 든든하게 버텨 주신 덕분이죠.”
숲의 일족을 만나기 이전에 건축물에서부터 압도되는 둘의 모습.
그렇지만 아직 놀라는 것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뭐지, 비상식량인가?”
“킬킬킬, 이런 정신 나간 청설모 같으니라고. 아서라. 먹을 게 산더미인데 비상식량은 무슨. 그리고 모두 몇 번 본 적이 있는 녀석들이잖냐.”
“체르, 사악하게 웃지 좀 마라. 그러니까 결혼을 못 하지. 쯔쯔.”
“시끄러. 조류 성애자.”
이제는 없으면 빈자리가 아쉬울 것 같은 브락시온과 체르 콤비에 이어서 진우와 첫 만남 당시 비상식량을 언급했던 라타토스크까지.
당연한 말이지만 하나같이 인간과는 아득히 거리가 먼 생김새와 키를 지닌 아인족이었다.
여태까지 출현한 게이트에서는 본 적이 없는 부류의 종족.
아니, 딱 한 종류는 꽤 유명하긴 하다.
“고, 고블린이 황금색이야!”
“그런데 정말 고블린 맞나요? 어린아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귀여운데?”
헌터라면 누구나 한 번쯤 상대해 보았을 몬스터인 고블린.
하지만 체르는 ‘황금’고블린이다.
멀리서 보면 귀염뽀짝한 어린아이라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외모.
……물론 외모가 귀엽다고 해서 입버릇도 귀엽다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이런 고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것들이! 그리고 나를 그따위 미물 고블린들이랑 비교하면 섭섭하지. 황금 고블린은 인간과 유인원 수준의 차이라고!”
“……거 말조심 좀 하지? 듣는 유인원 기분 나쁘게 시리.”
모든 드루이드와 투닥거린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관계.
“크흠흠, 여기까지 데려온 걸 보면 굳이 모습을 숨길 필요도 없다는 거겠지.”
“뭐야, 그래도 꼴에 남자라고. 신붓감도 두 명이나 데리고 있네?”
“우리 신참 정도면 두 명도 오히려 적은 편이지.”
“…….”
이어서 라쿤 대전사 포우포포와 구미호 베리, 잔나비 우두머리인 시드.
그 밖에도 각종 식물 형태의 드루이드 등과 만남을 가지게 된 정수아와 유리 자이스는 어지간히도 놀란 모양이었다.
몬스터 가운데 대화가 가능할 정도의 문명을 갖춘 이들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어도, 이 정도로 많은 종족을 만나 본 것은 이들도 헌터 평생 처음일 터.
허나 아직 놀라기에는 이를 수밖에 없는 것이, 가장 맛있는 반찬은 마지막에 먹는 법이라고.
가장 마지막으로 마주할 존재는 경우가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었으니,
“이게 바깥에서 봤던 그 물푸레나무라고요?”
“살면서 이렇게 거대하고 아름다운 나무는 처음 봐요.”
어머니의 숲의 장관이라 할 수 있을 세계수.
진우도 처음 봤을 때 그 장대한 광경에 넋을 잃은 바 있으니, 다른 이들은 오죽하겠는가.
물론 지금의 세계수는 아직 그때에 비하면 ‘덜 성장’한 상태라는 게 더욱 놀라울 따름이지만.
“그러면…….”
그렇게 드루이드와 세계수 투어를 성공적으로 끝마친 후 둘에게 이것이 한국.
나아가서는 지구상에 알려지면 어떠할지 의견을 물어보려던 찰나였다.
[인근에 드루이드의 자격을 부여받을 수 있는 생명체가 존재합니다.] [어머니의 가호 속에 정수아와 유리 자이스가 드루이드의 자격을 얻었습니다.]“……예?”
“이게 거절할 수 있는 게 없던데요?”
“…….”
[나도 저 친구는 쉽게 못 말린다고 말했잖느냐.]자격을 부여한다면서 NO 없는 YES / YES의 강제 드루이드 부여라니.
이건 완전히 여신님보다 더한 말괄량이 나무이지 않은가.
이걸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른단 생각도 잠시.
다른 것은 몰라도 이거 하나는 알 것 같다.
[어머니의 세계수의 성장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뭐요?”
우득- 뿌드드드득-
익숙하면서도 살벌한.
뿌리의 움직임.
이어서 눈으로도 체감이 느껴질 정도로 점차 거대해지기 시작하는 세계수의 모습이 진우의 눈앞에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