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17)
017 외눈박이 개
“그러면 이제 일에 관해서 이야기해 볼까요?”
제니가 접수대로 나를 데려가 어제 본 의뢰서와 숫자가 적힌 작은 나무패를 내밀었다.
“기본적인 내용은 여기 적혀 있는 대로예요. 이 나무패를 가져가서 촌장에게 보여주면 당신이 의뢰받은 모험가라는 사실을 저쪽에서 알고 다시 설명해 줄 겁니다.”
다행이다.
내 모습을 보고 마을에서 그대로 쫓겨나거나 믿어주지 않으면 어쩌나 조금 걱정했었다.
나무패로 신분을 증명할 수 있다면 문제없겠지.
“일을 끝낸 뒤에는 어떻게 하면 됩니까?”
“촌장이 똑같은 나무패와 돈을 줄 거예요. 그걸 가져오시면 일을 제대로 끝냈다는 증명이 되죠.”
“알겠습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제니가 빙긋 웃었다.
“준비할 게 있으니까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제니는 안쪽으로 가서 두꺼운 책자를 꺼냈다.
그걸 들여다보며 뭔가를 종이에 적는다.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나는 의뢰서를 다시 읽었다.
의뢰서의 내용은 간단하다.
마을에 ‘외눈박이 개’라는 짐승이 나타나 사람을 잡아먹었다고 한다.
크기는 성인 남자 정도 된다고 적혀 있었다.
적힌 대로라면 그다지 큰 놈은 아니다.
내가 살던 숲에도 외눈박이 개가 있었는데, 내 키만 한 놈도 평범하게 만났다.
제법 맛있었는데.
‘잡아서 내가 먹어도 되나?’
그것도 물어봐야겠다.
의뢰서는 달랑 한 장, 그 이상의 정보는 없었다.
크고 사납다는 말이 조금 더 붙어 있을 뿐이다.
금세 읽었기 때문에 할 일이 없다.
심심해서 고개를 돌리자, 나를 향하던 시선들이 일제히 방향을 비틀었다.
쓸데없이 벽을 보는 남자, 땅을 쳐다보고 뭔가 찾는 척하는 남자, 갑자기 밑도 끝도 없는 대화를 시작하는 사람, 한 박자 늦게 시선을 피하고 난처했는지 불쑥 밖으로 나가버리는 자도 있었다.
‘흠, 내가 무서운가.’
제니나 스킨헤드와의 대화 덕분에 내가 말도 통하지 않는 야만인이라는 오해는 풀렸다고 생각하는데.
“….”
옷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도 숲에서 살 때 입었던, 어머니가 만들어준 옷을 걸치고 있었다.
어머니는 뭐랄까, 바느질의 균형이 조금 이상하다.
의류의 재단과 바느질은 서툰데, 무기를 몸에 지닐 때 사용하는 가죽 걸이나 가방의 만듦새는 상당히 그럴싸했다.
그러다 보니 왠지 어색해 보인다.
아버지는 뭘 입어도 그림이 되지만, 나는 어머니를 닮았으니까.
아마 그래서 야만인으로 보이는 걸 거다.
나와 거의 똑같은 옷을 입은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고, 나는 작게 한숨 쉬었다.
그래, 확실히 옷이 문제다.
숲에서는 그리 이상해 보이지 않아도 이런 도시에서는 붕 떠 보이는 거지.
이번 일을 끝내면 옷부터 새로 마련해야겠다.
그러면 야만인이 아니라 단지 덩치 크고 무섭게 생긴 모험가일 뿐이다.
응, 그게 좋겠다.
혼자서 끄덕끄덕하고 있는데, 제니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한창 생각하는데 미안해요, 라파 씨. 여기, 이건 지도예요. 아무래도 그 마을까지 가는 길을 모를 것 같아서 그려봤어요.”
제니가 내민 건 간단한 지도였다.
이 도시를 중심으로 간단한 지형이 그려져 있다.
곳곳에 이정표가 될 것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왼쪽으로 세 개의 산이 보인다, 번개에 탄 나무가 서 있다, 3시간쯤 가면 사람 얼굴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그런 식으로.
“어때요? 이 정도면 찾아갈 수 있겠어요?”
“물론입니다. 자세해서 좋네요.”
어머니가 그려준 원 몇 개에 비하면 뭔들 자세하지 않을까.
이 정도로 세세히 적혀 있으면 길 잃어버릴 염려는 없을 것 같다.
내비게이션 의존증인 전 지구인이어도 충분히 찾아갈 수 있다.
내가 지도를 챙기자, 제니가 보수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 일은 5일쯤 걸릴 거로 예상하고 보수를 정했습니다. 그래서 총보수가 150리라예요.”
조금 전까지 떠오르던 의욕이 푹 바닥으로 꺼졌다.
“… 그러면 수수료를 제하고 내 몫은 90리라군요.”
내 말에 제니의 입이 딱 벌어졌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다른 모험가의 일을 보던 직원도 깜짝 놀라 이쪽을 쳐다본다.
뭐가 그렇게 놀라운 건지 다른 때라면 신경이 쓰였겠지만, 나는 지금 그런 데 신경 쓸 때가 아니다.
‘5일 동안 일해서 90리라.’
적다… 너무 적다… 진짜로 너무 적은 거야!
지도에 적힌 대로라면 하루 이상 걸어가야 할 것 같고, 당연히 돌아오는 것도 하루 이상이다.
다리가 길고 체력이 있으니 내가 다른 사람보다 훨씬 빠르다고 해도 최소 7일 예정에 90리라인 거다.
제일 싸구려 여관, 그것도 일인실이 아니라 다인실에서 먹고 자는 데만 하루 1리라인데, 1주일에 90리라 벌어서 괜찮은 여관에서 자고 옷도 사고 나중에 집도 구해가며 살 수 있어?
어쩌다 감기도 걸릴 거고, 일거리가 없는 날도 있을 텐데, 평생 가난한 거 아니냐?
어떻게 하지.
모험가 그만두고 금맥이라도 찾으러 가야 하나.
내가 고민하는데 제니가 와락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방금 어떻게 알았어요?”
“….”
“라파 씨 몫이 90리라라는 거요.”
솔직히 대답할 기분이 아니었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울고 싶어.
하지만 내 마음이야 어떻든 여긴 직장이다.
나는 억지로 입을 비틀어 대답했다.
“계산했습니다.”
“계산….”
“….”
“종이나 모래에 쓰지 않고도 계산할 수 있군요?”
“그래요.”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멀찍이 서 있던 다른 모험가들까지 몇 명 다가와서 대단하다고 추켜세웠다.
“상인이 되지 그랬소!”
“그렇지. 상가에 가면 좋은 대접을 받을 거야.”
“아니, 그건 아니지. 얼굴이 좀….”
방금까지 멀리서 쳐다보던 모험가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든다.
계산이 별거 아니라는 사실은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지구에서는 누구나 이 정도는 순식간에 해버리는 거고, 아무도 대단하다고 말해주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자는 발상조차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누구나 다 대단하다고 말하면, 인간이라는 게 그렇다.
왠지 우쭐해지는 거야.
머릿속이 바보가 된 건가.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라파 씨.”
제니가 흥분한 얼굴로 말했다.
“얼마 뒤에 대규모 토벌이 있어요. 읽고 쓰고 계산까지 가능한 사람은 어떻게 구할 수 있는데, 빠르게 속셈이 가능한 사람은 정말 없어서 곤란했거든요. 아직 확정된 건 아니지만 토벌대가 구성되는 건 거의 정해진 것 같으니, 이번 일이 끝나면 그 일을 한 번 해봅시다.”
중요한 건 보수다.
그때도 일당 30리라라고 하면 다른 일을 찾아볼 거야.
금광을 찾거나, 드래곤 잡아서 비싸게 팔아먹는 일이라든가.
내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어쨌는지, 제니가 웃는다.
“5일에 150리라면 괜찮은 거예요. 중급 기준이라 보수가 높은 편인 거죠. E급은 일당이 2.5리라부터니까요.”
말도 안 돼.
2.5리라면.
그거 벌어서 제일 허름한 여관에서 자면 0.5리라 남는다는 말이잖아.
내 얼굴을 보고 제니가 다시 웃었다.
“토벌대는 보수가 괜찮을 거예요. 아직 결정 난 건 없어도 실력 좋은 사람으로만 구성되는 것이고, 영주님이 직접 돈을 내는 거니까요.”
“….”
영주님?
길드 토벌대가 아니라 영주가 주도하는 거야?
서, 설마 어머니를 토벌하러 가는 건가.
섬칫해져서 몸이 굳었다.
만일 어머니와 아버지를 찾아가는 토벌대라면.
‘여기에서 모두 부숴버려야 하나. 아니면 숲으로 들어가기를 기다려서….’
내가 범죄자가 되는 한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제니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예요. 일 자체는 위험하지만 여러 사람이 모여 가니까요. 이 도시에서 가까운 곳에 드래곤이 보였다는 보고가 있거든요. 여러 마리라는 말이 있어서 토벌대를 조성한다는 말이 나돌고 있죠. 실제로 우리 길드에도 요청이 왔구요.”
“아.”
어머니도 집 근처에서 드래곤을 보면 곧바로 잡으러 갔다.
둥지를 틀면 그 일대를 자신의 영역으로 삼아 골치 아파지기 때문이다.
알이라도 낳게 되면 그야말로 목숨 걸고 싸우자고 덤벼서 그 근처가 초토화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그렇구나… 드래곤….’
어머니 토벌대가 아니었구나.
다행이다.
마음 한구석이 깊이 안심했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오히려 약간의 불안이 생겨났다.
이번은 아니지만 어머니를 잡으러 가는 토벌대가 어디에선가는 생기고 있을 것 같아서.
길드에서 할 일이 끝나자, 제니는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접수대에 앉아있는 사람은 대부분 그 안에서만 일하고 있었다.
제니처럼 외부로 나가는 사람은 없다.
어제야 숙소 때문에 나갔다고 해도 오늘은 내가 일하러 출발하는 날이니까 제니가 나갈 일은 없을 것이다.
이상해서 물어보자 제니가 빙긋 웃었다.
“여행에 필요한 물건을 어디에서 파는지 알려드리려구요. 잘못해서 엉뚱한 사람한테 잡히면 이 도시에는 악랄한 사기꾼만 있다고 생각할 거 아니에요.”
“….”
“좋은 도시예요, 여기. 나쁜 사람도 물론 있지만 좋은 사람도 많죠. 오래도록 여기에 머물러 주세요, 라파 씨.”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길드 직원은 잘 만난 것 같다.
쑥스러운 마음에 머리를 긁자, 제니가 장난꾸러기처럼 눈을 찡긋했다.
“게다가 수수료를 40%나 받아먹으니 그 값을 해야죠.”
“….”
이 사람은 의외로 마음에 담아두는 스타일인지도 모르겠다.
제니를 따라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 가게를 한 바퀴 돌았다.
사람 두어 명이 나란히 걸어가면 꽉 찰 것처럼 좁은 골목이 구불구불 이어져 있고, 골목 양쪽으로 가게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대부분의 가게가 바깥에 진열대를 두고 있어, 사람들이 그 앞에 몰려 있었다.
안 그래도 좁은 골목이 더욱 비좁다.
복작복작한 골목을 돌아다니면서, 나는 제니의 안내로 저렴하게 물건을 고를 수 있었다.
소금, 향신료, 무기 닦을 때 쓸 헌 천과 기름, 건포도가 든 빵….
제니 덕분에 몇 군데에서는 외상으로 구입했다.
아직 돈은 조금 남아있지만,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수중에 돈을 남기고 외상 거래를 할 수 있는 건 고마웠다.
물건 구매를 거의 끝냈을 무렵, 청어를 굴비처럼 줄에 묶어 파는 곳을 발견했다.
가격이 비싸면 포기하려고 했는데 12마리에 1리라라고 해서 얼른 구입했다.
너무 싸서 처음에는 10리라를 잘못 들은 줄 알았어.
알고 보니, 의외로 소금에 절인 청어는 평민이 가장 많이 먹는 음식 중 하나라고 한다.
그만큼 싸고 흔하다고.
앞으로도 생선은 원 없이 먹을 것 같아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기도 좋지만, 역시 전생 한국인이라 그런지 생선이 있으면 기쁘다.
이것저것 사 모은 덕분에 짐승털을 길드에 내놓고 단출해졌던 가방이 다시 뚱뚱해졌다.
왠지 부자가 된 기분이다.
‘하지만 이거 일주일 치도 안 되겠지.’
덩치가 커서 그런지 나는 먹기도 엄청나게 먹는다.
숲에서 살 때는 어머니와 비슷했기 때문에 크게 의식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도시로 나오니 그 차이가 눈에 띄었다.
일반 사람의 몇 배는 먹는 것 같다.
하아.
나는 작게 한숨 쉬었다.
이 도시를 나가면 멧돼지든 뭐든 일단 잡아야겠다.
돈으로 사서 준비하는 음식만으로는 역시 모자랄 것 같아.
지도를 보면 쉽게 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현실과 이상은 역시 다른 법이다.
도시를 나온 뒤 나는 몇 번이나 길을 잘못 들었다.
어쩔 수 없었다.
이 세계에는 표지판이 없는 거야.
기껏해야 나무나 바위, 태양의 위치 같은 것이 표식이었다.
조금만 신경을 덜 쓰면 지나쳐버리고, 표식이 나올 때가 지났는데 이상하다 생각할 무렵이면 이미 몇 시간 거리를 지나친 뒤였다.
제니의 지도가 없었다면 아마 한 달이 걸려도 목적지에는 도착하지 못했을 것이다.
헤매느라 시간을 잡아먹은 탓에, 나는 어두워져도 횃불을 들고 걸어야 했다.
그래도 어쨌든 더듬더듬 길을 진행하다 보니 이틀째 저녁에는 목표였던 마을이 멀리 보였다.
외눈박이 개를 경계하느라 그랬는지 마을 울타리에 횃불이 걸려 있다.
저게 아니었다면 마을이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쳤을지 모른다.
그러면 또 엉뚱한 곳에서 마을을 찾고 있었겠지.
‘다행이다.’
안도하면서 걸음을 빨리하는데, 앞쪽으로 시커먼 형체가 보였다.
나도 모르게 눈이 커졌다.
‘외눈박이 개잖아!’
울타리를 향해 걷는 놈의 엉덩이로 털 적은 꼬리가 길게 뻗어 있다.
어둠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놈의 꼬리는 근육질 가득한 쥐꼬리처럼 생겼다.
생김새는 메기와 비슷하다.
얼굴 중앙 위쪽에 조금 큰 눈이 달려있는 걸 빼면 옆으로 난 긴 수염도 그렇고, 정말 메기를 빼닮았다.
메기에 근육 덩어리 다리가 네 개 나 있다고 표현하면 거의 정확할 것이다.
그런 괴상한 모습의 놈한테 개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멍”하고 울기 때문이었다.
이상하지만 저놈은 다른 울음 없이 멍, 소리만 낸다.
어쨌든 잘 됐다.
지금 이놈을 잡으면 내일 아침에는 출발할 수 있고, 7일 걸릴 일이 3일로 끝난다.
나는 거리를 가늠한 뒤 조용히 도끼를 뽑았다.
그리고 바람을 몸 주위에 모은다.
이렇게 하면 바람이 내 몸을 밀어줘 훨씬 빨리 달릴 수 있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신 뒤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