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176)
176 전쟁은 끝난 것 같다. 내 로망도.
지금 서 있는 곳에서 항구까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정령이 많이 늘어난 상태이므로 여기에서 바람을 쏘아도 충분히 먼바다까지 닿겠지만, 잘못하면 중간에 있는 건물이나 사람이 다칠 가능성이 있다.
역시 저곳까지 가야 한다.
“….”
하아아아아.
그렇게 생각한 순간 짙은 한숨이 흘렀다.
그래, 정령이 많이 늘었다.
그 작은 돌에 대체 얼마나 많은 정령이 잡혀 있었는지, 내 원래 정령보다 몇 배 늘어난 것 같아.
어쩌면 더 많을지도 모른다.
내 주변에 있는 정령만으로 대강 계산한 게 그만큼인데, 오래 갇혀 있다 풀려서 기쁜 건지 아니면 인간한테 분노하는 건지, 아직 내 근처에 오지 않은 정령도 상당히 많으니까.
그렇다면 가고 싶은 곳으로 그냥 가버리면 좋을 것이다.
기왕 자유가 되었잖아.
한데 왠지 모두 함께 몰려 나를 쫓아다닌다.
설마 동료한테서 떠나는 게 서운해 그런가.
어쨌든 늘었다.
정말로 많이 늘었어.
덕분에 한동안 열심히 익힌 제어가 소용없어졌다.
젓가락 휘두를 때와 통나무 휘두를 때는 사용하는 근육과 움직이는 방법이 다른 것처럼, 힘이 늘어나면 늘어난 만큼 제어법도 달라져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처럼 사용하면 넘쳐나는 정령이 제어에서 벗어나 의도치 않은 피해를 낼지 모른다.
하아, 저절로 한숨 나오네.
어쨌든 정령이 늘어난 덕분에 이번 일은 굉장히 쉬울 것 같다.
아무렇게나 그냥 휘둘러도 바다에 있는 배는 모두 폭삭 가라앉지 않을까.
내 생각을 들은 것처럼 정령들이 근처에서 날아다니며 파르르 날개를 흔들었다.
왠지 키득키득 웃는 느낌이다.
웃지 마, 이 녀석들아. 나는 심각하다.
나는 작게 한숨 쉬면서 건물 밑으로 뛰어내렸다.
얼핏 생각에, 이대로 건물과 건물 사이를 날듯이 뛸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생명은 하나뿐이다.
줄 없는 타잔처럼 날아다니다 어느 순간 뚝 떨어지면 죽는 거야.
내가 말해도 왠지 공허한 느낌이지만 위험한 일은 하지 않는 게 좋다.
그대로 항구로 내달리는데 어디에선가 요란한 함성이 울렸다.
언어를 들어보면 아군의 목소리다.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갑옷 기사단과 함께 있는 것 같다.
그들이 뭔가 했을까.
아니면 뭔가 하다 이제 끝난 거던가.
어쩌면 지상의 적은 거의 전멸한 걸지도 모르겠다.
*
“항구를 향해 포의 위치를 조정해라!”
“마법사들은 포격을 준비하라!”
선원들이 돛을 올리고 바쁘게 움직인다.
함장의 명령에 따라 배가 조금 더 항구에 가까워졌다.
항구에 가까운 배 몇 척은 이미 준비가 끝난 모양이다.
준비 완료의 깃발이 올라가 있다.
바리엘은 옆에 있는 마법사 부대 대장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대장님, 진짜 포격합니까?”
“….”
“저 도시에는 아직 아군이 있습니다.”
“….”
“모든 배가 도시를 포격하면… 모두… 모두 죽을 겁니다.”
이번 전쟁에는 나라의 국력을 모두 쏟아부었다고 할 만큼 수많은 마도구와, 그걸 구동할 마법사가 동원되었다.
우리 배에는 위력이 다소 약한 종류가 많지만, 제독이 탄 배의 마도구 몇 개는 도시 안쪽 저 멀리까지 확실하게 닿는다.
당연히 위력도 상당하다.
모든 마도구가 도시를 포격하면 살아남을 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적도 죽지만 아군도 당연히 죽는다.
바리엘의 떨리는 말에 대장이 음울하게 중얼거렸다.
“이건 명령이다.”
전장에서 명령은 절대적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군을 모두 죽이라는 명령에 순응하는가.
배 위에 올라와 있던 마법사들 사이에서도 숨기지 못한 동요가 흐른다.
몇몇이 묻는 듯한 시선을 이쪽으로 보냈지만 대장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굳은 얼굴로 입을 꽉 다물고 있을 뿐이다.
“포격 준비가 끝났습니다.”
아래층의 마법사들이 마도구 구동을 마치고 보고하자, 마법부대 대장이 떨어진 곳에서 기다리던 부관에게 다가갔다.
“마도구 쪽 준비가 끝났으니 함장께 보고를 올려주게.”
부관은 곧바로 함장에게 달려갔다.
그의 모습이 시야에서 멀어진다.
“대장!”
바리엘이 뭔가 말하려는 순간, 우리 배에서 준비 완료의 깃발이 올라갔다.
속속 다른 배에서도 깃발이 올라가고 있다.
이제 모든 배에서 공격 준비가 끝난 모양이다.
곧이어 제독이 탄 배에서 공격하라는 명령의 깃발이 올라왔다.
맙소사.
‘설마 설마 했는데.’
정말로 모두 죽이려는 모양이다.
육군과 해군, 마법사는 그리 사이가 좋지 않다.
이번에도 전쟁 준비 과정과 오랜 항해 동안 크고 작은 일로 많이 싸웠다.
그래도 같은 나라의 국민, 같은 편이다.
전쟁터에서 아군을 죽이다니, 그런 일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포격 준비!”
대장의 명령이 떨어지고, 호령이 배에 울려 퍼졌다.
배 위에도 몇 개의 마도구가 있다.
그걸 담당한 마법사들이 마도구에 마력을 담는다.
거리와 방향을 가늠해 목표를 정하는 마도구 담당이 마지막 점검에 바삐 움직였다.
“발사!”
명령이 떨어지자, 마도구가 서서히 불을 형성한다.
보조하는 마법사가 마력을 사용해 마도구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마도구가 뜨거워지면서 붉은 불이 포구 앞으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이변이 생긴 건 그 순간이었다.
돛대 위에서 항구를 감시하던 병사의 고함이 배 위에 퍼졌다.
“바람이다! 아니, 파도가! 저건, 빛, 빛의 나비가 쏟아져온다!”
하지만 그 고함보다 먼저 바리엘의 눈이 이상한 현상을 잡고 있었다.
바다 전체가 뒤집어진 것 같다.
바닷물이 거슬러 올라가 허공을 움켜쥐는 것처럼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맙소사.”
바리엘은 고개를 높이 쳐들었다.
잠시 전만 해도 파란 하늘이 보였지만 지금은 짙은 물색이 되었다.
물이 성난 것처럼 튀어 올라 하늘을 먹어 치우며 배를 향해 달려온다.
잠시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
하지만 거대한 물에 다른 배가 차례차례 먹히는 걸 보고, 모두가 등을 돌려 배에서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배에 있어도, 뛰어내려도 결과는 같을 것이다.
죽는다.
그래도 인간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공포가 이성을 짓눌러 어쨌든 도망치게 만든다.
바리엘도 몸을 돌렸다.
허우적거리며 뛰는데 배가 크게 흔들린다.
앞으로 기우뚱한 순간 그의 몸은 데굴데굴 굴러가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바다와 수평으로 떠있던 배가 물에 직선으로 서 있다.
맙소사.
맙소사.
맙소사.
그렇게 생각하며 문득 뒤를 보자, 시커먼 묵이 그를 향해 크게 입 벌리고 있었다.
“맙소사.”
그것이 바리엘의 마지막 말이었을 것이다.
다음 순간 머리를 잡아먹을 듯 덮치는 거대한 물을 보며 바리엘은 눈을 크게 부릅떴다.
공포 때문에 그때까지 들리지 않았던 사람들의 비명이 암흑 속에서 귀를 친다.
사방이 비명으로 가득하다.
뇌 속까지 가득 찬 비명 속에서, 바리엘은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
지, 지, 지, 지나쳤다.
원래 내 계획은 바다에 풍랑을 일으켜 배를 무력화하되 될 수 있으면 남겨두는 것이었다.
배는 내가 알기로 매우 비싼 물건이다.
약간 부서지더라도 수리할 수 있는 상태로 인수한다면 그게 최상일 것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배는 이미 적에게 전멸한 것 같고, 전함은 어차피 필요하다.
게다가 항구에 적함만 있는 건 아니다.
외국이나 우리나라의 상선도 있다.
그래서 항구에 있는 배는 되도록 건드리지 않은 채 파도를 일으켜 멀리 있는 적함만을 약간만, 정말 약간만 파괴하려고 한 거야.
한데 정령들이….
물론 마음대로 날뛰어도 좋다고는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적당히, 라는 것이 붙는다.
이런 세상의 멸망 같은 걸 말한 것이 아니었는데.
아, 정말 어쩌지.
정령들이 바람을 일으켜 파도를 일으킨 건지, 아니면 물을 잡아끌어 올리는 방법이 있었는지, 마치 바다 전체가 뒤집어진 것 같다.
단박에 수위가 낮아지면서 물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대체 어떻게 한 건지, 눈으로 봐도 모르겠어.
내가 예상한 것보다 정령의 수가 훨씬 많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말 그대로 바다 전체가 뒤집어지고 있다.
처음에는 먼 바다로 나가는 쪽으로만 물이 치솟았지만, 이제는 항구 쪽에 있는 물까지 거세게 출렁인다.
원래 파도라는 게 이쪽에서 저쪽으로 일정하게 일렁이는 걸 텐데, 지금은 정령들이 돌아다니며 인공적으로 일으키기 때문인가.
이쪽에서 거대한 파도가 일어나 밀려가는데, 맞은편에서도 똑같은 파도가 생겨 달려온다.
둘이 맞부딪치면서 폭발한 것처럼 요란하게 물소리가 퍼졌다.
적함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이제 봐도 모르겠다.
눈에 보이는 건 온통 바닷물뿐.
바다가 왜 허공에 떠 있는가.
그런 생각이 드는 건 나뿐인가.
처음에는 적함을 부수기 위한 것이었지만, 이제는 물을 조작하는 일 자체가 재미있어진 것 같다.
정령들이 웃는 것처럼 허공에서 반짝이며 빛을 발했다.
망했어.
파도 때문에 보이지 않아도, 저 상황에서 살아남은 배는 없을 거다.
모두 다 가루가 되어버렸다.
‘그 비싼 배가.’
배가 수리되면 나도 한 척 정도는 어떻게 달라고 비벼봤을지 모르는데.
완전히 끝장났다.
내 가슴 깊숙이 자리 잡았던 남자의 로망이 와그작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어쨌든, 이 상황은 맙소사네.
내가 멍하니 바다를 쳐다보는데, 그새 우리 편 병사들이 항구에 도착한 모양이다.
요란한 비명이 올랐다.
“바, 바다가.”
“밀려온다아아아아아!”
“도망쳐라!”
아, 그러고 보니 그러네.
바다가 이쪽을 향해 오고 있다.
정령이 흔들어 놓은 물이 출렁이다 이쪽으로 넘치는 모양이다.
“….”
아니, 아니, 지금 내가 위기잖아?
나는 배에 힘을 주고 큰 소리로 외쳤다.
“이놈들아! 당장 여기 와서 이거 막지 못해! 이러다 내가 죽는다.”
그렇게 소리 지른 순간이었다.
바다에 가지 않은 채 내 주위를 파닥파닥 날던 정령나비가 일제히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하늘에 있던, 그리고 바다 위를 떠다니던 정령들도 일제히 몰려온다.
“어….”
“에…?”
“맙소사.”
“저게 뭐야.”
병사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나도 중얼거렸다.
“우와.”
대단하다.
항구를 향해 솟구쳐 오던 성난 파도가 그대로 공중에 멈춰 있었다.
그 물을 감싼 것처럼 반짝반짝 빛이 난다.
정령들이 모두 달라붙어 물을 잡은 것 같다.
진짜 대단하다, 저 녀석들.
물을 잡을 수 있구나.
바람으로 물을 흔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령은 물도 잡을 수 있는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파도가 허공에 굳어있다니, 있을 수 없겠지.
… 포롱… 포로롱… 포롱… 포롱….
허공에서 빛이 반짝거리며 물방울 터지는 듯한 소리가 맑게 울리기 시작했다.
허공 전체가 포롱 포롱 소리로 가득하다.
정령나비 몇 마리가 내 근처로 날아와 머리 위에 앉았다.
반짝반짝 빛을 내면서 묻는 것처럼 포로롱 거린다.
… 괜찮아? 잘했어? 우리 잘했어? 괜찮아?
마치 그렇게 묻는 것처럼 느껴졌다.
대답을 기다리는 것 같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을 올렸다.
“그래, 잘했다.”
머리에 앉았던 정령 나비가 날개를 퍼덕이며 손가락 위로 옮겨 앉는다.
그 순간 퐁… 퐁… 퐁… 물방울이 터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한꺼번에 물이 아래로 부서져 떨어졌다.
정령들이 잡고 있던 물방울을 놓은 모양이다.
한꺼번에 떨어진 바닷물은 수면을 크게 흔들며 사방으로 튀었다.
항구뿐 아니라 약간 떨어진 곳에까지 물이 튄다.
건물은 물론 사람도 흠뻑 젖었다.
나도 마찬가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닷물에 들어간 것처럼 흠뻑 젖어 버렸다.
정령들은 일시에 바닷물을 놓고 한꺼번에 내 주위로 몰려왔다.
[잘했어? 잘했어? 기뻐? 웃어? 기뻐? 잘했어?]그렇게 속삭이는 것 같다.
정령들이 몰려오면서 모래보다 작은 바람들이 내 주변을 부드럽게 흔든다.
그 바람 덕분에, 내 몸은 젖을 때처럼 순식간에 바삭바삭 말라갔다.
이 녀석들, 건조기로 써도 괜찮을 것 같아.
“잘했어. 조금만 더 힘 조절을 잘해 줬다면 좋았겠지만, 뭐, 정말 잘했다.”
특히 항구로 덮쳐오는 물을 잡아서 아군과 도시의 주민이 한 명도 죽지 않은 건 정말 잘했다.
잘못하면 도시 전체에 해일이 밀려갔을 거다.
그러면 당연히 사람도 많이 죽었겠지.
함부로 풍랑을 일으키는 건 조심해야겠다.
어쩌면 전설로 남은 옛 마법사도 다행히 적은 막았지만 해일로 아군과 주민을 죽였을지 모른다.
진실이 어떤지는 몰라도, 눈으로 정령들의 움직임을 보니 그럴 가능성이 크다 싶었다.
“진짜 잘했다.”
내가 다시 한번 말하는 순간이었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
“전설의 재래다.”
“적을 막아냈다!”
아군 사이에서 요란한 함성이 올랐다.
고개를 돌려보니 병사들이 두 팔을 올린 채 함성 지르며 나와 갑옷 기사단, 그리고 정령들에게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진 바다를 보니, 배는 한 척도 떠있지 않았다.
적함은 모두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고, 지상의 적군도 전멸인 모양이다.
“….”
이제 전쟁은 완전히 끝난 것 같다.
전함을 향한 내 로망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