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180)
180 라파의 얼굴이 엄청 무섭다
괴이한 기사단이 나타난 것은 우리 에크빌 군이 적을 쫓아 너른 평야에 도착한 다음이었다.
적병이 갑자기 길을 열더니 그 괴상한 기사단이 달려왔다.
거대한, 정말 거대한 몸집의 기사들이었다.
말도, 기사도, 이 세상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크다.
하지만 숫자는 얼마 되지 않았다.
우리 군에서는 곧바로 대응에 나섰다.
호령이 울린다.
“창 준비!”
그 명령은 가장자리, 맨 앞에 서 있는 우리에게 떨어졌다.
원래는 다른 명령이었다.
하지만 낯선 군대 말을 금방 알아듣지 못하고 한 번 생각해 걸러야만 이해하자, 윗사람들이 명령을 쉽게 바꾸었다.
저 정도 말이라면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반응할 수 있다.
그전에는 약간씩 느리게 움직여 굼뜨다고 엄청나게 두들겨 맞았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지.
가장자리에 서, 공격이 들어오면 가장 먼저 죽어버리는 우리는 대부분 무지렁이 농민이다.
해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해가 떨어질 때까지 밭일하고 가축을 돌보는 것만 줄창 해온 사람들로, 글자도 모르고 뭔가 설명해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우리들이 군에 들어온 것은 소집령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한 가구에 한 명씩 징집되었다.
수확물 일부를 세금으로 내고 군 소집에 응하는 것이 밭을 받아 일구며 살 수 있는 대가였다.
그리고 군에 들어온 건 대부분 그 집에서 가장 쓸모없는 남자다.
가장 힘이 없거나 바보거나 농사일에 재주가 없거나 밥을 너무 많이 먹거나, 어쨌든 없어져도 크게 손해 없는 자가 가장에 의해 군으로 보내졌다.
거기에 큰 불만은 없다.
죽을 위험은 있지만, 물론 죽을 위험밖에 없지만, 어차피 집에 있어도 별 볼 일 없는 인생인 건 마찬가지니까.
별일 없으면 평생을 태어난 집에서 농사일하다, 운이 좋으면 근처의 여자를 아내로 맞이해, 더 운이 좋은 경우에는 아버지에게 밭을 약간 받아 입에 풀칠하면서 살게 된다.
그런 집안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은 아버지의 재산을 사후 모두 받을 수 있는 첫아들이다.
첫째 이외의 다른 아들딸은 그저 집안의 일꾼으로 평생 살다 그냥 죽을 것이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이 뭐냐 하면, 무지렁이 농민 중에서도 군에 징집된 우리는 가장 바보 같고 멍청한 놈들이라는 것이다.
우리 때문에 명령을 바꿔야 할 정도로.
그렇게 멍청한 우리지만 그래도 살고 죽는 문제에 대해서는 나름의 촉이라는 게 있었다.
위기에 닥치면 느낌이 온다.
저 괴상한 기사들은 위험하다.
바로 지금 딱 그 느낌이 왔다.
그는 호령에 따라 창을 내밀면서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엉덩이를 쭉 빼고 가급적 앞에 있는 척하며 최대한 뒤로 빠진다.
옆에 있는 동료 몇 명도 비슷한 꼴로 슬금슬금 병사들 사이에 스며들고 있었다.
밥만 축내는 의미 없는 삶이라도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모두 살고 싶다.
기사단과 아름다운 귀족 남자, 아마 이름이 클라우스라고 했던 공작가의 후계자가 바로 앞까지 달려오자, 다음 명령이 떨어졌다.
“찔러!”
앞에 있는 동료들이 창을 앞으로 내지른다.
눈치 빠른 몇 명은 뒤로 빠졌지만, 어쨌든 누군가는 제일 앞에 있게 마련이다.
그도 창 내미는 시늉을 하며 엉덩이를 더욱 뒤로 쭉 뺐다.
몇 걸음 더 뒤로 갈 수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사방이 훤해졌다.
방금까지 동료들이 빽빽하게 차 있던 행렬이 없어졌다.
바로 앞이 허허벌판처럼 비어 있었다.
무슨 일이야!
깜짝 놀라 사방을 보면, 언제 죽었는지 방금까지 서 있던 동료들이 쓰러져 있다.
몇 사람의 가슴팍에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몇 사람의 목은 몸에서 떨어져 아무렇게 구른다.
“히, 히이익!”
비명을 지르며, 병사는 엉덩방아를 찧고 뒤로 넘어졌다.
그러지 않았다면 죽었을 것이다.
머리 위로 기사단의 창이 스쳐 지나갔다.
머리카락 몇 가닥이 가볍게 잘린 것 같다.
바로 옆, 뒤에 있던 병사들이 또다시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와 비슷하게 뒤로 빠졌던 몇 명의 동료도 마찬가지였다.
엉거주춤한 채 서 있어서는 철갑 기사단의 창을 피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이제 죽었다, 생각했지만 아레논의 철갑 기사단은 이미 그를 지나 중앙을 향해 들어가고 있었다.
‘사, 살았다.’
병사는 멍하니 그들의 뒤를 보며 생각하다 눈을 부릅떴다.
바닥에 앉아있기 때문에 그의 시야에는 철갑기사단의 말이 곧바로 들어온다.
그 말을 덮고 있는 긴 천자락 밑으로 발이 보이지 않았다.
“히익!”
유령이다.
괴물이다.
어쩌면 마녀의 저주 때문에 떠도는 영혼일 수도 있다.
뭔지 모르지만 어쨌든 저들과 맞닥뜨리면 죽음뿐이다.
그는 허겁지겁 일어나 뛰기 시작했다.
병사 몇 명이 그를 보고 뭔가 소리쳤지만 여기는 전장이다.
그들도 다른 병사가 도망치는 데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철갑 기사단이 지나간 자리마다 시체가 나뒹굴고, 그 뒤를 쫓아 아레논 병사가 악귀처럼 날뛰는 것이다.
자기 목숨 부지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쳤다.
싸우는 아군을 뒤로하고, 그는 무작정 달렸다.
이곳에서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전쟁터 한가운데에 있으면 솔직히 말해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다.
눈에 보이는 건 창칼로 싸우는 병사와 말 탄 무관, 그리고 엄청난 먼지뿐이었다.
기껏 보이는 것은 약간 언덕진 곳에 있는 약간의 아레논 군뿐이다.
여기에서 멀리 떨어진 그곳에는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아레논 사람이 약간 있었다.
너무 멀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인지는 잘 모르겠다.
높은 사람을 모시는 의료 관계나 시종 같은 게 아닐까.
언덕이라고 해도 그리 높지 않고, 그저 완만하게 올라가는 지대라 잘 보이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시야에서 뭔가 이정표가 될 만한 건 그 사람들밖에 없다.
에크빌 병사는 그걸 기준점으로 삼아 반대쪽으로 달렸다.
최대한 일직선으로 쭉 간다.
하지만 우리 에크빌 군의 수가 너무 많아 달려도 달려도 한참 동안이나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미친 듯이 달리는 그의 등 뒤로 소름 끼치는 비명이 울린다.
철갑 기사와 적의 대장 클라우스는 우리 군의 중앙을 돌파한 뒤 지그재그로 달리며 적을 베어 버리고 있었다.
언뜻 뒤돌아보자 철갑 기사단의 긴 창에 우리 병사들이 닿고 있었다.
창의 충격에 몇 명은 허공으로 튕겨 나가고, 몇 명은 창에 가슴이 뚫렸다.
“히익!”
비명을 지르던 그는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 창은 물론 살상용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앞에는 철 조각이 달려 있었다.
그러니 가슴이 뚫리는 건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사람의 몸은 연약한 것 같아도 단단하다.
그냥 창끝이 닿은 것만으로는 뚫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저 철갑 기사의 창끝은 사람의 몸에 닿자마자 그 몸을 녹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고 보니 창에 튕겨 날아간 사람의 모습도 조금 이상했다.
‘… 아, 아마 창이 닿기도 전에 튕겼던 것 같아.’
너무 빨라 잘 보이지 않았지만, 아니, 솔직히 말하면 확실하게 보았다.
정말로 창이 닿지 않았기 때문에.
창은 날아간 병사들의 몸과 주먹 두 개 분은 떨어져 있었다.
‘역시 괴물이다.’
괴물 말에 타고 있으니 당연히 그 위의 기사도 괴물이겠지.
너무 달려서 이제 숨도 끊어질 듯 힘들다.
하지만 여기에서 멈추면 죽는다.
괴물한테 죽을 것이다.
게다가 사람들이 모두 아름다운 인간이라고 말하는 적의 대장 클라우스도 평범해 보이지는 않았다.
개미 한 마리 죽이지 못할 것 같은 얼굴로 검을 날려 사람의 머리를 뎅강뎅강 자르는 그 모습은 현실감이 없고, 마치 아름답게 조각된 신상이 살아나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솔직히 말해 저 사람도 무섭다.
엄청 무섭다.
다들 아름답다고 행렬의 병사조차도 한숨을 쉬었지만, 저 모습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올까.
“….”
그는 문득 눈을 크게 떴다.
클라우스가 우리 군 무관의 목을 막 베려는 순간이었다.
한데 방금까지 증오에 가득하던 우리 군 무관의 눈동자가 한순간 황홀하게 녹아들었다.
우리 무관과 클라우스의 시선이 딱 맞았을 때였다.
‘저, 저건 뭐야.’
눈이다.
저 남자의 눈동자를 우리 무관이 똑바로 본 순간 저렇게 이상하게 된 거야.
괴물을 데리고 있는 사람도 괴물이었다.
‘눈을 마주치면 안 돼.’
눈을 보면 저렇게 되어 싸우지도 못한 채 그냥 죽는다.
그는 등을 돌린 채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조금 아까까지만 해도 그가 달리면 누군가가 욕을 하거나 잡으려고 했지만 이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모두 제 살길 찾기에 바빴다.
정말 오래 달린 뒤 겨우 전장 가장자리에 도착했다.
다리는 이제 때려죽인다 해도 움직이지 않을 것 같다.
처음에는 기세등등해 적을 섬멸하겠다던 우리 군이지만 이제 절반도 남지 않았다.
철갑 기사단과 적장 클라우스, 그리고 우리에 비하면 형편없이 적은 적병에게 수를 줄여, 이제는 싸우는 놈 반 도망치는 놈 반이다.
가장자리가 더 이상은 가장자리가 아니게 되었을 만큼 하단 병사는 대부분 도망친다.
그도 거기에 섞여 마지막 힘을 짜내 엉거주춤 걸었다.
기운이 너무 빠져 뛸 수 없다.
약간 멀리, 그보다 먼저 도망치는 병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저기까지는 기어서든 어떻게든 가야 한다.
그렇게 생각해 안 떨어지는 발을 움직이는데, 갑자기 머리 위쪽으로 주먹보다 조금 작은 물방울이 날아왔다.
“뭐야.”
아직 다른 사람은 눈치채지 못했다.
물방울은 마치 눈이라도 가진 것처럼 사람들의 머리 위쪽에 하나씩 숫자를 맞춰 떠올라 있었다.
순간적으로 소름이 쫘악 끼쳤다.
이건 좋지 않아.
뭔가 이상하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그는 자기 머리 위에 있는 물방울을 피해 옆으로 몸을 굴렸다.
물방울이 뚝 떨어진 건 그 순간이었다.
옆으로 구른 그의 어깨 바로 옆으로 물방울이 떨어져 땅이 조금 젖었다.
다른 사람들은 피하지 못했다.
그들은 머리에 물이 떨어지자, 비도 오지 않는데 왜 이런 일이 생겼나 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순간 빛으로 된 나비 몇 마리가 물 맞은 병사들에게 날아갔다.
젖은 머리에 나비가 살짝 닿자 갑자기 그 병사가 몸을 부르르 떨며 쓰러진다.
한두 사람이 아니다.
물방울을 맞은 사람은 빛의 나비가 닿을 때마다 몸이 뻣뻣해지며 쓰러져 죽었다.
“괴물이다. 온통 괴물밖에 없어. 아레논에는 괴물이 살고 있어.”
병사는 자기도 모르게 외치고 엉금엉금 기기 시작했다.
죽고 싶지 않다.
살고 싶다.
언젠가 집에서 독립해 약간의 땅을 받아 아내를 맞이해 아이를 기르고 사는, 정말 평범한 삶이 살고 싶다.
제발… 제발… 정령님, 저를 지켜주세요.
병사는 중얼중얼 빌면서 물방울이 없는 곳을 향해 엉금엉금 기었다.
*
거리가 가까우면 타티아나도 사람의 몸에 정확하게 물을 맞힐 수 있다.
하지만 이곳은 너무 넓고, 안전을 위해 그녀는 전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진을 치고 있었다.
이 거리에서는 수공을 만들어도 사람에게 씌울 수 없고, 애초에 거기까지 닿지 않는다.
그래서 아버님은 타티아나에게 바람 마법사 다섯 명을 붙였다.
그들이 타티아나의 물방울을 먼 곳까지 운반해 정확히 적의 머리 위에 올려준다.
그렇게 하면 남은 일은 정령 나비를 보내는 것뿐.
라파가 가르쳐준 방법이다.
정령 나비는 정전기를 일으키지만 아군과 적을 구분하지 못한다.
모두가 한데 몰려 있는 곳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러면 정령 나비에게 표적을 정해주면 된다고 라파가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하면 물 없이 하는 것보다 확실하게 죽는다.
솔직히 이런 건 무섭다고 생각했지만, 전쟁이다.
도망치는 적을 죽이지 않으면 패잔병은 우리나라 국민을 해칠 것이다.
문득 뮤엘의 얼굴이 떠올랐다.
우리 백성 가운데에 뮤엘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마녀의 어머니, 음유시인의 아버지.
내 마음속만의 부모.
타티아나는 도망치는 적이 불쌍해지는 마음을 누르고 계속해서 수공을 만들어 띄웠다.
정령 나비는 반짝반짝 날개를 흔들며 날아가 적병을 죽이고 돌아온다.
그리고 다시 날아갔다.
라파가 명령한 대로 한다.
가장자리로 도망치는 적은 차례차례 쓰러지고, 어느새 적도 이곳에 있는 마법사가 아군을 죽인다는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다.
가까운 곳의 적장 한 명이 근처의 병사를 모아 이곳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이곳에는 병사가 적다.
애초에 우리 군이 너무 적기 때문에 많이 남길 수 없었다.
달려오는 적병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아버님과 철갑 기사단은 저 끄트머리에서 적과 싸우고 있었다.
“타티아나 님!”
호위병이 재빨리 말을 끌고 와 그녀를 올렸다.
타티아나는 엉거주춤 말에 올라 몸을 엎드렸다.
승마를 배우기는 했지만 잘 타지 못한다.
말이 달리면 굴러떨어질지도 모른다.
겁이 더럭 났다.
“괜찮습니다. 미리 연습한 대로만 하면 돼요.”
“말에 태운 건 혹시 있을지 모를 상황에 대비한 것입니다.”
마법사들이 그녀를 안심시키며 빙그레 웃었다.
그들의 손에서 회오리바람이 피어오른다.
그 바람은 이제 가장자리의 도망자가 아닌,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적에게 쏘아졌다.
하지만 적이 너무 많다.
타티아나는 저렇게 많은 적을 상대할 수공을 만들어 낼 수 없고, 여기에 있는 마법사들은 강한 힘보다는 세밀한 컨트롤에 특화된 사람들이라고 들었다.
타티아나의 물방울을 뭉개지 않고 정확하게 목표에 도착하게끔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자들.
적과 싸우는 것은 능숙하지 않을 것이다.
타티아나는 입술을 질끈 물었다.
‘괜찮아. 라파 씨가 가르친 대로만 하면 돼.’
타티아나는 수공을 크게 만들지 않고 안개처럼 아주 작은 물방울을 무수히 만들어 냈다.
그걸 방어망처럼 허공에 펼친다.
마침 정령나비 몇 마리가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적과 정령나비의 속도가 비슷하다.
“조금만 더 빨리….”
그렇게 정령나비를 향해 말했을 때였다.
어디에선가 환호성이 울렸다.
“도련님!”
옆에 있던 호위병이 큰 소리로 외쳤다.
고개를 돌려 보자, 라파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거리는 아주 멀다.
하지만 너무 빨라 순식간에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히익!”
옆에서 마법사가 괴상한 소리를 내며 몸을 떨었다.
너무 놀라 마법사 손에서 일어나던 바람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라파 씨.”
타티아나도 조금 떨렸다.
라파가 지금까지 보아 온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무서운 표정을 한 채 손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리 달려오고 있었다.
든든한 마음은 있지만, 네, 무섭네요.
엄청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