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200)
200 (완)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는 행복하니까
전 왕세자의 사망 때문에 책봉식은 장엄하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그렇다 해도 회장은 은근히 화려하다.
샹들리에는 길게 늘어져 촘촘하게 초가 꽂혀 있고, 벨벳 커튼은 은은하게 빛난다.
높은 천장과 벽에는 섬세한 조각이 새겨져 있고 행사를 위해 나와 있는 물건들은 모두 반짝반짝하거나 둔중하게 빛을 발했다.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엄청나게 비싼 물건이라고 알 수 있었다.
뭐, 왕세자가 죽었기 때문에 화려하게는 할 수 없다고 해도 책봉식과 전승 축하를 겸하고 있다.
적당히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왕가의 위엄에도 좋지 않고.
책봉식 전에 만나봤지만, 2왕자는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할아버지의 평가도 비슷하다.
능력이 아주 뛰어나지는 않아도 어리석지는 않다고 한다.
보좌를 잘하면 적당히 잘 통치하는 왕이 될 거라고 하셨다.
책봉식이 끝난 뒤에는 이번 전쟁의 공로자에 대한 왕의 치하가 있었다.
이번 전쟁에 참여한 자들이 공적에 따라 금화나 작위를 새로 받았다.
볼크 백작은 마그리트가 적의 음모를 발견한 덕분에 상당한 보상을 받게 되었다.
나는 사라문즈 공국의 권리를 다양하게 받았다.
할아버지 귀띔에 의하면 그냥 통째로 나라 하나를 받은 거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딴 거 필요 없어.
마음으로는 거절하고 싶지만 이 건은 여러 가지가 고려되어 결정되었다고 들었다.
우리 공작가가 가장 큰 공로자라고 해서 너무 노른자위만 받아먹으면 사람들의 이목을 나쁜 의미로 끈다.
그래서 얼핏 보면 굉장히 큰 것 같아도 실제 영양가는 거의 없는 공국의 권리를 받게 된 것이다.
빛 좋은 개살구인 셈이다.
타티아나가 그 나라 공주인 것도 한몫했을 거다.
그렇지만 할아버지나 아버지는 의외로 만족한 것 같다.
지금은 별것 아니지만 그 나라는 개발할 여지가 많다고 한다.
지하자원이 존재할 가능성도 있는 모양이다.
나나 공작가의 무력이 있으면 시기를 봐서 주변 나라를 삼킬 수도 있어 괜찮다고, 아버지가 나쁜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권리를 받은 게 나라고 해도 그걸 사용하는 건 할아버지나 아버지일 테고, 내가 골치 아플 일은 없으니 상관없을까.
어쨌든 제니 씨의 길드 지점을 여는 건 문제없을 것 같다.
그 외에,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공작가는 무역과 관련된 권리를 몇 가지 받았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진짜로 노리고 있었던 건 아마 그 권리였을 거다.
싱글싱글 계속해서 기분 좋은 걸 보면 그렇겠지.
식이 끝날 무렵에는 왕이 십여 명에게 보검을 하사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번쩍번쩍 빛나는 보검을 하나씩 받았다.
마도구의 일종으로 매우 드문 거라는데, 어머니는 마법도 사용하지 못하고, 무엇보다 도끼 사용자다.
쓸모없는 검을 가만히 쳐다보는 모습에서 불만스러움이 느껴졌다.
어머니, 그런 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마음속으로만 생각해 주세요.
왕이 보고 있습니다.
소시민인 나는 왕의 시선이 어머니한테 닿는 걸 보고 속으로 조마조마했다.
할아버지는 이번 기회에 공작위를 아버지에게 물려주기로 했다.
책봉식 뒤의 만찬에서 나는 정식으로 공작가 후계자로 사람들에게 소개되었다.
아버지는 말로는 내 맘대로 하라더니 마음속 꿍꿍이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뭐, 아무래도 상관은 없지만.
책봉식이 모두 끝난 뒤, 나는 타티아나와 함께 그녀가 살던 숲으로 떠났다.
아버지는 한동안 왕도에서 다른 귀족과 만남을 가진다고 한다.
원래는 나도 그래야 하지만, 마녀 도로테가 했던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그녀는 어떻게 나를 알고 있는지 궁금해서 도저히 가만있을 수 없었다.
*
마녀 도로테와 타티아나가 살던 숲은 왕도에서 굉장히 먼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이십일 넘게 마차를 달린 끝에 우리는 작고 초라한 마을에 도착했다.
“이 마을은 스승님이 약을 팔던 곳이죠. 나는 숲에서 거의 나오지 않았지만 어릴 때 한 번 스승님과 와본 적이 있어요.”
타티아나가 그리운 듯 마을을 보다 손가락으로 먼 곳을 짚었다.
“저기서부터는 걸어가야 해요. 숲으로 가는 길에는 군데군데 굵은 나무가 있거든요. 마차는 들어가지 못해요.”
그렇게 말한 뒤 타티아나는 잠시 초라한 마을 건물을 보며 코를 훌쩍였다.
스승님 생각이 난 모양이다.
나는 그녀가 진정할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
그 사이 마차를 본 마을 사람들이 멀찍이서 웅성거리더니 몇 명이 안쪽으로 달려갔다.
잠시 뒤 촌장이 기절할 것처럼 하얀 얼굴로 달려와 마차 앞에 엎드렸다.
“나, 나, 나, 나으리, 요, 용서해 주십시오. 아무리 숲으로 들어가 찾아봐도 마녀의 집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제발 용서해 주세요.”
울상을 지으며 다짜고짜 그렇게 울부짖는 바람에 타티아나가 깜짝 놀랐다.
찔끔하던 눈물이 쑥 들어간 것 같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자 이 마을은 원래 마녀의 약을 판매하는 것으로 수입을 얻은 모양이다.
그 약의 상당 부분은 영주한테도 헌상 되었다.
하지만 마녀 도로테가 죽고 타티아나가 떠나면서 마녀의 약을 구할 데가 없어졌다.
그러자 마녀의 약을 얻지 못한 영주가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너희들이 마녀를 제대로 감시하고 묶지 못해 그렇게 된 거라며, 당장 마녀의 집을 찾아라, 못 찾으면 벌을 주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던 차에 우리 마차를 보자 드디어 영주가 직접 찾아왔다고 겁을 먹은 모양이다.
타티아나가 곤란한 듯이 나한테 속삭였다.
“어쩌죠. 약은 대부분 생필품하고 바꾼 거라 돈이 된다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약이 영주한테 간다는 것도 몰랐는데….”
도로테와 타티아나는 약을 옷감이나 조미료, 헌 신발 등으로 바꾸었다.
돈은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나는 조금 차가운 눈이 되어 촌장과 마을 사람들을 보았다.
“타티아나가 걱정할 일은 아니야. 이 사람들은 마녀의 약을 헐값도 안 되는, 정말 거의 공짜에 사서 엄청난 값으로 팔아먹은 셈이니까.”
타티아나는 몰랐다 해도 도로테는 지구인이니 세상 물정에 어둡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알고 있었겠지.
그래도 그렇게밖에 판매하지 못한 건 마녀가 이 세상에서 박해받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사람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타티아나는 자기 때문에 곤란해진 거라고 생각해 어쩔 줄 몰랐다.
타티아나한테는 이런 곳도 추억의 장소로 소중한 모양이다.
뭐, 그렇다면 영주에게 한 마디 정도는 해줄까.
공작가의 말을 무시할 자는 없을 테니까.
이런 식으로 생각하게 된 걸 보면 나도 어느새 귀족이 된 듯하다.
하지만 나중 일이다.
굳이 미리부터 이들을 위해 나설 필요는 없겠지.
마차는 마을 어귀에서 기다리게 한 뒤, 나와 타티아나는 숲으로 향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나무의 키가 점점 더 커져 하늘을 가렸다.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어둡다.
왠지 으스스해 귀신이 나올 것 같다.
한참을 더 들어가자 가시나무 숲이 나왔다.
가시나무가 서로 뒤엉켜 길은 완전히 막혀 있었다.
하지만 이곳이 맞는 길이라고 한다.
타티아나가 그리운 듯 거대한 덩굴을 올려다보았다.
“타티아나, 정말로 여기가 맞아? 사람은커녕 쥐새끼 한 마리도 못 지나갈 것 같은데.”
“이쪽으로 오세요.”
타티아나가 가시덩굴을 빙 둘러 걷기 시작했다.
한참을 걷다가 멈춰 선다.
그리고 몸을 낮췄다.
“여기에 구멍이 있거든요. 여기가 통로인 거예요.”
“….”
타티아나가 가리킨 곳에는 확실히 사람이 한 명 지나갈 만한 구멍이 있었다.
하지만 작다.
아니, 평범한 사람은 충분히 지나갈 만한 크기지만 나한테 작다.
타티아나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곤란한 표정이 되었다.
괜찮아.
길이 없으면 만들면 되고, 작으면 크게 뚫으면 되지.
나는 도끼로 가시나무를 투둑 투둑 잘라 구멍을 넓혔다.
한 4, 5미터 두께는 된 것 같다.
가시나무 덩굴을 지나자 다시 조용한 숲이 이어지고, 그 너머에 그림처럼 작은 집이 있었다.
타티아나는 그 집 앞에 서자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스승님, 저, 돌아왔어요. 남편하고 함께 왔어요, 스승님.”
그녀가 내 손을 꼭 잡았다.
“… 이 사람이에요. 얼굴은 무섭지만… 착하고… 좋은…..”
타티아나는 말을 잇지 못하고 또 한참 울었다.
그녀가 겨우 진정되고 집으로 가까이 가자, 문에 한글로 뭔가가 적혀 있었다.
[책상의 밑면을 보시오.]도로테는 정말로 한국 사람이었구나.
내가 그걸 가만히 보자, 타티아나가 훌쩍거리며 물었다.
“이건 내가 어릴 때 스승님이 적어두신 주문이에요. 벌레의 침입을 막기 위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혹시 무슨 뜻인지 아나요?”
“… 음… 글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자, 타티아나가 어깨를 으쓱했다.
“괜찮아요. 말하기 어려운 거면. 스승님도 나한테 비밀이 많았죠. 가르쳐야 할 건 다 가르쳐 주셨지만, 어릴 때부터 항상 말씀하셨어요. 몰라도 되는 건 알 필요가 없다, 알면 다쳐! 라고요.”
아이한테 그런 말은 어떨지.
하지만 타인의 접촉 없이 자란 타티아나에게는 그게 당연한 모양이다.
더 이상 관심갖지 않고 문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나를 보며 방긋 웃는다.
“마녀의 집에 어서 오세요.”
그렇게 말하는 타티아나는 동화 속에서 막 튀어나온 것처럼 보였다.
왠지 현실이 멀어진다.
‘이런 곳에서 살면 나도 마녀가 될 것 같아.’
정령나비까지 빙글빙글 돌며 날아다니니 정말로 동화 속으로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
현관문에 적힌 대로 책상의 밑면을 만져보자 납작하게 종이가 붙어 있었다.
꺼내 보니 양피지로 된 편지였다.
당연히 한글로 적혀 있다.
첫 마디는 ‘안녕하세요, 편의점 총각’이었다.
[안녕하세요, 편의점 총각.나는 당신이 일하는 편의점에 가끔 갔던 할머니.
만날 우울한 얼굴로 소주 한 병을 사 갔는데, 기억할까 모르겠네요.]
아, 누군지 기억하고 있다.
매주 금요일이 되면 저녁 10시 전후로 소주를 사 가는 여성이 있었다.
주름진 얼굴에 웃음이라곤 한 번도 띄워본 적이 없는 것 같은 사람이었다.
설마 그 할머니가 마녀 도로테인가.
하지만 타티아나가 말하는 스승과는 전혀 비슷하지 않다.
춤추고 노래하고, 밤에는 어린 제자와 모닥불 앞에서 마녀 집회를 여는 도로테와는 인상이 연결되지 않았다.
다시 편지의 글자에 시선을 주고, 나는 눈이 동그랗게 되었다.
[당신이 칼에 찔리는 걸 보고 심장 마비를 일으켜 죽어버렸답니다.아, 혹시라도 죄책감이 느껴진다면 그럴 필요 없어요.
당신 탓이 아니니까.
내가 심장 마비를 일으킨 건 내 가족이 죽는 걸 떠올렸기 때문이거든.
내 남편과 딸은 어느 금요일, 집에 침입한 강도가 휘두른 칼에 찔려 죽었죠.]
*
그때는 정말 힘들었다.
지금도 전생의 딸과 남편을 떠올리면 심장을 망치로 두드리는 것처럼 아프다.
그래도 웃으려 노력하는 건 도로테 자신이 환생한 것처럼, 우주 어딘가, 어쩌면 지구 한 구석에서 남편과 딸도 다시 태어나 살아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두 사람이 만일 다른 가족을 생각해 슬퍼한다면 그건 정말 마음 아픈 일이니까, 그 두 사람이 마음 깊은 곳에서 행복하게 웃으며 살기를 바라니까, 그래서 도로테는 웃는다.
남편과 딸이 어딘가에서 자기처럼 웃고 행복하게 살아줬으면 해서 항상 웃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도 예지의 마녀를 만난 이후다.
그 이상한 마녀를 만난 건 도로테가 마흔쯤 되었을 무렵이었다.
그녀는 도로테가 큰 도시에 약을 팔러 가는 길목에 서 있었다.
그날 그곳에 있으면 도로테를 만날 수 있다고 점을 쳐 알았다고 말했다.
그 일을 떠올린 도로테는 다시 종이에 펜촉을 눌렀다.
[만일 당신이 지금 불행하다면 미안, 청년이 이곳에 오게 된 건 내 탓이에요.]몇백 년에 한 번, 한없이 불행한 마녀가 태어난다고 한다.
어떻게 해도, 어떤 선택을 해도 모두 불행한 끝밖에 없다고 들었다.
단순히 인생이 불운하다는 말로 끝나는 게 아니다.
그 운명을 타고난 마녀는 몸과 마음이 말 그대로 조각조각 나 살아도 산 것 같지 않고 죽어가면서도 괴로운, 그런 삶을 산다.
예지의 마녀가 한 말이다.
그게 사실인지는 지금까지도 모르겠다.
다만 예지를 타고 난 마녀는 예외 없이 그 불행한 마녀의 환영을 계속 보게 되고, 어떻게든 구하려고 노력해 왔다고 한다.
환영을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괴롭고 고통스러워, 도저히 그냥 두고 볼 수 없다고.
하지만 언제나 결과는 같았다.
과거 어떤 예지의 마녀도 구할 수 없었다.
이번에는 다를지 모릅니다.
대지의 모든 것이 흔들려요.
대지가 뒤섞이고 강한 힘으로 뒤틀립니다.
정령의 왕이 이 세상에 돌아오려는 거예요.
정령의 왕은 이 세상에서 존재를 지울 때 사랑하는 여성과 영혼을 묶었습니다.
반드시 함께 할 수 있도록.
아마 그 여성이 환생하려는 거겠죠.
그 때문에 정령왕이 이 세상에 돌아오는 겁니다.
그걸 이용하면 이번에야말로 그 불행한 마녀를 구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예지의 마녀는 그렇게 말하며 무릎을 꿇었다.
힘을 빌려주세요.
그렇게 애원하면서.
그녀에 따르면 이 세상 것이 아닌 존재만이 이 세계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
불행한 마녀를 구하려는 노력이 모두 실패한 건 이 세상의 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불행한 마녀를 구하기 위해서는 이곳에 없을 존재가 방패가 되어 곁에 있어야 한다고.
그 당시 도로테는 여전히 불행했다.
그래서 전생에 구하지 못했던 딸을 구원한다는 생각으로 그 일에 동참했다.
정령왕의 환생인 클라우스에게 마녀의 약을 주어 이세계에서 생명을 불러들이는 일을 도왔다.
클라우스는 단순히 아이를 갖지 못하게 하는 약이라고만 알았지만, 실제로는 이세계에서 사람의 영혼을 불러 그 몸에 머물게 하는 주술이다.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나중에 돌이켜보면 도로테가 이곳에 태어난 것도 아마 예지의 마녀가 뭔가 한 탓일 거다.
그걸 원망하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예지의 마녀가 한 말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이 세계든 지구든 어디에서나, 모두 환생해 삶을 되풀이한다.
어떤 삶은 불행하지만, 어떤 삶은 행복할 것이다.
모두 같은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불행한 마녀를 제외하면, 인간은 누구나 행복과 불행을 거듭하고 전혀 다른 생을 살아간다.
그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구원받은 것 같았다.
[미안해요, 편의점 총각.그때는 그 불행한 마녀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어.
당신의 영혼을 불러온 건 내가 당신과 접한 적이 있기 때문이에요.]
남자의 영혼이 필요했다.
아이가 남녀인 부모에게서 태어나는 것처럼, 불행에서 그 마녀를 구하려면 남자와 여자의 영혼이 필요했던 것이다.
도로테와 누군가 한 명의 남자가.
[예지의 마녀는 당신이 행복할 거라고 예언했으니 괜찮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녀가 한 말이 모두 진실은 아닐지도 모르니까.만일 지금 불행하다면 정말 미안해요.
그래도 당신이 이 편지를 보고 있다면 타티아나와 잘 지내고 있기 때문이겠죠.
그 아이를 부탁합니다.]
불행한 마녀 타티아나가 그 운명에서 지켜지기 위해서는 항상 도로테, 혹은 편의점 청년이 곁에 있어야 한다.
우리가 타티아나에게서 멀어지면 운명은 다시 그 아이를 서서히 덮칠 것이다.
그 일을 꼼꼼하게 편지에 쓴 다음, 도로테는 예지의 마녀가 그에게 전해달라고 했던 말을 적었다.
[당신의 걱정은 무용.꽃은 예쁘게 태어난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도로테는 모른다.
하지만 예지의 마녀가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던 걸 떠올려 보면 나쁜 건 아닐 것이다.
편지를 다시 한번 읽어본 뒤, 도로테는 책상 밑의 공간에 편지를 숨겼다.
침대에서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자던 타티아나가 옹알이처럼 뭔가를 중얼거렸다.
귀여운 아이.
귀여운 내 딸.
도로테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창으로 쏟아지는 달빛 속에서 타티아나 이마에 입 맞추었다.
부디 이 아이의 미래가 평온하기를.
행복하기를.
그리고 부디 편의점 청년과 둘이 오래도록 생을 누리기를.
한 번도 보지 못한, 그리고 만나지 못할 이 생의 편의점 총각에게 정령의 축복 있기를.
*
도로테의 편지는 축복의 말로 끝났다.
‘아버지가 정령왕이었구나.’
그렇다면 정령나비나 갑옷기사한테 아버지 말이 쉽게 통하는 것도 당연하다.
다만 이해 가지 않는 건 어머니 일이다.
‘전해지는 이야기에는 정령왕이 사랑한 여자가 굉장히 아름답다고 했는데.’
하지만 도로테 말에 의하면 그건 우리 어머니야?
‘… 인간이 아니라 그런가.’
정령은 얼굴이 아닌 영혼이나 발가락, 손가락이나, 아니면 심장의 모양 같은, 전혀 다른 걸 보고 아름답게 여기는지도 모른다.
정령에게 인간의 미추는 아무 의미도 없는 거지.
인간 세상에 남은 이야기에서도 아름답다는 건 조금 이상하지만 어쨌든 그건 굉장히 오래된 얘기고, 뭐, 어느 정도 각색되었을 것이다.
그나저나 다행이다.
에지의 마녀가 남긴 말대로라면 아마 내 동생은 딸로, 예쁜 아이일 거다.
아버지를 닮은.
… 그렇다면 나도 아버지를 닮을 수 있었다는 말인데.
신은 불공평하다.
하아.
타티아나는 오랜만에 온 게 기뻤는지 아이처럼 들떠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건 스승님과 처음으로 만든 약초예요. 아직 남아있었네… 그리고 이건 상처에 바르는 연고죠. 내가 처음으로 성공한 약이에요. 간단한 것 같아도 마녀의 약을 만드는 건 어렵거든요… 아, 이건 마녀 집회에서 입었던 옷이다….”
타티아나는 쉬지 않고 돌아다니며 작고 초라한 뭔가를 계속 가져와 내게 보였다.
그녀가 어쩌면 비참한 생을 살았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누군가가 심장을 꽉 움켜쥐는 것 같다.
예지의 마녀와 도로테가 나를 불러줘서, 이 귀여운 아내를 만나 내가 지키게 되어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나는 작은 새처럼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타티아나를 꽉 끌어안았다.
“어… 왜 그래요?”
타티아나는 당황하면서도 내 등으로 손을 뻗어 톡톡 두드렸다.
뭐, 내 몸이 너무 커서 실제로는 등이 아니라 옆구리인데, 그건 사소한 일이니까 넘어가자.
“타티아나, 우리 정말 행복하게 살자.”
“물론이죠.”
“….”
기왕 미래를 볼 수 있었다면 우리 아이가 몇 명인지, 아들인지 딸인지, 그런 것도 알려줬으면 좋았을 것이다.
궁금하네.
진짜로 궁금해졌다.
내가 작은 소리로 웃자, 타티아나도 따라 웃는다.
작은 오두막에 웃음이 퍼지면서, 왠지 도로테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두 사람 모두 행복해요. 편의점 총각, 등을 펴고, 웃어!]*
다음 해, 어머니는 아버지를 많이 닮은 아이를 낳았다.
보라색 눈동자의 여자아이였다.
그 몇 달 뒤, 타티아나가 아이를 낳았다.
얼굴부터 눈동자, 손톱, 발톱까지, 정말로 나를 똑 닮은 남자아이였다.
당연히 어머니와도 똑같았다.
어머니 유전자, 정말 무섭다.
세대를 건너뛰어도 잡초처럼 되살아나.
나와 붕어빵처럼 닮은 갓난아기를 보고, 나는 울었다.
너를 위해 운다고 속으로 울부짖으며, 정말 많이 울었어.
그나마 아들인 게 다행이었다.
그리고 이듬해, 성체가 된 렐라가 짝을 만나 알을 낳았다.
장소는 공작가의 정원에 만들어진 렐라 전용의 작은 오두막이다.
렐라의 짝이 생기자마자 정원사들이 만들어 놓았다.
그래, 그제야 알았지만, 놀랍게도 렐라는 암컷이었다.
성격으로 보아 수컷이라고 생각했는데.
자기 알을 자랑하고 싶었는지 품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 우리한테 보이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보온통과 비슷한 마도구를 만들어 오두막에 넣었다.
무사히 알이 부화하면 그건 다 우리 공이다.
불사조 어미는 공작가 부지의 숲에서 살며 가끔 할아버지의 연못에서 마수를 잡아먹는다.
그 녀석을 기르기 위해 할아버지가 연못에 마수를 사다 넣는 형국이다.
그래도 웃는 할아버지는 대인배라고 생각해.
만드라고라는 두 배 정도로 커져, 정원을 돌아다니며 땅에 잠시 묻혀 있는 괴상한 행동을 하고 있다.
타티아나에 따르면 그러다 열매가 맺힌다고 한다.
그게 한 달이 될지, 십 년이 되어 열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뭐가 나올지 몰라 벌써부터 걱정이다.
제발 정령은 아니어야 할 텐데.
모겐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요즘에는 제법 크고 똑똑해져서 나를 쫓아다니며 시중을 들고 있다.
작은 꼬마가 집사 옷을 입고 집사처럼 행동하는 건 조금 웃기고, 많이 귀엽다.
그리고 지금은 타티아나가 둘째 아이를 가졌다.
두 번째는 제발 그녀를 닮아야 할 텐데.
느긋하게 앉아 차를 마시는 타티아나는 이제 그야말로 귀족 부인답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이 뭔가 하면, 우리는 정말 행복하다는 거.
마녀 도로테 씨,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부부는 많이 웃고 정말 떠들썩하게 잘살고 있으니까.
문득 하늘을 보자 마녀의 고깔모자처럼 생긴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