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133)
133 불사조를 만나다니 운이좋군
‘그나저나 이 갑옷기사들은 어쩌지.’
아버지와 내 앞에 딱 버티고 앉아 움직이지 않는다.
눈도 없는데 검은 투구 안에서 강렬한 시선이 느껴졌다.
놓치지 않겠어, 그런 집념이 보여 조금 무섭다.
갑옷기사들은 자신들의 뜻이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는 걸 알았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채 다가온다.
갑옷기사는 모두 26.
그것만으로도 압박감이 느껴지는데, 말과 갑옷기사가 각기 따로 다가오고 있다.
말 역시 갑옷기사처럼 자신의 뜻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말 갑옷과 천을 뒤집어쓴 아래, 잘 보면 이들 역시 눈이 없었다.
텅 비어 있다.
당연히 이 말에는 다리도 없다.
이놈들은 정령보다 유령에 더 가까운 게 아닐까.
그런 놈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니 조금 긴장되었다.
어머니는 이미 아버지 몸에 손을 대고 있다.
위험해지면 재빨리 안고 도망칠 생각인 것 같다.
‘하지만 도망쳐도 쫓아오겠지.’
지금처럼.
이놈들은 시간이 걸려도 나 혹은 아버지를 찾아올 거다.
도망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데리고 다니는 수밖에 없는데.’
이놈들이 말하고 싶은 건 모르겠지만 쫓아다니는 건 확정인 것 같고, 결국엔 달고 다녀야 할 것이다.
“….”
아니, 잠깐 잠깐 잠깐만.
지금까지 내가 만난 정령은 모두 실체가 없는 것이었다.
저주의 갑옷은 투명한 방어막이 되었고, 어항 투구는 정전기를 일으키지만 평소에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저 갑옷기사들은 아무래도 그런 종류와는 다를 것이다.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타티아나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저기, 라파 씨, 쟤들은 갑옷 못 벗는 거겠죠? 저주인 것 같지도 않으니 부서지고 해방된다는 일도 없을 것 같고.”
“아무래도 그렇게 보이지… 응, 그럴 것 같아. 어쩌면 저 갑옷 자체가 힘을 지닌 게 아닐까 싶네.”
“음… 힘들겠네요.”
타티아나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그렇겠지.
내 눈에 보인다는 건 남들 눈에도 보인다는 뜻이다.
저놈들이 뭔가 이상한 짓을 하면 다 내 탓이 되어버릴 거다.
안 돼.
그렇게 되면 진짜 곤란하다.
게다가 내 몸에 붙어있는 정령에게는 발이 없지만 저놈들에게는 스스로 돌아다닐 수 있는 다리가 있고, 말썽을 부릴 힘도 있다.
‘이건 진짜로 큰일이네.’
정령의 갑옷이 내 말에 따라 방어막을 내는 것처럼, 이놈들도 명령을 들어줄까.
만일 그게 안 되면 박치기로 모조리 없애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언제든 놈들에게 박치기할 수 있게 준비하면서 입을 열었다.
뭐, 준비라고 해봐야 마음의 준비일 뿐인데.
“모두 멈춰 서. 더 이상 다가오지 마라.”
우리를 포위하듯 다가오던 갑옷기사들이 일시에 멈춰 섰다.
놈들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너희들이 왜 나와 아버지한테 다가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평범한 인간이다. 너희들과는 사는 방식도, 장소도 달라. 그러니 너희는 너희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 줘.”
마지막 말이 명령 아닌 부탁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내 마음이 그래.
제발 돌아가 달라고 빌고 싶다.
들어준다는 확신만 있으면 여기에서 무릎도 꿇겠어.
“….”
“….”
갑옷기사와 말들이 가만히 나를 쳐다보았다.
까만 어둠이 나를 향해 쏟아진다.
뭔가를 호소하는 것 같은데 전혀 모르겠다.
‘정말, 뭘 말하고 싶은 거야.’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알겠다.
네놈들, 돌아갈 생각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구나.
문득 내 주변의 공기가 웅성웅성했다.
흔들흔들, 보이지 않는 작은 벌레들이 내 주변에서 춤추는 것 같다.
공기가 날아다닌다.
나는 허공을 보았다.
떠돌아다니는 공기, 그중에 먼지처럼 미세한 뭔가가 있었다.
왠지 갑옷기사와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확실하게 이렇다, 라고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문득 누군가의 시선을 느낀 것 같은 느낌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것은 어라, 싶은 순간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착각이었을까.
“….”
철컹.
철컹.
철컹.
갑옷기사들이 소리 내며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 순간이었다.
내 몸에 뭔가가 닿은 듯하더니 마음에 소리가 울렸다.
… 알아줘… 알아줘… 제발… 우리의 마음을… 알아줘. 너를 지키고 싶다… 우리 왕의 아이야….
그것은 거의 비명에 가까운 울음 같았다.
절절함이 마음을 친다.
하지만 순식간에 사라졌다.
뇌가 만들어 낸 환상 같다.
“….”
갑옷기사들은 여전히 내게 손을 내밀고 있다.
그리고 일부는 아버지에게.
그들의 모습에 변한 것은 없다.
여전히 철갑옷 밑에는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어둠이었다.
하지만 어쩐지 알아버렸다.
그들의 시선이 얼마나 슬프고 절실했는지 알아버렸다.
“….”
하아… 어쩔 수 없나.
이것들이 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붙어오는 건 확정인 것 같다.
그리고 아마 나나 아버지를 지키고 싶어 하는 것 같아.
‘그렇다면.’
나는 아버지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버지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갑옷기사들을 보고 있었다.
두렵지도 않은 모양이다.
“아버지, 저놈들은 아무래도 우리를 지키고 싶은 것 같은데, 아버지가 가지실래요?”
생각하면 그게 최선이 아닐까.
아버지한테 귀족이나 인간의 사정 같은 건 전혀 무시하고 지키는 충견이 생기는 셈이다.
물론 그만큼 말썽도 따라오겠지만, 뭐, 아버지라면 어떻게든 잘 처리하지 않을까.
“주겠다고 하면 줄 수 있는 거야?”
아버지가 웃는다.
그건 모르겠지만 따라가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요.
“너희가 어떤 존재인지는 모르겠지만, 보호하고 싶은 거라면 나는 괜찮으니까 아버지를 지켜 줘.”
한번 말해보자, 갑옷기사들이 몸을 크게 움직였다.
부산하게 철모자를 이리저리 돌리며 서로를 쳐다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지만 저희끼리 대화하고 있는 모양이다.
토론에는 말도 한몫 끼는지, 투구와 덮고 있는 천 아래서 몸을 흔들거나 발을 굴렀다.
발은 보이지 않지만 발굽 소리가 난다.
묘한 데서 현실감 있는 녀석들이다.
갑옷기사와 말은 서로를 쳐다보며 무언의 회의를 하더니 반으로 갈라졌다.
26쌍이었던 갑옷기사와 말이 약간의 공간을 두고 나뉘어 선다.
그리고 두 개의 그룹이 나와 아버지를 각기 보았다.
절반은 나를 지킬 생각인 것 같다.
필요 없어.
제발 부탁이니까 아버지에게 모두 가라.
내 생각을 알아차렸는지, 갑옷기사와 말이 저마다 나를 쳐다보며 또다시 뭔가를 호소했다.
가만히 쳐다본다.
물론 눈은 없지만 시선이 느껴지는 거야.
매우 강렬하게.
“진짜 필요 없거든. 아버지한테 가줘. 부탁이다.”
내가 말하자 내 쪽에 붙을 예정인 갑옷기사들이 저마다 팔을 뻗었다.
철거덕 갑옷이 부딪혀 소리를 낸다.
또다시 뭔가 말하는 모양인데 전혀 모르겠다.
하아.
너희들 맘대로 해라.
내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자 아버지가 웃는다.
타티아나는 지난 내 고생을 알고 있어서인지 살며시 등에 손을 대고 톡톡 두드려 주었다.
“괜찮아요. 스승님이 항상 말씀하셨는데,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거죠.”
타티아나, 그거 이런 때 쓰는 게 맞는 거야?
‘하아.’
멀찍이 서 있는 왕궁 경비병들의 시선이 따갑다.
“이것들이 우리 공작가에 속하게 된다면 빨리 손을 써야겠구나. 이들이 무슨 일을 하든 공작가 책임이 될 거야. 잘못하면 이번 왕궁 침입에 대한 것도 우리 가문의 실책이 될 수 있다.”
… 그러고 보니 그렇다.
부상당한 자도 있는 것 같으니 잘못하면 공작가가 다 뒤집어쓸지도 모를 일이다.
할아버지가 어려운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아버지가 갑옷기사들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건 쉽게 해결될 겁니다. 저들인지는 몰라도 왕가에는 갑옷기사에 대한 기록이 있을 거예요. 내가 알기로는 이 나라가 성립되고 난 뒤 상당 기간까지 정체불명의 갑옷기사단이 나타난 적이 있습니다.”
“그게 사실이냐?”
할아버지가 묻자 아버지가 히죽 웃었다.
“예, 아버지. 왕가에서는 저들을 왕국의 수호신이라 부른 적이 있습니다. 뭐, 아주 먼 옛날의 기록이지만요.”
타티아나는 이게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겠는 모양이다.
내 옷을 살짝 당기며 물었다.
“왕가가 이들의 존재를 알고 있으면 뭔가 좋은가요?”
“만일 아버지 말대로 왕가가 수호신으로 인정한 적이 있다면, 저 갑옷기사가 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있다는 뜻이 돼. 그러면 뭘 해도 우리 잘못은 아니지. 수호신을 우리 인간이 어쩔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아, 그래서 아버지는 처음부터 저들을 보고도 놀라지 않은 건가.
만난 적이 없다는 건 사실이지만 저들의 정체를 대강 짐작은 하고 있었던 걸 거다.
한데 할아버지도 모르는 걸 아버지는 어떻게 알고 계셨을까.
이상한 마음에 아버지를 보자 어깨를 으쓱하며 웃는다.
“예전에는 힘을 얻기 위해 정말 노력했으니까. 그때 알게 된 거다.”
“….”
“설마 이제는 필요 없다고 생각한 시점에서 얻게 될 줄은 몰랐어.”
“….”
부모님의 혼인이 어쩌면 아버지의 음모가 아니었을까 생각하는 건 지나친 거겠지.
그사이 조금 높은 직책의 사람이 온 모양이다.
멀찍이 떨어져 있던 경비병을 밀치고 한 명이 다가왔다.
“죄송합니다, 공작님. 혹시 그 갑옷기사는 공작가의….”
그렇게 말하며 갑옷기사와 말을 보던 남자의 눈이 커졌다.
남자의 시선은 말의 다리를 향해 있었다.
말등에서 늘어진 천이 워낙 길어 잘 보이지 않지만 자세히 보면 말은 허공에 붕 떠 있었다.
당연히 보면 놀란다.
후다닥 뒤로 물러서는 남자를 보고 아버지가 우아한 미소를 띠었다.
“아니, 우리도 이들은 지금 처음 보았다. 왠지 이자들은 우리에게 순종하는 듯하지만… 지금 당장은 이유를 모르겠으니 본 그대로 폐하께 전하게.”
“그, 그, 알겠습니다!”
새하얗게 질려있던 남자가 아버지와 눈이 맞자 얼른 고개를 숙였다.
남자의 얼굴이 왠지 붉다.
설마 아버지 미모는 남자한테도 통하는가.
“….”
아니, 아니, 그건 아닐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외모라 해도 아버지는 보면 남자라고 알 수 있고, 전혀 여성스럽지 않다.
남자가 반할만한 요소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을 것이다.
단지 놀라서 그런 거겠지.
너무 놀라서 얼굴이 빨개진 것뿐이다.
그때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의 시선이 소리의 진원지를 향한다.
어머니가 마차 옆구리에 주먹을 박고 있었다.
경비대 남자를 노려보고 있다.
“히익!”
붉은색이었던 남자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색이 빠졌다.
새하얘진다.
“그, 그, 그러면 저는 보고를 위해 이만 실례하겠, 히익.”
어머니가 노려보자, 남자는 허둥지둥하며 도망치듯 이 자리를 떠났다.
“….”
어머니, 마차 옆구리 부서졌는데요.
엄청나게 튼튼한 마차라고 들었는데 어머니 손에 잡히면 두부처럼 쉽게 부스러지는 것 같다.
살짝 할아버지를 보자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부서진 마차를 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쿡쿡 웃고 있다.
“…..”
아버지, 웃을 때가 아닙니다.
아시겠지만 그거 굉장히 비싼 거예요.
무지무지하게.
‘내가 마수 몇백 마리를 잡아야 겨우 마차 한 대 값이 될 만큼 비싼 건데.’
당분간은 돈벌이에 치중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다시 마차를 타고 출발했지만, 왠지 갑옷기사들은 따라오지 않았다.
그들은 마치 그리운 걸 보는 것처럼 왕궁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잘됐네.
빨리 공작가로 돌아가자.
그렇게 생각해 마부를 재촉해 저택으로 돌아가자, 우리가 마차에서 내릴 즈음 갑옷기사들도 달려왔다.
“엄청나게 빠르네요.”
타티아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도 놀랐어.
마침 불사조와 렐라가 사냥에서 돌아온 모양이다.
렐라는 어미 등에 올라타 있고, 불사조 발톱에는 커다란 양 한 마리가 잡혀 있었다.
빙빙 허공을 몇 바퀴 돈다.
메에에에에, 양 울음소리가 애처롭게 하늘에서 울렸다.
“….”
양… 양이다.
이 근처에 야생 양이 살고 있나.
“저거… 혹시….”
타티아나가 주저하는 것처럼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아니, 그건 아니겠지. 설마….”
내가 알기로 이 세계 사람들은 양과 염소를 풀 있는 곳으로 가서 묶거나 풀어놓는다.
하지만 그런 가축에는 대부분 끈이 달려 있다.
몸에는 낙인도 넣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저 양은 분명히 야생 양일 거다.
이 세계에도 어딘가에는 야생 양이 살고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는데 문득 양의 목에서 뭔가가 길게 늘어진 것이 보였다.
“….”
내 눈이 고장 난 게 아니라면 저건 분명 끈이다.
눈썹이 저절로 치켜 올라갔다.
“이놈들!”
내가 벼락같이 소리치자 불사조가 허공에서 홱 몸을 돌렸다.
렐라가 어미 등에서 뭔가 소리치고 있는 모양이다.
삐삐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소리쳤다고 화가 난 것 같다.
“이런 곳에서 불사조를 만나다니, 운이 좋군.”
어머니가 중얼거리더니 어깨를 뒤로 젖혔다.
손에 도끼가 들려 있다.
설마 도끼를 던져 죽이려는 건가.
이 거리에서?
아무리 어머니라도 그건 좀 불가능하지… 아니, 불가능하지 않다.
어머니라면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왜?
어머니의 이두박근 삼두박근이 불끈불끈한다.
이제 막 도끼가 던져지려는 걸 보고 나는 정신 차렸다.
지금 이렇게 넋놓고 있을 때가 아니야.
불사조랑 렐라가 죽는다.
“어머니!”
나는 깜짝 놀라 어머니 팔을 붙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