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112)
112 끝났다
구우우우.
어디에선가 짐승 울음소리가 울린다.
곧바로 행렬이 멈추고 병사들이 재빨리 창칼을 사방에 겨누었다.
마법사 역시 마찬가지다.
언제든 공격할 준비를 한 채 사방을 경계하고 있었다.
로빈도 행렬 한가운데서 칼을 들었지만 공격받았을 때 잘 싸울 자신은 전혀 없었다.
다리가 조금 떨리는 걸 깨닫고, 로빈은 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꿀꺽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조용한 숲을 지나 저 멀리에까지 퍼지는 것 같다.
몸에 힘을 너무 주었더니 뱃가죽이 아프다.
영원처럼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아무도 소리 내지 않았다.
소리 낼 수 없다.
이 숲에서 인간은 가장 약한 존재, 먹잇감이다.
아주 잠깐 눈을 떼면 가장자리를 걷던 동료가 어느새 사라진다.
벌써 세 번이나 그런 일이 있었다.
때로 이 숲의 마수가 오히려 우리 인간보다 더 교활하고 똑똑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조차 든다.
짐승 울음소리는 잠시 근처에서 울리다 멀어져 갔다.
후우우.
안심한 듯 누군가의 작은 숨소리가 울렸다.
로빈은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무서웠다.
하지만 오래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해가 지기 전까지 조금이라도 더 길을 진행해야 한다.
마의숲은 웬만한 나라 하나만큼이나 크고, 헬가와 클라우스님이 어디에 사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행렬의 책임자가 로빈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괜찮습니까?”
“네… 네….”
무서워서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을 뿐이다.
로빈은 여러 번 고개를 끄덕인 뒤 허리에 힘을 주었다.
클라우스 님을 찾기 위해서는 계속 가야 한다.
우리가 헬가를 찾아낼 확률은 거의 없다.
전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헬가가 우리를 찾아줘야 한다.
그녀가 우리를 발견해 항복한다는 깃발을 봐줄 때까지, 걷고 또 걸어야 해.
책임자가 로빈의 팔을 잡아 일으켰다.
“감사합니다.”
로빈이 고개를 숙이자 책임자가 숲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곤란한 일이 생겼습니다.”
“….”
로빈이 바라보자, 책임자는 주변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는 길을 잃은 것 같습니다. 며칠 전부터 같은 곳을 맴돌고 있어요.”
“… 그, 그게 정말입니까?”
책임자가 침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이틀 전 나무에 표식을 해두었는데 방금 그 표식을 발견했습니다. 아직 몇 명밖에 모르는 일입니다. 로빈 님도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말아주십시오.”
“… 그… 네….”
로빈이 대답하자 책임자는 다시 행렬의 앞쪽으로 가버렸다.
병사들이 서서히 움직인다.
로빈은 주변 사람이 가는 대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지금 자기가 걷는 건지 서 있는 건지조차 잘 모를 만큼 마음이 혼란스럽다.
‘길을 잃어버리다니…. 주인님, 저는 어쩌면 좋습니까.’
설마 이대로 숲을 헤매다 해골이 되는 건가.
클라우스 님을 만나지도 못한 채 이곳에서 홀로 죽어버리면.
로빈은 자신이 옷 입은 해골로 숲 바닥에 앉아있는 모습을 상상하고 흠칫 몸을 떨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헬가! 제발 나를 찾아 줘.’
로빈은 하늘 높이 자란 나무를 올려다보며 그 너머에 숨은 해를 향해 속으로 울부짖었다.
나를 찾아, 헬가!
*
숲의 하루는 단순하다.
해가 뜨는 것과 동시에 일어나 해가 지면 집에 틀어박혀 잠잘 뿐이다.
그 단조로운 생활이 혹여 남편한테 지루하게 느껴질까 두려워, 헬가는 오늘도 클라우스가 즐거워할 만한 일을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얼마 전에는 작은 토끼를 잡아 왔다.
보통 토끼는 어두운색에 얼굴도 귀엽지 않지만, 그녀가 숲의 연못가에서 찾아낸 이 토끼는 작고 하얗다.
귀도 길쭉하면서 끝이 약간 동그스름한 것이 굉장히 귀여웠다.
라파가 집을 떠난 뒤 남편은 조금 적적해 보였으니 딱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좋아했지.’
하지만 토끼 쳐다보는 것도 하루에 몇 시간이면 질린다.
그 외의 소일거리가 필요하다.
숲에 들어오기 전에 미리 준비한 종이나 물감도 이제 거의 써서 몇 개 남지 않았다.
하다못해 목탄이라도 만들까 싶어 오늘은 괜찮은 나무를 찾는 중이다.
하지만 뭔가가 더 필요하다.
남편을 이곳에 묶어둘, 뭔가 귀족 남성이 즐거워할 만한 게 없을까.
클라우스가 사냥을 좋아하면 즐길 거리는 얼마든지 있지만, 불행히도 그는 그런 데에 흥미가 별로 없다.
어쨌든 서두르자.
남편 혼자 오래 남겨둬서는 안 된다.
바쁘게 걷던 헬가의 눈에 나무가 한 그루 들어왔다.
‘저 정도면 괜찮겠어.’
굵고 탄탄하다.
얇은 가지는 목탄으로 만들고 나머지로는 장작과 의자 같은 걸 만들면 된다.
요즘 들어 남편은 목공에 흥미를 가지고 있으니 거기에 사용하기에도 좋다.
숲에서는 물건이 필요하면 스스로 만들어 써야 한다.
그때를 대비해 갖춰 둔 도구를 이용해 클라우스가 목각 인형을 만들기 시작한 건 라파가 떠난 직후였다.
역시 말은 하지 않아도 외로운 거다.
그런 남편을 위해서 뭔가 즐거운 일을 찾아내지 않으면.
‘서둘러야 해.’
안 그러면 남편의 마음이 화려한 왕도와 도시로 향하게 될 거다.
나무를 도끼로 치면서도 헬가의 머릿속은 내내 클라우스가 즐길 게 없을까 하는 생각으로 바쁘게 움직였다.
몇 번 나무 밑동을 찍자 쿵 소리를 내며 거대한 나무가 쓰러졌다.
헬가는 키의 열 배는 넘어 보이는 나무에 밧줄을 걸었다.
가죽 댄 어깨에 밧줄을 놓고 몸을 앞뒤로 움직여 본다.
몇 번 반복해 나무가 탄력을 받자 헬가는 힘껏 밧줄을 끌었다.
울퉁불퉁 거친 바닥을 밟으며 걸을 때마다 나무가 묵직한 느낌으로 질질 끌려왔다.
남편 혼자 집에 있으니 마음이 급하다.
안전에는 충분히 신경 쓰고 있지만 숲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라파가 있을 때는 며칠 집을 비워도 괜찮았지만.’
아들 얼굴이 떠오르자 약간 외로워졌다.
그 아이는 잘 지내고 있는 걸까.
엄마가 아빠를 납치해 왔다는 사실을 지금쯤은 알았겠지.
혹시 경멸하게 된 건 아닌지 조금 걱정이 된다.
헬가는 우울해지는 마음을 억지로 끌어올려 힘차게 걸었다.
집에 도착하자 클라우스가 토끼를 안은 채 창문을 보고 있었다.
그녀를 발견하자 빙그레 웃는다.
약간 먼 거리에서 그 모습을 보고, 헬가는 애써 뛰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이 숲으로 들어온 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클라우스는 아름답다.
어느새 눈가에 생긴 옅은 주름조차 우아한 그림이 된다.
반면에 자신은.
문득 아래로 시선이 갔다.
자신의 투박한 몸을 보고 헬가의 마음은 한없이 떨어졌다.
원해서 이런 몸이 된 것이 아니다.
그녀도 평범한 여성의 육체를 원했다.
가느다란 팔과 다리, 잘록한 허리, 남자에 비해 머리 하나 낮은 키.
남편을 위해 바느질을 하고 음식을 만들고 아이 낳아 기르는 평범한 여자가 되고 싶었다.
그게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에노르토스에서는 도저히 남편을 찾을 수 없어 부족을 떠났다.
처음에는 이 넓은 세상에 한 명 정도는 그녀를 신부로 해줄 사람이 있을까 희망을 가졌지만, 그게 모래처럼 부서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른 나라 남자들은 에노르토스보다 작고 약했다.
그래도 헬가로서는 상관없었지만, 남자들은 아무도 그녀를 원해주지 않았다.
부족을 나온 지 몇 달도 되지 않아, 헬가는 남편감 찾는 걸 완전히 포기해 버렸다.
그냥 이대로 혼자 살다 죽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클라우스를 만난 날 세상이 바뀌었다.
이 세상에는 인간 아닌 인간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렇게 아름다운 생물이 인간이라니, 믿지 않아.
분명 신이 사랑한 조각품이 인간 세상에 떨어진 것이다.
사랑?
그런 건 원치 않는다.
그의 아내가 되겠다는 건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런 고귀한, 인간을 넘어서는 아름다움에 자신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알고 있으니.
그저 어쩌다 볼 수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야만인, 괴물 여자라는 취급을 받으면서도 왕도에 머물렀다.
거리를 걷다 우연히 그가 탄 마차를 만날 수 있다면, 하는 마음을 품고 계속 계속 우연을 바라며 살기를 몇 년.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소녀 마음이라는 건 안다.
그래도 죽는 날까지 그 마음을 관철하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클라우스가 그녀에게 호위를 의뢰했던 거다.
그날 헬가는 스스로에게 맹세했다.
평생 이 사람을 지킨다고.
의뢰가 끝나도, 가문도 상관없다.
한 번 호위가 되었으니 목숨 끊어지는 날까지 지킨다.
클라우스가 그녀를 더 이상 원치 않으면 멀리에서 지켜보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곁에 머물면서, 사랑이 부풀어 비정상적으로 점점 커지는 것 같았다.
마음이 괴물처럼 거대해진다.
클라우스가 부인과 애인의 방에 들어가 밤을 지낼 때마다 그 마음을 꽉 붙잡은 채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버텼다.
하지만 그녀의 고통 따위는 이내 우습게 되었다.
클라우스는 부인들과 밤을 지내고 나오면 토한다.
부인들 앞에서는 절대로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클라우스는 그녀들의 모습이 기괴한 괴물 같은 것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생리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거치면서 점점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왜 나를 사랑하지 않느냐고 울부짖고, 집착하고, 어떤 여자는 클라우스를 독점하기 위해 발의 힘줄을 끊으려고 한 적도 있었다.
그런 여자를 오래, 수도 없이 겪다 보면 누구라도 그렇게 되겠지.
남녀 간의 이야기는 밖으로 새기 어렵다.
누구도 모르는 사이에 클라우스는 그런 여자들에게 혐오를 품고 지쳐갔던 모양이다.
여자 중에는 미약을 쓰는 사람도 있다.
클라우스는 능숙하게 그런 걸 피했지만 그래도 드물게 걸리는 경우가 있었다.
그때마다 클라우스는 헬가 앞에서 조용히 토하고 밤새도록 괴로워했다.
눈물이 없어도 그가 울고 있는 걸 알았다.
이 사람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헬가는 결심했다.
그가 숨 쉬고 살아갈 수 있도록 어딘가에 놔주겠다고.
그곳이 마의숲이 된 이유는 단순했다.
거기라면 공작이든 누구든 아무도 찾아오지 못할 테니까.
클라우스가 바라면 언제든지 어디로든 데려갈 생각으로 이곳에 왔을 뿐, 남녀 사이가 되겠다는 바람은 갖지 않았다.
차라리 스스로의 목을 도끼로 베어버리면 베어버렸지, 여자와 있는 것이 고통스러운 그를 괴롭힐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꿈꾸는 것 같은 시간이 자꾸만 흘러간다.
라파가 있을 때는 그게 자연스러웠다.
아이가 엄마, 아빠라고 부를 때마다 헬가는 당연하게 아내가 된다.
하지만 라파가 떠난 뒤 문득 문득 겁이 났다.
나는 클라우스를 괴롭히던 다른 여자와 다른가, 혹시 같아지지는 않았나, 저 사람은 내가 모르는 곳에서 혹시 토하는 게 아닐까.
혹시라도 자신이 클라우스를 괴롭히는 존재가 되었으면 어쩌나 겁이 나는 거다.
단 한 마디.
없어져라.
그렇게 말하면 헬가는 클라우스가 원하는 그대로 한다.
죽건 클라우스한테 보이지 않는 거리에서 그를 지키건, 어쨌든 눈에 뜨이지 않게 할 것이다.
하지만 클라우스는 그 말을 하지 않는다.
대신 미소 짓고 그녀를 안고 다정한 시선을 보냈다.
그렇게 하면 욕심이 난다.
이대로 이 시간이 계속 가는 게 아닐까, 계속 아내로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헬가는 나무를 내려놓고 집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언제 클라우스에게서 거절의 말이 나올지 두려워하는 마음에 뚜껑을 덮고 미소 짓는다.
“다녀왔어요.”
헬가가 말하자 클라우스는 품 안의 토끼를 손가락으로 살살 쓰다듬으며 웃었다.
“오늘은 또 엄청난 나무네.”
“목탄을 만들까 하고요.”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클라우스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보통 때는 헬가가 뭘 한다고 하면 맞장구를 치거나 웃어 준다.
하지만 오늘은 반응이 조금 이상하다.
‘필요 없다고….’
가슴이 두근두근 불길하게 뛰었다.
“아마 지금쯤이면 라파가 아버지 눈에 띄었을 거야.”
“….”
“이제 슬슬 공작가로 돌아갈까 생각해.”
“….”
끝났다.
행복한 시간은 이제 완전히 끝나 버렸다.
헬가는 그대로 굳은 채 눈도 깜박하지 못하고 서서 클라우스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