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155)
155 얼굴없는 가짜 딸
공작가에 연일 편지를 보냈지만 제대로 된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판에 박은 듯 공식적인 내용의 안부만 돌아올 뿐이다.
그 안에 개인적인 이야기는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았다.
공왕은 몇 번이나 본 짧은 편지를 다시 읽었다.
공주의 편지는 안부를 묻는 정형구에서 시작되어 마지막까지 예절 바른 문구로 마무리되어 있었다.
형식적으로는 나무랄 데 없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아버지를 궁금해하거나 병들었다는 어머니를 걱정하는 진심이 보이지 않았다.
‘이게 정말로 공주가 쓴 편지일까.’
편지 말미에는 제대로 공주의 사인이 들어가 있다.
하지만 고위 귀족이나 왕족의 편지를 사무관이 대필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
별궁에서 자란 리아나 공주는 나름대로의 교육을 받았지만 그래도 고위 귀족이나 왕족에 비하면 한없이 모자란다.
공작가에서 대필가를 붙일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보면 공주의 필적이 너무 곱고 아름다운 것 같다.
‘대필이 확실해.’
아무리 친어미가 아니라도 왕비가 아프다는데 딸 된 입장에서 보고 싶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 건 이상한 일이다.
어쩌면 공주는 자신의 편지를 받아보지도 못한 게 아닐까.
공작가에서는 공왕의 편지를 제대로 공주에게 전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공왕의 심장이 심하게 요동쳤다.
‘내 편지를 못 본 걸지도 몰라.’
공주는 원래부터 좋은 입장에서 시집간 게 아니다.
공작가의 필요에 의해 반강제로 데려간 것이다.
어쩌면 제대로 된 대접도 받지 못한 채 차가운 방에 방치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자 가슴이 답답해졌다.
애초에 마음에도 두지 않았던 가짜 딸인데 왜 이렇게 걱정되고 초조해진단 말인가.
가슴이 불안해서 가만 앉아있을 수가 없다.
심장 안에 있는 뭔가가 술렁거리며 불길하게 뛰었다.
이대로 있어서는 안 돼.
확인해야 한다.
‘공주가 제대로 있는지 확인하지 않으면….’
공왕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시 발테르 공작가에 가봐야겠다.”
“공왕 전하!”
시종장이 깜짝 놀라 그를 불렀다.
이미 몇 번이나 같은 말을 해 시종장의 만류를 받았다.
그때마다 시종장의 조언이 옳다고 생각해 멈췄지만 더 이상은 견딜 수 없다.
적어도 공주가 제대로 잘 있는지, 갇혀 있는 것은 아닌지라도 알아야 한다.
“공왕 전하, 정 그러시면 사람을 보내 만나게 하심이….”
“안 돼!”
공왕은 시종장의 말을 막았다.
“직접 확인해야 한다. 내가 직접 그 아이의 무사함을 눈으로 봐야 해.”
자기가 말하면서도 이게 억지라는 건 알고 있다.
공작가에 무턱대고 찾아가 본들 비웃음만 당할 거다.
안다.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초조함이 있었다.
자기 자신도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왜 이런 심정이 되는지 모르겠다.
머릿속이 오직 공주의 무사를 확인해야 한다는 열로 가득하다.
우연인지, 아니면 연락을 받았는지, 공왕비가 집무실로 들어왔다.
시종장이 눈에 띄게 안심하는 것이 보였다.
지금까지 공왕이 움직이지 않은 건 공왕비 때문이다.
그녀가 계속 이런저런 말로 구슬려 어쩔 수 없이 주저앉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 되겠다.
공왕비가 가까이 다가와 그의 팔에 살짝 손가락을 댔다.
하얀 손가락이 오늘따라 유난히 희다.
공주도 이렇게 하얀 피부였다.
그래, 그랬지.
문득 공왕비의 얼굴을 보자 공주의 모습이 뭉게뭉게 떠올랐다.
이상한 일이다.
시집간 가짜 공주도 공왕비의 혈족이라 분명 닮았지만, 머릿속에 떠오른 얼굴은….
‘달라, 뭔가 이상하다.’
애초에 유모는 왜 공주를 납치해갔단 말인가.
‘나는 그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그 부분은 마치 희미한 안개에 싸인 것처럼 흐릿했다.
그 시기의 기억 자체가 거의 없다.
문득 정신 차리고 보면 납치된 막내 공주 대신 가짜 딸이 별궁에 살고 있었다.
그 가짜 공주를 데려온 것은 공왕비다.
‘설마….’
공왕은 공왕비의 손목을 비틀어 잡았다.
깜짝 놀란 공왕비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공왕 전하!”
시종장의 목소리가 옆에서 크게 울렸지만, 공왕은 거기에 신경 쓰지 않은 채 공왕비를 노려보았다.
“너의 짓이냐. 네가 뭔가 했느냐.”
“전하, 무슨 말씀이신지.”
고통으로 일그러진 공왕비의 얼굴에 공포가 떠오른다.
그게 갑자기 손을 잡힌 탓인지,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윽!”
갑자기 엄청난 고통이 밀려와, 공왕은 자기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머릿속을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아프다.
고통이 너무 심해 공왕은 고꾸라지듯 앞으로 몸을 숙였다.
“머리가… 머리가….”
갑자기 머리가 무거워져 지탱할 수 없다.
땅바닥에 머리가 붙는다.
공왕은 손을 허우적거리며 손으로 머리를 잡았다.
[… 잊어라… 그 아이를 잊어… 그 아이는 너와 아무 관계없으니… 잊어라….]머리를 커다란 종 속에 밀어 넣은 것 같다.
무겁고 아프다.
사방이 소리로 가득해졌다.
자신의 목소리 같기도 하고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의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정확하게 인식할 수 없었다.
커다란 바위가 뇌를 헤집으며 밀고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아, 이럴 때가 아닌데. 공주가… 내 딸이….
그렇게 생각하자 고통이 더욱 심해졌다.
정상이 아니야.
이런 건 절대로 정상이 아니다.
“전하! 왜 그러세요. 전하!”
공왕비가 무릎을 꿇고 앉아 그를 불렀다.
공왕은 억지로 머리를 약간 움직여 공왕비의 모습을 보았다.
눈물을 흘리는 공왕비의 모습에, 흐릿한 아이의 모습이 겹쳤다.
얼굴은 정확하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공왕비의 모습과 닮았다.
아마 그게 공주.
시집간 가짜와 비슷하게 생긴 것 같지만 다르다.
‘달라.’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그 아이의 얼굴이 아니다.
공왕은 아내의 몸을 밀어냈다.
“… 전… 하….”
공왕비가 문득 동작을 멈추고 그를 보았다.
나이 들어도 아름다움을 간직한 공왕비의 얼굴에서 비 오듯 눈물이 떨어진다.
공왕비와는 어린 시절 약혼해 함께 크다시피한 사이다.
매년 초상화를 교환하고 시간이 나면 드물게 만날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 아이였던 그녀가 소녀가 되고 여성이 되었다.
아이에서 소녀… 그리고 여성으로….
아직 아이였을 때의 공왕비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긍왕비를 처음 만난 건 약혼하던 해, 그녀가 다섯 살이 되던 해였다.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래, 귀엽고….
명확하지 않던 딸의 얼굴이 공왕비의 어릴 적 모습과 약간 겹쳤다.
감조차 잡을 수 없었던 아이의 얼굴이 조금 명확해진 것 같다.
아직은 또렷하지 않지만, 아직은 정확하게 생각나지 않지만….
공왕은 시종장에게 업혀 침실로 이동했다.
왕궁 의사가 달려왔을 무렵에는 두통이 조금 잠잠해졌다.
공왕은 바짝 붙어 서 있는 시종장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 공작령에 사람을 보내… 그 아이… 공주의 초상화를 구해오게. 간단한 거라도 상관없어. 모습만 확인할 수 있으면 된다. 아니, 직접 보고 그리게 화가를 보내는 게 좋겠군. 지금의 그 아이 모습이 필요해….”
확인해야 한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여자아이의 흐릿한 얼굴은 무엇인지, 시집간 딸과 똑같은 사람인지, 아니, 시집보낼 때의 딸은 과연 어떤 생김새를 하고 있는지.
“….”
지금에 와서야 깨달은 거지만, 공왕은 가짜 딸의 얼굴을 정확히 기억할 수 없다.
분명히 그 아이와 만난 적이 있었다.
입궁 초기에는 몇 번이나 그 아이를 만나러 별궁에 간 적이 있다.
그러니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아이는 공왕비를 조금 닮았다고 알고 있는데, 방금 깨달았다.
자신은 그 아이의 정확한 얼굴을 모른다.
단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가짜 공주의 모습은, 분명히 떠올리면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머릿속에 그려졌다.
하지만 더 자세히, 안 되는 의식을 억지로 집중해 떠올려 보면 그의 기억 속에 남은 가짜 공주의 얼굴에는 눈코입이 존재하지 않았다.
*
계절이라는 건 참으로 이상하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겨울이었는데 며칠 사이 봄이 되었다.
한낮에는 덥기까지 하다.
오랫동안 자리를 비운 탓에 미친 듯이 밀려오던 아버지의 일도 조금은 잠잠해진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일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아버지는 여전히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일한다.
피곤한 것처럼 보이지만 나쁜 느낌은 아니다.
숲에서의 아버지와는 조금 다른, 일하는 남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태어나면서부터 후계자였던 아버지의 자리는 여기라고 은연중에 알았다.
더불어 어머니도 행복하다.
아버지한테 딱 붙어 다니는 모습은 호위인지 부인인지 알쏭달쏭하지만, 어쨌든 크게 만족하고 있는 것 같다.
두 분 다 행복하니 정말 다행이다.
진짜 좋았어요.
처음에는 어색하기만 하던 타티아나의 예절도 상당히 좋아졌다.
타티아나는 여전히 긴장하는 모양이지만, 이제는 어딜 가도 바보 취급 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원래 왕족으로 태어난 덕분일 거다.
배우고 익히면 그만큼 쑥쑥 몸에 붙는다.
매디즈 부인의 능숙한 채찍과 당근도 한몫했을 것이다.
타티아나는 매일 죽은 물고기 눈에서 산 생선 눈으로 왔다 갔다 하며 그 나름대로 생생하게 살았다.
매디즈 부인의 주선으로, 타티아나는 틈날 때마다 마녀 활동, 예를 들면 만드라고라 양육이라든가 약초 캐기 같은 걸 한다.
공작가 부지 곳곳에는 일반인 눈에는 그저 잡풀처럼 보이는 약초 같은 게 의외로 많은 모양이다.
타티아나가 돌아다니며 매우 기뻐했다.
매디즈 부인은 정말로 타티아나의 취급이 능숙하다.
숲에서 살았던 때처럼 어느새 공작가에서의 생활은 평범하게 익숙해졌다.
굳이 뭔가 다른 걸 찾자면 호시탐탐 나를 노리던 곰이 없어졌다는 것 정도려나.
‘이건 너무 평화롭군.’
자극이 부족하다.
설마 내가 그렇게 생각할 줄은 몰랐는데, 정말로 이 생활은 너무 무난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약간 지루하다 느낄 무렵 아버지한테 불렸다.
“아버지, 부르셨어요?”
집무실에 가자, 언제나처럼 어머니를 뒤에 거느린 아버지가 나를 손짓해 책상으로 불렀다.
“라파, 내일부터 마수 잡으러 가볼 테니?”
“어….”
마치 내가 지루해한 걸 꿰뚫어 본 것 같은 타이밍이다.
“봄이다 보니 마수들이 새끼를 낳아 데리고 다닐 무렵이 된 것 같아. 우리 영지는 아직 괜찮은데 다른 가문과 맞닿은 쪽이 슬슬 불안한 모양이다. 다른 지역은 아무래도 마법사가 부족하니까 경계지역까지 손이 닿지 않는 경우가 있어서 말이야.”
아버지가 빙그레 웃는다.
“사람을 많이 이끌고 가면 오히려 네가 귀찮아할 테고, 사무관만 데리고 한 바퀴 돌아보면 어떠니? 리아나도 그동안 많이 애썼으니 느긋하게 쉴 시간이 필요할 거다.”
“함께 가나요?”
“물론이지. 그녀도 마법사니까 마수와 싸우는 훈련을 해두면 좋을 테고, 응, 딱 좋겠다.”
그런 대화를 나눈 다음 날 일어나니 옷부터 짐까지 모두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귀족다운 옷을 벗어버리고 거친 복장을 했다.
타티아나도 답답한 드레스 대신 여성 모험가들이 많이 입는 바지 차림이다.
마차는 다른 때와 달리 작고 겸손한 것이었다.
다른 영지와의 경계 쪽으로 돌아다니려면 큰 마차는 힘들다고 한다.
“도로가 좁거나 아예 없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그렇게 말한 것은 나한테 붙은 사무관 그레고르였다.
마차에는 이미 만드라고라의 화분과 여벌 옷이며 식량 같은 것이 꾸려져 있고, 지붕에는 렐라와 불사조의 잠자리로 마련된 나무 상자까지 부착되어 있었다.
정중하게 지푸라기까지 깔아두었다.
렐라와 불사조는 날이 밝기도 전에 올라가 앉았다고 한다.
출발할 걸 미리 눈치챘는지, 아니면 단순히 지푸라기 잔뜩 든 상자가 마음에 들었던 건지, 솔직히 놓고 갈 수 있으면 놓고 가려고 했는데 망했다고 생각했다.
갑옷기사도 따라올 모양이다.
뭐, 당연히 그렇겠지만.
나비는 갑옷기사 안쪽에 잠들어 있다.
결국 모두 데리고 가는 것 같다.
하아, 죽겠네.
“일정은 느슨하게 짰습니다. 경계선 주변으로는 큰 도시가 없이 마을만 있는 곳도 있고, 원래라면 도련님과 부인만 혼자 다니시는 건 말도 안 됩니다만….”
일정을 설명하던 그레고르가 문득 나를 보았다.
그 시선과 거의 동시에 십여 마리의 나비가 나한테 달려들었다.
말 그대로 달려든다.
분위기가 수십 년 헤어졌다 만난 이산가족 같다.
어라, 이거.
왠지 느낌이 싸하다.
정확하게는 모르겠는데, 갑옷기사 안에서 잠들던 놈들이 아니라 얼떨결에 호르지 삼촌의 연락용 새에 딸려갔던 놈들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갑옷기사한테서 나온 게 아니라 하늘에서 불쑥 내려왔고.
무엇보다, 반가워하는 폼이 다른 놈들과 전혀 다르다.
“….”
이 녀석들, 꽤 먼 거리였을 텐데 돌아온 건가.
‘대체 어떻게 길을 찾아온 거지.’
거리가 정말로 멀었을 텐데 내비게이션이라도 가지고 있는지, 원.
설마 나한테 위치추적기 같은 게 달려있는 건 아니겠지.
“….”
설마.
그건 아닐 것이다.
그레고르는 얼굴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정령 나비를 잠시 쳐다봤지만, 이제는 익숙한 듯하다.
빙그레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제가 무슨 일을 해서라도 말렸습니다만, 도련님과 부인이시면 위험은 없을 테니 경비는 세우지 않기로 했습니다. 제 마음 같아서는 경비는 몰라도 요리사 정도는 데려가고 싶습니다. 잘못하면 노숙할 위험도 있는데 도련님과 부인께서 엉망인 음식을 입에 넣으신다고 생각하면 제 심장이….”
그레고르는 감정의 폭이 큰 것 같다.
잘 운다.
지금도 음식 얘기를 하다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나는 이제 곰팡이 핀 건더기로 만든 스튜조차 맛있게 먹는 사람이다.
그렇게 되었어.
그러니 고작 노숙 도중에 먹는 음식 같은 걸로 울어도 곤란하다.
그레고르가 준비한 재료라면 분명 공작가 요리사가 제대로 만든 걸 거고 맛있을 테니 오히려 기대하고 있는데.
게다가 모닥불 앞에서 먹는 음식이 정말 맛있지.
그렇게 말하면 더 울 것 같고,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옆에 있던 타티아나가 위로하려는 듯 말했다.
“괜찮아요. 노숙은 익숙하거든요. 음식도 가리지 않는 편이에요. 국물에 뭐라도 들어있기만 하면 잘 먹으니까요.”
“그, 그런…. 두 분께서 그런 음식을 드셨다고 생각하면 이 그레고르는 마음이 정말 아픕니다….”
결국 그레고르는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정말 이 아저씨는 잘 운다.
이제 출발하는 게 어떨까 생각하는데 멀리에서 로빈이 달려왔다.
로빈 품에 모겐이 안겨 있다.
모겐은 내 어린 집사다. 하아, 집사야, 집사.
달려온 로빈이 숨을 헐떡이며 모겐을 내려놓자, 아이가 찹쌀떡 같은 얼굴을 꾸벅 내렸다.
“쟐 다녀어세요, 쥬인님. 건승을 빌게씀미다.”
건승은 이럴 때 사용하는 말은 아닐 것 같은데.
나는 쪼그려 앉아 아이 눈을 보았다.
“배웅해 주러 온 거니?”
“네! 쥬인님.”
“그래, 고맙다.”
“감사합니다!”
뭐가 감사한지 모르겠네.
타티아나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옆에서 웃는다.
모겐은 그런 나나 타티아나 표정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자신이 제대로 배웅했다는 성취감에 젖은 모양이다.
다시 큰 소리로 말했다.
“다녀오세요! 쥬인님! 부인님!”
“고마워, 모겐. 다녀올게.”
타티아나는 모겐의 둥근 뺨을 여러 번 만지작거린 뒤 몸을 일으켰다.
손 떼는 게 못내 아쉬운 모양이다.
이게 좋은가.
문득 궁금해져서 아이 뺨을 살짝 집자, 모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쥬인님, 모겐은 맛 업써요.”
뜬금없이 그렇게 말하는 바람에 내 마음이 조금 다쳤다.
이봐, 모겐, 네가 누구한테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사람은 먹지 않는다.
옆에서 타티아나가 손으로 입을 막은 채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