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163)
163 너희들도 힘을 빌려다오
본가로 돌아가는 길은 마수 사냥을 떠날 때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화사하다고 해야 하나.
들리는 마을과 도시마다 여름 축제 준비로 한창이라, 사람들은 웃고 떠들고 길가에는 꽃이 만발했다
가난한 마을도 다소 살기 괜찮은 도시도 모두 비슷한 분위기다.
우리 마차가 도시로 들어가면 꼬질꼬질한 아이들이 바구니를 들고 쫓아다녔다.
“꽃 사세요! 정령 꽃이에요!”
“행운이 붙는 꽃이에요!”
“여름 축제를 미리 준비하세요.”
대체 뭘 가지고 그러나 싶어서 보면, 바구니 속에는 헝겊으로 만든 꽃이 가득 들어 있었다.
“저건 뭐야?”
내가 묻자 그레고르가 웃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평민의 부업입니다. 헌 옷 조각과 나뭇가지로 만든 꽃을 아이들이 판매하죠. 다소 부유한 사람들은 이 무렵이 되면 쓸모없어도 저런 꽃을 사줍니다. 그러면 아이를 사랑하는 정령이 축복해 준다고 믿기 때문이지요.”
정령에는 아이를 좋아하거나 예쁜 아가씨와 소녀를 좋아하는 부류도 있고, 또 어떤 정령은 수염이 난 아저씨, 혹은 노인을 사랑하기도 한다.
정령마다 모두 취향이 다른데, 특히 이 시기에는 아이를 좋아하는 정령이 많이 나온다.
그 축복을 받기 위해 아이들이 판매하는 꽃을 사준다는 것이다.
어디를 어떻게 봐도 그냥 미신인 것 같지만 어쨌든 괜찮은 풍습인 것 같다.
아이들이 용돈벌이를 해서 가정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면 좋지.
마차가 멈추자 아이들의 바구니가 한꺼번에 눈앞으로 쏟아졌다.
“그레고르, 돈에 여유가 있으면 아이들 걸 몇 개씩 다 사주게.”
“후후. 물론입니다. 도련님의 행운을 비는 의미에서도 이런 건 당연히 해야죠.”
아니, 그런 건 믿지 않으니까 괜찮아.
어차피 정령이라면 내 주위에도 많으니까 다른 녀석들의 축복은 필요 없다.
그렇게 생각해도 입 밖에 내지는 않는다.
아이들은 꽃을 팔자 기쁜 듯 활짝 웃으며 다른 사람한테 달려가 또 바구니를 내밀었다.
본가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그런 아이들을 만났다.
옷차림이나 얼굴은 꼬질꼬질 더러워도, 꽃바구니를 든 아이들의 표정은 대부분 밝고 화사해 내 마음도 조금씩 밝아졌다.
타티아나도 그런 모양이다.
다만 곤란했던 건 마을마다 도시마다 사들인 헝겊 꽃이 점점 마차 안에 쌓이는 것이었을까.
무슨 생각을 했는지, 렐라가 여러 번 헝겊 꽃을 물어 마차 위의 나무 둥지에 갖다 놓았다.
어쩌면 렐라에게도 새의 본능이라는 게 생기기 시작했으려나.
“….”
그러고 보니 어미가 둥지 만드는 모습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미 있는 둥지에 들어가거나 집안 침대 혹은 구석진 자리에서 퍼질러 자거나, 대부분 그렇다.
불사조에게는 본능이 없는 건지, 아니면 그냥 저 녀석이 이상한 건지.
진짜로 렐라의 교육을 저 어미한테만 맡겨두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공작령 전체가 여름 축제의 행복에 들떠 있는데 거기에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운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안타까워졌다.
인생은 한 치 앞을 모른다더니, 공작가에 도착하자 뜻밖의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슈테인 후작가가 에크빌 왕국과 내통한다는 고발이 들어왔다고 한다.
고발한 사람은 오랫동안 슈테인 후작가에서 일한 사무관으로 얼마 전에 죽었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고발했는가 하면, 그가 죽은 뒤 다른 경로를 통해 슈테인 후작가의 돈 흐름과 몇 가지 내부 기밀에 대해 적힌 문서가 도착했다고 한다.
그 문서를 받자마자 나한테 연락을 보낸 것 같다.
한데 내가 오는 도중에 또 다른 소식이 도착했다.
이게 좀 대박인데, 볼크 백작가에서 슈테인 후작가와 이웃 나라 에크빌 왕국의 첩자를 발견했다는 소식이었다.
볼크 백작의 자녀를 납치하려는 계획을 세웠는데, 그걸 마그리트한테 들켰다는 것이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이 세상에 그렇게 허술한 첩자가 있나.
첩자에게는 첩자의 자존심이라는 게 있을 것이다.
어른도 아닌 아이에게 들키다니, 그래도 돼?
그러고도 첩자라고 가슴 내밀어 말할 수 있느냔 말이다.
라고 나는 기막혀 속으로 중얼거렸다.
옆에서 함께 이야기를 들은 타티아나는 마그리트가 똑똑하다며 나와 반대 의미로 놀라고 있었다.
아니, 그건 첩자가 바보인 거겠지.
속으로는 타티아나의 말을 부정했지만, 눈이 동그래진 아내가 귀여워서 나는 입 다문 채 조용히 웃었다.
“그래서 부탁이 하나 있구나.”
아버지가 진지한 얼굴로 타티아나를 보았다.
내가 아니라 타티아나한테 부탁이라니, 드물다.
타티아나도 뜻밖이었던 모양이다.
갑자기 등을 쭉 늘이며 곧바로 앉았다.
“네, 말씀하세요.”
긴장해 눈이 초롱해진 타티아나의 모습이 선생님 앞에 선 초등학생 같다.
그 기분은 알겠어.
아버지는 상대가 아이든 어른이든 상관없이 꼭 뭔가 해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을 끌어올린다.
나도 어릴 때 아버지를 지켜야 한다던가, 아버지를 위해 뭔가 해주고 싶다는 열망에 한껏 발돋움한 적이 있었다.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의 나는 계속 그런 상태였던 것 같다.
아버지의 미남 듬뿍이 아이나 자식 상대로도 유효한 걸 보면 잘생김은 치트키가 맞다.
아, 시바.
내 얼굴 어쩔 거야.
마음이 조금 우울해졌지만 금세 괜찮아졌다.
나한테는 이제 타티아나가 있으니까.
내가 혼자 우울해졌다 괜찮아졌다 하는 동안 아버지는 타티아나한테 진지한 표정을 돌리고 있었다.
저 표정 안다.
아주 잘 알고 있다.
아버지가 누군가의 의지를 끌어올리고 싶을 때 하는 얼굴이었다.
물론 주로 나한테.
어머니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아버지의 말 한마디만 있으면 뭐든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릴 때 주로 저 표정을 본 건 나였다.
대부분은 바람을 잘 다루고 강해지라고 나를 북돋을 때 저런 표정을 짓는다.
살짝 타티아나 얼굴을 보니, 뭐, 이건 완전히 넘어갔네.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노력할 결심만만이다.
아버지도 이미 알고 있겠지.
아버지 눈이 가늘어지며 문득 웃었다.
어쩌면 타티아나를 귀엽다고 생각한 걸까.
나를 볼 때와 눈빛이 비슷하다.
그래,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종종 저런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귀엽다는 눈으로.
그때는 아버지가 날 믿는 표정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보니 알겠어.
저건 귀엽다는 눈빛이다.
왠지 간질간질, 심장 밑부분에 털이 난 듯한 기분이다.
어린 때의 나는 결코 귀여운 얼굴이 아니었는데, 아버지는….
이제 와서 쑥스러워 죽을 것 같아, 나는 아버지 얼굴을 보지 못하고 시선을 돌렸다.
아버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타티아나를 향했다.
“내 직감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첩자가 말하는 것 이상의 일이 숨겨져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볼크 백작으로서는 더 이상의 정보를 캐낼 수 없었던 모양이야.”
“….”
“마녀 도로테는 사람의 기억을 마음대로 바꾸거나 원하는 정보를 뭐든 꺼낼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고 들었다.”
타티아나가 침을 꿀꺽 삼킨다.
이마에 땀이 약간 뜨는 걸 보면 긴장한 모양이다.
그녀가 마녀라는 사실을 공작가의 몇몇은 이미 알고 있다.
마녀 도로테의 제자라는 사실도 아버지가 도착하자마자 털어놓았기 때문에 가족들은 알고 있었다.
물론 타티아나도 그 사실을 안다.
하지만 지금까지 도로테의 제자라는 걸 누군가가 언급한 적은 없었다.
마녀는 원래 배척당하기 쉽지만, 사람의 기억을 조작하는 도로테의 능력은 특히 거부감이 심하다.
바로 옆에서, 다름 아닌 타티아나의 기억조차도 왜곡되어 구부려진 걸 보고 나 역시 약간 꺼림칙한 느낌이 있었으니 보통 사람은 더할 것이다.
타티아나도 그런 걸 알기 때문이겠지.
아버지가 도로테 능력을 언급하자마자 순식간에 몸이 굳었다.
아버지가 달래는 것처럼 시선을 부드럽게 한 뒤 말을 이었다.
“얘야, 네가 가서 첩자가 숨기고 있는 게 뭔지 알아내 줬으면 하는데, 가능하겠니?”
“… 그….”
타티아나는 살짝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그 뒤에 서 있는 어머니를 보았다.
그리고 얼른 시선을 내린다.
내가 타티아나의 어깨를 가볍게 안자, 그녀의 몸에서 힘이 조금, 아주 조금 빠진 느낌이 들었다.
“… 아버님은… 제가 끔찍하지 않나요?”
타티아나가 주저하는 것처럼 묻는다.
어쩌면 계속 그 한마디가 물어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스스로 말을 꺼내기는 어려우니 눈치만 보고 있었겠지.
아버지가 빙긋 웃었다.
“아아… 너는 모르겠구나.”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인 뒤 중얼거렸다.
“잘못하면 중요한 대목에서 실수할 수도 있으니 너한테는 알려두는 게 좋겠지.”
아버지가 느긋하게 의자 등받이에 허리를 기댔다.
“얘야, 너의 능력은 나와 라파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그러니 두려울 리도 없지.”
“네?”
“어?”
나와 타티아나 입에서 동시에 목소리가 흘렀다.
아버지가 피식 웃는다.
“라파, 너도 몰랐니. 둔하구나.”
아….
그 말로 깨달았다.
나는 바보다.
지금까지 나는 타티아나의 능력이 내게 통하지 않는 게, 내 머릿속의 언어가 한국어라서 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타티아나가 최면술을 걸려고 해도 한 번 걸러져서 실패하는 거라고.
하지만 더 단순한 이유가 있었다.
나는 보통 인간이 아니라 정령인이다.
마녀가 마녀인 이유는 정령들이 그들을 위해 뭔가 하기 때문이다.
타티아나와 스승의 능력도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지만 분명 정령의 힘이 관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정령인인 나나 아버지에게는 통하지 않는 거다.
통할 리 없다.
정령보다 우리가 한 수 위인 존재이니까.
그렇다면 당연히 할아버지나 왕에게도 통하지 않을 것이다.
“우와, 모르고 있었으면….”
타티아나가 아무것도 모르고 잘못해서 왕한테 최면을 걸었다면?
그야말로 난리가 난다.
대역 죄인으로 당장 목이 뎅강일 거야.
무심코 몸서리가 쳐졌다.
아버지가 빙그레 웃었다.
“좀 더 통찰력을 길러, 라파. 게다가 그녀의 능력은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갖고 싶은 보물이다. 그녀를 손에 넣는 것만으로 어딘가의 왕이나 귀족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야. 네가 제대로 정신 차리고 지켜야 한다.”
미소는 짓는데 아버지의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아버지 말속에는 타티아나의 성격이 너무 순진하니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 실려 있다.
조금 친절하거나 가까워진 것만으로 나나 우리 가족의 바람에 전력으로 부응하려는 그녀다.
누군가가 작심하고 친절을 가장해 접근하면 타티아나는 쉽게 상대를 믿고 말 거다.
줄에 흔들려 춤추는 꼭두각시가 된다.
“네, 아버지.”
나는 반성하고 고개를 숙였다.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는 타티아나는 나와 아버지를 번갈아 보며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귀엽다.
나는 타티아나의 머리를 쓰다듬고 말했다.
“나도 지금 알았지만, 나나 아버지처럼 보라색 눈동자를 가진 사람한테는 최면술이 통하지 않아.”
“어… 그럼 할아버님한테도요?”
“그래.”
“…맙소사… 통하지 않는다고….”
타티아나가 눈을 깜박깜박한다.
“그러면 라파 씨도, 아버님도, 할아버님도… 내가 무섭지 않아요?”
아니, 지금에 와서 그렇게 물어봐도 곤란하지.
처음부터 나는 전혀 무섭지 않았으니까.
알고 있잖아.
내가 웃자 타티아나도 따라 웃는다.
눈꼬리에 물기가 약간 묻어 있었다.
갑자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된 우리 사이에 아버지의 목소리가 떨어졌다.
“그래서 첩자에 대해 부탁하고 싶은데… 가능하겠니?”
“네! 아버님.”
타티아나가 활발하게 대답하며 주먹을 쥐었다.
의욕이 넘치는 모양이다.
역시 그녀의 이런 성격은 위험하구나.
진짜 접근하는 인간의 됨됨이를 잘 봐야겠다.
원래는 후작령으로 가게 될 줄 알았던 다음 행선지는 그래서 볼크 백작가로 바뀌었다.
나와 타티아나는 공작가에 도착하자마자 그날로 다시 출발하게 되었다.
이미 우리가 출발할 수 있도록 모든 준비가 끝나 있어, 거기에 필요한 건 나와 타티아나뿐이었다.
볼크령으로 떠나기 전 아버지가 나를 따로 불렀다.
“라파, 볼크 백작가는 후작령에서 왕도로 가는 길목 중 하나다. 에크빌 왕국은 왕도로 쳐들어갈 생각인 것 같아. 하지만 그게 이상하다는 점은 너도 알겠지?”
“네.”
에크빌 왕국은 오랫동안 아레논과 국경을 두고 다투던 사이다.
그러나 둘의 국력에는 차이가 있고, 당연히 아레논 왕국이 강하다.
전쟁이 벌어지면 아레논도 타격이야 있겠지만 더 큰 희생을 치르는 건 에크빌이다.
그걸 잘 아는 에크빌에서는 한 번도 왕도로 쳐들어가려고 한 적은 없었다.
한데 갑자기 볼크 백작가를 노렸다면, 분명 그 뒤에 뭔가가 있다.
“예감이 좋지 않아. 부탁한다, 라파.”
“네, 아버지.”
맡겨 주세요, 아빠!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 뒤 문득 어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로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아직도 아버지가 뭔가 말하면 거기에 부응하기 위해 힘차게 노력하는 중인가.
‘그러면 나도 타티아나와 똑같잖아.’
… 뭐, 나는 아들이니까 상관없는 셈 치자.
자식이라는 건 원래 부모한테 평생 어린아이인 거고, 거꾸로 자식한테도 평생 아버지는 아버지인 거니까, 어쨌든 무슨 소린지 엉망이라도 대강 그렇다고 치면 되지.
우리 공작령뿐 아니라 다른 영지도 여름 축제로 사람들이 모두 들떠 있었다.
볼크령으로 가는 길 내내 아이들이 내미는 꽃바구니를 만나면서, 나는 이번 전쟁을 막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막고 싶다고 생각했다.
정령에게 정말로 힘이 있다면, 그래서 아이들을 사랑해 축복을 내려주는 정령이 존재한다면, 너희들도 부디 이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힘을 빌려다오.
나는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내 마음속 말이 들린 것처럼, 정령나비 몇 마리가 퐁퐁 빛을 터뜨리며 마차 안을 날아다닌다.
“….”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 녀석들에겐 아무 힘도 없는 것 같다.
정령에게 빌 게 아니라 내가 어떻게든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