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118)
118 누가 왕의 아이를 해치려 했나
속 빈 강정처럼 강철 몸뚱이만 있어 그런가, 창이 복구되지 않는데도 갑옷 기사들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당한 놈도, 다른 놈도 마찬가지다.
그저 하나 둘 로봇처럼 천천히 고개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
이거 좀 무섭다.
다른 사람과 싸우던 놈들까지 어느새 동작을 멈추고 나를 보고 있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갑옷 기사가 내게 시선을 주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모두가 나를 본다.
의식이 하나로 연결된 로봇을 보는 느낌이었다.
히이잉, 말 울음소리가 조용한 가운데 울리고, 갑옷 기사 하나가 고삐를 당겼다.
고개는 여전히 나에게 고정된 채 몸만 움직여 나를 향한다.
그게 신호인 것처럼 갑옷 기사가 하나둘 말의 고삐를 당겨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투구의 가느다란 눈구멍 속, 깊은 어둠이 나를 바라본다.
적… 적… 적… 적… 적이다….
소리는 들리지 않는데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눈동자 없는 그들의 시선이 말이 되어 머릿속에 박히는 느낌이었다.
나 외의 다른 인간은 무시하기로 한 듯, 갑옷 기사가 전열을 다듬기 시작했다.
둥글게 큰 원을 그리며 나를 포위한다.
창을 위로 세우고 있던 몇 놈이 옆구리에 창을 끼워 앞으로 내렸다.
창끝을 나에게 겨눈다.
상공에서 내려다보면 뾰족한 이빨 달린 식충식물의 입처럼 보이지 않을까.
물론 중앙에 서 있는 나는 먹히기 직전의 벌레다.
실제로 그렇게 본 녀석이 있었던 모양이다.
삐비빗, 요란한 소리와 함께 렐라가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날개를 퍼덕이기 때문에 얼핏 보면 나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단순히 떨어지는 것이다.
렐라는 바닥에 닿자 데구루루 두어 바퀴 구른 뒤 이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나를 구해주려는 건지, 아니면 단순히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한 건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요란한 울음소리를 내며 달려온다.
눈에 힘을 팍 준 것이 여기에서도 보일 만큼 기합이 들어 있었다.
다른 것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던 갑옷 기사 몇이 렐라에게 관심을 가진 것 같다.
고개를 돌려 가만히 쳐다보았다.
문득 예전에 타티아나한테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스승님이 그러셨는데요, 불사조는 오래전 정령왕이 데리고 다니던 새였대요. 그래서 정령과도 사이가 좋다고 들었어요.]설마 이 갑옷 기사도 정령의 일종일까.
나한테 붙은 저주의 갑옷이 원래는 정령이었던 것처럼, 이것들도 누군가에 의해 악령처럼 변해버린 것은.
“….”
아니, 아니야.
뭐든지 정령이 아닐까 의심하는 건 그만두자.
말이 씨가 된다고, 정말로 정령이면 어떻게 할 거야.
그래서 나한테 붙어 다니기라도 하면 정말 곤란해진다.
요즘 내 몸은 자석처럼 저주받은 정령을 끌어당기고 있으니까 정말로 농담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게다가 정령의 갑옷은 몸에 착용하는 것이고 눈에 보이지도 않지만 저것들은 기사다.
잘못해서 나한테 붙는 일이라도 생기면, 이상한 깡통 기사단 몰고 다니는 꼴이 되는 거다.
잘 되어 갑옷이 없어진다 해도 보이지 않는 유령 기사단으로 변하는 것뿐이다.
절대로 싫어.
‘부탁이니까 죽거나 성불해라.’
갑옷 기사들이 드디어 공격할 모양이다.
철거덕 철거덕 갑옷 부딪히는 소리가 울리면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던 놈들의 말이 나를 향해 서서히 달린다.
아마 원래는 멀리에서부터 달려와 창으로 적을 찌르는 걸 거다.
하지만 이놈들은 인간의 몸이 아니라서인지, 거리가 짧은데도 마치 먼 곳에서 달려온 것처럼 순식간에 속도가 붙었다.
나는 발로 바닥을 차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가장 근접한 놈의 창을 밟고, 그 반동을 이용해 몸을 쏘아 올린다.
곧바로 놈의 앞까지 향한 뒤 갑옷 기사의 투구를 잡았다.
혹시라도 잡으면 훌렁 투구가 빠져버리는 게 아닐까 걱정했지만, 단단히 여민 모양이다.
내가 잡는다고 쑥 빠지지는 않았다.
나는 양손으로 놈의 머리를 잡은 채 냅다 이마를 박았다.
쿵, 하는 소리를 내며 머리가 부딪치는 순간 파지직 빛이 튀었다.
머릿속에서 번쩍했다는 게 아니다.
실제 공간에서 작은 번개가 무리 지어 일어났다.
작은 번개가 불꽃놀이 하는 것처럼 한꺼번에 피었다.
“….”
어쨌든 방어구 역할로 내 머리에 몰려와 있는 거니까 기왕이면 머리가 부딪치기 전에 번개가 일어났으면 좋았을 것이다.
아까는 그렇게 했으면서 왜 이번에 한해서는 아닌 거야.
내가 하는 것과 당하는 것의 차이인가.
‘꼭 실제로 부딪쳐야 했냐.’
척이면 딱이라고, 대강 상황에 맞게 해주면 안 되는 거냐고.
아파 죽겠다.
아주 조금 원망하자, 마치 그걸 알아차린 것처럼 머리 주위에서 작은 빛이 튀었다.
반성하는 건 아닌 것 같고 불평하는 것처럼 보였다.
법칙이 그런 걸 어떻게 해요, 같은 느낌으로.
어쨌든 효과는 있었다.
갑옷 기사의 투구가 모래성 무너지듯 부서져 바람에 흩어졌다.
다만 몸통은 여전히 남아 있다.
“….”
어이, 설마 몸통에도 박치기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는데, 렐라가 도착했다.
“삐비빗!”
렐라가 크게 울면서 폴짝 뛴다.
그 사이 렐라의 점프력이 많이 는 모양이다.
말을 덮고 있는 천 아래로 쏙 들어갔다.
천 안에서 묘한 소리가 울렸다.
전구 터지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들으면 불에 콩이 튀는 소리 같기도 하다.
‘설마 렐라가 불을 낼 수 있게 된 건 아니겠지.’
적어도 내가 본 바에 의하면 렐라는 아직 마른 연기밖에 만들지 못한다.
하지만 아이라는 건 어제와 오늘이 다를 만큼 금방금방 큰다.
렐라도 그런지 모른다.
놀랐는지 말이 크게 울면서 다리를 들어올렸다.
물론 다리는 보이지 않지만.
천 아래는 그저 텅 빈 공간이었다.
렐라가 뭔가에 부딪히는 것처럼 빈 공간에서 흔들리더니 잠시 뒤 바닥에 떨어졌다.
데굴데굴 굴러간다.
유령도 놀라거나 아픈지, 말은 머리 없는 갑옷 기사를 태운 채 엉뚱한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뭔지 모르지만 렐라가 한 게 효과 있다.
‘좋아, 그렇다면 나도 노력해야지.’
나는 옆에 있는 갑옷 기사 머리통을 잡고 힘껏 박치기했다.
다행히 나는 어머니 닮아 몸이 바위만큼 단단하다.
머리도 마찬가지였다.
아주 조금 아프지만, 아니, 실제로는 상당히 아프지만, 그래도 견딜 만은 했다.
박치기로 가자.
그렇게 몇 놈 잡아 머리를 부수는데, 갑옷 기사 사이에 이상한 당혹감이 흘렀다.
그러더니 나를 공격하는 대신 창을 거두고 우왕좌왕한다.
갑자기 오작동하는 로봇 같다.
‘뭐야, 이놈들.’
갑자기 왜 그러지.
어쨌든 잘 됐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가자.
*
왕이 사랑한 새는 친절하지 않다.
우리를 골탕 먹이는 걸로 즐거워했다.
항상 번거롭다.
아름답게 생겼지만 착하지 않았다.
하지만 왕이 사랑하는 것이다.
새가 작은 불을 만들어 우리를 놀라게 할지라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새가 괴롭힐 때마다 도망쳐 잠시 숨어 있다 돌아오곤 했다.
우리 왕이 그랬듯이, 왕의 아이들도 새를 좋아했다.
새 역시 왕의 아이를 좋아했을 것이다.
모든 새가 그렇지는 않았지만, 새 중 몇몇은 왕이 사라진 뒤에도 특별히 그분을 그리워했다.
그런 새는 왕의 기색을 쫓아가 오래전에 그랬던 것처럼 왕의 아이들 곁에 머물렀다.
우리가 왕의 아이를 찾아내 도착하면 언제나 새가 그 곁에 먼저 와 있었다.
왕의 기색을 찾는 데에는 우리보다 날개 달린 못된 새가 더 능숙하다.
그런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나타난 작은 새는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
왕의 새가 여기에 와 있다.
우리가 왕의 기색을 찾지 못했는데 인간 틈에 있었다.
새는 왕의 아이가 아닌 인간에게는 머물지 않는다.
[어째서 왕의 새가 와 있다… 어째서….]혼란스럽다.
우리가 느끼지 못한 왕의 기색을 이 작은 새는 알고 있나.
작은 새는 오래전 왕이 데리고 있던 것과 많이 비슷한 것처럼 보였다.
장난을 좋아하고 못됐지만 왕이 매우 사랑했던 처음의 새와 닮았다.
비록 처음의 새보다 형편없이 작고 초라한 불을 내뿜었을 뿐이지만, 우리는 작은 새의 장난에 깜짝 놀랐다.
오래전 일이 생각나 도망친다.
잠시 숨어 있다 돌아오면 새는 예쁜 목소리로 노래해 미안하다 하고, 다시 그것을 잊은 채 우리를 놀릴 것이다.
그러니 도망치는 게 좋다.
그래야 새가 미안해할 테니까.
하지만 도망치려는 중에 깨달았다.
[왕의 기색이다… 왕의 기색이….]우리의 몸을 바스러트린 정령에 왕의 기색이 묻어 있었다.
왜 그걸 몰랐던 걸까.
왕의 아이가 우리 곁에 계신다.
바로 옆에, 우리 보이는 곳에 있었다.
우리의 가운데에.
우리 안에 혼란이 생겨났다.
누가 왕의 아이를 공격했나.
누가 왕의 아이를 해치려 했나.
누가… 누가….
왕의 명령은 우리를 묶는다.
우리는 서로의 가슴에 창을 겨눴다.
네가, 우리가, 네가, 우리가, 네가, 우리가… 왕의 아이를 공격했다… 왕의 아이를 해치려 했다… 네가… 우리가… 네가… 우리가….
*
싸움이라는 건 원래 치고받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때리는 건 싸움이라고 하지 않는다.
우왕좌왕하는 갑옷 기사를 몇 놈 잡아 박치기하다 나는 결국 동작을 멈췄다.
왠지는 모르지만 갑옷 기사가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자중지란, 저희끼리 서로 창을 겨누고 찌른다.
‘대체 뭐 하자는 거지.’
놈들에게서 나에 대한 적의가 사라진 것 같다.
대신 저희들끼리 서로를 미워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쿵! 쿵!
놈들이 서로를 칠 때마다 묵직한 소리가 허공으로 울려 퍼졌다.
창이 갑옷을 뚫어 몸통에 거대한 구멍을 만들고, 둔중한 주먹에 갑옷이 찌그러졌다.
그래도 죽지 않는다.
인간의 손으로는 죽일 수 없다 쳐도 저희끼리 찌르면 어찌 될까 궁금했지만, 죽거나 사라지지 않는 모양이다.
커다란 구멍은 서서히 복원되고 찌그러진 철판도 원상태로 돌아갔다.
마치 영상을 역재생하는 것 같다.
‘이건 정말 괴물이잖아.’
죽여도 죽지 않고, 파괴해도 되돌아간다.
내가 박치기한 탓에 머리가 없는 놈이 여럿 생겼지만 그뿐이었다.
몸까지 모두 사라지면 또 어떨지 모르지만, 어쨌든 지금의 놈들은 제대로 작동한다.
저희끼리 싸우기 시작했으니 망정이지 나로서도 골치 아팠을 것이다.
나보다 동작이 느린 것만큼은 다행이라고 할까.
최악의 경우에도 놈들을 모조리 때려눕히고 도망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놈들이 따라오지 않으면, 이라는 단서가 붙지만.
정령이든 악령이든, 놈들에게 추적 기능까지 붙어있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 될 거다.
내게 정전기 정령이 없었다면 정말 인생 최대의 난관이었겠지.
그나저나 이 상황에서 어쨌든 놈들을 박치기로 모두 처리해놓는 게 좋으려나.
하지만 철갑이라 그런지 놈들은 단단하다.
여러 번 박치기했더니 머리가 딩딩 울리고 아프다.
몸통까지 모두 박치기로 해결하려다 머리가 깨져버릴 것 같아 무섭다.
‘어쩌지.’
갑옷 기사들이 저희끼리 싸우자, 그 틈을 타 볼크 백작과 일행이 허둥지둥 그 자리를 벗어났다.
다친 사람을 현장에서 빼내도 갑옷 기사는 그쪽에 관심 갖지 않았다.
다만 인간 따위 신경 쓰지 않는 놈들의 거친 동작에 사람이 밟혀 죽을 지경이다.
결국 공작가의 호위들까지 도와 서둘러 부상자를 옮겼다.
덕분에 갑옷 기사들이 있는 곳에서 사람의 모습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때 타티아나가 나에게 달려왔다.
가쁜 숨을 쉬면서 말한다.
“저주받은 망령이라고 생각했었는데요, 저것들은 그런 게 아니에요. 사악한 거라면 분명 효과가 있었을 텐데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거든요.”
타티아나의 손에는 저주인형과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묘한 물건이 들려 있었다.
그걸로 확인한 모양이다.
만드라고라는 타티아나의 어깨에 잔뿌리를 얽어 등에 매달려 있었다.
“오히려 정령의 축복에 반응했어요. 저주의 팔갑옷하고 비슷할까 생각해서 방금 해봤거든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약간의 반응 정도였지만 분명해요.”
“….”
타티아나의 말에 놀라지는 않았다.
아, 역시, 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불길한 예감은 맞는다더니 저것도 정령이었어.
그것도 이상하게 돌아버린 정령 갑옷이다.
저희들끼리 싸우는 걸 보면 확실하게 미친 것 같아.
‘저희끼리 싸우는 걸 보면 당분간은 사람한테 해 끼치지 않을 것 같고, 일단 멀리 치워버릴까.’
마침 이곳은 거의 황무지다.
인가는커녕 논도 밭도 없었다.
나는 호위대장에게 고개를 돌렸다.
“여기에서 사람들을 대피시키게. 조금 멀리 떨어진 곳으로. 저놈들을 먼 곳으로 쓸어버려야겠어.”
내가 평소에 바람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건 호위대장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이 나를 걱정해 붙어오는 것이다.
바람을 이용하는 건 계속 연습하고 있지만 여전히 큰 건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러면 근처가 모두 쑥대밭이 될 테니까.
호위대장이 금세 내 말을 알아듣고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도련님. 저희는 근처에서 대기하겠습니다.”
호위대장의 명령으로 사람들이 멀리 떨어진다.
나는 몸의 제어를 풀어 바람을 일으켰다.
웅… 웅…. 거대한 벌이 사방에 가득 찬 듯 바람이 운다.
몇몇 갑옷 기사들이 동작을 멈추고 나를 보았다.
아니, 보지 마라.
혹시라도 놈들이 나한테 들러붙을까 무서워, 나는 힘차게 손을 휘둘렀다.
거대한 바람이 회오리처럼 일어나 놈들을 후려친다.
붕 떠올라 무겁게 날아가는 놈들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먼 곳에 가서 너희끼리 싸워라.’
그리고 돌아오지 마.
바람이 훑고 지나간 땅은 운석이 떨어져 질질 끌린 것처럼 거대한 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비가 많이 내리기라도 하면 얕은 저수지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토목공사를 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