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145)
145 시대는 바뀌었다
광기는 광기를 부른다.
그건 순식간에 뻗어가는 산불과 같아서, 어느새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크게 번져 있다.
눈치챘을 때는 이미 늦어 어찌할 방법이 없다.
스스로를 다 태우지 않으면 꺼지지 않는다.
커트는 어머니를 보고 그걸 알았다.
‘어쩌면 지금의 나도 그런지 모르지.’
스스로는 모른다.
광기는 남이 볼 때 드러나는 것이다.
어린 시절 커트가 본 어머니가 자신을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누군가의 눈에 그는 미친 걸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
어쩌면 어머니의 광기가 자기도 모르는 새 그에게 옮겨온 걸까.
어머니는 아버지의 사랑을 바라고, 그걸 위해서만 하루를 살았다.
어머니.
커트는 눈을 감았다.
아버지의 사랑은 다른 사람 눈에 변함없이 보였지만, 어머니에게는 다르게 느껴졌던 것 같다.
한때 아름다웠던 외모는 질투로 추하게 얼룩지고, 섬세하다 불리던 성격은 고드름처럼 뾰족해져 곁에 있는 사람을 다치게 했다.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어린 시절의 어머니는 잘 웃는, 정말 봄 햇살 같은 사람이었다.
그것이 망가지기 시작한 건 아버지가 정부인을 맞이하던 해.
아마 아버지가 정부인을 공작령 저택으로 데려온 그날 어머니는 부숴졌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처음으로 공작가에 맞이한 애인, 최초의 비공식적인 아내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아들을 안겨준 여자.
커트가 태어날 무렵 아버지는 일부러 왕도에서 공작령으로 돌아와 출산을 기다렸다고 한다.
며칠을 기다려 아기를 본 아버지는 보라색 눈동자가 아닌 것에 실망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은 채 아들을 안아, 수고했다 장하다고 어머니를 칭찬했다.
다른 아내의 출산에도 아버지는 공평하게 관심을 보였지만, 일부러 왕도에서 내려올 정도는 아니었다.
그것이 어머니를 특별하게 했다.
첫 아내, 첫아들을 준 여자라는 자리는 어머니에게 매우 귀중했을 것이다.
아버지에게는 차례차례 아내가 생겼지만, ‘첫 번째’라는 자리는 여전히 어머니의 것이었다.
그게 어머니의 마음을 지켰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버지를 너무 사랑했다.
여러 아내와 그들이 낳는 자식은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씩 흔들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여전히 다정했지만, 어머니는….
어머니를 떠올리면 마음이 아프다.
아버지를 미워하지는 않지만 원망하게 된다.
첫아들이라서인지 아버지는 커트에게도 잘했다.
어린 시절, 다른 자식들보다 커트는 자주 아버지를 만났다.
처음 승마를 배우던 날 아버지가 함께했던 것도 특별한 기억이다.
다정하게 받은 기억이 가을 낙엽처럼 차곡차곡 쌓여있다.
하지만 어머니에게는, 아내가 한 명이던 때와는 분명히 달랐다.
아버지의 시간을 다른 여자와 쪼개야 했다.
내색하지 않았어도 어머니의 정신은 계속 한계를 향해 치달았던 것 같다.
아슬아슬하던 정신은 마침내 정부인이 들어오던 날 벌레에 파먹힌 껍데기처럼 파삭 부서져 버렸다.
도저히 복구 불가능하게 완전히.
그것을 알게 된 것은 먼 훗날이지만, 지금은 알겠다.
‘어머니는 그날 망가졌어.’
한 가문에서 ‘부인’이라는 호칭은 정식으로 혼인한 여성에게만 쓰인다.
그것은 왕가처럼 애인을 여러 명 가지고 그 아이들을 정식으로 가문 연감에 올리는 공작가라도 마찬가지였다.
집사나 사용인은 우리 모자에게 정중했지만 결코 어머니를 부인이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어머니가 ‘부인’이라는 단어에 집착한 것은 아마 그들 탓이다.
아무도 부인으로 불리지 않았다면.
정부인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적어도 다른 곳에서 살았더라면.
모두가 같은 애인의 위치였다면.
사용인들이 조금이라도 마음을 써 부인이라고 불렀다면.
하다못해 어머니 시중을 드는 한두 명만이라도 그렇게 해줬다면.
어머니도 그렇게까지 망가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무도 손 내밀어 주지 않았다.
아버지도, 집사장도, 돌아가신 할아버지도, 어머니가 어디에 집착하는지 알았지만 그 한 가지만은 절대로 허락하지 않았다.
자기가 가질 수 없는 ‘부인’이라는 호칭에 집착해 어머니는 점점 미쳐갔다.
그 과정을 고스란히 봐야 했던 아들의 심정을 누가 알까.
“커트 님, 모두 모여 있습니다.”
시종의 목소리에 눈을 뜬다.
어릴 적부터 돌봐주는 집사가 있었지만, 커트는 다른 형제들처럼 자기 손으로 시종을 뽑아 주변에 두고 있다.
지금의 시종은 십여 년 전에 뽑은 사람으로, 성격이 강하고 주인의 마음 살피는 일이 빠르다.
커트를 편안하게 했다.
이전의 시종은 집사의 간섭에 난감해하며 어쩔 수 없이 양보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지금의 시종은 그런 일이 없다.
결국 어릴 때부터 커트 옆에 있던 집사는 점차 간섭을 그만 두고 마침내 몇 년 전 나이를 이유로 은퇴했다.
이 시종이 아니었다면 아직도 커트 곁에 있었을 것이다.
어릴 때는 정말로 그를 좋아했다.
‘제2의 아버지 같은 존재였는데.’
하지만 그는 어머니와 커트를 배신했다.
인자하게 웃던 집사의 눈매를 떠올리고 커트는 쓴 침을 삼켰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미소 짓는다.
‘뭐, 어쩔 수 없나. 나는 고작 애인의 자식이니까.’
공작가의 집사는 가문을 섬기는 사람이다.
아무리 모시는 주인에게 충성스러워도 갈림길에 서면 가문을 택한다.
그렇지 않은 집사는 당주와 후계자에게 붙는 개인 집사뿐.
아버지와 클라우스만이 가질 수 있었다.
“후후.”
문득 자조의 웃음이 흐르자 시종이 오해하고 히죽 미소 지었다.
“커트 님, 오늘이야말로 기다리던 반격의 날입니다. 모든 것이 잘 되기를 기원합니다.”
시종이 과장되게 고개를 깊이 숙인다.
“그래, 고맙네.”
커트는 가볍게 대답하고 방을 나섰다.
클라우스의 형 마누엘이 방출된 뒤, 커트와 형제들은 아버지의 생각을 깨달았다.
설마라고 생각했지만, 아버지는 라파를 후계자로 삼을 작정이다.
지금 당장 그렇게 될지, 아니면 클라우스가 사망한 뒤에 후계자로 삼을 생각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 생각은 거의 결정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행동할 수 있는 시간은 그게 확정되지 않은 지금뿐이었다.
라파를 제거할 때까지만이라도 힘을 합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커트다.
커트는 형제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했다.
몇 명은 아버지 생각이 정해지면 그대로 따르겠다고 아예 포기해버렸지만, 상당수가 커트에 동조했다.
클라우스나 마누엘이면 모를까, 어디서 굴러먹었는지 모를 야만인 따위에게 당주 자리를 빼앗기다니, 그건 정말 말도 안 된다고 형제 대부분이 이를 갈았다.
그렇게 형제들의 의견이 일치된 건 아마 처음일 것이다.
커트가 그들을 형제라고 부른 것도 처음이었다.
내 형제, 그렇게 말하면 몇몇의 눈빛이 달라졌다.
어쩌면 가족에 굶주렸던 걸지도 모른다.
그들도 아버지에게 아들로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커트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아마 마누엘이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에게 모두가 목말랐다.
“쯧!’
자기도 모르게 혀를 찬다.
‘하필이면 이런 때에 클라우스가 나타나다니.’
그 아름다운 아이는 사람을 홀리고 정신을 흐리게 한다.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도 모르는 사이 그에게 유리한 행동을 하게 만들었다.
모든 상황이 클라우스한테 유리하게 변해간다.
어쩌면 아버지도 그에게 정신이 잡혀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아무 힘없는 그를 후계자로 만들려는 걸지도….
“….”
조금만 더 있었으면, 아주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라파를 밀어냈을 텐데.
야만인 헬가의 피가 들어간 라파를 싫어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클라우스가 마의숲에서 나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입장을 바꾼 이들이 상당수 생겼다.
특히 한 가문의 중추를 이루는 자는 대부분 클라우스 파다.
나이가 많은 이들 중에는 보라색 눈동자야말로 공작의 자격이라는 자가 상당수 있었다.
강한 힘을 가진 보라색 눈동자라면, 그것이 야만인의 피여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후우.’
커트는 길게 숨을 뱉었다.
다시 들이마신다.
긴 복도를 지나 연회장 앞에 서자 전에 없이 긴장되었다.
커트는 손을 뻗어 나무 문에 손바닥을 댔다.
이 문 건너편에 인생을 건 도박이 있다.
남은 인생이 달려 있다.
커트는 문에 이마를 대고 눈을 감았다.
‘어머니… 저를 지켜봐 주세요. 제가, 어머니의 아들이 당주의 후계자가 되도록… 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게 해주세요.’
이것이 마지막 기회다.
클라우스가 마의숲에서 나오자 아버지는 곧바로 봉신 가문에 소집령을 내렸다.
클라우스가 후계자인 건 예전부터 변치 않았다.
굳이 사람들을 불러 모을 이유가 없다.
달라진 것은 클라우스의 아내와 자식이 있다는 점.
아마 이번 기회에 그들의 위치를 확정하려는 걸 거다.
전 가문에 소집령을 내린다면 그 이유밖에 없다.
클라우스와 그 아들이 다음 대의 공작이라고 못 박으려는 것이다.
이미 상당수의 봉신이 본가에 도착했지만 아직도 속속 모여들고 있었다.
이 연회장에는 그중에서도 커트와 다른 형제를 지지하는 자들이 모여 있었다.
공작가는 무가 계통으로 힘을 중요시하는 게 가풍이지만 왕가의 피를 잇는 명문 중의 명문이다.
무력 보다는 고귀함에 긍지를 갖는 이들이 많았다.
특히 젊은 층에 그런 사람이 많다.
아마 큰 전쟁이 없은 지 오래되었기 때문일 거다.
전장 경험이 있는 당주나 노인은 적에게서 가문을 지키는 무력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젊은 세대는 다르다.
그들에게는 무력보다 혈통과 교양, 교육, 기술이 더 중요하게 비치는 모양이다.
젊고 희망찬 그들에게 이 세계는 고상한 것들로 가득 찬 세상이다.
젊은이에게 야만적인 전쟁은 오래전에 있었던 일일 뿐이다.
큰 전쟁은 더 이상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있어 봐야 국경에서나 조금씩 벌어지는 작은 전쟁이 다라고 여긴다.
그런 건 변경의 투박하고 촌스러운 가문에 맡겨두면 된다.
중요한 것은 기술로, 미래는 그걸 누가 먼저 독점하고 발전시키는지에 달려 있다고 열정적으로 말했다.
기술과 돈이 더 중요한 시대가 온다고 믿는다.
그게 곧 힘이 된다고.
‘어리석은 아이들….’
커트 역시 전쟁을 경험한 건 아니지만, 그는 이미 젊지 않다.
인생이 이론이나 달콤한 몽상에서 나오는 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지나칠 만큼 충분히 알고 있었다.
단순히 기술과 돈이 있으면 가문이 융성해진다?
어딘가에는 그렇게 괴상한 세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이 땅은 그렇지 않다.
기술과 돈이 있어도 힘이 없으면 빼앗긴다.
굳이 전쟁까지 가지 않아도,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얼마든지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권력이 있어야 스스로를 지킨다.
그리고 권력은 힘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 힘이 기술이나 돈이 되는 세상도 언젠가 올지 모르지만 아직까지는 무력을 대체하지 못한다.
왕가와 우리 공작가 자체가 강한 무력으로 이 자리를 꿰찬 증명이다.
세상은 계속 바뀌는 것처럼 보여도 여전히 같은 자리에 서 있다.
‘하지만 바뀐 것도 있지.’
보라색 눈동자로 태어나는 아이가 다음의 당주.
그것이 지금까지 공작가의 법이었다.
하지만 지금 남아있는 보라색 눈동자는 아버지와 클라우스뿐이다.
그나마도 클라우스는 마법의 조각조차 가지지 못한 무능.
그의 아들 라파가 보라색 눈동자라고 들었지만 야만인 핏줄이다.
에노르토스의 야만인이라니.
늙은이들에게는 문제가 안 될지 모르지만 우리 가문의 고귀함을 믿는 자들에게 그 야만인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혹여 그까지 인정한다 해도 현존하는 보라색 눈동자는 셋뿐이었다.
점점 줄어들고 있다.
머지않아 한 명도 없는 시대가 올 것이다.
아마 생각보다 훨씬 일찍.
시대는 바뀌었다.
‘아버지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거야.’
아직도 클라우스를 미는 세력은 크다.
주요 가문의 가주 대부분은 예전부터 변함없이 클라우스 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늙은이가 그렇게 생각해도 젊은 사람은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다른 나라의 기술을 받아들이면서 의식이 변했다.
오랫동안 자리를 비운 클라우스에게 후계자 자격은 없다고 생각하는 자가 많다.
젊은이는 미래다.
지금의 젊은이가 미래의 당주가 되고 실세가 되는 법.
새로운 바람이 낡은 기운을 몰아낼 때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것은 바로 커트, 자신이다.
커트는 자신감 있는 표정을 만들어 몸을 꼿꼿이 세웠다.
무표정한 시종이 문을 열어, 커트는 그 안으로 발을 디뎠다.
오늘이 공작가의 역사를 새로 만드는 첫날이 될 거라는 희망을 품고서.
*
아버지와 함께 공작령으로 돌아가는 길은 뭐랄까, 정확하게 표현하기는 좀 어려운데 낯간지럽다고 해야 하나, 기분이 이상하다.
마차가 멈추고 도시에 머물 때마다 아버지는 나와 타티아나를 데리고 도시를 돌아다녔다.
지금처럼.
“여기는 내 기억에 따르면 과자가 맛있었지. 헬가, 당신이 여기에서 잔뜩 사 왔잖아. 이곳이었나?”
“다음 골목이에요.”
어머니가 호위로 일할 때 함께 돌아다니던 가게에 나와 타티아나를 데리고 가는 거다.
그리고 둘의 추억을 얘기한다.
평범하게 들으면 그냥 평범한 것 같지만, 어떻게 보면 부모의 연애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다.
어머니는 매번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지만 잘 보면 얼굴이 약간 붉어져 있다.
아버지가 짓궂은 얼굴로 싱글거리는 걸 보면 알고 그러는 거다.
제발 그만해 줘, 아버지.
자식한테 이런 건 고문이다.
게다가 아버지가 나타나면 어디라고 할 것 없이 사방이 소란스럽다.
지금도 거리와 가게에 있는 사람의 이목이 모두 집중되어 있었다.
그나마 꺄 꺄 소리가 나지 않는 건 어머니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가 굉장히 무서운 표정을 하고 있으니까.
“….”
보지 마, 타티아나.
사람들이 긴장하는 게 나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해.
타티아나는 귀족 옷은 벗어버리고 수수한 도시 아가씨 차림을 하고 있다.
아버지의 명령으로 로빈이 어디에선가 구해왔다.
매디즈 부인은 조금 곤란한 것처럼 보였지만 아버지 말에 반대하지 않았다.
타티아나한테 귀족 예절이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그동안 열심히 했으니 보상 시간을 주는 모양이다.
그런 걸 생각하지 못하다니, 남편으로서 조금 반성했다.
아버지한테 한 방 먹은 기분이었다.
반성하자, 나.
어머니와 타티아나가 사 온 추억의 과자를 받아 입에 던지면서 아버지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라파, 본가에서 연락이 왔는데 리아나 공주한테 서신이 와 있다고 하더구나.”
“어디에서요?”
“공국에서.”
“….”
타티아나에 관한 이야기는 아버지한테도 했다.
만일 공국과 무슨 일이 생기면 아버지도 알아야 하니 당연한 일이다.
아버지가 꼬드득 과자를 씹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 모습이 멋있었을까.
어딘가에서 여자들이 비명을 질렀다.
비명 소리가 핑크빛이다.
아버지는 이미 중년인데도 인기가 좋다.
조금 부럽다.
‘나도 가끔 비명은 받아보는데.’
물론 내가 듣는 건 저렇게 들뜬 소리가 아니라, 진심으로 공포에 질려 지르는 검정 일색의 진심 비명이지만.
하아.
그쪽으로는 생각하지 말자.
한데 공국에서 갑자기 무슨 편지일까.
“보낸 사람은 공왕입니까?”
“그렇다더구나.”
“이상하네요. 그 사람이 딸한테 서신을 보낼 일은 없을 텐데.”
“그렇지?”
아버지가 과자를 다 먹은 뒤 다시 어머니에게 새걸 받으며 웃었다.
“근데 공왕한테서 온 편지가 다섯 통이라더구나. 며칠에서 일주일 간격으로 계속 보낸 모양이야. 어쩌면 지금도 계속 도착하고 있는지 모르지.”
“….”
좋지 않다.
내 표정을 보고 아버지가 웃었다.
“공주한테 보낸 편지는 별것 아닐 거다. 공주한테 힘이 없다는 것 정도는 공왕도 알 테니까.”
“하지만 만일 공주가 아닌 사람한테 편지가 오면.”
내가 말을 끊자,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만일 공주가 아니라 당주한테 편지가 도착하면 그때는 문제가 될 거야.”
“….”
“공주를 돌려달라고 할지도 모르지. 과거를 보면 그런 경우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니까.”
내부의 사정 때문에 시집간 딸을 돌려받겠다는 가문이나 나라는 드물게 있다.
대가를 지급하겠다거나, 전쟁을 하겠다고 협박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번 경우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공왕이 제정신이 아니게 되면 가능성은 있다.
“너는 어떻게 할 거니?”
아버지가 빙긋 웃으며 물었다.
아버지, 그게 과자 먹으면서 농담처럼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과자를 한 움큼 입에 던져 넣었다.
“준비는 하고 있어요. 에노르토스 부족의 도움을 받을 생각입니다.”
“아아.”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 한마디로 어떻게 할 생각인지 알아차린 모양이다.
어머니와 함께 과자 가게를 탐색하는 타티아나를 바라보며 아버지가 중얼거렸다.
“모처럼 너를 좋아해 주는 거야. 소중히 해. 놓치지 마라.”
“네.”
아버지가 당부하지 않아도 당연하다.
저런 여자 평생 다시 나타나지 않지.
놓칠까 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