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19)
019 어디에나 원수가 있다
“!”
그놈이다.
어머니를 죽인 그놈의 얼굴이다.
어두운 횃불 아래에서 보았지만 틀림없었다.
어릴 때 단 한 번 보았어도 그 얼굴을 어찌 잊을까.
꿈에서도 잊은 적이 없었다.
상상 속에서 대체 몇 번이나 놈의 얼굴을 칼로 짓이겼는지.
하지만 놈의 이름도 직업도 몰랐기 때문에 어디에서 찾으면 좋을지도 몰랐다.
아는 것은 얼굴뿐이었다.
나이 들어서는 소문의 헬가인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야만인 헬가는 여자라고 들었다.
모습이 남자 같다고는 들었어도 긴가민가했었다.
하지만 역시 그의 원수는 헬가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저놈이 원수다.
어릴 때 기억을 다시 한번 더듬어보고 그는 확신했다.
‘그래, 틀릴 리 없어. 저놈이야.’
어릴 때 본 얼굴과 똑같았다.
으드득 이가 갈렸다.
오래전 일이 마치 어제처럼 머릿속에 떠오른다.
일곱 살이었나, 여덟 살이었나.
정확한 나이는 모른다.
애초에 삼십 후반인 지금의 나이가 정확한 건지조차 알 수 없다.
그는 어머니를 따라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컸고, 어떤 때는 어머니가 그를 다섯 살이라고 말했지만, 또 어느 날은 같은 해인데도 여섯 살이라고 말했다.
‘후우.’
그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깊이 숨 쉬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그해는 왕도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서 오래 머물렀다.
다른 때보다 몇 배는 더 길게 한곳에 머물러, 어린 마음에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누군가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잘은 몰라도 어머니는 지저분한 길드에 속해 있었던 것 같다.
그가 아는 것은 어머니가 암살 의뢰를 받아 생계를 이어갔다는 사실과 그리 실력 좋은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는 점이다.
뛰어난 암살자였다면 그리 허무하게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느 날 어머니는 그를 잎이 많은 나무 위에 올려두고, 한참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나타난 그 남자에게 다가갔다.
뭔가 이야기를 건네는 것처럼 보였다.
그 시절의 어머니는 뛰어난 미인은 아니었어도 눈길을 잡아끄는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어머니가 한 번 웃고 남자에게 몸을 약간 기울였다.
남자의 거대한 도끼가 움직인 것은 그 순간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잠시 동안은 알 수 없었다.
도끼가 움직이는 걸 보았는데 다음에는 어머니 머리가 땅을 데구르르 구르고 있었다.
아직 말을 걸면 대답할 것 같은 어머니 얼굴이 나무 위에 있는 그를 향했다.
아무 소리도 내서는 안 된다고 어머니가 말했었지만 자기도 모르게 비명이 나왔다.
비명인지 울음인지, 커다란 소리가 나자 남자가 힐끗 이쪽을 보았다.
자신도 죽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원수는 그대로 길을 떠났다.
원수가 떠난 뒤에도 그는 어쩔 줄 모르고 몇 시간을 계속 나무 위에서 울기만 했다.
그것이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기억하는 다였다.
충격 때문인지 그 전후의 상황은 약간 흐릿하다.
나무 위, 나뭇잎 사이로 눈이 마주쳤던 때를 생각하자, 마치 그 때로 돌아간 것처럼 등골이 서늘해졌다.
밀려오는 공포를 누르고, 그는 작게 중얼거렸다.
‘여기에서 만나다니.’
악연도 이런 악연은 없을 것이다.
오랫동안 찾아 헤맬 때는 코끝조차 볼 수 없었는데, 이제 포기하고 새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자 나타난다.
거기에, 어머니를 죽인 것도 모자라 이제는 그가 받을 예정이었던 여자까지 내밀게 되었다.
‘용서 못 해. 절대로 용서 못 한다.’
악문 이가 뿌드득 소리를 냈다.
그가 이 마을에 들어온 것은 사 년쯤 전이다.
어머니를 많이 닮은 여자를 보았다.
남편을 잃은 지 몇 년 되어 혼자라는 말을 들었다.
착실하게 마을에 자리 잡고 살면서 누군가를 먹여 살릴 수 있게 되면 그 여자와 살림을 차리게 해준다고, 촌장이 그렇게 약속했다.
그는 그 말을 믿고 결국 이 마을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몇 달 전, 계속 미뤄지던 혼인이 겨우 정해졌다.
외눈박이 개가 나타나지만 않았다면 벌써 그 여자와 함께 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괴상하게 생긴 괴물 때문에 예정이 틀어졌다.
길드에 의뢰하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들었다.
한 마리 퇴치하는 데만 150리라.
거기에 한 마리가 추가되면 100리라가 더 붙는다.
하지만 그 이상은 난이도가 높아진다고 해서 200리라씩 불어났다.
마을에 나타난 외눈박이 개는 세 마리.
이렇게 가난한 마을에서 대뜸 내놓을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다.
한 마리는 혼자 나타나지만, 두 마리는 언제나 함께 다녔다.
전에도 외눈박이 개를 경험했다는 촌장의 말에 따르면 아마 한 마리는 이제 막 홀로서기 한 새끼일 거란다.
부모가 내쫓아도 아직 떨어지지 못해 계속 따라다니고 있는 걸 거라고.
한데 새끼라는 놈의 덩치가 성인만큼 크다.
도저히 마을 사람들끼리만으로는 물리칠 수 없었다.
게다가 그때 이미 놈들은 마을의 아이를 둘이나 잡아먹었다.
촌장은 이 마을에서 먹이 구하는 게 쉽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놈들이 떠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을 회의가 열리고, 각 집에서 약간의 돈을 내 길드 의뢰비를 만들기로 했다.
돈이 없거나 모자라는 집은 촌장과 마을 전체가 빌려주는 형식이 되었다.
[우선 길드에 한 마리 분의 퇴치 의뢰서를 내고, 모험가가 오면 어떻게든 부탁하는 수밖에 없어.]촌장이 그렇게 말하면서 쳐다본 것은 그와 혼인할 여자였다.
여자를 며칠 밤 내밀자는 것이다.
그는 완강히 거부했지만, 그러면 네가 외눈박이 개 퇴치 금액을 내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에게 그럴 돈은 없었다.
여자에게 도망치자고 말해봤지만 거절당했다.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이 마을밖에 모르는 여자는 바깥세상을 두려워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받아들이며, 자신을 버리지 말아 달라고 울었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터질 것 같은 분노를 피 토하는 심정으로 간신히 눌러 참고 있었는데.
“….”
그는 부적처럼 품에 넣고 다니던 어머니의 주머니를 옷 위에서 지그시 눌렀다.
손가락만 한 작은 주머니에는 어머니가 암살에 사용하던 도구가 들어있다.
그가 어릴 때 어머니는 몇 번이나 그 도구의 사용 방법을 가르쳤다.
[이렇게 하는 거야, 입속에 넣고, 그렇지, 그 부분이 혀에 닿지 않도록 조심해서…. 잘못하면 네가 죽어버린다.]어머니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되살아난다.
만일 당신이 죽어버리면 혼자서도 몸을 지킬 방법이 필요하다고 했다.
‘후우.’
그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이 마을에 정착한 뒤로는 꺼내 보지 않았지만, 원수를 갚기 위해 계속 그걸 연습하고 있었다.
원수의 얼굴을 노려보면서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기회는 지금뿐이야.’
밝은 곳에서는 어머니처럼 놈의 눈에 띄어 죽어버린다.
이렇게 어두울 때, 사람들이 있는 장소가 좋다.
여러 사람이 있는 곳에서라면 놈은 눈치채지 못할 거다.
아무도 그 이유를 모르는 채 죽어버린다.
부인될 여자가 촌장 집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 그는 어머니의 주머니를 품에서 꺼냈다.
*
마을 안쪽으로 한참 걸어가자 촌장 집이 보였다.
한밤중인데도 남자들이 커다란 나무통을 집안으로 옮기고 있었다.
그 앞으로는 여자들이 몇 명, 나무로 짠 바구니를 들고 들어갔다.
야밤에 대체 뭐 하는 건지 모르겠다.
조금 경계하면서 촌장에게 물었다.
“저 나무통은 뭔가요?”
“아, 저건 우리 마을에서 만든 술입니다. 그… 모험가님 같은 분들은 술을 좋아하신다고 들었어요.”
어라, 날 위해 준비한 음식이었나.
게다가 저 큰 통이 통째로 술이라고?
미안하지만 나는 포도주라면 모를까, 다른 술은 거의 입에 대지 않는다.
캔맥주에 익숙한 내 입에 이곳의 술은 잘 맞지 않았다.
어머니도 곧잘 산양을 잡아 그 젖으로 술을 만들었지만, 그건 진짜로 전혀 먹을 수 없었다.
한 입은커녕 한 방울도 안 됐다.
입에 넣자마자 다 토해버렸다.
그러니까, 마음은 고맙지만 술은 줘도 못 먹는다.
고생한 건 미안하지만 필요 없어.
하지만 힘들게 옮겨놓은 걸 다시 갖다 놓으라고 말하는 것도 왠지….
내가 곤란한 표정을 짓자, 촌장이 얼른 덧붙였다.
“예전에도 모험가님이 마을에서 일을 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도 이렇게 대접했어요. 부담은 전혀, 정말로 전혀 가질 필요 없습니다. 이런 외진 마을에 와서 괴물을 퇴치해 주시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몰라요.”
아니, 돈 받고 하는 일이니 당연히 와야지. 추가로 뭔가를 바라는 놈이 나쁜 거 아니냐.
“자, 자, 이쪽으로 들어가세요. 야만, 아니, 그… 모험가님 같은 분은 특히 술도 음식도 즐기신다고 해서 충분히 준비했습니다.”
야만인이라고 말하려다 말을 바꾸고, 촌장이 땀을 뻘뻘 흘리며 웃었다.
“제가 직접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도끼 한 방에 그 커다란 외눈박이 개를 쳐 죽이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렇게 훌륭한 분이 우리 마을까지 와주신 건 정말 행운이죠. 정말로 감사합니다. 몇 번을 인사드려도 부족해요. 암요, 부족하고 말구요.”
촌장이 지나칠 정도로 호들갑 떨며 문으로 안내했다.
칭찬은 기쁜 거지만, 너무 과장하면 오히려 놀림당하는 것 같고 기분 나쁘다.
게다가 촌장이 사람들을 향해 묻는 것처럼 눈짓하는 것이 조금 석연치 않았다.
여기 오기 전에 생겼던 의심이 다시 고개를 쳐든다.
렐라가 음식 냄새를 맡고 일어난 모양이다.
삐삐 소리 내며 밥 달라고 보채기 시작했다.
‘아… 그렇지.’
지금의 나한테는 흰 여우털 같은 것보다 더 귀한 게 있었다.
불사조.
다 죽어가는 아이도 살려내는 범상치 않은 보물.
‘혹시 누군가가 렐라를 알아본 게 아닐까.’
그렇다면 이 반응도 이해가 간다.
촌장이나 근처 남자들에게 적의는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음식에 수면제를 탔을 수도 있고, 방심할 수는 없다.
경계심이 극한까지 치솟았다.
그래서 알아차린 걸 거다.
술통을 안으로 가져다 놓고 나오던 남자들 중 한 명이 모자랐다.
분명 네 명이 들어갔는데 세 명만 나왔다.
마치 나오지 않은 사람을 찾는 것처럼 한 명이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뭔가 이상하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문 안쪽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어른거리는 횃불에 뭔가가 번뜩 비쳤다.
검이나 화살은 아니다.
훨씬 작은 것.
미리 경계하지 않았다면 눈치채지 못했을 것 같은, 정말 작은 것이었다.
위험해.
본능이 경고하는 순간, 나는 도끼를 위로 쳐올렸다.
내 목적은 어둠에 파묻히듯 서 있는 남자가 아니었다.
그와 나 사이에 있는 문틀이다.
도끼가 닿기 전, 문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 남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번득이는 눈동자가 증오로 가득하다.
그 눈을 보고 내 선택이 올바르다는 사실을 알았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문틀이 박살 나면서 그 주변의 벽이 무너져내렸다.
남자와 나 사이에 건물 부스러기와 뽀얀 먼지의 막이 생긴다.
남자가 서 있었던 장소를 가늠해, 나는 도끼를 앞으로 내밀었다.
날이 아니라 도끼의 둔탁한 부위다.
목을 베는 게 아니라, 입을 뭉개버려야 한다.
그렇게 생각했다.
작은 돌무더기와 다른, 인간의 감촉이 도끼에 부딪히는 것을 느낀 순간 작은 남자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거의 동시에 촌장이 비명처럼 외치며 달려왔다.
“끄아아아아악! 내 집! 작년에 새로 보수한 집이!”
두 팔을 올리고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것처럼 외친다.
“야만인이 내 집을 부숴버렸어!”
반응이 이상하다.
마을 사람이 모두 공모한 게 아닌가.
언뜻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은 회색이다.
나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촌장의 목덜미를 잡았다.
“커억!”
옷 때문에 목이 졸린 촌장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하지만 이내 다시 외치기 시작한다.
“사람 잡네! 야만인이 사람 잡네! 야만인이 멀쩡한 집을 부수더니 사람까지 죽이려 드는구나아아아!”
시끄럽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새파랗게 질려 도망치거나 다리가 떨려 주저앉았는데, 촌장만 요란하게 떠들고 있었다.
집이 부서져서 악에 받친 모양이다.
나는 촌장 목덜미를 잡은 채 뽀얀 먼지 속으로 들어갔다.
“사람 살려어어어! 사람 살려요! 이봐아! 나 좀 살려줘! 야만인이 사람 잡는다! 아아아아! 그 비싼 돌을 박아 넣었는데 다 무너졌네. 이럴 줄 알았으면 싼 걸로 사는 건데. 항의할 거야! 길드에 항의할 거다! 내가 입 다물고 얌전히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야! 반드시 내 돈 모두 받아내고 말 거다!”
“….”
어라, 길드에 항의하면 내가 물어내는 건가.
이건 조금 생각해 봐야겠다.
‘만일 내가 죽인 남자가 아무 죄도 없다고 밝혀지면 큰일인데.’
내 본능이 제대로 일하고 있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는가.
물론 확신은 하고 있다.
하고는 있는데, 조금, 아주 조금 찔끔했다.
도끼에 얼굴을 맞은 남자는 먼지와 돌무더기 속에 누워 있었다.
그의 얼굴을 보고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죽은 남자는 그 짧은 순간 얼굴의 반이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독이군.”
내 말을 촌장은 이상하게 받아들인 모양이다.
“으아아아아! 아이고오오오! 야만인이 독을 썼어! 독을 썼다아!”
촌장이 버럭버럭 소리치기 시작했다.
아니, 이 상황을 어떻게 그런 식으로 받아들일 수가 있는 거지?
어쨌든 촌장과 이 마을은 흰색인 것 같다.
‘하지만 그러면 그 이상한 행동들은 다 뭐야.’
아직 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뭔가가 남아있는 모양이다.
그게 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