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14)
014 솔직히 조금 두근거렸다
“무슨 일이야?”
뮤엘이 억제된 소리로 묻자, 마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 이런 일은 굉장히 드문데.”
“혹시 야만인이라서 그런 거 아니야? 그래서 네 능력이 전혀 통하지 않는 건….”
“아니, 그런 건 아니야.”
마녀는 강하게 부정하며 생각하는 얼굴이 되었다.
“야만인이라서가 아니야. 저 사람에게 뭔가 있어. 보통 사람과 다른 게.”
“그게 뭔데?”
“….”
마녀가 입을 다물었다.
곰곰이 뭔가 생각한다.
뮤엘은 들고 있던 악기로 마녀의 몸을 밀었다.
류트에 부딪히면서 마녀가 앞으로 휘청했다.
“가! 지금 그놈의 숙소로 가서 다시 한번 해봐!”
“안 돼.”
마녀가 고개를 젓는다.
“지금은 위험해. 그 사람이 뭔가 이상하다고 인식했는데 다시 시도하면 절대로 내 능력에 걸리지 않아.”
“그러면 어떻게 할 거야!”
내가 무엇 때문에 마녀와 함께 다녔는데!
그런 생각에 저절로 말투가 험악해졌다.
마녀는 화내지 않고 그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준비가 필요해. 마음을 느슨하게 하는 향과 어둡고 조용한 장소. 그런 곳에서 저 남자를 만나야 돼.”
“….”
문득 이 여자는 왜 화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를 구한 건 우연이었다.
마녀라는 사실을 모르고, 스스로 죽으려고 하는 걸 말렸을 뿐이다.
‘그게 그렇게 고마운 일인가.’
뮤엘은 스스로도 마녀한테 막 대한다는 의식이 있다.
하지만 마녀는 뮤엘이 노래할 때 스스로 춤을 추어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돈을 받고, 때때로 위험한 상황에 처하면 자신의 능력을 사용해서 그곳을 벗어나게 했다.
입장이 바뀌었다면 그는 마녀처럼 고맙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 여자는 자신을 따라다니는 걸까.
그것도 1, 2년이 아니다.
자그마치 이십 년이 훌쩍 넘었는데.
‘마녀라 그런가.’
그래, 마녀라서겠지.
뭔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었지만 왠지 생각이 그쪽으로 향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런 데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저놈, 헬가의 아들을 어떻게든 해야 한다.
“그 남자는 내일 이 숙소를 나갈 거야. 그 전에 어떻게 해야 한다구.”
“….”
마녀가 가만히 그의 눈을 보았다.
“괜찮아. 길드에 등록했다고 했지? 그러면 당분간 이 도시에 머물 거야. 나중에도 기회가 있어.”
“하지만.”
뮤엘이 뭔가 말하려 하자 마녀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괜찮아. 잘될 거야. 걱정하지 마.”
“잘 된다는 보장이 없잖아. 방금도 안 됐는데!”
“괜찮아. 다음에는 잘될 거야. 괜찮아.”
그녀의 말에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다.
마녀는 한 발 가까이 다가와 그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괜찮아, 잘될 거야.”
“… 다음에는 실패해서는 안 돼. 그놈을 반드시 죽여야 한다구. 준비는 확실하게 해.”
뮤엘의 말에 마녀가 작게 미소 지었다.
“그래. 확, 실, 하, 게, 할게.”
“….”
조금 미심쩍지만 그녀를 믿는 수밖에 없다.
뮤엘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뮤엘은 여관 주인을 만나러 걸음을 옮겼다.
그놈을 죽일 때까지는 당분간 이곳에 머물러야 한다.
뮤엘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마녀가 그걸 보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만하는 게 좋아. 피가 나잖아.”
“닥쳐.”
뮤엘이 거칠게 말했지만 마녀의 표정은 변하지 않는다.
그녀는 조용히 미소 짓고 그의 옆을 걸었다.
‘이상한 여자야.’
마녀는 정말 이상하다.
*
짚 매트리스 침대에 벌렁 누워서 캄캄한 천장을 바라본다.
방에 등잔이 있었지만 가급적 아껴 써달라는 말을 들었다.
등잔 그릇에는 금이 여러 개 그어져 있는데 한 칸 이상 기름을 쓰면 추가 금액을 내야 한다.
같은 방이면 다른 사람이 써도 똑같이 금액을 부담한다고 해서 방에 돌아오자마자 등잔불을 껐다.
돈은 아껴 써야지.
‘하아. 내일은 여우털하고 늑대털을 팔아야겠다.’
도시에 막 도착했을 때는 이것저것 일이 많아서 거기까지 생각이 닿지 않았다.
어머니와 아버지 일을 알게 된 충격 때문에 다른데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도시에 들어온 순간 먹고 자고, 모든 게 돈이다.
돈이 필요해.
“….”
전생도 돈이 없어 고생이었는데 여기에서도 시작은 흙수저인가.
아니, 언젠가 어머니 원수들이 들이닥칠 걸 생각하면, 돈만 빌리지 않았을 뿐 인생이라는 면에서 볼 때는 마이너스 시작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정당방위가 인정된다는 점인데, 어쨌든 앞날이 깜깜절벽이다.
‘모피가 좋은 값에 팔려야 할 텐데.’
원래는 모피상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길드에서 모험가와 관련된 일은 모두 하는 것 같으니 제니에게 물어보면 되겠지.
여우털은 노리는 사람이 여럿 있었으니까 비쌀 것 같고, 그 외에도 작은 크기의 가죽이 몇 개 있었다.
작기는 해도 마의숲에서 잡은 거니까 가격은 좀 쳐줄지 모른다.
마의숲이라는 게 이곳에서는 상당한 브랜드인 것 같으니까.
‘늑대를 잡을 때 좀 더 조심할 걸 그랬어.’
늑대 가죽이 가장 큰데 도끼로 때려잡은 탓에 중앙이 크게 찢어졌다.
‘그게 아니라면 여우털보다 비쌀 건데.’
그래도 워낙 큰 놈이었으니까 그럭저럭 괜찮은 가격이 될지 모른다.
짐승털 가격이 어떻게 정해지는지는 잘 몰라도 크면 클수록 좋겠지.
새삼 어머니한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집을 떠날 때 나는 어머니가 챙겨준 헝겊 가방을 몰래 방에다 빼놓았다.
이 시대의 천 가방은 지구의 얄팍하고 가벼운 것과는 다르다.
리넨이나 모직물로 되어 있어서 두껍고 무거웠다.
안 그래도 먹는 물에 냄비며 쇠 국자까지 짐이 많아 죽겠는데, 그런 것까지 들고 다니고 싶지는 않았다.
한데 분명히 집에 놓고 온 헝겊 가방이 나중에 보니까 떡하니 배낭에 있지 뭐야.
그것도 네 개나.
‘어쩐지 가방이 무겁고 뚱뚱하더니.’
아버지가 그랬을 리는 없으니, 배낭 밑바닥에 가방을 넣어둔 사람은 어머니였을 것이다.
그 가방이 없었다면 잡은 짐승털은 거의 대부분 숲에 놓고 와야 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이런 데서 투박한 어머니의 섬세한 사랑을 느낀다.
그래, 소문은 내가 들어도 정말 무섭고 괴상했지만 어머니는 내게 어머니일 뿐이다.
나를 위해서 불사조의 깃털까지 구해오는.
그런데 불사조의 깃털은 어떻게 구했을까.
둥지에 떨어져 있는 걸 가져온 건가.
문득 그게 궁금해졌지만, 꺼억, 트림이 나오는 바람에 생각이 현실로 돌아왔다.
저녁을 지나치게 먹어서 그런가, 배가 더부룩하다.
‘후우….’
숙소의 밥은 괜찮았다.
메뉴는 스튜에 약간 딱딱한 빵이었는데 어머니 음식보다 미안하지만 열 배는 맛있었다.
고기도 별로 없었는데 맛있는 걸 보면 어머니가 요리에는 전혀 재주가 없었던 걸 거다.
숲에서는 그야말로 고기에 물이 약간 들어갔다고 할 정도로 원재료는 좋았으니까.
제니가 말한 대로 양도 많았다.
거짓말 좀 보태면 스튜가 세숫대야 정도 크기의 그릇에 가득이었는데, 모자란 것처럼 보였는지 주인이 한 그릇 더 부어줬다.
덕분에 말 그대로 배를 두드릴 만큼 두둑이 먹었다.
다른 곳은 숙박비와 식대가 따로라고 하던데, 여기는 합쳐서 하루에 1리라다.
밥은 하루 두 끼라고 한다.
‘이미 돈을 낸 거니까 밥은 잊어버리지 말고 꼬박꼬박 챙겨 먹어야지.’
밥을 먹지 않아도 이미 낸 식대는 돌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곳보다 절반 이하로 정말 정말 저렴한 거라고 들었다.
보통은 숙박비보다 식사 가격이 더 비싸다며, 1층에서 식사하는 내내 여관 주인이 옆에 앉아서 떠들어댔다.
원래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인지, 주인도 예전에는 모험가였다거나, 이 도시에서는 멍청히 서 있으면 눈 뜨고 있을 때 코가 베인다는 충고도 들었다.
그러니까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고.
처음에는 내 얼굴을 보고 겁먹은 것 같더니, 손님이 없어서 어지간히 심심했던 모양이다.
‘하아.’
배가 너무 부르면 잠이 오지 않는 건가.
아니면 옆 침대에서 자는 사람이 너무 코를 골아 시끄러워 그런가.
잠이 오지 않는다.
나는 멍하니 캄캄한 천장을 바라보면서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는 여전히 맛없는 어머니의 음식을 먹고 계시겠지.
원래 귀족이었으면 입도 까다로울 텐데 어머니 음식이 맞을 리 없다.
당연히 많이 먹고 싶지 않을 거다.
실제로도 그랬고.
어릴 때는 그걸 보고 아버지 입이 짧아 어머니가 고생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면 완전히 그 반대였다.
사정이야 잘 모르지만 어머니 때문에 아버지가 숲에서 고생인 거지.
“….”
그나저나 어머니는 괜찮을까.
토벌대까지 만들어졌다고 하면 역시 보통 일이 아닌데.
아무리 숲이 넓어도 차근차근 한 군데씩 공략해 가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 집에 도착할지도 모른다.
지금쯤 공작가나 원수 가문에서는 마의숲 지도가 만들어지고 있을 수도 있다.
공작님, 거의 다 됐습니다. 이제 헬가를 죽일 수 있어요.
문득 그런 말이 들려오는 것 같아 끔찍해졌다.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하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옆에서 자는 놈의 코 고는 소리는 참을 수 있다 쳐도, 냄새가 너무 심해서 생각할 수가 없다.
뇌가 썩고 있는 것 같아.
술을 먹었는지, 아니면 원래 잠을 몰아서 자는 유형인지, 그것도 아니면 한 번 자면 뽕을 뺄 때까지 깨지 않는 건지, 내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도 자고 있었는데 아직까지 한 번도 깨어나지 않았다.
어쨌든 이제 더는 한계다.
못 참겠어.
나는 등잔불을 켜고, 자는 남자의 뒷덜미를 덥석 잡았다.
그대로 뚜벅뚜벅 걷는다.
“… 으… 음… 응…? 응? 뭐, 뭐야, 뭐야!”
방을 나오는데 간신히 잠에서 깬 남자가 팔을 허우적거렸다.
“당신 뭐야! 내가 누군 줄 알고….”
버럭 소리치다 말고 남자의 목소리가 사그라들었다.
나는 남자를 세우고 다시 목덜미를 잡았다.
옷이 위로 올라가 목이 괴로운지 남자가 컥컥거린다.
“사, 사, 사, 살려 주세요! 돈은 여기, 여, 여기에 있습니다. 제발 살려 주세요!”
남자가 한 손으로는 목을 조이는 옷을 늦추기 위해 목 부위를 잡고, 다른 손은 바지 허리춤 안쪽에 넣었다.
허리 부분 안쪽에 돈 숨기는 주머니가 있는 모양이다.
남자가 옷을 들치자 썩은 달걀 같은 냄새가 확 풍겼다.
“돈 빼앗으려는 것도, 죽이려는 것도 아니니까 옷 속에서 손 빼고 입 다물어요.”
부탁이니까 입 열지 마라.
손도 팔도 다리도 움직이지 마.
그럴 때마다 냄새가 풍겨서 내가 죽을 것 같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남자 역시 내 마음을 짐작한 것 같다.
입을 딱 다물고 조용히 나한테 질질 끌려왔다.
어쩌면 다른 사람한테도 수없이 냄새난다고 들었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계속 닦지 않았다면, 그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난 놈이다.
이곳이 아니라 무협 소설 세계에 태어났다면 거지들의 대장, 개방 방주 감이야.
남자를 끌고 숙소 뒤쪽 몸 닦는 곳으로 가서 놓았다.
“닦아요.”
“네.”
“말하지 말구요.”
“….”
남자가 고개를 조금 끄덕였다.
물을 조금씩 묻혀서 머리카락을 닦고 몸을 닦는다.
지금까지 맡았던 냄새는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숨을 쉬지 못하고 손짓으로 한 번 더 닦으라고 지시했다.
남자는 끝까지 한 번 닦고, 다시 몸을 닦기 시작했다.
안 돼.
다시 닦으라고 손짓했다.
이 사람, 대체 얼마나 안 닦고 산 거야.
한 번 닦을 때마다 양파 껍질 벗기는 것처럼 새롭게 냄새가 난다.
내가 남자를 끌고 나올 때 소리가 났던 모양이다.
주인이 등잔불을 들고나왔다.
남자가 씻는 걸 보더니 눈이 들고 있는 등잔만 해졌다.
나한테 엄지손가락을 척 올리더니 잠시 뒤에는 포도주를 한 잔 가져왔다.
“우리 집에서 가장 좋은 놈이요. 내 마음입니다.”
“….”
그래, 역시 모두 이 냄새를 못 맡은 건 아니었구나.
다만 이 남자가 씻지 않았을 뿐.
남자는 한밤중에 열심히 몸을 닦았지만 그래도 냄새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숨을 쉴 수는 있게 됐어.
처음에 그 지독한 냄새를 맡지 않았다면 지금의 이 냄새도 못 참았을 거다.
하지만 최악의 사태를 맛보면 그 뒤는 모두 인생의 단맛인 거지.
견딜만했다.
주인은 먼저 들어가고 내가 남자와 함께 방으로 돌아가는데, 복도에 무희가 서 있었다.
같은 방 남자가 힐끔 그녀를 쳐다본다.
무희는 남자에게는 시선을 주지 않고 나를 똑바로 보았다.
“….”
설마 아까 그 눈싸움 또 하는 거야?
나는 예술가가 아니라서 그런 건 영 재미가 없다.
‘그냥 피하자.’
몸으로 하는 싸움이라면 피할 생각이 전혀 없지만 눈싸움에까지 굳이 대응할 필요 없을 거다.
하지만 무희의 생각은 달랐던 것 같다.
내가 그냥 지나치려는데 그녀가 입을 열었다.
“실례합니다. 잠깐 시간 좀 내주실래요?”
휘이, 휘이, 같은 방 남자가 휘파람을 불었다.
묘한 의미로 받은 모양이다.
나도 조금 찔끔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그런 거 안 해요.
그렇게 말하려는데 무희가 다시 말했다.
“후후. 이상한 의미는 아니에요. 정 불편하면 이 복도에서도 괜찮으니까 잠시만 이야기할 시간을 주세요.”
“….”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아직도 휘이, 휘이, 괴상한 휘파람을 불고 있는 남자의 등을 밀어 방으로 들어가라고 한 뒤, 나는 무희와 마주 섰다.
솔직히 조금 두근거렸다.
혹시 사랑 고백일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