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198)
198 안녕하세요, 편의점 총각
하늘이 파랗다.
그게 너무 이상해서 가만히 쳐다보자 스승님이 물었다.
“왜 그러니?”
“….”
스승님의 얼굴은 이상하다.
가느다란 선이 얼굴 가득 있다.
얼굴에 이런 게 있다니, 정말 이상해.
그런 사람은 처음 보았다.
“….”
그렇게 생각하고 고개를 갸우뚱한다.
이상하다.
이 세상에서 아는 사람은 스승님뿐인데 왜 처음 본 거라고, 다른 사람은 이렇지 않다고 생각했을까.
이 세상에 다른 사람이라는 게 있기는 한가.
타티아나가 아는 세상은 작은 오두막과 높은 나무, 풀, 그런 것뿐이다.
스승님과 그녀, 둘밖에 없는 숲.
아무도 오지 않는 숲에서 타티아나는 스승님과 함께 살고 있었다.
이 숲 밖으로는 나가본 적이 없다.
우리는 마녀니까.
다른 사람은, 평범한 인간은 어떻게 생겼을까.
머리에 뿔이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빨이 뾰족하거나, 몸에 구멍이 잔뜩 있을 수도 있다.
스승님은 마녀와 보통 인간이 똑같이 생겼다고 말했지만, 이 숲에 수많은 동물이 있는 것처럼 인간의 종류도 여러 가지 일지 모른다.
타티아나가 손을 뻗자 스승님이 몸을 낮췄다.
선이 잔뜩 그려진 얼굴이 바로 앞에 있다.
거기에 손을 댔다가, 타티아나는 깜짝 놀랐다.
“선이 따뜻해.”
그렇게 말하자 스승님이 웃는다.
하지만 정말 놀랐다.
스승님의 얼굴에 그려진 선은 그냥 선이 아니었다.
오돌도돌하게 만져지고 따뜻하다.
그게 너무 이상해서 자꾸 만지는데, 스승님이 다시 물어보았다.
“왜 하늘을 보고 있었어?”
“….”
그랬지.
하늘이 파래서 보고 있었다.
원래 하늘은 하얗고 움직이지 않는 여신이 있는 건데.
“…?”
이상하다.
왜 하늘에 여신이 있을까.
타티아나는 고개를 높이 올려 하늘을 보았다.
역시 하늘은 파랗다.
하얗게 생긴 구름이 조금씩 움직여 지나가고 있다.
여신은 어디에도 없었다.
“스승님, 왜 하늘은 파래요?”
“역시 이 질문 왔어!”
스승님이 당황한 것처럼 소리쳤다.
스승님은 이상하다.
어른인데 소리도 지르고 혼자 춤도 추고 웃기도 한다.
타티아나가 아는 사람은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는데.
“….”
이상하네.
왜 이런 생각이 자꾸만 나올까.
타티아나가 아는 사람은 스승님 한 명뿐이다.
“스승님, 원래 하늘은 하얗고 여신 그림이 그려져 있는 거였어요? 여신은 어디로 갔어요? 왜 파래졌어요?”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렇게 묻자, 스승님 얼굴에 있는 선들이 쭈글쭈글하게 움직였다.
스승님이 풀밭에 털썩 앉아 타티아나를 끌어당겼다.
무릎 위에 톡 올라앉자, 스승님은 그녀를 꼭 끌어안고 말했다.
“하늘은 파랗고 굉장히 높은 거야. 하얄 때도 있지만 여신은 없지.”
“이상해요.”
기억나지는 않지만 하늘은 원래 하얗고 여신이 있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움직이지 않는 채 가만히 타티아나를 내려다보는 여신이 있었다.
그 여신은 굉장히 예쁘고 다정한 눈을 하고 있다.
그렇게 말하자 스승님은 타티아나의 눈을 손바닥으로 덮었다.
그리고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하늘이라고 생각한 건 아마 네 방의 천장일 거다. 여신은 거기에 그려져 있던 그림이겠지.”
스승님과 함께 사는 오두막에는 따로 방이 없다.
하나의 공간에 침대와 화덕이 있고 한쪽에는 스승님의 도구들이 있었다.
무엇보다 오두막 천장은 하얗지 않다.
여신도 없었다.
그렇게 말하려고 했지만 스승님의 손바닥에 막혀 말은 웅웅거리는 소리가 되어 흩어졌다.
간지럽네.
그렇게 말하며 스승님이 웃는다.
“오늘은 네가 우리 숲에 온 지 한 달이 되는 날이란다. 너는 이전의 모든 걸 다 잊었으면서도 여신 그림만 여전히 기억하고 있어. 그것이 너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기억이기 때문일 거다.”
스승님의 목소리가 조금 슬픈 것처럼 들렸다.
“그러니 이 기억으로 하자. 잊은 걸 되살리기 위해서는 뭔가 강한 게 필요하니까. 그게 사람도 아니고 그림의 눈동자라는 게 조금 화나지만, 어쩔 수 없지.”
스승님의 목소리 때문일까.
몸이 둥둥 뜨는 느낌이 들었다.
스승님의 손바닥 때문에 사방이 캄캄하다.
세상이 없어지고 어둠에 삼켜진 것 같다.
“먼 훗날, 너는 이 숲을 나가게 될 거야. 운명을 만나러 가는 거지. 예지의 마녀는 약속된 날 네가 나가면 큰 어려움 없이 그 사람을 만날 거라고 했다. 그 말을 믿어. 하지만 만에 하나라는 것도 있으니까.”
캄캄함 속에서 스승님의 목소리만이 가득 들렸다.
어둠은 무섭다.
그러나 스승님의 목소리와 등 뒤에서 전해지는 체온 때문에 지금은 무섭지 않았다.
“네가 혹시 견디기 힘들거나 괴로운 일을 당하더라도 숲으로 돌아와서는 안 된다. 도망쳐서는 안 돼. 인간 세상에서 살아. 그래서 너를 행복하게 지켜줄 사람을 만나야 해.”
스승님의 목소리가 조금 멀어졌다.
“그 사람을 만나서 진심으로 행복하다고 느끼면, 그 남자가 너에게 닥치는 위협을 모두 없애 안전하다고 생각하면, 그때는 그 남자와 함께 돌아오려무나. 우리 집으로.”
그렇게 말한 뒤 스승님의 목소리가 멀어져 갔다.
내 마음도 빙글빙글 돈다.
갑자기 작은 내가 시간을 넘어 커지고 수많은 일들이 기억에 뒤섞였다.
아, 이건 스승님이 말했던 마지막 봉인이다.
언젠가 때가 되면 숲으로 가는 길이 기억날 거라고, 그게 마지막 봉인이라고 스승님이 말했었다.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 더 이상은 스승님의 얼굴이 없다.
기억 외에는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마음이 서글퍼 울고 싶어지는데, 스승님의 목소리가 불쑥 귀에 닿았다.
[사람의 마음이 기우는 건 한순간이야. 심장이 가득 차 버리지. 얼마 안 됐지만, 얘야, 나는 너를 내 딸로 생각하고 있어. 사랑한단다. 아마 앞으로 더욱 사랑하게 되겠지….]딸이었어.
제자로 길러졌지만, 스승님의 마음속에서 그녀는 딸이었다.
‘스승님… 나도 어머니라고… 그렇게 생각했어요. 계속 그렇게….’
중얼거리는 순간 눈이 떠졌다.
지금까지 아무리 해도 떠오르지 않던 길이 눈앞에 펼쳐진다.
작은 오두막까지 가는 숲속의 좁은 길이 이제야 겨우 눈에 보였다.
그 길의 끝에서 스승님이 빙그레 웃고 있었다.
스승님이 입을 오므리며 뭔가 말한다.
아, 이걸 알고 있다.
특별한 주문이다.
운명의 남자를 만나면 전하라고 했던 말.
그 말이 막 머릿속에 떠올랐을 때 불쑥 라파의 얼굴이 끼어들었다.
커다란 얼굴이 갑자기 나타나 기절할 뻔했다.
*
그녀는 사흘 동안 잠자고 있다.
공작가의 의사가 꼼꼼히 타티아나를 진찰했지만, 아무 이상도 없다고 한다.
이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아, 이건 어쩌면 마녀 도로테의 최면 때문이구나, 싶었다.
조금 안심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안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나는 매일 매 순간 이제는 그녀가 깨어날까 기대하며 계속 옆에 붙어 초조히 기다렸다.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 타티아나가 만든 불사조 환약을 물에 개 조금씩 입에 흘려 넣고, 정령 나비를 잡아 타티아나 몸에 붙여 놓았다.
마녀는 정령의 사랑을 받는 존재라고 하니 가까이 있으면 어쨌든 좋겠지.
만드라고라도 근처에 두었다.
만드라고라는 뿌에 뿌에 울면서 타티아나 몸에 가느다란 잔뿌리를 얽히고 타티아나가 자는 동안 자기도 함께 붙어 잤다.
같이 자라고 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도움이 될지 모른다 싶어 그냥 두었다.
만드라고라는 약으로 쓰이는 존재라고 하니 잘 모르지만 어딘가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했어.
그 덕분인지, 아니면 깨어날 때가 되어서인지, 타티아나가 눈을 반짝 뜨는 걸 보고 울 뻔했다.
그녀가 내 얼굴을 보고 기절할 듯 놀랐을 때는 진짜로 조금 울었다.
까무러치는 것처럼 눈동자가 풀리는 거야.
놀라게 한 건 미안하지만, 그래도 남편 얼굴을 보고 기절하는 건, 그건 정말 너무하잖아, 타티아나.
“타티아나, 깨어나서 다행이야.”
그녀를 끌어안고 말하자, 꼬르륵 소리가 크게 울렸다.
“… 아, 저기… 배고프네요.”
“….”
타티아나가 해쭉 웃으며 중얼거렸다.
사흘간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니 배고픈 건 당연하다.
그녀가 깨어난 걸 보자마자 밖으로 뛰어나갔던 시녀가 돌돌돌 굴러가는 식기 운반용 수레를 가져왔다.
수프가 십여 종류 올라가 있었다.
타티아나가 언제 깨어나도 먹을 수 있게 준비해 놓은 모양이다.
모락모락 올라가는 연기를 보고 타티아나의 배가 다시 울렸다.
진짜로 몸에는 이상 없이 잠만 잤던 것 같다.
타티아나 등에 베개를 고여 앉게 한 뒤 작은 나무 트레이를 앞에 놓는다.
시녀가 재빨리 수프 그릇을 늘어놓았다.
굉장히 배가 고팠는지, 타티아나가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하아… 정말 걱정한 게 바보 같을 정도로 활기차다.
다행은 다행인데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가 생각하면 가슴이 덜컥 거렸다.
그녀가 수프를 먹는 동안 의사가 와서 건강 그 자체라는 걸 확인해 주었다.
아버지, 어머니가 올 무렵에는 이미 수프를 두 그릇이나 뚝딱 해치운 뒤였다.
양이 꽤 많았는데 잘 먹는다.
마음이 놓여 안도의 숨을 쉬는데 타티아나가 나를 보았다.
“아, 스승님이 전하라는 주문이 있었어요.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나한테 남편이 생기면 전하라고 하셨거든요.”
타티아나의 이마에 주름이 생겼다.
“이게 꽤 어려운 주문이라서 발음이 어려워요.”
그렇게 말하고 입술을 오므린 그녀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편의점 총각.]응?
뭐야, 그건.
한국어잖아.
게다가 편의점 총각이라고?
“맙소사.”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자, 타티아나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라파 씨, 이 주문을 아나요? 스승님이 무슨 뜻인지 알려주지 않고 그냥 외우게만 하셨거든요.”
그건 주문이 아니야, 타티아나. 지구의 언어지.
그녀의 스승님이라는 마녀 도로테는 확실하게 지구인이었던 것 같다.
게다가 나를 알고 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이야기를 들어보자, 마녀 도로테는 타티아나가 이 기억을 되찾으면 숲으로 오라고 한 모양이다.
그 이상은 모르고 있었다.
뭐, 한국말이라는 것 자체를 모른 채 주문이라고 믿었으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한가.
당장 숲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어제 왕세자의 죽음이 공표되었다.
그 때문에 전승 축하 파티는 생략되고 2왕자의 왕세자 책봉식이 열린다.
원래는 대대적으로 거행해야 하지만 왕세자의 죽음과 겹쳐 간소하게 치른다고 들었다.
책봉식에 참가하는 귀족을 위해서는 원래 기간을 제법 둬야 하는데 그것조차 빠듯하다.
왕 역시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서두르는 것 같다.
우리 공작가는 2왕자의 후원자가 되었기 때문에 참석 필수다.
게다가 왕세자 책봉식은 내부적으로 전승 축하를 겸한다.
나는 그 당사자이므로, 아버지와 할아버지한테 밀어붙이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궁금해서 죽겠네.’
진짜 궁금하다.
그렇게 생각하다 문득 집에 돌아온 뒤 한 번도 렐라를 보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타티아나가 갑자기 잠드는 바람에 그쪽까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내가 렐라는 어미와 함께 나갔는지 묻자, 타티아나가 놀란 듯 입을 벌렸다.
“어, 렐라랑 같이 있었던 거 아니에요?”
“응?”
“라파 씨 떠난 다음 날 따라갔는데요.”
“아니, 전혀 보지 못했는데.”
“어, 그러면 어디에 있는 걸까요?”
“… 글쎄.”
하지만 어미와 함께 갔을 테니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뭔가한테 먹히더라도 이제는 순식간에 불태우고 나올 정도로는 힘이 강한 편이고, 어미는 더 강하고, 그러니까 뭐, 괜찮을 거다.
렐라도 이제 슬슬 독립해서 야생의 감으로 살아가야지.
어쩌면 드디어 어미가 독하게 마음먹고 나는 방법을 가르치려는 걸지도 모른다.
높은 나무에 올려놓고 떨어뜨린다던가.
“….”
아니, 그건 좀 이르지.
아무리 튼튼한 불사조라도 죽을 거야.
‘설마 어미가 그러지는 않겠지.’
왠지 좀 불안해져서 나도 모르게 창을 보았다.
타티아나도 비슷한 마음이었는지 둘의 시선이 나란히 창밖의 푸른 하늘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