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193)
193 좋아, 이제 마무리다
요란한 함성을 지르던 전사들은 도시에 근접할 무렵에는 모두 입을 다물고 있었다.
말 달리는 소리만 요란하게 바닥을 울린다.
경사진 숲 아래로 도시의 모습이 보이자, 할아버지가 손을 올렸다.
모두가 멈춘다.
훈련이 잘된 건지, 말은 울음 한번 없이 지시에 따랐다.
모두의 시선이 도시를 향했다.
성벽 너머 뾰족한 첨탑과 키 낮은 건물이 연이어 있다.
도시의 병사는 아직 우리를 눈치채지 못했다.
외벽은 상당히 길고 이쪽에는 병사가 거의 없었다.
두 명뿐이다.
그나마도 외부를 경계하는 대신 벽 안쪽에 앉아 놀고 있었다.
에노르토스와 연결된 숲은 험하다.
아마 이쪽으로 누군가가 쳐들어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도시의 경계는 평야와 이어진 다른 방향에 집중되어 있겠지.
할아버지와 외삼촌들이 무기를 빼낸다.
좋아, 두근두근 해왔어.
드디어 진짜 전사의 싸움이 어떤 건지 보게 됐다.
모두와 행동을 맞춰 나도 등에서 도끼를 빼 들었다.
기대감으로 가슴이 뛰는데, 할아버지가 말을 탄 채 앞으로 내달렸다.
“가자아아아!”
그 뒤를 외삼촌과 남자들이 따른다.
“죽여라아!”
“왕국 놈들에게서 양을 빼앗아라!”
“와아아아!”
요란한 함성과 함께 부족 남자들이 달렸다.
‘이거 뭐야.’
도끼 빼 들고 고함치며 달려가는 건 평소와 똑같은 싸움일 뿐이잖아.
왠지 김새는데.
“….”
게다가 양은 뭡니까, 삼촌.
내가 기대했던 건 불길 같은 전사의 분노와 터질듯한 이두박근 삼두박근의 남자다움 그득한 열기였는데, 뭔가 진짜로 김이 샌다.
팍팍 새네.
하아.
내가 작게 한숨 쉬는데, 마지막으로 출발하던 남자가 나를 보고 외쳤다.
“겁쟁이처럼 뒤에 빠져 있는 거냐! 네 엄마는 누구보다 먼저 앞장서서 적에게 달려갔다. 얼굴이 아깝다, 라파.”
“….”
어머니도 양을 빼앗자고 외치며 달렸던 건가.
내가 생각한 전사 이미지가 아닌데, 정말로.
남자는 내가 누군가를 죽이는 것에 겁먹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누구에게나 첫 번째가 있는 거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렇게 말한 뒤 남자는 말고삐를 돌려 언덕을 내려갔다.
대사는 뭔가 멋있지만, 전혀 아니야.
나는 겁먹은 게 아니라 단지 실망한 거다.
성벽에서 노닥거리던 공국의 병사가 뒤늦게 눈치채고 허둥지둥 이쪽 벽으로 달려왔다.
뭔가 소리치는 병사들의 모습을 보며, 나도 기운 빠진 채 언덕을 달려 내려갔다.
나의 두 다리로.
이것도 참 볼품없다.
하아아아아.
말 타는 거 열심히 해야겠다.
폼이 안 나네.
도시가 작기 때문인지 철격자 문은 없었다.
그저 두꺼운 나무문뿐이다.
화살 던지는 놈도 없으니 이거라면 가까이 가서 주먹으로 한두 방 치면 날아간다.
나보다 먼저 도착한 할아버지와 외삼촌들은 요란한 고함을 지르며 도끼로 성문을 찍고 있었다.
왜 그런 행동을.
애초에 문이나 성벽은 내가 부순다고 약속하고 있는데.
당연한 일이지만 단단한 성문이 겨우 도끼질로 파괴될 리는 없다.
아무리 강한 에노르토스 전사라 해도 그건 불가능하지.
성문은 끄떡도 하지 않고, 도끼가 한 번 박히면 그걸 빼내기 위해 쓸데없는 힘만 들어갔다.
온 힘을 다해 찍은 도끼를 다시 그 배는 되는 힘으로 뽑아야 하는 거야.
정말로 쓸데없다.
“….”
어쩌면 흥을 돋우기 위한 걸지도 모른다.
싸움이라는 건 원래 기세가 중요하니까.
어쨌든 화살이나 창이 위에서 쏟아지기 전에 서두르자.
지금은 병사가 두 명뿐이지만, 머지않아 이쪽으로 다들 몰려올 거다.
“지금 문을 부술 테니까 조금만 비켜 주세요. 잘못하면 다칩니다.”
내가 문 앞에 다가서며 말하자 우오오오, 하는 함성이 올랐다.
주위에 열기가 가득 차니 왠지 나까지 흥분된다.
사람들이 몇 발 뒤로 물러선 걸 확인하고, 나는 손에 힘을 담았다.
도끼는 일단 등에 꽂았다.
모처럼 빼 들고 달려왔는데 왠지 폼이 안 나네.
“부숴라, 라파!”
“흔적도 없이 부숴어어!”
“가라, 라파!”
“남자가 되는 거다!”
남자들이 흥분해 외친다.
거기에 이끌린 것처럼 나도 외쳤다.
“좋아, 가자아!”
동시에 성문을 향해 주먹을 내지르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성문이 날아갔다.
산산이 부서져 파편이 튄다.
아, 이런.
기세에 밀려 힘이 너무 담긴 것 같다.
성문이 뻥 뚫린 건 예상대로지만 그 너머에도 여파가 크다.
성문 근처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초소인지 뭔지 모를 작은 건물이 여러 개 부서지고, 큰 건물도 무사하지눈 않았다.
성문의 파편이 상당히 멀리까지 날아가 지붕에 박히거나 아예 건물 일부를 파괴한 경우도 있었다.
정령나비가 파르르 날개를 떨며 그쪽으로 날아가 빙빙 돌았다.
녀석들은 내 힘이 닿은 파편을 좋아하는 것 같다.
매번 부서진 조각에 가 냄새 맡는 것처럼 맴돌곤 했다.
취향도 이상하지.
성문이 갑자기 파괴되고 빛을 뿜는 괴상한 나비가 몰려오자, 사람들은 일순간 동작을 멈췄다.
인간은 너무 기막힌 예상외의 일을 만나면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얼이 빠진다.
에노르토스 부족도, 성의 인간들도 모두 조용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시간이 멈춘 것 같다.
흠, 이제 그만 시작해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해 내가 고개를 돌린 순간, 할아버지가 내 등을 퍽 때렸다.
잘했다는 뜻인 것 같다.
그리고 요란하게 외쳤다.
“왕국놈을 죽여라아아아아아!”
나이가 상당할 텐데 목청이 엄청나다.
할아버지의 시선을 쫓아가니 사람들 너머 골목길에서 병사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단순히 도끼 들고 날뛴다 생각했지만 할아버지는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모양이다.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시작으로 시간이 다시 흐른 것처럼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시 안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고 에노르토스 전사는 병사를 향해 달려간다.
할아버지와 차기 족장인 큰 외삼촌이 가장 앞이다.
말에 탄 채 도끼를 휘두르자 병사 목이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다른 남자들도 뒤지지 않는다.
도끼 달린 전차처럼 우직하게 달리며 닥치는 대로 죽여나갔다.
작은 도시니 병사 수도 적을 것이다.
내가 나설 틈이 없네.
‘아니, 그렇다고 이렇게 넋 놓고 있으면 나는 그냥 공성 무기야.’
사람 죽이는 게 무서워 겁먹은 바보로 오해받는다.
나는 도끼를 들고 뛰기 시작했다.
일단 영주의 저택으로 가자.
이번에 내가 사라문즈로 온 건 공식적인 왕의 명령에 따른 보복이다.
우리나라를 적의 손에 넘겨준 사라문즈를 그냥 놔둘 수는 없는 일이니까.
물론 왕의 인장이 찍힌 명령서는 할아버지 손에 있고, 실제로는 개인적인 이유로 이곳에 온 거지만, 어쨌든 공식적으로는 그렇다.
내가 이번 보복 전쟁에서 해야 할 일은 도시마다 영주의 목을 치고 이 나라 백성에게 왜 우리가 이런 일을 하는지 알리는 것이다.
당연히 마지막에는 공왕과 공왕비의 목을 치는 게 목적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이 나라가 딴짓을 하지 못하도록 에노르토스 부족을 왕국 어딘가에 박아 두는 것.
이 나라를 장차 어떻게 할지는 아레논에서 결정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이 나라 왕도에 도착할 무렵에는 할아버지나 왕이 보낸 누군가가 도착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고 보니 나랑 헤어진 무관은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일단 지도는 가지고 있지만 가급적이면 그와 만났으면 좋겠는데.
‘그나저나 여긴 왜 이렇게 복잡한 거야.’
도시라고는 하지만 길거리에는 돼지와 염소, 닭이 돌아다니고, 인도와 도로가 나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과 가축, 나무 궤짝 등의 물건과 수레 같은 것이 뒤섞이고, 건물도 구불구불 좁은 골목을 따라 세워져 있어서 한 방향으로 곧장 가기 어려웠다.
때로는 길이 막혀 돌아가야 하는 지점도 나왔다.
미로가 따로 없다.
나름대로 길이 정비되어 있던 아레논 왕국과는 다르다.
거기에 우리를 보고 혼비백산해 도망치는 사람들까지 겹쳐서 도시 전체가 아수라장 도떼기시장 같았다.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네.’
도시에 들어오기 전 언덕에서 대략의 방향은 가늠했지만, 이렇게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면 영주 저택으로 가는 길이 어디인지 잘 모르게 되어 버린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있는 곳이 어딘지 모르겠어.
직은 도시라고는 해도 그 복잡함은 대도시 이상이니까.
할아버지나 다른 전사들은 그저 발 닿는 대로, 병사가 보이는 대로 달려가 죽이면 되지만 내게는 부여된 임무가 있으니까 그렇게 아무렇게나 뛸 수는 없다.
나는 고개를 높이 들었다.
이 도시에서 가장 높은 첨탑을 찾는다.
영주 주책은 그 첨탑 근처에 있었을 것이다.
일단 저기로 가자.
목표를 정하고 나는 직선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눈앞에 허름한 건물이 보였다.
“죽기 싫으면 비켜라아!”
크게 외치자 안쪽에 숨어있던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으랏차, 외치며 도끼를 크게 휘두른다.
바람을 제 몸에 두른 도끼는 모래집 부수는 것처럼 쉽게 건물을 파괴해 날렸다.
순식간에 눈앞이 넓어지고, 나는 그대로 첨탑이 있는 방향을 향해 달렸다.
중간에 몇 명 정도 병사를 만났지만, 제대로 훈련도 받지 않은 모양이다.
실력은 형편없었다.
병사 일부는 도망치고 있었다.
도망자는 잡지 않는다.
이번 보복전에서 중요한 건 일반 병사나 평민이 아니라 윗대가리를 잡는 거니까.
건물을 부수며 달려가는 동안 첨탑보다 먼저 영주 저택이 나왔다.
아직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는지,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며 무슨 일인지 확인하러 나오고 있었다.
그중 옷차림이 좋은 놈을 잡아 묻는다.
“영주는 어디에 있지?”
“히익! 야, 야만인이다!”
그건 대답이 아니다.
한 대 쥐어박고 다시 물었다.
“영주 어디 있어?”
“아, 아, 안, 안쪽에 있습니다.”
한 대 맞자 남자는 부들부들 떨면서 말하고 눈을 피했다.
왠지 마음에 걸리네.
야생의 감이 이놈은 이상하다고 속삭인다.
“….”
뭔가 속이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이 작은 도시에 무슨 보물이나 전설의 마도구 같은 게 있을 리 없으니 함정이라든가 그런 건 아닐 것이다.
이 남자가 뭘 숨기든 내일이면 떠날 우리한테 중요한 일은 아니다.
애초에 우리가 올 걸 미리 알고 뭔가 꾸몄을 리는 없으니까.
‘일단 죽일까.’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고 하지만, 당연히 뭔가 하지도 못한다.
미심쩍으면 일단 죽이는 것이.
그렇게 생각했지만, 아니지, 내게는 어머니의 색깔론이라는 지침이 있다.
대의명분을 따르는 보복전에서 내게 허용된 건 영주를 죽이는 것뿐이고, 색깔론에 따르면 이놈은 아직 흰색이다.
아주 살짝 회색 영역으로 가까워지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흰색.
죽여서는 안 될 것이다.
나는 놈을 놓았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영주님!”
커다란 칼을 든 무인이 나를 향해 달려온다.
아, 이놈이 영주였어.
내 야생의 감이 속삭인 건 그거였구나.
영주가 그를 향해 크게 외쳤다.
“나를 구해주게! 이 야만인을 죽여버려!”
무인이 무서운 얼굴로 소리쳤다.
“영주님을 놓아라, 이 야만인!”
화통을 삶아 먹었나.
목청이 크다.
목소리로만 싸운다면 저놈이 이겼을 것 같다.
나는 바로 앞까지 달려온 무인의 목을 싹둑 잘라냈다.
아주 잠깐 희색이었던 영주의 얼굴이 단박에 흙빛으로 변했다.
“마, 마, 맙소사. 맙소사.”
이 무인이 영주 측근에서는 가장 강한 자였던 모양이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닥에 떨어진 무인의 머리를 보며 잠시 맙소사를 외치던 영주가 흐느적거리며 주저앉았다.
와들와들 떤다.
나는 영주를 노려보았다.
“영주는 안에 있다더니.”
엄마한테 배우지 못했냐. 거짓말하면 안 된다고.
“히익! 사, 살려 주십쇼! 보석, 아니, 금화를 드리겠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영주가 맨바닥에 머리를 대고 납작 엎드렸다.
나는 놈의 뒷덜미를 잡고 지금까지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오는 길에 커다란 광장을 보았다.
‘거기에 단상이 있었지.’
광장 가운데에는 제법 높은 단이 설치되어 있었다.
어쩌면 거기에서 연설이나 공연 같은 걸 하는지도 모른다.
‘그 곳이라면….’
아까부터 영주가 너무 시끄러워서 생각이 이어지지 않았다.
“히익! 살려주세요. 제발! 야만인님! 제 방으로 가면 금화와 보석이 산더미처럼 있습니다. 그, 그렇지. 부드러운 빵도 있어요.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만큼 맛있습니다. 그, 그리고, 아, 굉장히 부드러운 천도 있습니다. 그걸로 옷을 해 입으면 정말로 부드럽습니다. 그리고….”
내가 에노르토스 부족 전사와 같은 차림이라고, 진짜 초원에서 살다 온 야만인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아.
이 꼴을 보면 내가 자기 나라 언어로 말했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한 것 같다.
머리가 나쁜가.
이 세상 어느 야만인이 사라문즈 따위의 약소국 언어를 아냐.
어쨌든 시끄럽다.
“닥쳐!”
내가 한마디 하자, 영주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표정이 조금 무서워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너, 진짜로 너무 시끄러운 거야.
나는 영주를 질질 끌고 거리를 걸었다.
처음에는 비명을 지르며 이리저리 뛰어 도망치던 사람들이 조금씩 잠잠해졌다.
대신 건물 뒤, 골목 안, 물건 뒤에 숨기 시작했다.
하긴 영주는 잡히고 많지 않은 병사는 야만 전사한테 보이는 족족 죽는다.
이제 사방 어디를 봐도 적과 싸우는 병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있다면 바닥을 구르는 시체다.
사람들은 야만인 눈에 띄게 도망치는 것보다 숨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실제로 에노르토스 전사가 죽이는 건 자기들을 향해 덤비는 병사들이고, 일반 영민은 거의 손대지 않았다.
철천지원수도 아닌데 굳이 힘없는 자들까지 죽일 필요는 없으니까.
광장에 가까워지자, 호르지 삼촌이 가까이 왔다.
“여기 놈들은 너무 약하군. 어린아이 손목 비트는 것 같아서 오히려 기분 나빠졌다.”
그 느낌 나도 안다.
내가 웃자, 호르지 삼촌은 퉤, 바닥에 침을 뱉은 뒤 도끼를 등에 꽂았다.
문득 시선을 돌리니 우리가 쳐들어온 성벽 쪽에서 연기가 올라가고 있었다.
내가 연기를 쳐다보자, 호르지 삼촌이 말했다.
“괜찮아. 저건 우리가 성을 장악했다는 신호다.”
호르지 삼촌이 갤갤 웃는다.
“원래는 적당한 시간에 마중 갈 예정이었지만, 점령이 너무 빨라서 서두르라고 신호한 거야. 왕국놈들은 정말로 약하구나.”
“동감입니다.”
왕국놈이 아니라 공국놈이지만.
좋아, 이제 마무리다.
여자와 아이들이 도착하기 전에 끝내자.
나는 영주를 질질 끌고 단상 위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