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171)
171 야만인 유인 작전
“장군님, 저자의 말은 너무 허황됩니다. 단 마법사 한 명으로 마도구가 제 기능을 되찾을 수 있다니….”
뾰족한 턱을 가진 부관이 섬뜩한 얼굴로 리비오를 노려보았다.
턱주가리 부관은 역사 깊은 마법사 가문 출신으로 예전부터 알고 있는 사람이다.
리비오 역시 마법사로 이름 높은 가문 출신이라 어릴 때부터 집안끼리 교류가 있었다.
다만, 오래 봐 왔다고 해서 사이가 좋은 것은 아니다.
턱주가리는 할아버지의 제자로 들어가 마도구사가 된 리비오를 계속 우습게 여겨왔다.
단지 그걸로 끝나면 상관없는데 만나기만 하면 시비를 걸어온다.
눈에 보이는 것조차 짜증 나는 모양이다.
이번에는 턱주가리가 장군의 부관으로 와 있기 때문에 상황이 좋지 않았다.
항구에 설치된 적의 마도구를 파괴한 자가 다름 아닌 리비오라는 사실이 적대감에 더욱 불을 붙였을 것이다.
그는 리비오가 특별한 마도구사로 대접받는 이 상황이 싫다.
리비오에게 붙은 무관이 사사건건 시비 걸고 함부로 대하는 것도 턱주가리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장군의 부관이 싫어하니 그 아랫사람들도 리비오를 함부로 대했다.
원래 여러 명 붙어있던 호위가 어느새 한 명으로 줄어든 것도 그래서겠지.
“제가 알기로 저 마도구에 빛이 들어오기까지는 수십 년, 혹은 수백 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어쩌다 한 개가 빛났다고는 하지만, 그저 우연이겠지요. 거의 다 차 있던 마도구가 이번 전쟁에서 마법사의 힘을 다량으로 빨아들여 빛난 겁니다. 그게 어쩌다 보니 그 야만인이 등장한 시점인 거고요.”
턱주가리는 비웃는 것처럼 리비오를 힐끔 보았다.
장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아까부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먼 옛날 아레논 왕국에 치욕스러운 패배를 당한 이후, 자알 왕국에서 왕위를 잇는 자들은 대대로 복수를 맹세해왔다.
과거 아레논과의 전쟁은 패전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의 완벽한 괴멸이었다.
이백 척에 가까운 배로 공격했는데 고국으로 돌아간 건 다섯 척도 되지 않았다.
해상에서는 적이 없다고 알려져 있던 자알 왕국에게, 그 당시의 패배는 하늘이 무너져 내린 것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
위에서 아래까지, 왕족과 귀족은 물론 백성 한 명 한 명의 머릿속에도 그 패배감은 깊이 박혀 나라 전체에 암울한 기운이 감돌았다.
왕위를 잇는 자리에서 언젠가 반드시 아레논 왕국에 치욕을 갚겠다고 선언하는 게 관례가 되었을 정도다.
이번 아레논 침공은 대대로 왕이 복수의 일념을 후계자에 넘겨주며 정말 오랫동안 준비해 온 일격이었다.
실패해서는 안 된다.
한데 일이 돌아가는 형편은 예측과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항구를 폐쇄한 뒤 왕도로 이틀이면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결사적인 적의 반발을 받았다.
안톤에서 나가자마자 적에게 유리한 길목에서 맞닥뜨린 걸 보면 우리의 침공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이런 상태라면 에크빌 왕국의 공격도 막혔을 가능성이 있다.
‘완벽한 기습이었을 텐데, 대체 어디에서 정보가 샌 건지.’
장군이나 턱주가리에게는 짐작 가는 데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일개 마도구사인 리비오는 전혀 모른다.
그래도 조금만 시간을 더 걸면 충분히 적을 짓밟고 갈 수 있었다.
대비했을지도 모르지만 적은 아직 완벽한 대응이 불가능한 상태로 보였다.
아무리 지리적 이점을 가지고 있다 해도 우리 앞을 막는 병사는 적었고, 개중에는 강한 마법사가 있었지만 마도구로 그 공격은 거의 힘을 쓰지 못한다.
그러니 앞으로 한 걸음만, 이라는 상황에서 막바지 힘을 올리려 할 때 나타난 게 그 야만인이다.
‘그때도 마도구만 그자 가까이에 있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당시 그 야만인이 공격한 곳은 아군의 외곽이다.
중앙에 있는 마도구에서는 상당히 멀었다.
“….”
뭔가가 마음에 걸린다.
그렇게 먼 자리에서, 어떻게 그자의 힘이 마도구 안으로 들어온 거지?
아무리 마법사가 강하다 해도 그 힘이 미치는 거리는 그리 넓지 않다.
마법을 쏜 그 근처의 협소한 폭에 한정되었다.
마도구는 꽤 먼 거리의 정령을 끌어들일 수 있지만, 그래도 그 야만인의 공격과는 거리가 상당했을 것이다.
‘설마 그 넓은 거리를 다 포함할 정도로 힘이 강하다거나….’
아니, 그럴 리는 없겠지.
그런 게 가능한 인간은 없다.
리비오는 머리를 조금 흔들었다.
쓸데없는 생각 따위를 할 때가 아니다.
지금은 장군을 설득하는 일에 집중하자.
턱주가리는 장군에게 그 야만인을 생포하는 게 별 이득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장군은 팔짱을 낀 채 묵묵히 생각을 거듭하고 있었다.
장군으로서 이 상황은 고민스러울 것이다.
실패해서는 안 되는 전쟁인데 갑자기 튀어나온 야만인 한 놈 때문에 퇴각해, 현재 아군의 사기는 형편없이 떨어져 있었다.
그 단 한 번의 공격이 아군의 마음을 완전히 뽑아놓은 모양이다.
그렇다고 안톤에 계속 있을 수는 없다.
[아레논 국왕의 목을 가져와라. 그게 불가능하다면 대신 너의 목을 받겠다. 실패는 용서하지 않는다.]누가 어떻게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소문으로는 왕이 장군에게 한 명령이라고 한다.
저 소문이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전쟁에서 지면 장군은 죽는다.
리비오가 그렇게 알 정도로 이번 침략에는 왕과 귀족 모두의 열망이 가득 담겨 있었다.
장군도 필사적일 것이다.
리비오는 턱주가리의 끝나지 않는 말에 끼어들었다.
“장군님도 적의 무기를 파괴하면서 마도구의 빛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보셨을 겁니다.”
“너! 감히 사람이 말하고 있는데….”
말을 중간에 방해받은 턱주가리의 눈이 뾰족하게 올라간다.
하지만 장군이 손을 들어 그를 막았다.
“확실히 보았다.”
장군의 말에, 리비오는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네 개의 마도구는 그때 확실하게 텅 비었습니다. 다른 마도구가 여전히 빛을 잃고 있는 걸 보면 장군님도 이번 일이 비정상이라는 걸 아시겠지요.”
“….”
“이 마도구 하나만 빛이, 그것도 이전에 본 적 없을 만큼 화려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
“저는 이 마도구에 빛의 나비가 빨려 들어가는 걸 직접 보았습니다. 분명히 그 야만인의 힘입니다.”
장군의 손가락으로 턱을 만지작거리며 무거운 표정으로 리비오를 보았다.
여기에서 눌러 눌러 눌러라.
리비오는 직감적으로 깨닫고 침을 꿀꺽 삼켰다.
“그 야만인만 잡을 수 있다면 이 마도구는 또다시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한 번 충전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 남자만 있으면 순식간이에요. 마도구 네 개를 연이어 사용할 수 있다면 아레논 왕국을 정복하는 건 쉽습니다. 아레논이 아니라 에크빌도, 그 옆의 다른 나라도, 순식간에 정복할 수 있습니다.”
“….”
장군의 눈을 슬쩍 보고, 리비오는 속에 삼켜 두었던 말을 뱉었다.
“그 야만인과 마도구를 폐하께 가져가는 것만으로 큰 공적이 될 겁니다.”
만일 전쟁에 지더라도, 왕은 이 마도구와 그 야만인의 생포에 기뻐할 거다.
그런 뜻을 은근히 풍기자 장군은 눈을 감았다.
리비오와 부관은 모두 장군의 뜻에 의해 그 자리를 물러났다.
그리고 삼십 분 뒤 이번 전쟁의 대장들이 장군의 방에 모였다.
리비오도 불려 구석에 자리 잡았다.
장군이 사람들을 한 바퀴 둘러보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이번 전쟁의 어려움은 모두 몸으로 느꼈을 것이다. 적이 예상외로 강력하게 저항하는 데다, 갑자기 나타난 야만인 때문에 우리는 많은 병사를 잃었다. 솔직한 말로 에크빌의 진격 역시 이 상태를 보노라면 협의대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장군의 말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우리에게 앞으로 진군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아레논 정복은 우리 자알의 오랜 염원. 이번 공격에는 수많은 사람의 비원이 달려있다.”
조용한 가운데 장군의 말이 이어진다.
“다만, 나는 여기에서 하나의 희망을 발견했다. 적의 마도구가 폭발하는 모습은 모두 보았을 것이다. 그 일로 인해 우리 마도구는 더 이상 작동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만일 그걸 여러 번 다시 사용할 수 있다면….”
장군이 좌중을 둘러본다.
상황을 모르는 대장들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장군의 시선이 리비오를 향한다.
사람들의 이목도 따라서 이동했다.
“이 일에 대해서는 그대가 설명하는 게 낫겠지. 이리 나오라.”
“예… 예, 장군님.”
리비오는 조금 긴장해 중앙으로 나섰다.
품에는 여전히 반짝이는 마도구가 있다.
그걸 사람들한테 보이며 설명하자, 술렁거림이 파도처럼 전체로 번졌다.
“그게 정말인가?”
“확신할 수 있나.”
“그 야만인 덕분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대장들에게서 질문이 쏟아진다.
리비오는 일일이 거기에 대응해 설명을 반복했다.
잠시 지켜보던 장군이 한 팔을 들어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보았다. 실제로 이 마도구가 작동하는 걸 목격한 이상 믿지 않을 도리가 없어.”
장군은 강하게 말한 뒤 두 팔로 책상을 짚었다.
“안톤은 그들에게 절대로 버릴 수 없는 도시. 그들은 반드시 이곳으로 올 것이다. 그때 우리는 적에게서 그 야만인을 떼어낸다.”
야만인을 유인한 뒤에는 천 명의 병사로 둘러싼다.
당연히 야만인의 공격이 있겠지만, 그 부분은 마도구가 담당할 것이다.
아무리 덩치가 크고 좋아도, 마법사에게서 마법을 빼앗으면 남는 건 그 몸뚱이 하나뿐이다.
천 명이나 그 야만인에게 배정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장군의 눈에 그 정도는 필요하다고 판단할 뭔가가 있었겠지.
“최악의 경우에는 팔다리를 못쓰게 되어도 좋다. 다만 죽이면 안 된다는 걸 명심하도록.”
장군의 그 말로 결론은 났다.
그 뒤에는 대장들의 회의가 이어졌다.
병사들을 어디에 배치할지, 어느 부대가 야만인의 포획을 담당할지, 마도구를 갖는 자는 누구로 할지, 그런 것들이다.
리비오는 마법사나 병사가 아니기 때문에 원래라면 그런 작전에 동원되지 않는다.
하지만 만에 하나 마도구를 작동한다면 당연히 리비오가 필요하다.
그가 전장에 동행하는 건 그래서.
다만 그럴 때에는 가장 안전한 곳에 머문다.
“자네한테도 호위를 몇 명 더 붙여줄 테지만, 스스로도 조심하게.”
장군이 직접 그렇게 말하자, 턱주가리가 눈이 시리도록 리비오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런 것에도 신경 쓰이지 않을 만큼 리비오는 들떠 있었다.
그 야만인을 잡으며 그의 마도구는 얼마나 더 아름답게 빛날 것인가.
생각만 해도 마음이 둥둥 허공을 떠도는 것 같았다.
*
배불리 먹은 뒤, 우리는 새벽같이 안톤을 향해 출발했다.
증원군은 아주 조금이었지만, 뭐, 내가 있으니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하다.
병사들은 옆에서 죽어간 전우의 복수를 한다고 눈이 시뻘게져 있었다.
흥분한 병사들 틈에서 나이 든 자들이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충고하는 목소리가 가끔 들렸다.
항구도시 안톤은 절반 정도가 바다에 접해있고, 나머지는 언덕처럼 나지막한 경사진 곳과 평지를 접한다.
당연히 견고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출입구는 모두 세 곳인데, 격자무늬의 두꺼운 쇠문이 이중으로 달려있다.
적을 막는다고 생각하면 매우 든든하지만, 반대로 쳐들어가는 입장이 되고 보면 답답해진다.
내가 없었다면 성 안으로 들어가는 데만 몇 달은 걸렸을 것이다.
적과 마법사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 성벽 두께만 6, 7미터가 훌쩍 넘어가고, 격자 쇠문이나 나무 성문 역시 엄청나게 두꺼우니까.
물론 나한테 걸리면 풍선보다 가볍게 날아간다.
계속 억제하는 데에만 중점을 두던 내 힘이 모처럼 쓸모 있어졌다.
좋았어.
이번에는 힘 좀 내보자.
내가 모처럼 의욕이 넘치는데, 할아버지가 말을 가까이 몰아 옆으로 붙었다.
빙그레 웃으며 할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얘야, 의욕 있는 건 좋지만, 힘 조절에는 다소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구나. 저 성은 결국엔 우리나라에서 보수해야 하는 거니까.”
“….”
생각해 보니 그렇다.
뭐, 좋아.
내가 그동안 힘을 조절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래서 그 강한 힘을 얼마나 섬세히 조종해 날릴 수 있는지 선보일 기회다.
좋았어! 다시 의욕이 나왔다.
우리가 성에 접근하자 높은 성벽에서 화살비가 쏟아져 내렸다.
우리 군대는 화살이 닿지 않을 만한 곳에 멈춰 공격할 준비를 갖췄다.
대장들이 병사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외친다.
“지시가 내릴 때까지 너무 접근하지 않도록!”
“멍청아! 너 말이다! 당장 뒤로 물러서!”
“성문이 파괴될 때까지 기다려라!”
나는 흐읍, 숨을 들이마셨다.
조심해서.
너무 힘을 담으면 성문이 아니라 그 근처의 성벽과 너머에 있는 도시까지 파괴될 것이다.
몇 번 호흡을 조절한 뒤, 나는 드디어 멀리 보이는 성문을 향해 힘을 내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