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119)
119 청혼받았다
맙소사.
‘저 사람이 발테르 공작의 손자….’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볼크 백작은 과거 발테르 공작이 마수와 싸우는 걸 본 적이 있다.
거대한 마수가 여럿 나타난 자리에 마침 공작이 있었다.
그때 본 공작의 거대한 힘은 볼크 백작에게 잊을 수 없는 공포와 좌절을 심었다.
볼크 백작가는 마법사 가문이 아니다.
귀족 가문 상당수가 그렇듯 마법사 피가 다소 섞였을지라도 일가에 그 힘이 나온 일은 없었다.
약간의 자질을 보이는 자는 드물게 태어나지만 그게 유의미한 마법의 힘으로 구현되지는 않았다.
그런 일반 가문과 마법사 가문의 차이를 눈앞에 과시하는 것 같았다.
힘의 차이가 극명하게 보였다.
강한 마법사를 수없이 안고 있는 공작가가 얼마나 무서운 가문인지,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절실하게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방금 본 것은….’
공작과도 다르다.
공작이 강한 마법사라는 느낌이었다면, 방금의 저 남자는 인간을 넘어선 괴물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그늘에서 헬가에 대해 말하곤 한다.
마법도 사용하지 않으면서 최강인 그녀는 괴물이라고.
괴물은 괴물을 낳는가.
‘괴물을 넘어서는 괴물이 여기에 있어.’
공작의 손자가 이쪽으로 걸어온다.
마치 사람을 잡아 죽일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무섭다.
조금만 시선을 낮추면 공작의 손자 뒤로 호수처럼 깊고 넓게 파인 땅덩어리가 보였다.
그 넓은 구덩이가 마치 협박 같다.
말 한마디만 잘못하면 너도 저렇게 될 거라는.
볼크 백작은 마른침을 삼켰다.
사람이 아니라 거대한 맹수를 맞닥뜨린 기분이 든다.
본능적인 두려움에 몸이 가늘게 떨렸다.
볼크 백작은 배에 힘을 주었다.
이번 일로 호위가 열 명가량 죽었다.
움직일 수 없을 만큼 큰 부상을 입은 사람이 한 명, 그보다는 낫지만 이동하기 힘든 자가 두 명 더 있었다.
이 상태로는 영지로 돌아갈 수도 없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거나 길드의 호위를 고용해야 한다.
하지만 죽은 호위들에게 지급할 보상금과 이 뒤로 늘어날 비용을 생각하면 바람직하지 않다.
최선은 이대로 공작가 행렬에 붙어 가는 것이다.
어차피 저들의 목적지는 왕도일 테니까.
‘게다가 우리 가문의 미래를 생각하면 지금 기회를 놓쳐서는 안 돼.’
공작가와 개인적으로 알고 지낼 기회는 흔치 않다.
심지어 훗날의 후계자가 될지 모르는 사람이다.
이렇게 화려하게 행렬을 꾸며 갈 정도면 그 가능성은 클 것이다.
호위들의 태도도 그걸 뒷받침했다.
만에 하나 그게 아니라도 왕가에서 일부러 불러들여 포상을 내리겠다고 말할 정도의 마법사다.
아들이 훗날 백작이 되었을 때, 저 남자도 공작가의 정식 후계자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있다.
가문을 위해.
아들을 위해.
볼크 백작은 다시 배에 힘을 주고 입가를 끌어올렸다.
비록 가난한 백작가라 해도 오랫동안 사교계에서 굴러먹은 몸이다.
두려움 정도 감추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가까이 온 공작의 손자 얼굴을 보자 온몸에서 피가 쑥 빠지는 것 같았다.
이 사람, 엄청나게 무섭다.
*
할아버지를 보면 귀족 당주는 모두 능구렁이에 담대할 것 같은데 이 남자는 마음이 약한 모양이다.
숨기려고 노력은 하는 것 같지만 다리가 부들부들 떨린다.
뭐, 이 세상의 남자 바지는 쫄쫄이 타이츠처럼 몸에 딱 붙는 것이다.
몸이 조금만 떨려도 금방 보이지.
숨길 수 없다.
‘왠지 내가 가까이 가니까 더 심해지는 것 같은데. 이러다 기절하는 거 아니야?’
왠지 불안하다.
하지만 우리 행렬의 최상위자는 나다.
볼크 백작가의 일을 어떻게 할지 결정할 수 있는 건 나뿐이었다.
호위대장한테 대신 인사하라거나 앞으로 어떻게 할지 의논하라고 할 수 없다.
이 사람이 아무리 무서워해도 어쨌든 나와 한번은 이야기해야 하는 거다.
그리고 부상자가 있기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서둘러야 한다.
그러니까 기절하지 마, 백작. 힘내라.
바로 앞까지 걸어가 서자, 백작이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하지만 여전히 다리는 사시나무 떨리듯 흔들린다.
힘내, 백작.
“나는 볼크 백작입니다. 귀하의 도움이 없었다면 우리는 분명 모두 살해당해 길가의 먼지가 되었을 겁니다. 우리 볼크 백작가는 당신의 용기와 도움에 큰 신세를 졌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볼크 백작이 고개를 숙였다.
비록 내가 공작가 사람으로 가문은 위지만, 저쪽은 작위 소유자다.
당연히 이 자리에서는 백작이 위였다.
그가 나에게 머리를 숙이는 일은 본래라면 없어야 한다.
그럼에도 고개를 숙인 건 후계자의 생명까지 도움받았다는 사실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일 거다.
나도 고개를 약간 숙여 답하며 빙그레 웃었다.
“볼크 백작, 머리를 들어 주세요.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돕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고개를 올리던 백작의 얼굴이 굳는다.
아, 미안. 내 웃는 얼굴 무섭지.
백작이 경련하듯 미소 지었다.
“겸손한 말씀 감사합니다. 오늘의 은혜로 우리 볼크 백작가는 귀하에게 영원한 빚을 짊어지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귀하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말해 주세요. 어떤 일이든 우리 볼크 백작가는 한 조각의 힘을 보태는 데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변에서는 이미 부상자 처치가 이뤄지고 있다.
타티아나가 약초를 내준 모양이다.
공작가 호위들이 익숙한 솜씨로 부상자 상처에 약초 가루를 바르고 있었다.
저 약초에는 불사조의 깃털도 약간 들어 있다.
백작가의 부상자에는 중상인 사람도 있지만 죽지는 않을 거다.
사무관 그레고르가 볼크 백작가의 호위대장과 뭔가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에게 시선을 보내자, 그레고르가 금세 눈치채고 이리로 다가왔다.
“이 근처에 부상자를 믿고 맡길만한 곳이 있을까?”
“마차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공작가와 관계있는 가문의 별장이 있습니다. 이번 왕도행 일정이 마무리될 때까지 사용할 수 있게 수배했으니 그곳에 머물게 하면 됩니다.”
왕도로 오가는 여정의 상당 부분은 귀족용 여관을 이용하지만, 공작가의 사무관들은 일정 거리마다 귀족이나 큰 상사의 저택을 대여했다.
할아버지나 아버지도 그런 식이었다고 들었다.
일반 숙소에서 머무는 것과 저택 하나를 통째로 빌리는 건 금액의 단위가 다를 것이다.
그래도 필요 비용이라고 하니 대귀족의 생각은 모르겠다.
우리의 대화를 들은 볼크 백작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귀하의 배려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 은혜는 언젠가 반드시….”
볼크 백작의 눈가에 물기가 어렸다.
너무 빨리 여러 가지가 일어나 이제야 겨우 감정이 나오는 모양이다.
처음에는 나를 굉장히 무서워하더니 이제 그런 감정은 조금 들어갔을까.
어쨌든 여기에서 오래 시간을 끌 수는 없다.
약을 썼다고 해도 부상자는 빨리 쉬게 해야 한다.
약간의 논의를 거쳐 죽은 사람은 근처에 가매장했다.
나중에 백작가 사람들이 찾아와 이장하는 모양이다.
부상자는 마차에 싣고, 백작가가 우리 일행의 뒤를 따라오는 식으로 다시 길을 떠났다.
사무관들이 빌린 저택이란 건 단순히 건물만을 뜻하는 게 아니었다.
작은 성 정도의 거대한 저택에 넓은 부지와 각 방에 딸린 정원,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는 사용인들이 딸려 있었다.
그걸 다 합쳐서 대여한 거다.
저택의 크기나, 거기에 정원 같은 게 딸린 건 대강 짐작했는데, 일하는 사람까지 함께 대여했다는 사실은 조금 예상외였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넓은 저택만 달랑 빌려서는 그날 하루 밥 먹는 것도 힘들 테고, 쾌적함은 기대할 수 없다.
사용인들이 있어 줘야 먹고 자고 씻는 모든 일이 원활하게 돌아간다.
실제로 저택에 도착하자 이미 욕실부터 식사, 방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사용인이 없었다면 노숙보다 조금 나은 정도의 하룻밤을 지내야 했을 거다.
부상자도 이곳에서 맡기로 했다.
저택의 사용인들은 부상자 처치에도 능숙하다고 한다.
약초에 불사조 깃털이 들어간 덕분에 상처도 순조롭게 아물어갔다.
중상자의 상처는 여전히 심각한 정도였지만, 더 이상 생명의 위험은 없을 것이다.
눈에 띄게 나아진 걸 보고 볼크 백작이 깜짝 놀라며 감사해했다.
사망자 때문에 암울하던 분위기도 그 덕에 많이 밝아졌다.
그날 저녁은 공작가에 있을 때처럼 넓은 식당에서 만찬을 즐겼다.
볼크 백작과 가족들도 초청해서 함께였다.
저택의 요리사가 마련한 식사는 매우 화려했다.
맛있다기보다는 말 그대로 화려하다.
뭘 어떻게 한 건지 생고기는 아니었지만 생전의 꿩이 거의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오고, 달콤한 맛이 겹겹이 쌓인 디저트 종류는 예술품에 가까울 만큼 아름다웠다.
예쁘기는 정말 예뻤지만, 너무 달아서 한 입 먹기도 힘들다.
혀를 설탕에 절이는 느낌이었다.
그걸 끝까지 먹는 볼크 백작과 백작부인은 정말 대단하다.
나만이 아니라 타티아나도 똑같이 생각했던 모양이다.
볼크 백작부부가 끝없이 달콤한 디저트를 먹어대자 눈을 둥글게 뜨고 그 모습을 보았다.
타티아나, 그 표정은 아웃이야.
타티아나 뒤쪽에 서 있던 매디즈 부인이 작게 기침소리를 내자 겨우 원래 얼굴로 돌아갔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남녀가 서로 나뉘어 담소하는 시간을 가졌다.
타티아나는 식사하는 내내 의젓했지만 막상 나와 떨어질 시간이 되자 걱정스러워진 모양이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제발 혼자 두지 말라는 말이 눈에서 레이저 빔이 되어 나오는 것 같다.
하지만 매디즈 부인은 마침 잘 됐다고 생각한 듯하다.
연회 전에 미리 연습할 기회라고 여겼는지 싱글싱글 웃는 얼굴로 타티아나를 데려갔다.
타티아나의 모습이 도살장 끌려가는 소 같아서 조금 불쌍해졌다.
하지만 얻기 어려운 기회다.
저쪽에서는 은혜를 입었다고 감사하는 중이니까, 타티아나가 실수해도 모른 척 넘어가 줄 거다.
앞으로 연회에서 여자끼리 있을 때는 아군이 되어줄 테고.
여기에서는 타티아나의 성장과 미래를 위해 불쌍함을 참는 수밖에 없겠지.
남자들끼리 모여 술잔을 기울이는데, 볼크 백작이 진지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처음에는 내 눈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지만, 볼크 백작도 어느새 자연스럽게 나와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약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지.
“라파 씨, 갑자기 이런 말은 무례할지 모릅니다만, 저희 딸은 보시기에 어떠십니까.”
“따님이라고 하면, 아까 만난 마그리트 아가씨 말입니까?”
“예, 그 아이 말입니다.”
마그리트는 아직 성인이 되지 않아 만찬 자리에는 나오지 않았다.
“매우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가씨더군요.”
내 말에 볼크 백작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공작가에서는 정부인 외에 다른 여성을 맞이하는 게 관례처럼 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우리의 보물 마그리트를 귀하께 드리고 싶습니다.”
“마그리트라고 하면… 조금 아까 만난 아가씨 맞습니까?”
마그리트가 둘이 있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예, 라파 씨. 제 딸이지만 귀엽고 사랑스러울 뿐 아니라 똑똑한 아이예요. 조금 전에 그 아이가 제 어미에게 그랬답니다. 귀하께 첫눈에 반했다고요.”
“….”
“어떠십니까, 라파 씨.”
아니, 기다려.
방금 만난 마그리트라고 하면 확실히 귀엽고 사랑스럽고 똑똑해 보이기는 했다.
인형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예뻤고.
하지만 말이다, 아가씨라고 표현하기는 했어도 그 아이는 일곱 살이다.
얼마 전까지 여섯 살이었던 아이야.
이번에 데려온 건 백작부인이 다도회에서 다른 가문의 아이와 만나게 하기 위함이라고 들었다.
가까운 가문끼리는 그런 식으로 어릴 때부터 얼굴을 맞춰 인맥을 쌓거나 약혼자를 찾는 모양이다.
그런데 그 아이가 나한테 첫눈에 반했다고?
일곱 살짜리가?
그러고 보니 그 아이가 유난히 나를 반짝거리는 눈으로 쳐다본 것 같다.
에노르토스 사람을 본 게 처음이라 그런 줄 알았는데.
“….”
아니, 설마, 정말인가.
정말로 나한테 반했어?
요즘 아이는 조숙하다는 말을 많이들 쓰지만, 이 세상 아이야말로 조숙의 조숙인 것 같다.
하지만 어쨌든 그건 아이가 한 말이다.
오늘은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가 한 달 뒤에는 발명가가 되고 싶다 말하고 열흘 뒤에는 소설가가 되겠다는 게 아이야.
한데 그걸 믿고 실제로 나한테 시집보내겠다니.
‘이 남자 제정신인가.’
무심코 볼크 백작의 얼굴을 쳐다봤다.
하지만 아무래도 농담이 아닌 것 같다.
진짜로 진지하게 말하는 것 같다.
제발 용서해 줘.
나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이런 일은 제 독단으로는 결정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마그리트 아가씨에게 정부인도 아닌 자리는 너무 가혹합니다. 귀여운 아가씨의 미래는 조금 더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볼크 백작은 안심한 듯 아쉬운 듯, 왠지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그날 저녁, 사무관 그레고르한테서 백작가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작년에 물밑에서 마그리트 아가씨의 혼담이 있었던 모양이다.
상대는 후작가의 당주로 42세였다고 한다.
백작가에서 거절할 수 없는 혼담이었다며 그레고르가 분개한 얼굴로 말했다.
“후작은 혼인이 성립하기 전에 갑자기 사망했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그대로 혼인하게 되었겠죠. 사교계에서 악명 높은 사람이었어요. 불행히도 새 후작 역시 소문은 좋지 않습니다.”
꼬마 아가씨가 나를 반짝거리는 눈으로 본 건, 어쩌면 내가 좋아서가 아니라 내가 강하니 나쁜 놈을 물리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반드시 그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얼마나 무서웠으면.’
일곱 살짜리가 거구의 야만인을 보고 반했단 말을 하게 만드는 놈들은 용서해서는 안 된다.
“그레고르, 그 후작가가 어디인지 알려주게.”
앞으로 만날 일이 있다면 그 후작가 놈들은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