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102)
102 장수를 잡으려면 말을 쏘라
“아버지, 몸은 좀 어떠세요?”
“….”
에블린의 말에 아버지가 눈을 부릅떴다.
모처럼 깨어있는 시간인데 마음이 불편한 모양이다.
눈빛이 험악하다.
‘그것도 당연한가.’
에블린은 아버지 침대 옆에 앉았다.
“내가 할 테니 너희들은 물러가라.”
아버지가 쓰러진 뒤 식사부터 대소변까지 모든 걸 맡고 있는 시종이 멈칫한다.
아버지와 에블린의 사이가 안 좋은 걸 걱정했을 것이다.
시종은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아버지를 보았지만 아무 말 없이 방을 나갔다.
그를 따라 방구석에 있던 시종과 시녀도 밖으로 따라 나간다.
지금까지는 아버지가 당주였지만 앞으로는 에블린과 남편이 이 가문의 주인이다.
그녀의 말을 거역할 사람은 이제 없다.
에블린은 아버지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방긋 웃었다.
“기분이 나쁘신가 봐요, 아버지. 하지만 조금 참아주세요. 돌아가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마지막 효도라도 좀 하려고요.”
“….”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본다.
눈에 핏발이 서 있었다.
남편의 말에 따르면 정신은 또렷해도 몸은 더 이상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이제 눈을 뜨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닐 텐데.
“그만큼 제가 미우세요?”
에블린은 작은 소리로 웃었다.
아버지도 이제 눈치챘을 것이다.
당신이 이렇게 된 원인이 뭔지.
진실을 알았다면 미운 것도 당연하겠지.
아버지가 자리에 누운 지 이십여일 남짓.
처음에는 다리에 기운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점차 허리에서 힘이 빠지고 조금씩만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의사를 불러도 원인은 알 수 없다고 한다.
앉은 자세에서 일어날 수 없게 된 뒤 팔조차 움직이지 못하게 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금은 입을 달싹이는 것도 어렵다.
하루의 반 이상은 잠자듯 눈을 감고, 어쩌다 일어나면 뭔가 말하고 싶은 듯 눈을 이리저리 돌리며 사람을 찾았다.
하지만 이미 혀가 굳어 말하지 못한다.
식사도 거의 할 수 없어, 지금은 꿀을 옅게 탄 물을 입가에 조금씩 흘려 먹이는 게 다다.
아버지의 몸은 며칠 사이, 굶어 죽은 시체처럼 바싹 말라 있었다.
“… 으… 으….”
아버지 입에서 가느다란 신음 소리가 흘렀다.
“아버지, 지금에 와서 하는 말이지만 당신이 틀렸어요. 뭐든 언니가 고집부리면 다 들어주는 아버지가 잘못한 거예요. 나라면 그분과 좋은 관계를 맺었을 텐데.”
“… 으….”
“하지만 언니는 너무 성격이 강하지요. 여왕처럼 떠받들어주는 남자면 몰라도 오히려 자기가 고개 숙여야 할 공작가 후계자와는 맞지 않아요. 언니의 억지가 통하는 건 우리 가문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는데, 정말 바보 같은 선택이었어요.”
발테르 공작가의 클라우스 님과 혼인하는 건 원래 에블린이었다.
한데 클라우스 님을 본 언니가 그걸 가로챈 것이다.
사랑에 빠졌다며 울부짖고 며칠이나 식사를 거부했다.
클라우스 님이 아니면 죽어버리겠다고.
‘언제나 그렇지.’
언니는 항상 에블린 것을 탐냈다.
자기는 훨씬 좋은 걸 가지고 있으면서 그보다 한 단계 아래 것만 소유하는 에블린의 것이 갖고 싶다.
마도구사로 유명한 다뷔토 가문에는 아들 없이 딸만 둘이다.
언니와 에블린.
이 나라에서 아들이 없는 경우에는 딸이 데릴사위를 받아 당주를 잇는다.
작위는 언니의 남편 되는 사람이 이어가기로 되어 있었다.
맏이인 것도 있지만, 언니는 어릴 때부터 천재 마도구사로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에블린이 봐도 언니는 천재였다.
성격은 격렬하고 집착이 많아 세간에서 볼 때 좋다고 할 수 없지만, 마도구사에는 원래 그런 사람이 많다.
오히려 그런 점이 천재의 증거로 받아들여져 가문 안에서는 그녀가 후계를 잇는데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또 다른 천재로 불리는 다닐의 약혼자로 에블린이 뽑혔다.
다닐을 다른 가문에 빼앗기기 전에, 어릴 적부터 두각을 펼치는 그를 잡기 위해서만.
언니에게는 더 좋은 가문, 더 좋은 남자를 골라줄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것으로 좋았다.
에블린은 어릴 때부터 집에 출입하는 다닐을 매우 좋아했으므로.
하지만 에블린의 약혼자로 정해지자마자, 언니는 관심도 없던 다닐을 탐냈다.
원래 온화하던 에블린과 다닐 사이에 금이 간 것은 금방이었다.
에블린도 떨어지는 외모는 아니지만 언니는 그보다 몇 배는 더 아름다웠다.
그런 언니가, 심지어 당주 자리를 줄 수 있는 언니가 유혹하자 다닐은 순식간에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 뒤는 순식간이었다.
천재라 불리는 두 사람이 파트너가 되면 반드시 전례 없는 발전을 하게 될 거라고 아버지를 설득했다.
그렇게 해서 약혼자를 빼앗아 가더니, 그 뒤에 발테르 공작가와 에블린의 시집이 정해지자 다시 마음이 변했다.
남이 들으면 웃을 것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느냐고.
하지만 귀족이라는 의식이 얇은 마도구사 가문에서는 가능하다.
뛰어난 마도구와 그걸 만드는 재능이야말로 이 세상 최고의 가치라고 믿는 다뷔토 가문에서는 재능이 곧 법이었다.
언니가 원하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다.
하다못해 약혼이 공식적인 거였다면 달랐을 것이다.
발테르 공작가에 이미 약혼된 딸을 내미는 일은 아무리 아버지라도 못했을 테니까.
그러나 다닐과의 약혼은 계약서 없이, 가문 내에서 입으로만 약속된 것이었다.
다닐과 에블린의 약혼도 그랬다.
가문안에서의 입 약속이었다.
다뷔토는 마도구사의 연구 기질이 강해 귀족 사회에서는 폐쇄적인 편에 속한다.
아버지도 입단속을 했기 때문에 다른 가문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동생의 약혼자를 가로채는 게 부끄러운 일이라는 건 언니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에블린 앞에서는 일부러 다닐과의 다정함을 과시했어도 다른 곳에서는 얌전히 행동했다.
약혼자가 바뀌었다는 사실은 감춰졌다.
에블린은 시체처럼 움직이지 못하는 아버지 귓가에 속삭였다.
“아버지, 행복하시겠어요. 살아있는 인간을 인형처럼 만드는 이 과정은 언니가 개발한 마도구에서 비롯된 거죠. 언니의 재능을 이런 식으로 몸소 느끼게 된다니, 아버지는 얼마나 뿌듯하실까. 우둔한 저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하겠어요.”
언니가 무엇을 바라고 이런 마도구를 만들었는지, 이제 와서는 추측할 뿐이다.
하지만 틀림없이 그 아름다운 남편 클라우스 님을 바랐기 때문일 것이다.
뭐든 자기 뜻대로 되던 우리 가문과 발테르 공작가는 다르다.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아름다운 나비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면 아마 움직이지 못하는 인형으로 만드는 것 외에 방법이 없었겠지.
언니라면 생각할 법한 일이다.
에블린은 꿀물을 아버지 입가에 흘리면서 웃었다.
“언니가 내게서 빼앗아 간 건 모두 되찾아야겠어요.”
그토록 사랑받고 싶었던 아버지의 관심과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다정한 약혼자, 그리고 원래 자신의 것이 되었어야 할 아름다운 남편.
껍데기뿐이라도 상관없다.
언니에게 빼앗긴 걸 되찾는다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니까.
“으… 으….”
아버지의 원통한 신음 소리를 들으며 에블린은 미소 지었다.
*
혼인식이 끝난 뒤 나와 타티아나는 거주지를 옮겼다.
아버지가 살던 구역과 가장 가까운 곳이라고 들었다.
나와 타티아나의 방이 나란히 붙어 있고, 그 가운데에 드나들 수 있는 문이 있었다.
일명 부부의 방이다.
방이라고는 해도 실제로는 굉장히 넓다.
테니스도 너끈히 칠 수 있을 만큼 큰 거실에 서재, 접대실 등의 방과 드레스룸, 욕실이 붙어 있었다.
그 넓은 실내를 장식한 물건 대부분이 새로운 것 같다.
벽 곳곳에 걸린 그림과 커튼, 융단과 장식장.
내 키에 맞춘 듯 물건의 위치가 모두 높다.
침대와 의자도 보통보다 두 배는 컸다.
이렇게 크고 높은 물건은 시중에서 보기 어렵다.
적어도 나는 본 적 없었다.
나한테 맞춰 새로 주문한 물건인 것 같다.
드레스룸에는 언제 만든 건지 내 몸에 딱 맞는 옷과 신발이 가득하고, 한쪽 벽에는 다양하게 생긴 모자가 그득했다.
옷이나 신발은 몰라도, 모자 따위가 이렇게 많이는 필요 없을 것이다.
이 얼굴, 이 몸에 어울리지도 않을 테고.
어쨌든 이 세계에서는 옷 만드는 데 가봉만 몇 달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이 정도 양을 단시간에 만들려면 장난 아니게 돈을 쌓았어야 했을 거다.
‘공작가는 엄청난 부자구나.’
이 방을 보니 그런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내 눈을 휘둥그레 만든 건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방 하나가 욕실로 꾸며져 있었다.
방에 욕조가 있어.
원래라면 이렇게 커다란 통은 없을 텐데 아무래도 주문품인 것 같다.
이 정도 크기면 부부가 함께 들어가도 넉넉할 거다.
전생 현대인이었던 나로서는 이게 가장 기쁘다.
지금도 공작가에 온 뒤로는 매일 목욕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혼자 들어가는 욕조였다.
하지만 이제 아내와 함께도 가능해졌어.
내가 욕실을 보며 감동하는데, 혼인식 직후부터 나를 담당하게 된 집사가 빙그레 웃었다.
그는 집사장이 없을 때 이곳 영지의 저택 일을 총괄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집사장은 혼인식이 끝나면서 할아버지와 함께 왕도로 떠났다.
원래 할아버지와 함께 움직이는데 이번에는 나 때문에 잠시 이쪽에 머물렀던 모양이다.
집사가 내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엔데스에 계실 때부터 몸가짐에 신경을 쓰셨다는 보고가 있어 가장 먼저 준비했습니다. 마음에 드신다면 저희의 기쁨이 됩니다.”
“정말 마음에 드네. 이렇게 큰 욕조는 본 적이 없어. 앞으로 매일이 즐겁겠군.”
집사가 기쁜 듯 눈을 가늘게 뜨며 웃는다.
“특주품입니다. 공작가 물건을 담당하는 상사에 연락해 가장 솜씨 좋은 장인에게 만들게 했습니다.”
특주품이라고 하면 아마 만드는 시간도 오래 걸렸을 것이다.
잘은 몰라도 내가 이곳에 도착하기 훨씬 전부터 만들지 않았을까.
‘할아버지.’
처음부터 나를 공작가로 데려올 생각이었구나.
나를 놓칠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었을 것이다.
짐작은 했지만 이렇게 물건으로 들이대면 새삼 실감이 된다.
어쩌면 처음 만나기 전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준비했을지도 모르겠다.
자기 방을 확인하기 위해 서로 떨어졌던 타티아나가 중간문을 활짝 열고 뛰어 들어왔다.
“라파 씨! 온실이 있어요. 안에는 온갖 약초가 자라고… 맙소사, 이렇게 꿈같은 곳이 있다니!”
굉장히 흥분한 모양이다.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만드라고라를 기를 수 있겠어요. 그건 섬세한 거라서 양육하기가 매우 까다로운데. 이곳이라면 가능할 것 같아요.”
아, 역시 그거 기르는 거구나.
왠지 소중하게 흙을 묻혀서 가지고 오더라니.
타티아나는 그렇게 말한 뒤 다시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타닥타닥 바쁘게 돌아다니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하지만 온실에 꽃도 아니고 약초가 있다니, 귀족의 건물치고는 조금 이상하다.
‘어… 혹시.’
나는 무심코 집사를 쳐다보았다.
“부인께서 식물 기르는 걸 좋아하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도련님의 처소는 몇 군데 후보가 있었지만, 공작님꼐서 특별히 온실 있는 방을 지정하셨습니다.”
타티아나가 마녀라는 건 할아버지도 알고 있다.
정확하게 말로 한 건 아니지만 사라문즈 공국 출신이라든가 그런 걸 조사할 정도면 당연히 알고 있겠지.
이 집사는 어떤지 몰라도 집사장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온실에 약초를 준비한 건가.’
마녀가 약초를 좋아 기른다는 건 이 세상의 상식인 것 같으니까.
약초가 하루 이틀에 자라는 건 아닐 테니 타티아나 일을 알게 된 뒤 급하게 준비했을 것이다.
“….”
이건 그거다.
장수를 잡으려면 말을 쏘라는.
‘온실이 있으면 타티아나도 이곳을 떠나기가 굉장히 어려울 테니까.’
안 그래도 말린 약초를 소중히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그녀다.
이곳이 머지않아 타티아나의 보물 기지가 될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
할아버지는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꽤 능구렁이인 것 같다.
이중 삼중으로 그물을 치는 걸 보면, 한 번 눈독 들인 건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집념이 보여.
중간문으로 들어가자, 타티아나가 막 나한테 달려오던 참이었다.
긴 드레스 앞자락을 잡고 펄쩍펄쩍 뛴다.
“기대하세요, 라파 씨. 만드라고라는 마법사에게 특히 잘 드는 약초거든요. 나는 정말 유용한 사람이 될 거예요.”
반짝거리는 눈으로 웃는 타티아나가 왠지 아이 같아서, 나도 모르게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는 이미 나한테 유용한 사람이야. 더 노력하지 않아도 지금으로 충분해.”
“그래도요.”
후후 웃는 타티아나 뒤쪽으로 만드라고라가 느리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쁘아아아아, 쁘아아, 이상한 비명을 지르면서.
그 뒤를 렐라가 쫓는다.
노는 건지, 괴롭히는 건지 모르겠다.
만드라고라가 뛸 때마다 가느다란 뿌리가 흔들려 거실 바닥에 흙이 떨어졌다.
잘 보면 두 녀석이 왔다 갔다 한 자리를 따라 부슬부슬 흙이 떨어져 있다.
“그런데 저거, 계속 저렇게 돌아다니는 거야? 청소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아.”
타티아나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만드라고라는 저렇게 운동을 좀 해야 약 효과가 뛰어나거든요. 땅이나 화분에 집을 마련해두고 가끔씩 뛰게 해줘야 해요.”
이봐, 만드라고라는 식물이지?
머리에 잎이 있으면 식물일 것 같은데 어쩐지 그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