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29)
029 미안해, 그 사람이 우리 엄마다
어머니는 한 대 맞으면 열 대 때리라고 하셨지만, 아직 맞지 않았다.
그러니까 상대가 먼저 움직일 때까지 아주 잠깐만 기다리려고 했어.
마법사 만나는 게 처음이라 궁금하기도 했고.
하지만 이렇게 오래 기다릴 생각은 없었다.
나는 한심한 마음으로 여자를 보았다.
“불의 정령이여, 이 땅에 내려온 신의 분노여, 나의 호소를 받아라. 불길의 힘으로 나를 이롭게 하라. 내게서 불길을 일으키게 허용하라. 내 몸에 불의 검을 드리워 내 뜻대로 조종하게 하라. 그대 불의 정령이여, 내 영혼을 불꽃으로 채워….”
주문이 길다.
여자 손바닥에는 아직 거대한 불은커녕 성냥불조차 켜지지 않았다.
정전기 같은 불빛만 가끔씩 튈 뿐이다.
심지어 주문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안 끝나.
이 여자가 약한 건지 아니면 모든 마법사가 이런 건지 모르지만 싸우다 중간에 이러면 마법사는 모두 몰살될 거다.
싸우는 와중에 주문 끝나기를 기다려주는 놈은 없을 테니까.
혹시 마법사는 싸우는 직업이 아니라 내근직인가.
연구만 한다든가.
어쨌든 내 인내심에 바닥이 왔다.
“아니, 뭔 마법 하나 쓰는데 이렇게 시간이 걸려. 마법 주문 외우다 시간 다 가겠네. 언제 끝나는 거야?”
짜증스러운 마음에 한마디 하자, 여자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이… 이….”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면서 입을 벌렸다 닫았다 하며 뭔가 말하려고 하는데 너무 화가 나서 말이 나오지 않는 모양이다.
“죽여버리겠어.”
여자는 그렇게 한마디 하고 다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불의 정령이여, 이 땅에 내려온 신의 분노여, 나의 호소를 받아라. 불길의 힘으로 나를 이롭게 하라. 내게서 불길을….”
새로 시작하는 거냐.
중간에 한 번 멈추면 다시 외워야 하나 보다.
“하아.”
내가 한숨 쉬자, 여자의 눈이 뱀처럼 옆으로 찢어졌다.
하지만 주문이 끊어지면 또 새로 외워야 한다.
그래서인지 여자는 계속 입을 움직이고 있었다.
끝나지 않아, 이 주문.
어디까지 가야 끝인 거냐.
“됐어. 네가 한 방 칠 때까지 일단은 기다리려고 했지만 더 이상 기다리다가는 늙어 죽겠다.”
내가 도끼를 움직이자, 여자 뒤쪽에 있던 남자들이 새파란 얼굴로 외쳤다.
“기, 기다려주세요. 잠시만!”
“잠깐만! 기, 기다려!”
이 남자들은 아마 호위인 것 같은데, 미안하지만 더 기다려줄 수는 없다.
마법 주문을 외우는 시점에서 이미 나를 향한 공격이 시작됐다고 치자.
내가 도끼를 허공으로 치켜올리자 길드 직원이 새파란 얼굴로 외쳤다.
“라, 라파 씨! 기다리세요. 그분은 영주님, 더스티 백작님의 따님이십니다! 죽이면 안 돼요!”
“….”
그런 건 진작 가르쳐 줬어야지.
그러면 나도 적당한 선에서 끝냈을 텐데.
하지만 어쩌냐.
도끼는 이미 올라갔다.
이대로 그냥 내릴 수는 없어.
어머니는 항상 말씀하셨다.
전사, 칼을 뽑았으면 돌멩이라도 부숴야 한다고.
‘하아.’
어쩔 수 없이 나도 어머니처럼 ‘숲으로 도망쳐 약탈혼’ 행인가.
나는 속으로 한숨 쉬면서 도끼를 아래로 흔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벼락같은 외침 소리가 허공을 울렸다.
“잠깐 기다리시오!”
좋아!
누군지 모르지만 새 목소리가 나왔다.
그렇다면 일단 말을 들어보는 모양새를 만들어도 되겠지.
속으로 안심하면서, 나는 도끼의 방향을 허공에서 틀었다.
도끼는 여자의 코 바로 앞 허공을 가르며 밑으로 떨어졌다.
도끼에 둘렀던 바람이 여자의 전신을 치면서, 커다란 모자가 훌쩍 날아갔다.
모자는 머리에 그냥 얹었던 게 아닌 모양이다.
핀 같은 걸로 세세하게 붙여 놓았는지 모자가 날아가자 머리카락도 함께 붙어 날았다.
“꺄아!”
여자가 두 손으로 머리를 잡으며 뒷걸음질 친다.
마치 모자에 머리가 딸려가는 것처럼 보였다.
잘못하면 모자 때문에 머리가 뽑히겠다.
“….”
이 세상의 여자는 왠지 아슬아슬 위험하게 사는구나.
걸치고 있는 옷과 장신구가 흉기다.
옆에 있던 남자들이 재빨리 잡아준 덕분에 여자는 간신히 목이 부러지거나 넘어지는 걸 면했다.
하지만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자기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힐난만 늘어놓는다.
저 여자를 따라다녀야 하는 남자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생이나 이 세상이나, 먹고사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어쨌든 지금은 여자가 아니라 새로 등장한 목소리다.
귀족을 죽이지 않게 해준 그 사람한테 감사하지 않으면!
물론 겉으로 표현할 수는 없으니 마음으로만.
나는 험악한 얼굴을 만들어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뛰어왔는지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남자가 있었다.
이 남자도 젊다.
그리고 여자와 얼굴이 많이 닮았다.
남자 옆에는 아까 여자의 옆에 있던 호위인지 시종인지가 헐떡거리며 서 있었다.
여자가 나한테 시비를 걸면서 어느 순간 사라졌다 싶더니, 저 남자한테 알리러 갔던 모양이다.
좋았어, 시종인지 호위인지 알 수 없는 분.
너에게 감사한다.
만일 당신이 나한테 죽을 일이 생겨도 한 번은 눈감아줄게.
내가 마음 깊이 감사하는데, 젊은 남자가 숨을 정돈하면서 가까이 다가왔다.
“오라버니!”
여자의 얼굴이 확 밝아진다.
닮았다고 생각할 때부터 알았지만, 역시 오빠였던 모양이다.
여자를 죽이는 게 중단되어 잘됐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단순히 대상만 바뀐 건지도 모르겠다.
여자 대신 남자를 죽이는 걸로.
‘그렇게 되면 결론은 똑같아지는데. 어머니처럼 숲으로 들어가 약탈혼이잖아.’
하아.
우울하다.
아주 조금 떠올랐던 기분이 가라앉으면서 얼굴이 저절로 굳었다.
빌어먹을.
모두 다 저 여자 때문이야.
‘어차피 숲에 틀어박히게 된다면.’
나는 뛰어가는 여자와 나를 향해 똑바로 걷는 남자를 보며 도끼 쥔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빌어먹을, 다 죽여주겠어!
마음이 울면서 외친다.
여자가 오빠에게 달려가 팔에 매달렸다.
“오라버니, 들어보세요. 저 야만인이…”
여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힐끔 여자를 쳐다보는 남자의 표정이 엄격해졌다.
“리라, 조용히!”
“오라버니…?”
“너와는 나중에 얘기하겠다. 지금은 물러나 있어.”
“….”
남자는 동생에게서 시선을 떼고 나를 똑바로 보았다.
그대로 가까이 다가와 정중하게 인사한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나는 더스티 백작의 아들 파울입니다. 이번에 토벌대를 이끄는 책임자로 임명됐습니다.”
다들 야만인이라고 부르는 나한테 너무 정중하다.
꺼림칙한 생각이 들어 경계하면서, 나도 고개를 숙였다.
“나는 에노르토스 대자치령의 전사, 라파라고 합니다.”
파울의 얼굴에 놀란 표정이 떠올랐다.
“그 억양은…. 라파 씨는… 혹시 귀족에게서 우리나라 말을 배웠습니까? 귀족의 말투를 쓰시는군요.”
“….”
아버지에게 배웠으니 내 억양은 귀족의 것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숲에서 나온 뒤 사람들의 말투를 흉내 냈기 때문에 크게 티가 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머니 일이 들통날까 봐 나름 필사적이었다.
신경을 많이 썼으니, 아주 조금은 억양이 이상하다 싶었을지 몰라도 그냥 넘어갈 만한 수준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길드에서나 리라라는 여자도 눈치채지 못한 걸 보면 나는 그럭저럭 잘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남자의 귀가 예민한 건가.’
내가 묵묵히 있자, 남자는 더 이상 그 부분을 건드리지 않고 말을 옮겼다.
“조금 아까 오면서 봤습니다만, 라파 씨는 바람 마법을 사용하는 게 아닙니까?”
남자가 그 말을 하는 순간, 주위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크게 놀라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바람 마법이라고?”
“하지만 야만인이잖아. 야만족에 마법사가 있을 리가.”
“그렇지.”
“그냥 도끼질이 너무 세서 바람이 일었던 거 아닌가.”
사람들의 반응이 이상하다.
“….”
원래부터 바람 마법을 쓰는 건 비밀이 아니었다.
사람들 앞에서도 나는 거리낌 없이 사용해왔다.
아무도 그걸로 놀라거나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특별하다는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과 이 남자가 일부러 묻는 걸 보고 문득 깨달았다.
혹시 사람들은 내가 바람 마법을 사용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던 게 아닌가 하고.
에노르토스 사람은 혹시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거 아니야?
어쩌면 리라라는 여자처럼 긴 주문을 외웠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가 떠날 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법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던가, 몰래 사용하라든가, 사람들 앞에서는 마법 주문을 외우라든가.
“….”
하지만 그렇구나.
부모님은 어머니가 아버지의 부인들을 모조리 죽이고 약탈혼 했다는 사실도 알려주지 않았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어머니 원수가 나타날 거라는 사실도 전혀 귀띔해 주지 않았다.
어쩌면 마법에 대한 것에도 뭔가 금기가 있었는데 말하지 않은 걸 수 있다.
어머니, 아버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너무 강하게 키우시는 거 아닙니까.
설마 에노르토스 사람이 마법 쓰면 마녀사냥 당한다든가, 그런 건 아니겠지.
‘뭐라고 대답하지.’
내가 아무 말 못 하고 망설이는데, 리라가 뾰족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오라버니! 지금 무슨 말씀 하시는 거예요? 저따위 야만인이 바람 마법을 사용할 리 없잖….”
그 순간이었다.
파울이 몸을 돌리더니 힘껏 동생의 뺨을 쳤다.
리라가 반쯤 넘어지면서 놀란 듯 남자를 쳐다보았다.
너무 놀라서 아픈 것도 못 느낀 것 같다.
“오, 오라버니.”
“조용히 하라고 했다. 나중에 얘기한다고. 아버지 말씀을 어기고 모험가 일에 끼어드는 것도 모자라 마법으로 싸움까지….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는 알고 있는 거냐? 마의숲과 가까운 우리 영지에서 길드와의 사이가 험악해지면 어떻게 되는지, 여기 오기 전에 내가 분명히 이야기했을 것이다.”
“하, 하지만.”
“조용!”
리라가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흘러넘친다.
화장품이 눈물에 섞여 흘러내리면서 얼굴이 지저분한 색으로 번져갔다.
“….”
나도 조금 놀랐어.
설마 그 상황에서 갑자기 때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파울은 우는 동생을 무시하고 몸을 돌리더니, 나를 향해 고개를 약간 낮췄다.
얼굴 자체는 거의 수직으로 들고 있기 때문에 사과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지만, 또 완전히 아니라고 볼 수도 없는 미묘한 각도였다.
파울이 은은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라파 씨, 동생의 무례는 내가 충분히 주의를 주겠습니다.”
그러니 넘어가달라는 말이겠지.
이게 아버지에게 말로만 들었던 귀족의 은근한 사과로구나.
나는 힐끔 리라를 보았다.
그녀는 나 때문에 오빠에게 맞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죽일 듯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네가 맞은 건 네 행동 때문이다.
조금 전에 파울이 한 말을 들어보면 그래.
어쨌든 파울 덕분에 살았다.
나도 귀족을 죽여서 문제를 만들고 싶지는 않아.
옆에 있던 길드 직원이 끼어들었다.
“라파 씨, 파울 님도 그렇게 말씀하시고, 여기에서는 그만 화를 푸는 게 어떠세요?”
잘 말해줬다.
나는 그 말에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조금 지나친 감이 있었습니다. 이번 일은 물에 흘려보내는 게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라파 씨.”
파울이 빙그레 웃는다.
그러면서 다시 이야기를 아까로 되돌렸다.
“조금 전에는 라파 씨가 바람 마법을 사용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에노르토스 출신의 마법사라니, 처음 봤어요.”
너 때문에 나도 놀랐다.
바람 마법을 쓰면 마녀사냥 당하는 줄 알고 정말 흠칫했잖아.
파울이 은근히 내 눈치를 보며 말을 이었다.
“드래곤 토벌에 마법사가 있으면 정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하지만 신청서에도 마법사라는 말은 적혀 있지 않던데….”
파울의 말에 대답한 것은 길드 직원이었다.
“죄송합니다. 신청서에 오류가 있었나 보네요. 그 문제는 제가 확인한 뒤에 고쳐놓겠습니다. 그래도 괜찮을까요?”
파울이 시선은 나를 향한 채 대답했다.
“물론이요.”
“감사합니다, 파울 님.”
길드 직원이 깊이 고개를 숙인다.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파울은 울면서 나를 노려보는 동생을 데리고 그 자리를 떠났다.
“자, 라파 씨, 우리는 수속도 해야 하고, 앞으로의 일도 의논해야 하니 서두릅시다.”
길드 직원이 내 등을 은근슬쩍 누르며 가자고 재촉한다.
내가 걸음을 옮기자, 길드 직원은 허둥지둥 아무도 없는 장소로 나를 데려가더니 엄청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라파 씨! 방금 그건 정말로 바람 마법이었습니까? 파울 씨 말이 정말인가요?”
어이, 침 튀긴다.
내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막으면서 고개를 끄덕이자, 길드 직원의 얼굴이 환해졌다.
“좋았어요. 그러면 금액이 올라갑니다. 이번 토벌에는 마법사가 없다고 들었으니 특별 보수도 받아낼 수 있을 거예요. 마침 접수 전이라 잘 됐습니다.”
길드 직원은 마음이 바쁜 것 같다.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중얼거리다, 문득 나를 보았다.
“하지만… 정말로 라파 씨는 특이한 분이군요. 공용어에 우리나라 말도 능숙하고, 흥분하는 성격도 아닌 데다 마법까지…. 진짜 에노르토스 사람 같지 않아요.”
뭐, 그렇지.
실제로 아니니까.
내가 어깨를 움찔하자, 길드 직원은 뭐가 그리 기쁜지 하하 웃으며 앞장섰다.
“라파 씨가 그런 사람이라 정말 다행입니다. 소문의 헬가 같았으면… 와아,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이 근처 다른 도시는 헬가가 지나가는 바람에 전쟁이라도 벌어진 것처럼 처참했었다고 들었어요.”
길드 직원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
미안해, 그 사람이 우리 엄마다.
하아.
나도 모르게 작은 한숨이 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