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116)
116 죽여도 죽지 않는 갑옷 기사
이 세계의 도로 사정은 힘들다.
지구처럼 고속도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곳이 정비되어 있지도 않다.
때로는 마을이 소멸하거나 도적단이 출몰해, 사람들이 오래 다니던 길이 황폐해지는 경우도 있었다.
영주들도 도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자연재해로 길이 무너져 버리는 일도 종종 있다.
작년에 갔던 길이 올해도 똑같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 때문에 호위대장은 본대에 앞서 길을 확인하는 사람을 보내고 있다.
“….”
지금 미친 듯이 말을 달려오는 저 남자는 분명 십 분 전쯤 길을 확인하러 떠난 호위일 것이다.
호위대장이 마차 곁으로 오면서 마차가 섰다.
내가 내리자, 본대에 도착한 선발 호위가 이쪽을 향해 달려왔다.
말에서 훌쩍 뛰어내리며 큰 소리로 외친다.
“앞쪽에 전신 갑주를 착용한 기마대가 있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소속은 모르고 귀족의 행렬을 습격했다고 들었습니다. 정보원은 그 행렬에서 도망친 호위대장입니다. 저는 정보를 알리러 곧바로 돌아왔고, 다른 한 명은 기마대를 확인하러 그들과 함께 갔습니다.”
호위대장이 내 눈치를 본다.
내가 질문할 건지 자신이 해도 될지 묻는 것 같다.
고개를 끄덕이자, 호위대장이 입을 열었다.
“확실하게 중무장한 기마대라고 했나?”
“예, 방패에 기창까지 확실하게 지니고 있었답니다.”
“전신 갑주는 드물군. 혹시 귀족들 간의 다툼인 것 같은가?”
“아닙니다. 전혀 모르는 자들이 갑자기 공격해왔다고 들었습니다.”
“기마병의 수는?”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적어도 20명 이상. 호위의 말로는 서른은 안 되는 것 같답니다.”
“공격당한 사람의 신원은 아는가?”
“볼크 백작입니다.”
몇 가지 더 보고받았지만 그 외 특별한 일은 없었다.
애초에 정보를 준 볼크 백작가의 호위도 갑작스러워 상황을 잘 몰랐던 것 같다.
‘볼크 백작이라.’
그 사람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다.
영지는 가난한 편이지만 광물이 묻혔을 가능성 있은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가난하다 보니 그걸 조사할 만한 돈과 전문 인력이 없다.
언뜻 떠오른 정보에는 그 사람의 부인과 자식에 대한 것도 있었다.
후계자가 되는 아들이 올해 열여덟 살이었던가.
“마차에 타고 있었던 사람 중에 볼크 백작의 아들도 있었나?”
내가 묻자 선발 호위가 곧바로 대답했다.
“예, 호위와 이야기할 때 백작의 아드님이 마차에서 내려 저희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볼크 백작의 호위대장은 그대로 우리 대열과 합류하는 걸 원했지만, 백작의 아들이 거부했다고 한다.
공작가의 지원을 믿고 아버지에게 돌아간다고 우긴 모양이다.
볼크 백작에게 아들은 하나뿐이다.
둘 다 죽으면 영지는 분가의 누군가에게 넘어가게 될 것이다.
마차에 탄 게 여자들뿐이라면 몰라도 아들까지 도망치게 한 걸 보면 볼크 백작은 죽음을 각오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만큼 상대가 위험하다고 본 건가.’
호위대장이 신중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귀족의 체면으로, 구조 요청을 받았으니 도울 필요는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왕도로 향하는 길은 위험한 편이라, 저희 쪽 호위의 수를 줄일 위험은 피하고 싶습니다.”
중무장 기병을 만난 적도, 본 적도 없다.
하지만 호위대장의 말투로 보면 굉장히 위협적인 모양이다.
“제 입장에서는 호위 스무 명을 보내 돕도록 하고 나머지는 도련님 주위를 굳히고 싶습니다.”
호위대장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체면치레만 하겠다는 것이다.
호위대장의 마음과 입장은 충분히 알겠지만 솔직히 말하면 우리 상황은 그 반대다.
위험이 닥치면 내가 너희를 보호해야지.
게다가 흔치 않다는 전신 갑주 기마병이 뜬금없이 나타난 게 아무래도 이상하다.
직감이 속삭이는 거야.
이거 뭔가 수상하다고.
다만 나는 말을 타지 못한다.
마차가 빠르다고 해도 말보다야 못 할 것이다.
이대로는 구조에 늦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다간 사람도 구하지 못하고 아까운 호위만 다칠 수도 있어. 이백 명을 보내게. 나도 곧바로 뒤따라 가지.”
내 맘 같아서는 250명 모두 보내고 싶다.
하지만 그러면 호위대장은 물론이요 일반 호위까지 납득하지 않을 테니까 이 정도로 타협한 것이다.
그러나 호위대장은 거기에 불복하는 모양이다.
“도련님! 200명은 너무 많습니다. 그렇게 되면 도련님 주변이.”
호위대장의 얼굴색이 변했다.
하지만 그 정도는 가야 갑옷 기마병을 잠시라도 막을 거다.
내가 중기병에 대해서는 잘 몰라도 긴 창 가진 기마병과 호위의 전력이 몇 배는 차이 날 거라는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잘못하면 볼크 백작과 호위병이 순식간에 몰살당한다.
“나는 괜찮으니 서두르게.”
내가 그렇게 말하는데, 마부가 훌쩍 뛰어내려 공손히 허리를 굽혔다.
“먼저 호위를 보내실 필요는 없습니다. 도련님께서 흔들림을 허락해 주시면 호위들과 같은 속도로 움직이겠습니다.”
“그게 가능한가?
마차와 말은 달린 무게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게다가 내가 탄 마차는 굉장히 무거웠다.
그만큼 끄는 말도 많지만, 말만큼 속도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마부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저는 열두 살 때부터 50년마부라고 불린 사람입니다. 마차를 모는 일만큼은 자신 있습니다. 맡겨 주십시오.”
“좋아, 그렇게 결정했으면 서두르지.”
내가 마차에 오르자, 불복하는 듯하던 호위대장도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적어도 호위병이 모두 내 곁에 있다면 괜찮을까 생각한 건지도 모른다.
호위대장의 구령에 따라 행렬이 한 무더기가 되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꽉 잡아주십시오!”
마차가 달리기 직전 마부의 외침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대답할 겨를도 없다.
스르륵 바퀴가 굴러가자마자 순식간에 엄청난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마차 안에는 손잡이처럼 긴 끈이 달려 있는데, 그걸 잡고도 덜컹덜컹 몸이 의자에서 붙었다 떨어졌다 제 맘대로다.
반면에 타티아나는 형편이 조금 나았다.
그녀도 두 손으로 끈을 잡고 거기에 매달린 건 같지만, 만드라고라가 잔뿌리를 길게 내 담쟁이덩굴처럼 감고 있었다.
그게 지지대처럼 타티아나를 보호해 준다.
만드라고라의 뿌리가 이번에는 나를 향해 뻗어왔다.
스륵 스륵 약간 축축한 뿌리가 피부를 기어 다니며 움직였다.
가느다란 뿌리는 의외로 질기고 튼튼해서, 내 몸을 몇 바퀴 감아 살짝 들어 올렸다.
보기에는 바닥에 붙어 있는 것 같아도 실제로는 뿌리가 쿠션이 되어 준다.
덕분에 흔들림은 상당히 적어졌다.
속이 울렁거려 뱉을 것 같던 것도 덜해졌다.
“고맙다.”
내 말에 만드라고라가 잔뿌리 몇 개로 얼굴을 덮었다.
부끄러운 모양이다.
그 모습이 왠지 귀여워 보여서 미소 짓자, 손가락 벌리듯 벌어져 있던 잔뿌리가 순식간에 늘어났다.
꼭꼭 얼굴을 숨긴다.
“….”
몰래 내 반응을 보고 있었던 것 같다.
‘눈도 없으면서.’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은 어떻게 사물을 보고 구별하는 거지?
진짜로 눈이 없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마차는 순식간에 갑옷 기사들이 있다는 장소에 도착했다.
멀리 갑옷 기사와 한 무더기가 되어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대로 마차가 싸움터로 진입하는 건 좋지 않다.
탕탕, 마차를 치자, 곡예하는 것처럼 마차의 속도가 줄어들었다.
이 마부, 열두 살 때부터 50년마부라더니 정말 마차를 잘 몬다.
나는 훌쩍 문을 열고 달리는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이전보다 훨씬 많아진 정령이 바람을 모아 내 몸을 앞으로 밀어준다.
몸이 앞으로 휙 나아갔다.
달린다기보다 바람에 떠밀려 날아가는 느낌이다.
잘못하면 넘어질 것 같다.
나는 다리를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볼크 백작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이미 죽었는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이 많다.
볼크 백작으로 보이는 남자는 가장 앞에서 아들과 함께 싸우고 있었다.
“쯧.”
나도 모르게 혀를 찼다.
보는 순간 알았다.
볼크 백작에게 아들은 방해밖에 되지 않는다.
아들의 실력이 도움이 되기에는 한없이 못 미쳤다.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인지 볼크 백작의 움직임이 둔한 느낌이었다.
아들은 아들 나름대로 아버지 걱정을 한 거겠지만 상황 판단을 잘못했다.
습격했다는 갑옷 기사들은 하나같이 투구를 쓰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눈구멍은 아주 조금 열려있지만 어두워 안이 보이지 않는다.
볼크 백작과 몇 명의 호위가 힘을 합해 갑옷 기사를 말에서 떨어뜨렸다.
요란한 철 소리와 함께 갑옷 기사가 바닥을 나뒹군다.
그 탓에 투구가 벌렁 벗겨져 데구루루 굴렀다.
“헉!”
누군가가 짧게 숨소리를 냈다.
어쩌면 나인지도 모른다.
나도 엄청 놀랐으니까.
나도 모르게 걸음이 멈췄다.
투구가 벗겨졌으면 얼굴이 나와야 하는 게 정상인데, 갑옷의 몸통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얼핏 보이는 갑옷 안쪽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아니라 갑옷이 움직이고 있었던 거다.
갑옷 기사가 벌떡 일어나더니 투구를 잡았다.
정중하게 그걸 뒤집어쓴 뒤 말에 오른다.
말고삐를 강하게 잡자 말이 몸을 일으키면서 크게 울었다.
히이잉, 울음소리와 함께 말의 전신을 덮은 천이 움직임에 맞춰 허공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발이 없다.
분명 천 너머로는 다리가 움직이는 듯한 모습이 있는데 그 밑으로는 텅 비어 있었다.
“뭐야, 이거.”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건 듀라한이다.
목 없는 유령기사 듀라한.
설마 네놈들은 듀라한이 폭주한 기사단이냐.
기출변형듀라한이야?
우리를 발견한 볼크 백작이 외쳤다.
“이놈들은 죽여도 죽지 않는다! 도망쳐!”
자기를 구해달라고 하지 않고 오히려 도망치라고 하는 걸 보면 양심적인 사람인 것 같다.
호감이 쑤욱 올라왔다.
그런 사람을 두고 도망칠 수는 없지.
갑옷 기사 몇 놈이 나를 본 것 같다.
이쪽으로 말의 방향을 돌렸다.
크고 굵은 긴 창이 나를 향한다.
창이 무슨 전봇대 같다.
왜 이렇게 크고 길어.
영화에서 본 적은 있지만 실제로 목격하면 그 거대함에 기가 질린다.
저걸 한 손에 들다니, 중세 기사들은 모두 천하장사인 모양이다.
한 명의 갑옷기사가 말을 몰아 이쪽을 향해 달려온다.
처음에는 서서히 달리던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그 뒤로 몇 명의 기사가 서서히 속도를 내며 뒤따라오고 있다.
공작가의 호위들이 대열 짜듯이 내 주변에 모인다.
아니, 나한테 오지 말고 다른 사람을 구해.
‘어쨌든 좋아.’
정말 오랜만에 싸움다운 싸움을 하게 될 것 같다.
나는 도끼를 들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도련님을 보호해라! 소중한 분이시다. 머리카락 한 올, 손가락 하나 다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호위대장의 외침과 동시에 모두가 내 주위를 굳히며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속도가 너무 빨라 거리는 순식간에 벌어졌다.
볼크 백작이 절박한 목소리로 외쳤다.
“멍청한! 피해! 이놈들은 연달아 공격한다. 게다가 죽지 않아. 아무리 베고 두드려도 죽일 수 없단 말이다!”
글쎄,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안다고, 죽일 수 있는지 없는지는 죽여봐야 아는 거지.
나는 한달음에 갑옷 기사 앞으로 달려가 도끼를 휘둘렀다.
쿵!
묵직한 충격이 손바닥으로 전해진다.
갑옷 기사의 창이 무거운 느낌으로 잘려 옆으로 날아갔다.
아, 이거다.
강자를 상대할 때의 고양감.
몸속의 피가 들끓는 것 같다.
나는 땅을 박차고 갑옷 기사의 정면으로 뛰어올랐다.
그대로 도끼를 휘두른다.
갑옷 기사가 반 토막 남은 창으로 도끼를 막았다.
써걱 하는 감각과 함께 두꺼운 창이 갈린다.
도끼가 갑옷 몸통을 찌르며 밀어내자 기사가 말에서 굴러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충격으로 땅이 움푹 파인다.
나는 놈이 일어날 기회를 주지 않은 채 그대로 도끼로 내리찍었다.
철 부딪치는 소리가 울리며 허벅지 두 개가 서걱 잘렸다.
상체만 남은 갑옷 기사의 몸이 크게 덜거덕거렸다.
우와아아아아!
공작가 호위들이 우렁찬 외침 소리를 내질렀다.
하지만 볼크 백작의 표정은 밝지 않다.
왜…?
그렇게 생각한 순간 이유를 알았다.
갑옷 기사의 상체가 기우뚱하며 땅을 짚고 몸을 일으키자, 다리가 와서 붙었다.
갑옷 기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어나며 투구를 잡았다.
그 사이 두 번째 갑옷 기사가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공작가 호위들의 우렁찬 고함소리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모두가 나를 향해 달려온다.
인간 벽이 될 생각인 것 같다.
“괜찮아! 경거망동하지 마라. 나보다 다른 사람들을 구해. 나는 괜찮으니까.”
호위들에게 외치면서, 나도 모르게 씨익 웃었다.
갑옷 기사에게 시선을 돌린다.
그렇게 나온단 말이지.
“좋아, 너희가 갑옷이 있는 한 죽지 않는다면, 그 갑옷을 모조리 잘게 잘게 찢어주마.”
더 이상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 갑옷이 조각나면, 그때는 어떻게 할 건지 정말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