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196)
196 내 딸아, 함께 가자
내가 아레논으로 간다고 하자 올돈이 쫓아간다고 나섰다.
아직도 아버지와의 결투를 포기하지 않은 모양이다.
“….”
아니, 진짜로 죽는다니까.
농담이 아니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약탈하러 왔다고 아주 잠깐이라도 착각하면 그 순간 죽는 거야.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를 약탈하러 왔다고 말할 틈도 없을 거다.
반대로 어머니 때문에 아버지한테 결투를 신청한다 해도 죽는다.
아버지가 위험한 상황에 놓이는 걸 어머니가 용납할 리 없으니까.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도끼에 목을 잘리는 결과밖에 나오지 않을 것이다.
“목숨을 쉽게 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말하자 올돈이 울부짖었다.
“버리는 게 아니라 약탈하러 가는 거다! 나도 결혼하고 싶다고! 정착하기 전에 아내가 갖고 싶단 말이다!”
“결혼은커녕 어머니랑 만나는 순간 죽거든요. 어머니는 포기하세요.”
내 말에 올돈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외쳤다.
“나도 헬가와 결혼이라니, 바늘구멍만 한 방법이라도 다른 게 있었으면 절대로 하지 않았어!”
남의 어머니를 그렇게 말하지 마.
그렇게 생각했지만, 정말로 올돈의 마음은 이해한다.
이게 올돈과 만난 직후라면 화를 내거나 네가 죽고 싶다면 맘대로 해, 하면서 그냥 데리고 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함께 지내는 동안 이 남자가 마음에 들었다.
순박한 사람이야.
어머니와 결혼하는 게 싫으면서도 마지막까지 어떻게든 놓지 않는 결사적인 면도, 내가 타티아나를 만나지 못했을 평행세계의 내 모습 같고, 왠지 정이 간다.
그러니 이 사람이 내 앞에서 죽는 꼴은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도 내 어머니한테.
“올돈! 라파 말을 들어라.”
“그냥 하는 소리라면 몰라도 정말로 따라간다니, 네놈이 지금 제정신이 아니야.”
“헬가를 알잖아.”
“헬가가 남편을 얻었다면 그건 그녀의 보물이겠지. 절대로 안 뺏긴다구.”
“나는 헬가 남편을 빼앗으러 가는 게 아니라구!”
부족 남자들이 올돈을 뜯어말리는 사이, 나는 도망치듯 출발했다.
호르지 삼촌과 할아버지, 할머니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에 오르는 나를 본다.
“다음에 또 올게요. 그때는 아내를 데리고 오겠습니다.”
출발하면서 그렇게 말하자 할머니가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 눈이 약간 젖어 있다.
할아버지는 아, 짧게 한마디만 했다.
하지만 표정에서 안다.
나와 헤어지는 게 아쉽다는 거,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진짜로 다음에 또 오자.
어머니랑 아버지도 한 번 오면 좋겠지만, 아버지가 너무 바빠서 그건 힘들겠지.
어머니는 아버지 옆에서 떠나지 않을 테고.
그러니 나밖에 없다.
약간 아쉬운 마음을 안고 나는 그레고르의 뒤를 따랐다.
*
발테르 공작령의 수도 브리딜은 전에 없이 소란스럽다.
에크빌과 자알 왕국의 침략으로 가장 활발하게 움직인 게 공작가다 보니 그 일로 사람들의 출입과 이동이 몇 배로 늘어나 있었다.
포로의 이송과 노예 상인에의 판매, 귀족 포로의 반환에 따른 협상, 국내 귀족들의 출입, 거기에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상인과 다양하게 일자리를 얻으려는 사람들.
사람이 많아지면 거기에 따라 새로운 일거리도 생긴다.
늘어난 사람이 소문을 부르고 그게 또 새로운 사람과 상인, 다양한 것들을 끌어와 도시 브리딜은 요즘 들어 복작복작 활기차다.
하지만 빛이 커지면 어둠도 늘어나기 마련이다.
다른 곳보다는 적다고 해도 브리딜의 화려함 뒤에는 일자리를 찾지 못한 외지인과 부랑아들이 있었다.
공왕은 더러운 옷을 꼭꼭 여미며 웅크려 앉았다.
도시의 경비병이 정기 순찰을 하고 있다.
다른 도시에서는 경비병이 번듯한 도시 앞면만 돌아다니지만, 브리딜에서는 뒷골목까지 매번 확인한다.
사람이 죽거나 다쳐 쓰러져 있지는 않은지, 살인자나 도둑이 숨어 있는 건 아닌지, 경비병은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두 번씩 골목 뒤편을 돌았다.
공왕이 골목에 드리워진 어둠 속에 숨는데, 앞을 지나치던 경비병이 문득 고개를 돌렸다.
혹시 알아보는 게 아닐까 싶어 가슴이 덜컹한다.
공왕이 고개를 숙이는데, 경비병이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발크 씨… 맞죠? 도적의 습격을 받아 가족과 전 재산을 잃었던.”
“… 네… 네… 그렇습니다.”
공왕은 어색하게 고개를 숙였다.
발크는 이곳으로 오다 만난 행상인의 이름이다.
항구에서 도망친 직후 시종과 호위는 그에게 당장 배나 관문을 통해 이 나라를 빠져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딸이 여기에 있다.
딸이 무사한지, 어떻게 지내는지, 그의 딸이 정말로 그 야만인과 혼인했는지 알아야 했다.
만일 공작령에 있는 게 사실이라면 야만인에게서 딸을 구해야 한다.
사랑하는 딸을 위해 자알 왕국에 협력한 것이다.
여기에서 그만두면 얻는 것 없이 헛되이 실패만 쌓을 뿐이다.
그렇게 고집해 공작령으로 향하자, 처음에는 시종이, 그 뒤에는 호위가 그의 곁에서 사라졌다.
자알 왕국과 에크빌이 모두 괴멸했다는 소식을 들은 무렵이었다.
그렇게 혼자만 남았을 때 만난 것이 상인 발크와 그 자식들이다.
목적지가 같았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이동하기로 했는데, 중간에 도적의 습격을 받아 모두 죽었다.
공왕이 살아난 건 마법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공왕과 공왕비는 모두 물마법사였다.
나이가 많아 젊을 적보다 힘은 많이 줄었어도 아직 자기 몸을 지킬 정도로는 싸울 수 있었다.
도적은 좀처럼 죽일 수 없는 공왕을 어쩔 수 없이 놔두고, 수레를 망가뜨린 뒤 떠나버렸다.
공왕은 죽은 발크의 옷을 벗겨 바꿔 입고 신분증명서를 챙겼다.
그 덕분에 공작령 관문을 무사히 통과해 브리딜까지 올 수 있었다.
브리딜로 들어갈 때도 발크의 증명서를 사용했다.
발크를 만난 건 신의 계시라고 생각했다.
딸을 구하라는.
‘설마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성문을 지키는 문지기와 병사에게, 공왕은 수많은 사람 중 하나였을 것이다.
한데 어떻게 기억했을까.
조심했지만, 자기도 모르게 뭔가 특이한 행동을 했었나.
혹시라도 정체가 들통난 게 아닐까 싶어 가슴이 쿵쿵 뛰었다.
“… 아직도 일자리를 못 구했습니까.”
무슨 말을 하는지 처음은 놓쳤다.
하지만 경비병의 뒷말을 보면 들킨 것은 아니다.
몰래 안도의 숨을 쉬며 공왕은 더욱 고개를 숙였다.
얼굴은 되도록 남에게 보이지 않는 게 좋다.
지금의 이 모습으로는 아무도 그가 공왕이었다고는 생각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
“무료 급식은 먹고 있습니까?”
“… 네… 네….”
공작가에서는 뒷골목의 부랑아와 늙은 사람에게 하루에 한 번 식사를 지급한다.
수프와 딱딱한 빵이라 먹기 어렵지만 공왕도 여기에 온 뒤로 몇 번이나 그 배급을 받았다.
“혹시 생각 있으면 이 앞 도로에 있는 여인숙으로 오세요. 거기에서 허드렛일할 사람을 구하는데, 돈은 얼마 안 주더라도 일은 편할 겁니다. 내 소개라고 하면 고용해 줄 거예요.”
“감사합니다.”
공왕이 고개를 숙이자 경비병은 조심하라고 말한 뒤 몸을 돌렸다.
멀어지는 경비병의 대화가 언뜻 들렸다.
잘 알지도 못하는 외지인한테 왜 신경 쓰냐고 묻는 동료의 질문에, 경비병이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 아버지 같아서 그래. 좀 닮았거든.”
아, 그래서 공왕을 기억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이 공왕을 기억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공왕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곳에 온 지 꽤 되지만 아직 리아나의 모습은 보지 못했다.
전쟁에 참여한 공국의 공주 이야기는 들었다.
전쟁이 끝나면서 이곳에 돌아왔다는 말도 있지만 정확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대신 불길한 소문만 떠돈다.
전쟁이 끝났다거나 공작가의 야만인이 사라문즈 공국으로 떠났다는 등의 이야기였다.
거기에 더해 야만인이 가진 괴물 같은 힘에 관한 이야기들.
이 세상에 그런 인간이 있을 리 없다.
아마 공작가에서 흘리는 헛소문일 것이다.
야만인을 가문에 받아들이기 위해 영민의 인기를 올리려는 거겠지.
도시로 흘러들어오는 소문은 날이 갈수록 공왕에게 불리한 것뿐이다.
왕국의 군대가 움직였다는 말은 아직 없지만, 이 나라를 공격했다는 이유로 보복당한다면 사라문즈처럼 작은 나라는 며칠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것이다.
‘그러면 내 딸은 어떻게….’
어디로 데려가야 하는가.
딸을 구해도 갈 곳이 없어진다.
가슴이 가뭄에 바짝 마른 호수처럼 갈라져 피가 맺히는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게 번민하는데 도로 쪽에서 엄청난 함성이 울렸다.
자기도 모르게 깜짝 놀라 몸이 흔들렸다.
다시 함성이 오르고, 사람들 사이에서 흥분한 목소리가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갔다.
“사라문즈가 떨어졌다!”
“도련님이 사라문즈를 정복했다!”
그런 외침이 골목까지 크게 울린다.
‘뭐라구.’
공왕은 허우적거리며 거리로 나갔다.
공기로 된 물속을 걷는 것 같다.
현실감이 없었다.
간신히 골목을 나가자, 거리 가운데에서 공작가의 관리가 큰 소리로 뭔가를 외치고 있었다.
함성 속에 가려 처음에는 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관리는 여러 번 같은 소리를 반복해 외쳤기 때문에 내용은 금세 알았다.
관리는 사라문즈 공국이 아레논의 속국이 되었다, 그것을 이룬 사람이 바로 도련님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사람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공왕은 멍청하니 서 있다 사람들의 물결에 밀려 휘청했다.
고국이 정복당했다.
왕세자나 다른 왕자 공주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순식간에 사라졌다.
대신 머릿속을 채운 건 정말로 딸을 데리고 갈 곳이 없어졌다는 절망감이었다.
끔찍한 야만인 손에 사랑하는 딸을 두어야 한다.
이가 으드득 갈렸다.
한 여성의 모습을 본 건 그 순간이었다.
그녀는 수수한 색의 원단으로 만든 긴 망토를 입고 있었다.
얼굴은 두건을 깊이 눌러 써 감췄다.
코와 입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다.
금빛 머리카락이 두건 밖으로 조금 흘러 나와 있다.
여자의 작고 하얀 손에는 둥근 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옆에는 3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여성이 있고, 약간 떨어진 곳에 호위로 보이는 남자가 다섯 명 정도 따랐다.
두건 쓴 여성이 옆의 여성과 말을 나누다 즐거운 듯 웃음을 터뜨렸다.
멀어서 들리지 않을 웃음소리가 뇌를 강하게 쳤다.
벼락을 맞은 느낌이었다.
‘… 맙소사.’
딸이다.
얼굴은 잘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딸 리아나였다.
이 세상 사람이 모두 바로 서서 걷는 것처럼, 새가 하늘을 날고 호수에 물고기가 사는 것처럼, 너무 당연하게 그 사실을 알았다.
그의 딸이다.
‘리아나… 내 딸이….’
여기에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바로 저기에 있다.
딸의 두건 안에서 나비처럼 생긴 빛이 어른거리며 나왔다 들어간다.
그때마다 리아나의 피부가 빛에 염색되는 것처럼 밝아졌다.
어쩌면 저게 사람들이 말하는 빛의 나비인지도 모른다.
야만인의 것이라는.
“….”
머릿속이 차갑게 식었다.
더러운 야만인, 그 자식의 것이 딸의 몸에 붙어 있다니 용서할 수 없다.
분노가 마음을 뜨겁게 달궈 어찌할 수 없을 만큼 화가 났다.
머릿속에서 피가 거꾸로 도는 것 같다.
‘용서할 수 없다… 용서할 수 없어.’
그의 딸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의 딸.
그가 지켜야 하는, 바로 곁에서 지켜봐야 하는 딸이다.
용암처럼 뜨겁던 머릿속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딸을 구해 고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고국은 이미 아레나에게 정복되고 돌아갈 곳이 없어졌다.
‘딸을 데리고 이곳을 떠나도….’
가디라는 건 도망자 생활이다.
그러면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하는가.
딸을 지키고 사랑할 사람은 자신뿐인데.
이 세상은 더러운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의 딸은 그런 더러움에 어울리지 않는다.
공왕은 문득 자기 몸을 내려다보았다.
부랑자처럼 더러워진 손과 발, 찢어지고 피 묻은 옷.
궂은일이라곤 모르던 손발은 짓물러 거칠어지고 씻지 못한 머리카락에서 예전의 고귀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딸에게 이런 생활을 강요할 수는 없다.
“….”
그래, 강요할 수 없다.
아름다운 딸에게 이 더러운 세상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그의 딸은 섬세하고 고귀한 존재다.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고 빼앗는 이 더러운 곳을 강요하는 건 불쌍한 일이지.’
그래, 그렇다.
그렇다면 할 일은 하나뿐이다.
고귀한 생명은 고귀한 곳으로, 신의 세상으로 보내는 수밖에.
외롭게 하지는 않는다.
‘리아나, 내 딸, 내 사랑하는 아기.’
함께 가자.
공왕은 사람들 눈을 피해 구석으로 향했다.
딸을 향해 곧바로 걷는다.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래도 딸을 이 더러운 세상에서 구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불처럼 타며 번민하던 마음이 깨끗해졌다.
그는 최대한 가까이 다가간 뒤 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호위가 그를 발견하고 검을 뽑았다.
시야에 그 모습이 들어왔지만, 공왕은 방어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의 소망은 딸을 이 세상에서 구원하는 것뿐이다.
공왕은 자기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몸에서 뽑아냈다.
그 순간 딸이 이쪽을 보았다.
시선이 마주친다.
아… 마지막 순간이 이토록 황홀하게 아름답다니.
딸의 눈을 보고 함께 죽는다면 나쁜 생은 아닐 것이다.
“리아나, 내 딸아!”
그렇게 외치는 순간 공왕의 전신에서 실처럼 물이 뿜어져 나왔다.
죽음을 각오하고 낸 마지막 그의 마법이 지금 여기에서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