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189)
189 나 왜 남자한테 청혼받고 있니
“저리 가!”
“가까이 오면 죽인다!”
훈련할 때 쓰는 죽창을 흔들어 늑대 무리를 위협한다.
하지만 손이 형편없이 흔들려, 아버지와 부족 아저씨들한테 배울 때처럼 쭉 찌를 수 없었다.
늑대한테 타리의 죽창은 전혀 닿지 않았다.
어쩌면 죽창이 무서운 걸까.
늑대는 우리를 둘러싼 채 거리를 약간 떨어뜨리고 있다.
가까이 오지 않는다.
으르렁거리며 가끔 물려는 듯 짖고 가까이 왔다 다시 물러났다.
조금 희망이 보인다고 생각했다.
잘하면 이놈들을 위협해 나무 위로 올라갈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놈들은 듬성듬성 서 있으면서도 타리가 움직이면 곧바로 이동해 길을 막았다.
이래서는 나무에 가까이 갈 수 없다.
어떻게 하지, 생각하는 사이 타리는 이런 상황을 들은 적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 이건 히, 힘 빼기야.’
훈련받을 때 들었다.
늑대 무리는 이런 식으로 먹이를 둘러싸고 위협하거나 쫓아다니다 힘이 빠지면 덮친다.
‘큰일 났다.’
친구들까지 합해 몽땅 죽게 생겼다.
‘이런 게 아니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 부족 사람들을 돕고 싶었다.
타리도 이제 다 컸다고, 한 사람 몫을 하는 남자가 되었다고 보여주고 싶었다.
한 사람 몫의 남자가 되면 어려도 사냥에 함께 나가 허드렛일을 도울 수 있다.
그걸 위해 여우 한 마리, 혹은 늙은 늑대 한 마리 정도를 잡을 생각이었다.
부족에서 멀리 떨어질 생각은 전혀 없었다.
최대한 가까운 곳을 탐색하고 있었는데, 정신 차리고 보면 늑대가 나타나 거기에 쫓겨 달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한 마리였던 늑대가 지금은 다섯 마리나 된다.
부족이 있는 방향이 어디인지도 모르겠고, 늑대한테는 둘러싸이고, 정말 죽게 생겼어.
후엥, 울음이 나올 것 같아 타리는 입술을 꽉 물었다.
한 살 어린 친구는 아까부터 울고 있다.
그러면서도 죽창을 놓지 않는 건 칭찬할 만하지만 울면 안 되겠지.
남자는 늑대와 곰을 만나도 울지 않는 법이다.
그리고 남자는 여자와 아이를 지키는 것 외에 동료도 지켜야 한다.
타리는 터지려는 울음을 꾹 참으며 한 발 앞으로 나갔다.
‘내, 내가 제일 강하니까, 내가 지켜야 해.’
그리고 내가 대장이니까.
속으로 덧붙이면서 타리는 죽창을 다시 쭉 내밀었다.
하지만 이번엔 아까와는 늑대의 반응이 다르다.
타리가 내민 죽창을 늑대가 확 물어 당겼다.
“왁!”
짧은 외침과 함께 앞으로 끌러나간다.
버티려고 했지만 힘에서 딸려, 타리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늑대가 달려든 건 그 순간이었다.
눈앞이 늑대의 그림자로 시커메졌다.
“타리!”
“죽으면 안 돼!”
친구들의 외침을 들으며 타리는 눈을 크게 떴다.
죽을 때 죽더라도 마지막 한 발을 찔러야 남자다.
아버지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눈물과 공포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 미안해요. 타리가 겁쟁이라…. 엄마도 미안. 말 안 듣고 말썽 피운 거 정말 미안해요.’
이번에 살 수 있다면, 살아날 수만 있다면 앞으로는 절대로 말썽 피우지 않을 텐데.
하지만 이미 늦었다.
지독한 늑대 입 냄새가 코를 찔렀다.
더운 입김과 딱딱한 이빨의 감촉이 얼굴에 닿는다.
이제 정말 죽는구나 생각했을 때였다.
갑자기 늑대가 날아가 눈앞이 훤해졌다.
“아, 정말 큰일이네. 새 놓치겠다.”
어디선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어, 하는데 친구들의 비명과 늑대의 깨갱 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괴물이다!”
“마수다!”
무슨 소리야.
설마 더 무서운 마수가 나타나 늑대가 도망친 건가.
그렇게 생각하고 엉거주춤 일어나는데, 타리 앞에 다시 그림자가 졌다.
늑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엄청나게 커다란 그림자가.
“….”
무, 무서워.
늑대가 도망치니 이번에는 괴물 마수한테 죽는 걸까.
부들부들 떨면서 고개를 위로 올리자 엄청나게 무섭게 생긴 괴물이 타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진짜 무섭다.
“왜 이곳에 애들이 혼자 있는 거야? 위험하잖아. 꼬마야, 어른은 어디에 있니?”
“히익!”
괴물이 말하는 순간, 타리는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친구들의 울음소리가 멀리에서 들린 것 같았다.
*
위험했다.
내가 도착하자 한 아이가 막 늑대한테 머리를 들이밀고 있었다.
아주 조금만 늦었어도 아이는 갈기갈기 찢어졌을 거다.
진짜 위험했다.
한달음에 달려가 늑대 머리를 발로 차 버리고, 다른 늑대 목을 도끼로 쳐낸다.
그러자 왜인지 모르지만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울기 시작했다.
괴물이라든가 마수라는 거, 설마 날 보고 하는 말은 아니겠지.
무섭다는 말이나 괴물, 하아, 그런 말은 들어봤지만 그래도 마수는 아니지, 마수는.
이렇게 인간처럼 생긴 마수 봤냐.
아무리 어려도 눈이 있으면 보일 거 아냐.
“….”
날 보고 기절한 꼬마를 보면 아무래도 내가 마수인 것 같은데.
“하아.”
어쨌든 시간이 없다.
이미 연락용 새는 코딱지만큼 작아져 정령 나비가 아니었으면 저 먼 하늘 어디에 있는지 짐작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에노르토스 아이들이 여기에 있는 걸 보면 이 아이들 부모도 근처에 있을 거고, 결국 부족도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은 상태일 거다.
그 말은 새가 순식간에 부족에 도착한다는 뜻이다.
지금은 보이지만 금세 하늘에서 없어진다.
‘서둘러야 해.’
이 아이들이 길을 알 것 같지는 않으니, 저 새를 놓쳐버리면 길 안내해 줄 무관도 없고, 나는 완전히 미아가 되는 거야.
낯선 숲에서 아이 셋 데리고.
안 돼, 안 돼, 정말로 안 된다.
나는 악악거리며 우는 아이 둘을 한꺼번에 옆구리에 끼고, 기절한 아이는 다른 손에 안았다.
그리고 뛴다.
점처럼 작아져 버린 새를 쫓아 달리려는데, 아, 정말 이러면 안 되는데, 새가 없어져 버렸다.
정령나비는 내 말을 알아들은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새는 없어졌는데 저희끼리 팔랑팔랑 날아다니고 있었다.
새가 없어서인지 내게로 돌아온다.
“하아아아아아아.”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정령 나비는 정말 쓸모없구나.
말이 통하는 것 같은데 전혀 통하지 않아.
어디에선가 철거덕철거덕 쇳소리가 들렸다.
갑옷기사단이다.
저 녀석들도 쓸모없다.
아무것에도 도움이 안 되는데 계속 멀찌감치서 따라다니기만 한다.
아버지는 잘 다루던데 나와는 왠지 말이 통하는 것 같으면서 안 통하고, 결국엔 정령나비나 저것들이나 비슷하게 쓸모없다.
“얘들아, 너희 혹시 집 가는 길 기억하니?”
옆구리에서 목 놓아 우는 아이들한테 물었지만 울음소리만 더욱 커졌다.
어쩌지.
진짜로 길 잃어버린 것 같다.
“… 일단 밥이나 먹을까.”
아까 죽인 늑대로.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일이 잘 안 풀리거나 뭔지 헷갈리는 상황이 되면 일단 배불리 먹어야 한다.
배가 고프면 사람은 비관적이 되니까.
뭐든 일단 배가 차야 미래를 생각할 여유도 생기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야 알아차린 건데, 이런, 나 냄비고 뭐고 하나도 없네.
연락용 새를 쫓는다고 서두르다 말에 실려 있던 걸 하나도 안 챙겼다.
소금만 겨우 허리춤 주머니에 아주 조금 있었다.
도끼와 소금, 물통만큼은 어머니 가르침에 의해 절대로 몸에서 떼지 않으니까.
어떤 곳에 떨어지더라도 이 셋만 있으면 일단 살아남는다고, 어머니가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하셨다.
아, 어쩌면 무관이 소리치려던 게 이거였는지도 모르겠다.
뭔가 가져가라고 했던 것 같기도 하고.
하아.
한데 왜 내가 밥 먹을까 말하자마자 아이들이 경기 일으키듯 난리 치는 거지.
기절했다 깨어난 아이까지 더해져 셋이 팔다리를 미친 듯이 휘두르며 발버둥 쳤다.
설마 내가 자기들을 먹을까 봐 그러는 건가.
“나, 나, 나는 맛없어! 내 살에서는 냄새가 나요!”
그런 모양이다.
기절했다 깨어난 녀석이 눈물 콧물로 뒤범벅된 채 외쳤다.
“이 녀석들, 정말로.”
내가 아까부터 에노르토스 말을 하고 있는데 그것도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겁먹은 건 알겠지만,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잘 차리면 산다고, 상황을 잘 판단해야 하는 거다.
사람을 마수로 볼 만큼 정신없으면 미래가 위험해.
그렇게 일장 연설을 하는 동안 아이들이 조금씩 잠잠해졌다.
겨우 내가 에노르토스 말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다.
기절했다 깨어난 아이가 옆구리에서 얼굴을 돌려 나를 올려다보고 말했다.
“사람이에요?”
“당연하지, 이 녀석이.”
아이가 눈을 깜박깜박하더니 불쑥 외쳤다.
“야! 사람이래.”
“나도 들었어.”
“흐… 흐윽… 사람이야… 다행이다….”
옆구리에서 옆구리로 말이 왔다 갔다 한다.
이 정도면 내려놔도 되려나.
늑대한테 돌아가려고 걷다가 걸음을 멈춘다.
애들을 바닥에 내려놓다 나는 속으로 히죽 웃었다.
한 녀석이 오줌을 지렸다.
아까 기절했던 놈이다.
자기도 알 텐데 녀석은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있었다.
아무래도 없는 일로 치려는 모양이다.
그 아이가 내 시선을 눈치채고 그걸 무마하려는 것처럼 물었다.
“어떻게 우리말을 알아요?”
“나도 에노르토스 전사니까.”
물론 에노르토스에 가본 적은 없지만.
증거로 옷 속에 있는 목걸이를 내보이자, 애들이 몰려와 쳐다본다.
“진짜다.”
“무슨 부족이에요?”
“다른 전사는 어디에 있어요?”
아이들이 한꺼번에 묻는다.
그건 내가 물어보고 싶다.
“너희 부족일 거다.”
아마.
애들 눈이 동그래졌다.
서로 쳐다보며 뭔가 눈짓한다.
어쩌면 내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한 번도 보지 못한 내가 자기들 부족이라고 말하면, 뭐, 나라도 경계하겠지.
“근데 너희 부족은 어디에 있는지 아니?”
내 말에 아이들 얼굴이 흐려졌다.
다시 눈물이 차오른다.
“몰라요.”
“엄마한테 혼날 거야.”
“아버지가 엄청 화났을 텐데.”
“마귀 할망구한테 엉덩이 열대 맞을 거예요.”
훌쩍훌쩍 우는 폼이 웃기다.
하지만 내가 더 울고 싶어.
이 애들을 데리고 다녀야 하지, 길은 잃어버렸지, 거기에 조미료는 소금밖에 없고, 냄비도 없고.
하아, 정말 울고 싶네.
터벅 터벅 어른 하나 애 셋이 눈물 모으며 걷는데, 어디에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뭐지.
아이들을 찾으려는 부족 사람들인가.
어쩌면 공국의 경비병일지도 모른다.
잘은 몰라도 이곳은 공국과 가까운 것 같으니까.
우선은 내가 확인한 뒤에 아이들을 인계하면 될 거다.
“얘들아, 너희들은.”
일단 여기에 쪼그리고 앉아있어라, 라고 말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애들이 튀어 나갔다.
개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서.
“이놈들!”
내가 재빨리 아이들 목덜미를 잡아채자, 아이들이 허우적거리며 달리는 것처럼 발을 굴렸다.
“아버지예요!”
“저거 우리 개예요.”
“우리 찾으러 온 게 분명해.”
아이들이 그렇게 말하며 외치기 시작했다.
“아버지이이이!”
“우리 여기 있어요!”
“점박아! 홀쭉아!”
아이들은 확신하고 있는 모양이다.
부족에서 없어진 애들을 찾을 가능성이 공국 경비병보다야 많을 것이다.
솔직히 그 가능성이 99.999%겠지.
하지만 돌다리도 두드리고 밟으란 말이 있다.
“이 녀석들! 우선은 경계부터 해야지. 상대가 보이지도 않는데 무작정 외치다 적이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그렇게 말하며 귀를 기울이자 개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거기에 더해 새가 우는 듯한 소리도 들렸다.
호로로 호로로.
뾰족한 느낌의 새소리가 울리자, 아이들이 저마다 입을 오므리고 비슷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 나도 이거 알아.
부족 사람들이 서로를 부르거나 확인할 때 사용하는 새소리다.
어머니가 어릴 때 가르쳐 주셨다.
다만 나는 듣기는 해도 소리는 낼 수 없다.
어머니가 가르치는 대로 해도 왠지 모르게 내가 하면 고양이 울음처럼 되거나 까마귀 소리처럼 되는 거야.
아무리 노력해도 새소리처럼은 되지 않았다.
“너희들 잘하는구나. 나는 아무리 해도 안 되던데.”
내가 말하자, 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면서 가슴을 쭉 내밀었다.
“입술 모양이 중요해요.”
“혓바닥을 이렇게 오므리면 쉽거든요.”
“혀를 앞으로 내밀다 뒤로 당기는 거예요.”
방금까지 질질 울던 녀석들이 으쓱해져서 잘난 척하기는.
나는 아이들을 다시 옆구리에 끼고 개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잠시 달리자 멀리에서 개를 따라 달리는 남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외삼촌 호르지가 가장 앞이다.
‘다행이다.’
길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저쪽에서 찾아와 줘서 정말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해 가슴을 쓸어내리는데, 호르지 삼촌 뒤쪽에 있던 남자가 별안간 속도를 내며 이쪽으로 달려왔다.
남자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져 있다.
뭐야, 또 엄마의 원수인가.
그렇게 생각해 도끼를 뽑을까 말까 생각하는데, 죽을 것처럼 괴로운 얼굴로 남자가 외쳤다.
“결혼을 신청한다아아아아! 나랑 결혼해 줘!”
“….”
나 왜 남자한테 청혼받고 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