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152)
152 부족 대이동
“어….”
타티아나가 곤란한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우선 공왕의 편지가 거짓일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은 전했다.
그래도 만일이라는 게 있어서 말하는 거라고.
“만일 조금이라도 만나고 싶은 생각이 있으면 방법을 한 번 마련해 볼게.”
자식을 버린 부모다.
그것도 마녀를 죽이면 해가 미칠지 모른다고 걱정해서 버린 것뿐,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도 모르게 죽였을 가능성조차 있었다.
솔직히 그런 건 부모라고 말하지 않아.
하지만 그래도 사람은 죽어버리면 끝이다.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
만일 약간이나마 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면, 그게 설혹 원망의 말을 쏟고 싶은 심정이어도 만나게 해주고 싶다 생각했다.
“… 음… 글쎄요….”
타티아나는 곤란한 표정으로 다시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끙 소리를 냈다.
“정말로 솔직하게 말하면요, 아무 생각 없어요. 하지만 그건 또 인간으로서 어떤가 싶기도 하고, 보통은 자식이 부모를 그리워하는 거죠? 나도 전에는 분명히 그랬는데… 왜일까요… 그 공왕 부부에 대해서는 전혀 아무 생각도 없네… 정말….”
그건 타티아나 스승의 최면 때문일 것이다.
처음부터 나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타티아나는 스스로가 그렇다는 걸 전혀 깨닫지 못한다.
최면이라는 게 대단한 건지 그녀의 스승이 대단한 건지.
한편으로는 그렇게 해둬야 한다고 판단한 스승의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아 뭉클했다.
어린 시절의 타티아나는, 그렇게 하지 않고는 제대로 정신을 유지할 수 없을 만큼 망가져 있었을지 모른다.
지금에 와서는 단지 타티아나의 말에 의지해 상황을 유추할 수밖에 없지만, 어린아이가 감금당한 끝에 친모에게 버려진 거야.
거기에 몸에 지고 있는 매료의 힘은 인생을 절망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마녀인 스승이 아니었다면 망가졌을지 모를 타티아나의 원래를 생각하면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분노가 치밀었다.
그놈의 공왕 부부, 기회가 되면 반드시 죽여버린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험악해진 모양이다.
타티아나가 빤히 쳐다보더니 갑자기 웃었다.
“라파 씨는요, 미안하지만 웃는 것보다 화내는 쪽이 덜 무섭네요.”
“….”
그 말은 좀 상처가 되는데, 타티아나.
“괜찮아요, 라파 씨. 나는 정말 아무렇지 않으니까.”
내 표정의 이유를 착각한 것 같다.
굳이 그걸 부정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살짝 안아서 등을 토닥이자, 타티아나가 품 안에서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공왕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요? 스승님이 직접 하신 거니 최면이 쉽게 풀리지는 않을 텐데. 우리 스승님은 정말 대단한 마녀거든요.”
약간 불안한 목소리로 그녀가 중얼거렸다.
“… 혹시 내 매료가 너무 강했던 걸까요?”
“….”
문득 예지의 마녀가 했다던 말이 떠올랐다.
‘공왕의 집착도 수호의 별에 먹힐 거라고 했었지.’
어쩌면 예지의 마녀는 이렇게 될 것을 예감했을지 모른다.
처음부터.
타티아나의 매료가 너무 강해 아무리 능력 뛰어난 자가 봉인했어도 오래 가지 못했을 수 있다.
그나마 타티아나의 스승이 특출났기 때문에 지금까지 유지되었을지도.
그렇게 생각하면, 아무래도 예지의 마녀는 처음부터 모든 걸 예상했던 게 아닐까 싶어졌다.
‘그렇다면….’
공왕의 집착은 계속된다.
타티아나를 향한 편지의 간격이 점점 짧아지는 걸 보면 그게 터질 날도 머지않았을 것이다.
‘외삼촌은 어떻게 된 건지….’
계획으로는 지금쯤 에노르토스에 도착해 한창 의논 중일 것이다.
무역도시 엔데스에는 공작가의 사무관을 한 명 두고 있다.
가부 결정이 나는 대로 연락을 주기로 했다.
“….”
그런데 어떻게 연락할 생각이지?
‘에노르토스에서 다시 엔데스로 돌아와 연락하지는 않을 텐데.’
그러면 시간이 너무 걸린다.
엔데스에서 에노르토스로 가기 위해서는 마의숲 북쪽을 넘어가는 것이 가장 빠른데, 그쪽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들었다.
그래서 이 나라와 에노르토스를 오가기 위해서는 마의숲 안에서도 빙빙 돌아가거나 아니면 다른 나라를 통해야 한다.
어떤 길이든 연락 하나를 위해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할만한 거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약속한 시기는 분명 지금쯤인데.’
설마 외삼촌은 아무 생각 없이 날짜를 정한 건가.
지금이라도 멍청히 기다리지 말고 에노르토스에 직접 가봐야 하나.
어머니는 올 때 되면 제대로 연락이 올 테니 걱정 말라지만 여태껏 아무 소식도 받지 못하니 슬그머니 걱정되기 시작했다.
*
겨울이 끝나고 눈이 녹기 시작하면 부족 안은 단번에 시끄러워진다.
아이들은 양과 염소를 먹이기 위해 긴 나뭇가지 하나 들고 풀을 찾아 돌아다니고, 여자들은 겨우내 눅눅해진 물건들을 햇볕에 내놓았다.
에노르토스는 아레논 왕국보다 봄이 늦게 온다.
그만큼 길고 힘든 겨울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봄이 특히 반갑다.
호르지는 천막 밖으로 나오자 허리를 쭉 폈다.
뒤따라 나온 아버지가 긴 담뱃대를 물고 허공에 연기를 뻐끔뻐끔 뿜었다.
나란히 서서 먼 곳을 본다.
“헬가가 자식을….”
아버지가 하얀 연기를 뱉으며 중얼거렸다.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구나.”
벌써 몇 번째 이 소리를 듣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버지 마음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호르지 자신도 아직까지 못 믿겠다.
“남편이 잘생겼다고?”
“네.”
“허어….”
아버지는 잠시 담배만 뻑뻑 피우다 물었다.
“진짜 헬가 아들이냐?”
“하하. 틀림없습니다. 판박이였어요.”
이 대화도 몇 번째인지.
“그냥 헬가를 약간 크게 만들어놓은 것 같더라구요.”
“허어, 거참.”
아버지는 몇 번이나 계속 그런 감탄만 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뭐, 언젠가는 큰 걸 터트릴 놈이라고는 생각했다. 자식을 낳다니… 정말 대단한 녀석 아니냐.”
“….”
아버지는 정말 기뻐서 하는 말이겠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조금 곤란하다.
아무리 생긴 게 그래도 여자앤데, 큰일 했다며 친아버지가 감탄하는 일이 자식 낳은 거라니.
“….”
생각해 보면 대단한 건 헬가가 아니라 그 헬가를 아내로 삼아 자식까지 낳은 클라우스가 아닐까.
그 헬가를 앞에 두고.
얍상한 왕국놈이지만 담력은 에노르토스 전사보다 강할지 모른다.
그나저나 아버지 텐트에 끼어 자는 것도 이제는 슬슬 그만두고 싶다.
‘언제쯤 이동하지.’
라파가 제안한 부족의 이동은 쉽게 결론 났다.
큰 전쟁이 있은 뒤, 아버지는 적당한 장소를 선택해 영역을 이동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사라문즈 공국처럼 먼 곳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공작가 사무관이 정리해 준 그곳의 상황은 상당히 구미가 당겼다.
숲이 대부분인 나라, 거기에 약한 마수도 많다.
그 나라 사람한테는 쓸모없는 숲이겠지만, 에노르토스 사람한테는 천국이다.
거기에 그 근방에는 에노르토스 부족이 살지 않았다.
넓은 영역을 그대로 차지할 수 있다.
심지어 공국 안쪽으로 더 깊이 들어가면 주변은 허약한 공국 백성뿐이다.
적이 없다.
아이를 낳아도 그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누군가에게 죽을 가능성은 한없이 줄어든다.
여자를 빼앗길 확률도.
그렇게 알면 대부분의 전사는 두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들은 새로운 땅으로 가는 걸 조금 주저했지만, 그것도 처음 한동안뿐이었다.
아이를 안전하게 기를 수 있는 장소는 남자보다 여자들에게 더욱 절실하다.
지금에 와서 이동에 더욱 적극적이게 된 건 여자들이었다.
여자들이 나뭇가지에 줄을 걸어 빨래를 터는 모습 너머로, 눈에 익은 청년이 달려왔다.
“족장님, 할멈의 점괘가 나왔습니다.”
소년티를 막 벗은 청년이 기쁜 얼굴로 말했다.
“오, 드디어! 그럼 가볼까.”
아버지가 담뱃재를 털며 빙그레 웃었다.
부족의 약사이자 산파이면서 동시에 무녀이기도 한 할멈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점을 친다.
이번에는 부족이 이동할 날을 점치는데 좀처럼 점괘가 나오지 않았다.
매일 찬물로 목욕하기를 십여 일, 더 이상 계속하면 할멈이 죽어버리는 게 아닐까 싶은 와중에 겨우 점괘가 나온 모양이다.
아버지와 함께 할멈의 천막으로 향하자 이미 전사와 여자들이 몰려와 있었다.
할멈은 호르지와 아버지를 보자 구부정한 허리를 펴고 일어났다.
그래봤자 다 펴지지 않는다.
허리는 동그랗게 된 채 완전히 굳어 혹처럼 위로 봉긋하게 올라와 있었다.
지팡이를 짚은 채 몇 걸음 앞으로 나선 할멈이 주름살투성이의 얼굴로 웃었다.
“닷새 후, 하늘에서 우리를 축복하는 사자가 내려옵니다.”
“사자는 누구인가.”
아버지가 묻자 할멈이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습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결과예요. 하지만 확실하게 우리를 축복하는 사자가 하늘에서 올 겁니다. 우리 부족은 그 축복으로 영원히 번성하게 됩니다.”
우오오오!
할멈 말에 전사들이 환성을 올렸다.
여자들의 표정에도 안심이 깃들었다.
“좋아, 수고했네.”
아버지가 근처에 있는 어머니를 보고 손짓했다.
“오늘은 출발 전 연회다. 모두 웃고 마시고 떠들자. 할멈에게는 특별히 좋은 술을 내주게.”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이고 주변 여자들에게 지시한다.
할멈이 지팡이에 몸을 의지해 자기 천막으로 향하자 아버지가 그 뒤를 따랐다.
사람들의 들뜬 모습을 보고 있는데 아버지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그에게 눈짓했다.
따라오라는 것 같다.
할멈의 천막으로 들어가자 아버지가 천막 입구를 덮은 뒤 할멈에게 시선을 주었다.
“진짜는 어떤가? 축복이라니, 뭘 어떻게 하면 되지?”
아버지는 할멈이 부족의 사기를 위해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할멈이 킬킬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는 진짭니다, 족장님. 점괘는 틀림없이 닷새 후에 축복이 내려온다고 나왔어요. 그게 뭔지는 저도 모르지만 분명합니다.”
“하아… 그런 게 있을 리 없잖아. 잘못하면 오히려 분위기가 흉흉해질 걸세. 안 그래도 낯선 땅으로 이동하는 거라 다들 불안할 텐데.”
아버지가 얼굴을 찌푸리자 할멈이 바닥에 앉으며 웃는다.
“괜찮아요. 내 평생 이번만큼 확실한 점괘는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나를 믿어요, 족장.”
할멈이 구석에 놓인 새장의 천을 살짝 걷었다.
낮이나 밤이나 항상 천을 덮어두는 새장 안에는 작은 마수가 몇 마리 들어있다.
에노르토스에서 특별한 경우에만 사용하는 연락용 새다.
잡는 것도 어렵지만 기르는 것도 무녀 외에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말로 중요할 때만 사용한다.
우리 부족에는 세 마리가 있지만 아예 없는 부족도 있었다.
“착하지. 이리 온.”
할멈이 새장 안으로 손을 내밀자 새 한 마리가 뽀롱 뽀롱 소리 내며 손가락 위로 올라갔다.
“표적은?”
할멈의 말에 호르지는 라파에게서 받은 작은 천 조각을 내밀었다.
그의 냄새가 붙어 있는 천 조각 하나로, 이 특별한 새는 전 세계 어디에 있든 라파를 찾아내 한달음에 날아갈 것이다.
할멈이 새한테 천 조각을 내밀어 냄새를 익히게 한다.
잠시 그렇게 한 뒤, 할멈은 새의 가느다란 다리에 헝겊을 묶었다.
찾아갈 사람의 냄새가 계속 나야 새가 목적지를 잊지 않는다.
‘음? 그러고 보니 이 새로 연락한다고 내가 라파에게 말했던가?’
기억을 더듬어봤지만 말한 기억이 없다.
호르지는 여러 날 감지 않아 떡 진 머리를 긁으며 곤란하구나 생각했다.
이 새가 도착한 것으로 라파가 알아봐 주면 좋은데, 만일 못 알아들으면 어쩐다.
게다가 마수와 마수가 만나면 보통은 싸운다.
라파 곁에 있는 불사조는 특히 마수 중에서는 가장 강한 종이고, 연락용 새와 맞닥뜨리면 당연히 저쪽이 이긴다.
한 입 거리도 안 될 거다.
‘하지만… 뭐, 괜찮겠지.’
만일 싸우게 되더라도 이 연락용 새는 상당히 빠르다.
적당히 알아서 잘 피할 것이다.
‘적어도 죽지는 않겠지.’
그래도 만일 불사조에게 먹히게 되면, 뭐, 그것도 운명이다.
할멈한테는 혼나겠지만 그때는 그때다.
할멈이 새를 손가락에 얹은 채 밖으로 나갔다.
살짝 허공으로 새를 던지자, 새는 잠시 허공을 빙글빙글 돌다 이내 어딘가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