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3)
003 23살, 집을 떠나다
내가 죽인 거대곰 새끼의 머리와 털가죽은 집안의 벽에 장식되었다.
다만, 거기에 이빨은 없다.
내가 아파 누워있는 동안, 어머니가 일일이 곰 이빨을 빼내 깨끗하게 닦은 뒤 구멍을 내 목걸이로 만들었다.
어미곰한테 다친 상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심했던 것 같다.
나는 어느 정도 몸을 추스를 수 있게 되었지만, 한동안은 침대에서 내려가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지지 않았다.
겨우 침대에서 나올 수 있게 된 날, 어머니가 곰 이빨 목걸이를 들고 내게 다가왔다.
그 목걸이는 전사의 증거다.
전사만이 목에 걸 자격이 있었다.
두근두근 심장이 뛰었다.
드디어… 드디어 나도….
홀린 것처럼 목걸이를 바라보는데, 어머니가 내 머리에 손을 얹었다.
“라파, 이것은 네가 혼자서 곰을 죽였다는 증명이다. 원래대로라면 이걸 증거로 삼아 너를 에노르토스 대자치령의 전사로 인정하겠지만.”
어머니가 말을 끊었다.
어… 왠지 이야기가 이상하게 흘러간다.
목걸이에서 눈을 떼고 올려다보자, 어머니가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너는 내가 돕지 않았다면 그대로 죽었을 거다. 그걸 알면서 너를 한 명의 전사로 인정할 수 없어. 전사는 온전히 혼자만의 힘으로 곰을 죽이고 살아남는 자에게만 붙는 호칭이다.”
“엄마.”
순식간에 눈물이 차올랐다.
어른인 나는 속으로 아, 뭐 그렇겠지, 생각했지만, 내 속에 있는 아이의 부분이 어머니 말에 수긍하지 못했다.
억울하다.
어미곰이 나타나지만 않았다면 분명.
내 생각을 알아차렸는지 어머니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제대로 된 전사라면 그런 상황도 미리 짐작하고 대처할 수 있었을 거다. 새끼 근처에는 어미가 있는 법이니까. 그런 것만 봐도 너는 아직 전사로 인정되기에는 일러.”
하지만 그 곰은 다 큰 것처럼 보였다.
지구인인 내 눈에도 그랬지만, 숲에서 살아온 라파의 눈으로 봐도 역시 그 곰은 큰 곰이었다.
“… 어… 엄마도 내가 전사라고 그랬는데….”
내가 울먹이며 말하자, 어머니가 곤란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뭐, 말하지 않아도 알겠다.
아들이 죽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원하는 말을 해줬던 거겠지.
지금까지 가만히 옆에서 지켜보던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라파, 아예 인정하지 않겠다는 소리가 아니야. 네 엄마가 목걸이를 만들어 둔 것만 봐도 알 수 있잖니.”
“….”
눈물을 뚝뚝 흘리며 어머니를 보자, 당황한 것처럼 어머니가 얼른 입을 열었다.
“아직 완전한 전사로 인정할 수는 없어. 그건 내 양심에 어긋나는 일이다. 하지만 너에게는 자격이 있지. 그러니 우선 이 목걸이를 주마. 그리고 네가 충분히 한 사람의 전사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그때 나 헬가의 이름으로 너를 인정할 거야.”
“… 전사 후보?”
내 말에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전에도 이런 경우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야. 너무 어려서 경험이 없는 경우에는 곰을 죽여도 훗날 전사로 인정한 경우가 드물게 있었다.”
내가 눈물을 쓱쓱 닦자, 어머니가 안심한 얼굴로 목걸이를 내 목에 걸었다.
목걸이는 내가 어른이 되었을 때를 생각해서인지 길고 느슨하게 만들어졌다.
내가 걸자 허리까지 목걸이가 늘어졌다.
“너무 큰데.”
내 말에 어머니가 무릎을 접어 쪼그려 앉았다.
내 얼굴을 보고 씨익 웃는다.
“너는 나보다 크게 자랄 거다. 그러니까 이렇게 길게 하지 않으면 나중엔 손목에 감아야 할 거야. 그건 너도 싫겠지.”
“… 네.”
“라파, 오늘부터 내가 널 진정한 전사로 만들어주마.”
어머니는 내가 곰한테 죽을 뻔한 일로 크게 놀랐던 것 같다.
그날부터 나는 이전보다 훨씬 더 엄격한 훈련을 받게 되었다.
절대로 곰한테 죽지 않도록.
어머니의 격투 훈련은 학교나 체육관 같은 곳에서 배우는 것과는 다르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철저한 실전이었다.
어머니는 죽일 각오로 나한테 도끼와 주먹을 던지고, 나는 곰한테 당하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두들겨 맞았다.
자그마치 23살이 될 때까지.
“….”
역시, 아들이 곰한테 죽을 뻔했던 경험은 어머니를 많이 놀라게 한 모양이다.
그러니까 내 나이가 23이 되도록 강하게 만들겠다며 훈련하고 있는 거겠지.
절대로 절대로 곰한테는 죽지 말라고.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나는 눈앞까지 날아오는 도끼를 보고 황급히 몸을 뒤로 물렸다.
붕, 소리를 내며 날아온 도끼가 머리카락 한 올 차이로 허공을 긁으며 떨어졌다.
“라파! 싸움 중에 딴생각을 하다니, 죽고 싶은 거냐!”
어머니의 천둥 같은 목소리가 허공을 울린다.
귀가 멍멍해졌다.
나는 대꾸하는 대신 빙그르르 몸을 돌리며, 그 반동을 이용해 어머니를 공격했다.
쇠도끼가 어머니의 도끼를 두들긴다.
어머니가 어림없다는 듯 내 공격을 막으며 앞으로 나왔다.
‘좋았어.’
노리던 것이 왔다.
나는 히죽 웃으며 도끼를 뒤집었다.
도끼날 대신 두꺼운 부분이 어머니의 무기를 튕긴다.
어머니가 그걸 막는 순간, 나는 벼락같이 발을 내질렀다.
먹혔다!
어머니가 배에 충격을 받고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섰다.
‘좋아, 이 기세를 몰아서.’
내가 다시 도끼로 공격하려는 순간이었다.
어머니가 동작을 멈춘 채 한 손을 들었다.
“!”
허공으로 붕 떠오른 도끼를 황급히 옆으로 비튼다.
내 도끼는 어머니 머리에서 주먹 하나만큼 떨어진 곳에서 방향을 틀었다.
놀랐다.
하마터면 어머니를 죽일 뻔했어.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어머니! 갑자기 뭐예요. 위험하잖아요.”
나도 모르게 큰 소리가 튀어나왔다.
평상시였다면 이런 말은 하지 못한다.
그랬다가는 어머니 주먹에 뒤지고 말 거다.
어릴 때는 잘 몰랐지만, 내 어머니는 입보다 주먹으로 말하는 사람이었다.
이건 내 추측이지만, 나 어릴 때는 혹시라도 손대면 아들이 죽어버릴까 봐 어머니도 굉장히 조심했던 게 아닐까.
어릴 때 훈련은 했지만 맞은 기억이 없는 걸 보면 아마 그럴 것이다.
지금은?
후후.
주먹이 얼마나 말을 잘하는지 몸으로 알고 있지.
어머니가 가만히 나를 쳐다본다.
“….”
왜 그러지.
뭔가 이상하다.
“어… 어머니, 혹시 아까 어디 다쳤어요?”
“아니.”
“….”
그런데 왜?
어머니는 기쁜 듯 우울한 듯, 종잡을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내가 졌다.”
“….”
“라파, 네가 이겼어.”
“….”
지금 내가 들은 말이 진짜인가.
어머니와 대련하면서 가끔은 나도 공격에 성공하는 때가 있다.
그런 기회는 굉장히 드물지만, 이번처럼 제대로 공격이 들어가는 경우가 이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졌다고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내가 제대로 넣었다고 생각한 공격이 나중에 보니 어머니의 미끼였다고 알아차리는 경우가 여러 번 있었을 뿐이다.
그 때문에 내가 제대로 어머니를 공격한 건 과거를 통틀어 한두 번 정도뿐이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자신이 졌다고 인정해?
이거 혹시 함정인가.
아니면 어머니 닮은 다른 사람?
나도 모르게 주변을 살핀다.
기가 막힌 듯 어머니가 호탕하게 웃으며 가까이 다가왔다.
“라파, 너의 다음 공격을 아마 나는 받아치지 못했을 거야. 네가 이긴 거다.”
어머니는 나를 한 번 꽉 안았다.
어릴 때는 태산처럼 높게만 보이던 어머니가 이제는 나보다 머리 하나 작다.
“벌써 몇 년 전부터 그런 기미는 있었어. 나는 그걸 교묘한 속임수로 어떻게든 막아내며 승부를 이어왔다. 하지만 이제 무리야. 너는 나보다 강해졌다, 라파.”
어머니는 그렇게 말한 뒤 정색했다.
“나 헬가는 그대 라파를 에노르토스 대자치령의 전사로 인정한다. 그대 라파, 자랑스러운 에노르토스의 전사여. 대지의 여신이 그대와 함께하기를.”
“….”
청중 한 명도 없이 그저 단둘만의 짧은 대화.
전사로 인정받기 전과 그 후의 나는 아무런 변화도 없다.
그저 누군가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한마디 말에 불과할 뿐이다.
하지만 이 엄숙한 한마디를 나는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전사로 인정받을 때까지 14년이나 걸릴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지만.
“….”
진짜야.
설마, 어머니를 이겨야만 인정해 줄 거라고는 정말로 생각하지 않았다.
어머니, 원래 이런 건 아니죠? 원망할 거야.
하지만 어머니의 마음도 왠지 모르게 알 수 있었다.
그만큼 나를 걱정했다는 거겠지.
전사로 인정되면 집을 떠나 스스로의 삶을 찾아가게 된다.
그게 걱정되어 어머니는 자신이 속임수라고 말한 기술까지 동원하며 이날을 게속해서 미뤄온 걸 거다.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나는 고개를 약간 돌렸다.
그래도 너무 길었어요, 엄마.
“네가 자랑스럽구나, 라파.”
어머니는 그렇게 말한 뒤 내 등을 강하게 두드렸다.
어머니의 눈에도 습기가 어려 있었다.
그날 저녁은 며칠 전에 잡은 멧돼지를 산에 자생하는 허브와 함께 구워 먹었다.
“많이 먹어라, 라파. 전사는 몸이 재산이야.”
어머니가 두툼한 고기를 내 접시에 놓는다.
아버지는 그 모습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십여 년이 훌쩍 넘었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아름답다.
“라파, 내가 가르친 것들은 기억하고 있니?”
아버지 질문에 나는 자세를 바로 했다.
아버지는 아마 귀족 출신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내가 어릴 때, 앉고 서고 식기를 사용하거나 말하는 단어 하나하나에까지 세심하게 신경 써 가르쳤다.
전사로서 살면 전혀 필요 없는 것들인데 왜 그런 걸 가르친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머니가 그랬듯이 아버지도 가르침에는 매우 엄격했다.
한창 배울 때는 아버지가 바라는 동작이 나올 때까지 몇백 번 같은 행동을 반복한 적도 있었다.
“예, 아버지. 몸에 익히고 있습니다.”
“그래. 아는 것은 힘이 된다. 하지만 그걸 드러내지 말아야 할 때는 절대로 몸에 내놓지 마라.”
“예.”
아버지와 어머니, 양쪽의 모습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나는 귀족처럼 행동할 수도, 난폭한 전사처럼 보일 수도 있다.
뭐, 평상시에는 어머니 모습 그대로지만.
아버지가 문득 손가락을 뻗어 내 머리카락을 만졌다.
아버지의 아름다운 외모는 전혀 닮지 않았지만, 굳이 말하자면 불행히도 나는 어머니를 빼닮았지만, 내 눈과 머리색만큼은 아버지와 똑같다.
그것이 아버지는 만족스러운 것 같다.
아버지는 내 백금색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부드럽게 웃었다.
“네가 어릴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다 컸구나.”
내가 다 큰 건 벌써 몇 년 전의 일이다.
이 세계에서는 열다섯 살이 되면 성인이라고 하니까.
이미 오래전에 나는 전사로 인정받고 이 집을 떠나야 했다.
“라파, 바깥세상에 나가거든, 내가 이 숲에서 사는 의미를 잘 생각해 보거라. 너를 이곳에서 기른 이유가 있어.”
“….”
무슨 뜻인지 몰라 어머니를 살짝 쳐다보았다.
하지만 어머니의 표정은 무뚝뚝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게 과거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는다.
그런 화제가 나올 것 같으면 두 사람 모두 입을 다물었다.
나는 두꺼운 고기를 대강 씹어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버지.”
하지만 의미를 생각해 봤자가 아닐까.
어머니 아버지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모르는데 생각한들 괜찮은 게 나올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나는 그런 생각을 고깃덩어리와 함께 삼켜버렸다.
아버지의 말에는 반대하거나 뭔가 토 달지 않는 것이 좋다.
아버지의 말은 어머니가 절대적으로 떠받드는 명령 같은 것이다.
아버지가 뭔가 말하면, 어머니는 아무 이의 없이 거기에 따랐다.
덩달아 나도 그렇다.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것이 그런 거니까.
그것이 어릴 시절부터 계속해서 바뀌지 않는 우리 집의 법이다.
다음 날 새벽이 되자 나는 도끼와 짐을 짊어지고 집에서 나왔다.
끈이 달린 큼직한 자루 안에는 말린 고기와 부싯돌 세트, 고기를 해체할 때 사용하는 칼과 냄비, 기름, 모포 등 여행에 필요한 물건이 들어 있었다.
사방은 아직 캄캄하지만 먼 곳에서는 하늘의 먹빛이 엷어지고 있다.
금세 해가 뜰 것이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집에서 약간 떨어진 곳까지 배웅 나왔다.
“이제 들어가세요. 아버지는 너무 멀리 나오면 위험해요.”
아버지는 싸움은커녕 등 뒤에서 늑대가 으르렁거리며 다가와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람이다.
물론 어머니가 지키겠지만, 숲에서는 사방이 모두 위험투성이라 역시 걱정이었다.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못하면 네 어머니를 힘들게 하겠구나. 나는 이만 돌아갈 테니… 라파, 조심해라. 아무도 믿지 마. 진실되게 보이는 사람일수록 웃으면서 거짓말을 하는 법이다.”
“네, 아버지.”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입을 꾹 다물고 가만히 나를 보고만 있다.
아버지를 위해 들고 있는 횃불이 바람에 흔들리면서 춤을 추자 어머니 얼굴이 우는 것처럼 일그러졌다.
“아버지 어머니도 몸 조심하세요.”
나는 그렇게 말한 뒤 몸을 돌렸다.
이제 그만 돌아가겠다고 말했으면서, 어머니와 아버지는 여전히 내 등을 보고 있었다.
시선이 느껴졌다.
왠지 울음이 나올 것 같아서,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아주 멀리 떨어져, 이제는 집이 거의 보이지 않을 거리에 이르러 나는 겨우 뒤돌아보았다.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이 작은 점처럼 작게 보였다.
두 분은 여전히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채, 이제는 점처럼 작아진 내 모습을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