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126)
126 아예 그럴 기회를 주지 않을게
연회가 열리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있다.
그 기간 동안 나와 타티아나는 연회복의 마지막 조정을 하거나 각자 모자라는 부분을 보충하고 있었다.
나는 승마를 배우기 시작했다.
말은 떨어질까 무서워서 싫지만 잘 생각해 보면 흔들림에 있어서는 마차보다는 말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말을 탄다고 토하지는 않겠지.
공작가의 마차는 제법 훌륭하기 때문에 멀미는 거의 없어도, 언제나 그 마차만 탈수도 없다.
다른 마차를 타는 경우도 있을 텐데, 그때마다 멀미한다면 폼이 나지 않지.
엉덩이도 아프고.
게다가 훗날 어머니의 부족이 사라문즈 공국으로 이동하게 되면, 나 역시 말을 타는 편이 아무래도 좋을 것이다.
그들과 함께 다니게 될 테니까.
타티아나는 예절에 관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있다.
그녀는 잘 못한다고 우울해하지만, 원래 귀족 예법은 어릴 때부터 몸에 익히지 않으면 힘들다.
예절 중에는 일부러 배우는 것도 물론 있지만 대부분은 어릴 때부터 주변을 보고 익히는 것이다.
식사할 때, 대화할 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단순히 부모와 마주 앉아 있을 때도, 귀족의 아이는 은연중 그게 몸에 밴다.
솔직히 말하면 평민으로 자란 타티아나가 귀족에게 귀족으로 보이는 건 원래 불가능한 일이었다.
평민이나 하위 귀족한테는 통할지 몰라도, 상위귀족에게는 어림도 없다.
어설프게 흉내 낸다 해도 어딘가에서는 반드시 드러난다.
하지만 여기에서 타티아나의 특수성이 나타났다.
원래 타티아나는 태생부터 평민이 아니라, 네다섯 살 정도까지는 왕가의 일원으로 컸다.
그것도 아버지인 공왕이 집착했기 때문에 엄청나게 자주 만났을 것이다.
당연히 왕가의 예법은 무의식 속에 남아있었다.
거기에 더해, 마녀 도로테는 내 추측이지만 지구인이다.
적어도 지구에서 살았던 기억을 가진 환생자였을 거다.
평민의 거친 행동과는 달리 교양이 스며있다.
지구인은 아무도 그게 교양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지만, 이 세상에서는 귀족이라 해도 무식하고 행동이 거친 경우가 있다.
상위귀족에 그런 일은 없지만 하위 귀족 중에서는 평민과 다를 바 없는 행동밖에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심지어 글자조차 모르는 귀족도 드물지만 있단다.
그런 세상에서 추정 지구인인 도로테의 교육을 받고 자란 타티아나의 교양은 절대로 질 낮지 않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의 우연은 타티아나의 스승이 현혹의 도로테였다는 것.
원래라면 어릴 때의 기억은 자라면서 흔적도 없이 잊혀진다.
보통 사람이 서너 살 때의 일을 또렷하게 기억하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거의 없다.
그러니 오랫동안 평민으로 살아왔다면 몸에 남는 것은 평민의 흔적뿐일 것이다.
하지만 기억이 봉인되었다 그대로 되살아난 덕분에 타티아나는 얼마 전까지 왕가에 있었던 것과 비슷한 상태가 되었다.
원래 스며있던 예절이 그대로 되살아나, 배우면 배우는 대로 귀족의 몸가짐이 붙는다.
본인은 힘들어하지만 가르치는 사람이 보면 놀라울 정도로 잘하고 있었다.
할머니와 매디즈 부인이 타티아나의 교육에 열성인 건 그점 때문이기도 하다.
타티아나에게는 불행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가르치면 스펀지처럼 흡수해 점점 더 완벽해지니 저절로 의욕이 나는 거다.
이번에도 연회까지의 빈 시간을 알뜰하게 활용해, 할머니는 몇몇 귀부인을 불러 타티아나와 만나게 하고 있었다.
매일 실전과 교육을 겸한 다도회가 열린다.
그 사이사이 다른 것도 배우고 익히고, 뭐, 타티아나는 죽을 것 같겠지.
지금처럼.
비틀비틀 걸어온 타티아나가 테이블에 엎드렸다.
“힘들어요… 무슨 차를 몇 시간씩 먹으면서 끊임없이 대화하는지. 오늘은 꽃에 관해서 이야기했어요. 꽃의 아름다움과, 뭐라더라, 아, 기억도 안 나네.”
그녀의 입에서 풍선 바람 빠지는 듯한 한숨이 새 나왔다.
여자들은 그런 이야기하는구나. 꽃 얘기 같은 거.
하지만 길게 쉴 수도 없다.
곧바로 매디즈 부인이 데리러 왔다.
“부인, 죄송합니다. 드레스 조정을 할 시간이에요.”
디자이너인지 재단사인지 모르겠는데 이름이 다소 괴상한 부인이 타티아나의 연회복을 맡고 있다.
지금 왕도에서 가장 유명한 의상실 주인이라고 한다.
공작령에서 가봉용 드레스를 만들어 왕도의 가게에 보내 제작하기 시작했다고 들었다.
한두 벌이 아니라 수십 벌이다.
타티아나의 드레스가 귀족 여성으로는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에 봄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용으로, 또 거기에서 낮과 밤에 입는 드레스로 나누어 여러 벌 주문했다.
당연히 그 드레스는 모두 하나씩 가봉한다.
이 세상에는 아직 대량 생산 같은 게 없어 옷은 맞춤이 기본이고, 지구에서처럼 정해진 치수의 옷 패턴도 없는 모양이다.
그래서 대부분 직접 치수를 재고 다시 옷을 만드는 과정마다 가봉해가며 체형에 맞춘다.
그러다 보니 타티아나는 드레스 가봉하는 것만으로도 한세월이다.
연회가 끝나도 한동안은 왕도에서 가봉해야 하는 게 아닐까.
매디즈 부인 앞이라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귀부인 흉내 내며 걸어가는 타티아나가 조금 불쌍해 보였다.
‘어라.’
긴 드레스가 바닥을 쓸고 지나갈 때 이상한 게 보인 것 같다.
타티아나의 치마가 움직일 때마다 나무뿌리 잔가지 같은 것이 꼬리처럼 흔들리며 스르륵 끌려갔다.
‘만드라고라인가.’
요즘엔 잘 보이지 않아서 얌전히 정원 같은 곳에 있나 했더니 저런 식으로 타티아나한테 붙어 다녔던 모양이다.
시종이 문을 열어주어 타티아나가 막 나가려는데 렐라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려와 치마에 부딪쳤다.
“어머, 렐라야. 또 만드라고라 찾아다니는 거니?”
“삐비비비비비.”
타티아나가 웃자, 렐라가 대답하는 것처럼 요란하게 울면서 날개를 펄럭였다.
“만드라고라를 너무 괴롭히면 안 돼.”
“삐비?”
렐라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파르르 몸을 떨었다.
그리고 바쁜 것처럼 타티아나의 드레스 주위를 한 바퀴 빙 돈다.
가끔 냄새 맡는 것처럼 부리를 드레스에 콕콕 쪼았지만 그뿐이었다.
렐라는 다시 뒤뚱거리며 어디론가 달려가 버렸다.
“만드라고라가 요새는 잘 도망치네요. 렐라가 종종 못 찾고 저렇게 돌아다녀요.”
타티아나는 나한테 그렇게 말한 뒤 웃으며 방을 나섰다.
아무래도 자기 치마 속에 만드라고라가 붙어 있는 건 모르는 모양이다.
“….”
알려줘야 하나.
그러고 보니 조금 이상하다.
렐라는 냄새를 잘 맡는 게 아니었나.
그래서 녀석을 버려도 날 쫓아온 게 아니었어?
한데 왜 타티아나 치마 속의 만드라고라는 몰라본 거지.
뭔가 조금 이상하다.
어쩌면 렐라는 냄새를 잘 맡는다기보다는 나를 잘 찾아내는 거였을까.
‘설마 이 세계의 불사조한테는 레이다 같은 게 탑재되어 있는 건 아니겠지.’
목표를 조준하면 저절로 흔적을 더듬을 수 있다든가, 뭐 그런 거.
“….”
하하.
그런 판타지가 있을 리 없지.
불사조에 만드라고라, 정령 붙은 갑옷 기사까지 만나느라 뇌가 오작동을 일으키는 모양이다.
자신의 바보 같은 생각에 머리를 젓는데, 그레고르가 들어왔다.
“도련님, 말씀하신 슈테인 후작의 보고서가 올라왔습니다.”
그레고르의 손에 두툼한 종이 뭉치가 들려 있었다.
“….”
생각보다 너무 두껍다.
내가 원한 건 그저 한두 장짜리 간략한 보고서였는데.
저렇게 두꺼운 건 하루가 걸려도 다 못 읽어.
슈테인 후작한테 그런 열성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나는 단지 그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묵사발을 만들 수 있을지가 알고 싶었던 것뿐이니까.
내 표정을 보고 그레고르가 미소 지었다.
“도련님, 제가 간략하게 보고드릴까요?”
설마 그레고르는 이 서류를 모두 읽은 건가.
‘조사는 다른 사람이 했을 텐데.’
전에도 생각했지만 사무관이라는 직업은 블랙이다.
그것도 상당히 진한 블랙.
“그렇게 해주게. 그 많은 걸 다 읽기는 어려울 것 같아.”
“알겠습니다. 그럼 우선 슈타인 후작의 대략적인 정보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의 후작은 둘째 아들이라고 합니다….”
원래 후계자는 몇 년 전에 낙마 사고로 죽고, 그 뒤에 지금의 후작이 후계자로 지명되었다.
“성인이 된 뒤에 후계자가 되었기 때문에 지금의 후작은 당주로서의 소양이 부족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부친도 사망해서 그걸 보충할 사람이 없는 것 같아요. 아마 이후의 영지 경영에 문제가 될 겁니다. 게다가 후작이 된 지 얼마 되지 않는데 벌써부터 봉신가문과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원래 슈타인 후작가는 기질이 거칠기로 소문이 나 있지요.”
슈타인 후작가 핏줄은 대체로 성격이 급하고 화가 나면 앞뒤를 가리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봉신가문과도 충돌이 많아 원래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영지 경영도 괜찮다고 할 수는 없는 모양이다.
세율이 높고 마수가 자주 출몰하여 죽거나 도망치는 영민이 제법 된다.
아사자도 매년 겨울마다 생겼다.
흉작이 오면 다른 영지보다 큰 타격을 받지만, 그래도 세율이 낮아지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슈타인 후작가는 돈에 큰 부자유가 없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적당한 상대를 무리하게 압박해 삼키는 돈이 제법 됩니다. 상가를 압박한다던가, 가문의 약점을 잡아 그걸 빌미로 돈을 뜯어내는 일도 있더군요. 그뿐 아니라, 세금을 내지 못한 영민은 노예로 떨어뜨려 판매합니다.”
혼인도 이용한다.
죽은 후작은 아들을 결혼시킬 때 다양하게 배상금을 받을 수 있도록 방도를 마련해두었다.
그중 하나가 혼인 뒤 3년이 되도록 아이가 없는 경우 이혼한다는 것인데, 그 자체는 원래도 허용되는 일이다.
후작가가 특이한 것은 그렇게 이혼하는 경우에 지참금을 배상금으로 몰수한다는 점이었다.
“그게 보편적인 일인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보통은 이혼할 때 지참금은 돌려주지요. 하지만 후작가에서는 동등한 가문이 아니라 한 단계 낮은 집안과 혼인을 맺습니다. 그러면서 상대에게 불리한 계약을 하는 거죠.”
그레고르의 얼굴이 씁쓸한 기색이 떠올랐다.
“후작가에서 이혼당하는 여성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이전에도 있었지요. 이건 겉으로 나온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이전의 여성은 후작가 쪽에서 아이가 생기지 않도록 조처했다고 합니다.”
그 조처라는 건 때로 마녀의 약을 사용해 아이가 생기지 않게 하거나, 같은 침대에서 잠은 자지만 관계를 피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그뿐이 아닙니다. 일부러 여성한테 다른 남자를 접근시키거나 둘이 있는 모습을 발견하는 식으로 흠집을 낸 일도 있습니다. 어쨌든 여성의 잘못으로 이혼하는 상황을 만드는 거지요.”
“….”
“그런 경우에도 배상으로 지참금을 요구합니다.”
그건 영주가 아니라 도적이 아닐까.
내 표정을 읽고 그레고르가 입을 열었다.
“드물기는 합니다만, 이런 가문은 슈타인 후작가 말고도 있습니다. 이곳보다 심한 곳은 별로 없지만요. 그래서 우리 공작가의 관리나 영민들의 충성이 더 높은 겁니다.”
엄격하게 후계자를 교육하고 제대로 영지를 경영한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그 영지에 사는 모든 이가 구원받는다.
발테르 공작가는 거기에서 한 발 두 발 스무 발 나가 조금이라도 더 영민이 잘 살 수 있게, 봉신 가문의 신뢰를 얻도록 노력하는 곳이다.
“그런 가문은 존경받지 않는 게 더 어렵습니다.”
그레고르가 가슴을 쭉 펴더니, 침을 튀기며 공작가에 대한 찬양을 늘어놓았다.
그래, 그건 알겠는데, 삼천포로 빠지지는 말자.
내가 웃자, 그레고르가 겸연쩍은 듯 고개를 조금 내렸다.
“죄송합니다, 도련님. 제가 조금 흥분했습니다.”
“그건 괜찮아. 한데 이번 후작의 성격은 어떤가?”
내가 궁금한 건 그 후작이라는 남자를 어떻게 하면 연회에서 도발하는가 하는 점이다.
지금 상태로는 그 후작한테 내가 손댈 건더기가 없다.
어머니의 색깔론이 지금 사용되는 게 아니라 사실은 옛날 옛적 고리짝 시대의 유물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내 기준은 여전히 색깔론이다.
나는 그 후작 놈이 정말 싫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게 덤비지도 않는데 먼저 손댈 수는 없는 거다.
그러면 그야말로 무법자 야만인일 뿐이고, 지금은 내 뒤에 할아버지나 할머니, 공작가의 많은 사람들이 있기도 하니까.
어쨌든 저쪽에서 먼저 나한테 손을 대줘야 내 주먹이 나가든가 발이 나가든가 할 수 있는 거다.
“지금 후작은 굉장히 성급하고 거친 성격이라고 합니다. 화를 참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죽은 후작이나 형과도 사이가 굉장히 안 좋았던 게, 뭔가 기분 나쁜 말을 한마디라도 들으면 상대가 형이든 아버지이든 상관없이 주먹을 휘둘렀다고 합니다.”
그래서 죽은 후작한테 의절 당할 뻔한 적도 있다.
하지만 죽은 후작에게는 적자가 둘뿐이었다.
공작가와 달리 다른 가문에서는 서자가 후계자가 되는 일은 없다.
정 그렇게 하려면 입양이라는 절차가 필요했다.
그나마도 봉신 가문이나 친척이 반대하는 경우가 있고, 다소 복잡한 모양이다.
잘못해서 후계자가 죽기라도 하면 친척한테 작위가 넘어가 버릴 확률이 높기 때문에, 적자가 있다면 그 적자를 안고 가는 것이 편하다.
그래서 차세대 후계자가 태어날 때까지는 가문 안에 아들 한 명을 그대로 두는 경우가 많다.
한 마디로 다음 후계자가 태어날 때까지는 장가보내지 않는 것이다.
지금의 후작은 그 덕분에 가문에서 축출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 아버지한테도 주먹을 휘두를 정도였다고.”
나는 히죽 웃었다.
조금만 도발해도 그 남자는 쉽게 타고 올 것 같다.
그레고르가 자세를 바로 했다.
“도련님의 실력이 최강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디 조심해 주세요. 슈테인 후작은 결투를 신청한 뒤 약속 장소에는 고용한 자를 보내는 식으로 상대를 죽인 경우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정정당당한 사람이 아닙니다. 어떤 방법을 사용할지 모르는 자예요.”
“그래, 알았네. 걱정하지 말게.”
약속 장소에 다른 사람을 보낸다면, 절대로 그런 식의 결투는 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라.
아예 그럴 기회를 주지 않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