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110)
110 이세계의 잭과 콩나무
폭폭폭, 소리 내며 작은 씨앗이 흙 위로 쏟아진다.
“이상해. 알 수가 없단 말이야.”
마녀가 약물이나 특정 씨앗의 효과를 검증할 때는 약재나 식충 식물을 사용한다.
상처를 치료하거나 공격력이 증가하는 등의 효과에 따라 반응하는 약재가 다르다.
뛰어난 마녀일수록 그 판별을 잘하고, 능력이 모자라면 약재의 반응을 보고도 제대로 된 판단이 어렵다.
약재에 반응한다고 해도 그것은 매우 적은 차이밖에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 말하는 것은 좀 부끄럽지만 타티아나는 그쪽으로 상당히 재능 있는 마녀다.
다른 건 몰라도 약 만드는 문제에 관해서는 네가 나보다 낫다고, 스승님에게도 입이 닳도록 칭찬받았다.
스승님은 굉장히 솔직한 사람으로, 못하면 못한다, 잘하면 잘한다고 대놓고 말한다.
스승님이 잘한다고 극찬하면 그것은 정말 마녀로서 굉장히 잘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여러 약재로 실험해도 반응이 없었다.
만드라고라의 씨앗은 약도, 독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
‘만드라고라한테 나온 거니까 분명 어딘가에 효과 있는 건 분명한데.’
약재로도 잘 모르겠으면 그 뒤에 사용하는 것이 식충 식물이다.
식충 식물은 약재보다 조금 더 세밀하고 정확한 판단이 가능하다.
하지만 식충 식물은 본래 곤충을 먹는 것이라 재료를 준비하는 것이 상당히 까다로웠다.
실험까지 가는 과정이 길다.
당연히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시간도 제법 걸렸다.
식충 식물이 곤충을 소화한 뒤 그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스승님이 여러 곤충으로 실험해 본 결과, 가장 많은 종류의 재료에 잘 반응하는 것이 개미였다고 한다.
그래서 숲속의 집에는 실험할 때 사용하는 개미 상자가 여러 개 있었다.
상자에 종류가 다른 여왕개미를 넣고 개미 집단을 기르는 것이다.
가장 빠른 시간 안에 곤충으로 실험이 가능한 스승님만의 비법이었다.
다른 마녀들은 개미집 만드는 법을 모른다고 한다.
이 세상에서 실험 개미집을 가진 마녀는 오직 스승님과 타티아나 둘뿐이라며, 음흉한 소리로 웃곤 하셨다.
마녀는 히히히 웃는 거라며 곧잘 이상한 흉내를 내던 스승님의 얼굴이 둥실 떠오른다.
‘스승님, 이럴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아무 반응도 없어요.’
마음은 절실한데, 왠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진지하게 연구하던 때의 모습이 아니다.
개미집을 떠올리면서 스승님이 이상게 웃던 모습을 생각했기 때문이려나.
쓸데없는 일만 떠올랐다.
‘그러고 보면 우리 스승님은 좀 이상했어.’
스승님은 가끔 까맣게 물들인 천으로 옷을 짓곤 했다.
왜인지 모르지만 위가 뾰족한 삼각형의 모자도 만들었다.
마녀의 정장이라며 스승님은 가끔 그걸 입고, 타티아나의 키가 커질 때마다 아이용으로 여러 번 다시 만들었다.
물론 보통 때는 평범한 옷을 입는다.
마녀라고 해서 다른 사람과 다른 옷을 입는 건 아니니까.
까만 옷과 모자는 어쩌다 한 번 정도, 잘은 모르지만 스승님이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고 말할 때만 몸에 걸쳤다.
그때마다 사치스럽게 장작을 모아 태우며 마녀 집회라는 걸 했다.
참석자는 스승님과 타티아나, 뮤엘, 그리고 몇 마리의 고양이와 가끔 놀러 오는 얌전한 마수.
가장 아끼는 개미집도 매년 지참했다.
타티아나의 가슴에 그리움이 스몄다.
‘… 우리 여왕들은 잘살고 있을까.’
비록 필요에 의해 길렀고 개미 입장에서 보면 타티아나는 적보다 더한 원수일지 모르지만, 타티아나한테 여왕개미는 어린 시절부터의 친구다.
개미집과 함께 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녀는 여왕개미에게 애정을 갖고 있었다.
물론 여왕개미와의 애정과 우정은 어디까지나 타티아나의 일방통행이지만.
아니,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만드라고라의 씨를 실험하는데 좋은 방법이 없는지 기억을 더듬기 시작한 것인데 왜 이런 쓸데없는 걸 생각하고 있는 거야.
타티아나는 끙 소리를 내며 씨앗을 노려보았다.
스승님과 살던 숲이라면 실험에 사용할 곤충을 구하는 건 쉬운 일이다.
원래 그런 장소를 택해 스승님이 살기 시작했으니까 당연하다.
하지만 이 화려한 저택과 주변에서는 아무래도 곤충을 구하기가 어렵다.
겨울이라 곤충 자체가 잘 보이지 않고, 실험에 잘 맞을 것 같은 녀석들을 찾는다면 난이도는 더 오른다.
공작가의 누군가에게 말하면 도와줄지 모르지만, 벌레를 잡아달라고 부탁하기는 좀 그렇고.
정 곤충을 구하기 어려우면 소형 마수를 사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런 곳에는 드물 것이다.
무엇보다 식충식물이 없었다.
‘어쩌지.’
세 번째 방법은 조금 무식하지만 씨앗을 직접 흙에 심어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예전에 스승님도 한 번 그랬다가 독이 집안 가득 퍼져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씨앗이 아니라 저주에 사용된 물건이었지만.
그때 스승님과 함께 둘이 손을 맞잡고 맹세했던 것이다.
앞으로는 절대로 실험 없이 땅에 심지 않는다고.
‘음… 하지만 여기에서는 벌레를 구할 수도 없고 약재에는 반응 안 하고, 정말 방법이 없는데. 어쩌지.’
흙에 쏟아진 몇 개의 씨앗을 보자 갈등이 생긴다.
그냥 심어봐?
고민하느라 끙끙거리는데, 갑자기 사방이 어두워졌다.
“뭔가 잘 안돼? 왜 그렇게 끙끙거려?”
라파가 몸을 숙여 그녀를 보고 있었다.
“만드라고라 씨앗이 어떤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요. 보통은 뭐라도 나오는데 아무리 실험해 봐도 반응하지 않아요.”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진다.
라파가 히죽 웃었다.
얼굴 무섭다.
“그러면 그냥 놔두지 그래?”
“… 어.”
“지금 당장 필요한 것도 아니고, 나중에 천천히 하면 되잖아.”
타티아나는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안 돼요. 마녀 도로테의 이름이 운다구요!”
스승님한테 네가 더 낫다고 인정받은 얼마 안 되는 일 중 하나다.
특히 마녀는 약의 전문가.
귀족과 달리 돈 없는 평민의 병을 치료하는 건 마녀 외에 거의 없다.
보통 사람의 생명이 마녀에게 달려 있는 거다.
마녀의 생계를 유지하는 데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이기도 하고, 약을 만드는 능력에는 마녀의 자부심이 달려 있었다.
스승님 역시 약의 개발과 효능 상승에 대해서는 특히 열의를 가지고 연구했다.
타티아나한테도 약이 마녀한테 얼마나 중요한지 누누이 설명하셨다.
약만 제대로 만들 수 있어도 굶어 죽지는 않는 거야!
타티아나가 주먹을 위로 쳐들며 말하자 라파가 큰 소리로 웃었다.
얼굴 무섭다.
타티아나는 라파한테 이끌려 웃을 것 같은 표정을 다잡았다.
웃을 타이밍이 아니다.
지금 그녀의 손에는 스승님과 타티아나 자신의 명예가 달려 있으니까.
“뭐, 천천히 해. 만드라고라 씨앗에 발이 달려 도망치는 것도 아니고.”
“그건 그렇죠.”
만드라고라는 뿌리에서 씨앗을 뱉어낸 뒤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안 그렇게 보여도 만드라고라는 세심한 생물이다.
뭔가를 흡수했으니 변화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평소처럼 렐라에게 쫓겨 뛰어다닐 뿐이다.
흐느적거리며 뿌리로 움직이는 게 더 능숙해졌다는 게 변화라면 변화려나.
하지만 만드라고라에게 요령이 생긴 만큼 렐라도 쫓는 능력도 부쩍 늘었다.
그래서 둘의 관계는 여전히 똑같이.
“아!”
가느다란 실뿌리가 꼼질거리며 허공을 잡으려다 파르르 떨렸다.
렐라가 바닥에 흩어진 뿌리를 발톱으로 잡은 모양이다.
철푸덕 엎어진다.
렐라가 만드라고라 위에 올라탄 채 빙그르르 돌며 삐삐 울었다.
승리의 외침과 춤사위가 요즘 들어 더 요란해진 것 같다.
날개를 흔드는 모습에 윤이 걸렸다고 해야 하나.
가만 보고 있으니 만드라고라가 반격을 시도하고 있었다.
뿌리로 렐라의 발을 감아 잡는다.
“많이 자랐네. 이제 반격도 하고.”
라파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자 왠지 가슴이 울컥한다.
처음에는 울면서 도망칠 뿐이었는데 어느새 반격할 정도로 성장하다니.
“내 양육방식이 제대로 잘 가고 있는 증거죠.”
그렇게 말하자 라파가 웃는다.
어디까지나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뭐가 그리 우스운 걸까.
누누이 말하지만 만드라고라는 기르기 어려운 생물이다.
잘못하면 제대로 크지 못하고 죽어버리고, 삐뚤어져서 손도 대지 못할 망나니가 되기도 한다고 들었다.
“정말 기르기 어렵거든요, 저 애들은.”
물론 들어서 아는 것뿐이지만, 저렇게 잘 자라는 만드라고라는 정말 드물다.
투닥투닥 대화하는 사이 한창 뛰어놀던 렐라와 만드라고라가 벌렁벌렁 누웠다.
이제 힘든 모양이다.
만드라고라는 순식간에 잠이 들어 숨 쉴 때마다 잔뿌리가 푸르르 푸르르 떨렸다.
렐라도 눈이 반쯤 감겼다.
타티아나가 둘을 안아 전용 침대에 눕히자 라파가 가까이 와 들여다보았다.
“뭐, 인형 침대네. 이런 건 또 언제 생긴 거야?”
“후후. 예쁘죠? 오늘 집사한테 받았어요. 나도 깜짝 놀랐어요. 렐라 때문에 주문해뒀던 거래요.”
집사가 인형의 집을 만드는 공방에 주문해둔 거라고 한다.
사람 침대와 똑같이 생겼다.
사각 귀퉁이에는 길게 기둥이 나 있고, 거기에서는 예쁜 레이스가 길게 늘어져 아름답다.
안에 들어간 매트리스도 폭신하고 덮는 이불까지 우리 거랑 똑같은 천에 같은 모양이었다.
“이거랑 세트인 옷장과 놀이방도 있어요.”
타티아나가 손을 잡아끌자 라파는 하는 대로 끌려왔다.
침대는 편의상 거실 쪽에 두었지만, 나머지 가구는 거실과 연결된 다른 방에 두었다.
렐라와 불사조, 만드라고라의 공간이다.
“헤에… 원래 여기는 응접실이었을 텐데, 언제 바꾼 거지?”
“놀랐죠? 나도 방에는 잘 안 들어가서 전혀 몰랐지 뭐예요.”
방의 한쪽에는 전형적인 새둥지도 있다.
이미 성장한 불사조에게는 인간 세상의 가구가 마음에 들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고 들었다.
그래서 새를 잘 아는 사람한테 진짜 새가 둥지 만드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만들게 했다고.
불사조는 관심 있는 듯 둥지 근처를 맴돌았지만 들어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근처에서 서성이는 걸 보면 머지않아 들어가 주지 않을까.
타티아나가 기쁘게 그런 일들을 얘기하자 라파는 조용히 들으며 웃었다.
기쁘다.
이렇게 사소한 일상이 너무 기뻐서, 타티아나는 하지 않아도 될 소소한 이야기들을 다시 꺼냈다.
그리고 둘이 거실로 나갔을 때였다.
먼저 거실에 발을 디뎠던 라파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타티아나, 아까도 저런 게 있었나?
“네?”
라파의 커다란 등에서 고개를 조금 옆으로 내밀어 보자, 씨앗을 떨어뜨렸던 화분에서 거대한 나무가 자라 있었다.
“엇! 저게 뭐야!”
*
‘잭과 콩나무’는 지어낸 얘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빈 화분이었다는데, 잠시 눈 뗀 사이에 나무만큼 두꺼운 줄기가 나와 천장 위까지 치솟아 있었다.
힘이 조금만 좋았다면 천장을 뚫었을지도 모른다.
줄기는 천장에 닿아 옆으로 꺾어져 쭉쭉 길어지고 있었다.
자라고 있어. 아직도.
‘진짜냐.’
타티아나가 심은 줄 알았는데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면 아니었던 것 같다.
“맙소사! 도, 독가스! 라파 씨! 빨리 나가요. 아니 우선 창문부터 열어야 해. 아! 렐라! 만드라고라!”
타티아나가 당황해서 이리 뛰었다 저리 뛰었다 난리다.
하지만 독가스는 또 뭐야.
이 세계에서는 나무에서 독가스가 나오는 건가.
어쨌든 이대로 계속 자라면 방이 온통 줄기로 가득 찰지도 모르겠다.
타티아나가 렐라와 만드라고라를 안아 올리는 걸 보고 나는 우선 그녀를 방 밖으로 내보냈다.
“독! 독이 나올지 몰라요. 숨 쉬면 안 돼요.”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을까.
자꾸만 독가스라고 외친다.
하지만 아무래도 독처럼 위험한 건 아닐 것 같다.
방에 있던 불사조가 쑥쑥 자라는 줄기를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적대시하는 모습은 없었다.
무엇보다 내 속에 자리한 직감이 속삭인다.
이건 독가스 같은 게 아니다.
‘이건.’
속으로 중얼거리는 순간, 줄기가 한꺼번에 부풀어 오르더니 팡 터졌다.
줄기 전체가 팡팡팡 이다
그 안에서 튀어나온 뭔가가 작은 회오리처럼 방 안 가득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보이지는 않지만 초소형 잠자리 같은 느낌이다.
‘아, 역시.’
내 어깨가 축 처졌다.
이거 정령이다.
다만 내가 원래 가지고 있는 정령이나 정령의 갑옷과는 왠지 다른 종류인 것 같다.
조금 찌릿찌릿하다고 해야 하나.
가끔 정전기 같은 것이 허공에서 반짝 튀었다.
줄기가 터지는 소리에 놀랐는지 타티아나가 방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라파 씨! 괜찮….”
큰 소리로 나를 부르던 타티아나가 멈칫 했다.
방안은 진득한 나무 진액과 잔해로 지저분하고, 허공에는 찌릿거리는 뭔가가 날아다니니 깜짝 놀랐겠지.
“… 이건… 뭘까요?”
타티아나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뭘까.”
정령은 정령인데 어떤 정령인지 모르겠다.
‘적어도 정령의 갑옷처럼 뭐든지 베어버리는 놈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하아.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이 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