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34)
034 바람아 불어라
드래곤이 있는 장소는 작은 연못이 있는 곳이다.
드래곤 수컷이 나타나면 모두 그곳을 향해 날아가, 산지기가 장소를 알고 있었다.
산지기는 암컷이 그곳에 자리를 잡은 게 아닌가 추측했다.
드래곤이 연못 근처에 자리 잡자, 원래 그곳을 세력권으로 삼던 짐승들은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드래곤에게 밀려난 짐승이 다른 영역에 접근하면 그곳을 장악하고 있는 놈과 싸우게 된다.
필연적으로 다치는 놈이 생기고, 상처 입은 탓에 먹이를 구하기 어려워진 짐승은 손쉽게 잡을 수 있는 사람에게 시선을 돌리게 마련이었다.
그 때문에 한동안은 산에 익숙한 산지기조차 입산하는 게 위험했다고 한다.
산기슭까지 내려와 마을을 습격하는 놈도 있었기 때문에 모두가 공포 속에서 살았다고 들었다.
우리가 도착하자 마을 사람들이 매우 기뻐하던데 그런 이유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고마워서였는지 아니면 드래곤을 확실하게 처리하길 바라선지, 산지기 혼자 안내할 예정이었던 산길을 마을 남자들이 여러 명 동행했다.
모험가도 산에 오르는 일은 제법 익숙하지만, 그 지역 사람이 함께해 주면 큰 도움이 된다.
지도나 설명을 듣는 것만으로 단시간에 지형을 파악하기는 어려우니까.
마을 남자들은 조금 어려운 지형으로 향하는 조에 한두 명씩 붙어 갔다.
나는 숲에 익숙하고, 9인파티도 그렇다고 했기 때문에 우리 조에는 마을 남자가 오지 않았다.
조용한 가운데 가끔 새소리, 벌레 소리가 들려왔다.
혹시라도 렐라 소리가 들리는지 귀를 기울였지만, 그 녀석과 비슷한 새소리는 없었다.
그 녀석은 지금쯤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 건지.
생각하다 보니 한숨이 나온다.
9인파티는 여전히 내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바스락바스락 숲에 깔린 나뭇잎 밟는 소리가 조용히 내 뒤를 쫓아왔다.
문득 발소리가 조금 이상한 것 같아 고개를 돌리자, 9명이 동시에 걸음을 멈췄다.
“놀랐습니다.”
9인파티 중 한 명이 빙그레 웃으며 말한다.
아니, 내가 놀랐어.
넌 왜 그렇게 나한테 바짝 붙어오니?
9명 중 한 명이 유난히 나한테 붙어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바로 등 뒤에 서 있었던 건 아니지만, 9인파티의 다른 사람보다는 훨씬 가깝다.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건 원래 들리던 것보다 발소리 숫자가 적어졌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의 발소리는 조금 전만 해도 보통이었는데, 방금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이렇게 가까이 다가왔다고는 생각 못 했어.
‘혹시 닌자인가.’
아니, 그럴 리는 없겠지.
여긴 동양이 아니라 서양 기반의 세계다.
닌자 같은 건 없어.
이 남자 생긴 것도 완전 서양인이고, 닌자라고 생각할 만한 구석이 없었다.
내가 가만히 쳐다보자, 나한테 가깝게 서 있던 남자가 미소를 지었다.
“왜 그러십니까?”
“….”
나는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남자를 보았다.
그리고 그 뒤에 있는 9인파티를 한 명씩 쳐다본다.
남자들의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조금 떠올랐다.
내가 바라보자 가만히 있기가 어려웠는지 남자들이 몸을 조금씩 움직인다.
딴청 하는 것처럼 어색하게 바닥을 바라보는 사람이 세 명.
몇 사람은 자신들에게는 거리낄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만들어 붙인 듯한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하니까 오히려 엄청나게 수상해 보인다.
‘이놈들은 검정인가?’
나는 마음속으로 질문했다.
어머니가 대답하신다.
[아니다, 라파야. 이들은 아직 회색일 뿐, 검정이 되지 못했다.]어머니의 색깔론에는 확실한 기준이 있었다.
나를 죽이려는 자인가, 아닌가.
이 사람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날 죽이려 할지 모른다는 점 때문이 아니라, 이렇게 살금살금 닌자처럼 움직이는 게 나와는 맞지 않았다.
내 어머니가 최강이라고 말들은 하지만, 생각해 보면 어머니도 발소리를 죽이는 기술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어머니는 몰래 다가가 습격하기보다는 대놓고 달려가 죽이는 스타일이다.
어머니에게 배운 나도 그렇다.
바람 마법이 있기 때문에 덩치에 비하면 소리가 별로 없는 편이지만, 그래도 몰래 숨어서 습격하는 건 내 성격에 잘 맞지 않았다.
그래서 이놈들은 왠지 싫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짐승을 사냥하기 위해 기척을 숨기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과 이것은 다르지.
게다가 이 경우에는 내가 짐승 역할인 것 같으니까.
누가 그걸 좋아하겠어.
죽이고 싶으면 그냥 “죽어라! 이 악마!” 소리치면서 달려오란 말이다.
“….”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싹둑싹둑 목을 잘라버릴까 싶다.
하지만 규칙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다.
마음 내키는 대로 사람을 죽여대면 그건 그냥 난폭한 야만인 쾌락 살인자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린 뒤 입을 열었다.
“소리 없이 너무 가까이 오지 마세요. 실수로 죽여버릴 수도 있습니다.”
“… 그건… 네… 알겠습니다.”
남자는 웃는 건지 마는 건지 모를 얼굴로 말한 뒤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경고는 했다.
나는 빙긋 웃어 보인 뒤 몸을 돌렸다.
아직도 우리가 목표로 하는 곳까지는 조금 더 가야 한다.
어쩌면 내 뒤에 바짝 다가오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남자는 한 번도 가까이 오지 않았다.
드래곤이 있는 연못으로 가까이 가면서 나뭇잎 사이로 으스스한 소리가 울려왔다.
목구멍 안에서 으르릉거리는 듯한 소리인데 은근히 크다.
‘수컷끼리 싸우기 직전인가.’
딱 좋은 시간에 온 것 같다.
싸우는 중이라면 우리가 접근하는 건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나와 9인파티의 남자들은 저마다 팔에 그물을 감아 떨어지지 않게 잡은 뒤 조용히 소리가 울리는 곳으로 향했다.
가까이 가자 나뭇가지 사이로 연못이 보였다.
연못 주변은 제법 넓었다.
커다랗고 작은 바위가 몇 개 있고, 연못 주변에는 풀이 나 있다.
드래곤이 날기 위해서는 제법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새가 날개를 펼치면 몸뚱이의 몇 배가 되는 것처럼, 드래곤도 날개가 몸의 몇 배라고 들었다.
“….”
나는 작게 숨을 들이마셨다.
연못과 내가 있는 자리의 중간쯤, 두 마리의 드래곤이 서로를 노려보고 서 있다.
위협하는 것처럼 두 마리 모두 날개가 반쯤 펴져 펼쳐져 있었다.
‘이게 드래곤.’
크기는 이야기로 들었던 그대로지만, 상상했던 것과는 박력이 전혀 다르다.
숲에서 살 때 나를 상처 입혔던 거대곰?
그딴 건 드래곤에 비하면 귀여운 인형이다.
두꺼운 가죽과 파충류 특유의 눈동자, 머리에 장식처럼 솟은 뿔, 공룡의 것처럼 투박하고 뾰족한 날개.
이게 바로 중세, 아니, 판타지지.
‘어머니는 이런 놈과 싸웠던 건가.’
조금 원망스럽다.
나도 이런 걸 잡아보고 싶었어.
곰 대신 드래곤 이빨로 목걸이를 만들었다면 더 멋졌을 거다.
한데 어머니가 오는 족족 잡아 죽이는 바람에 결국 어떤 드래곤도 우리 집 근처에는 오지 않게 되었다.
드래곤 사이에 소문이 돌았던가, 아니면 드래곤 피 냄새가 진동해서 모두 우리 집만 피했던 거겠지.
나는 작게 한숨 쉬었다.
여기 오기 전, 몇 번이나 들었던 당부를 떠올린다.
“드래곤의 가죽이 제일 값나가는 거야. 그건 고급 갑옷의 재료가 되지.”
“가죽이 멋지고 예쁜 건 귀족님들용으로 뭔가 만들기도 한다더군.”
“어차피 공격해도 창이 잘 들어가지도 않아. 그러니 배를 공격하는 걸세. 거기가 제일 부드럽거든.”
“배야. 절대로 배를 찔러야 해.”
“도끼든 바람 마법이든, 절대로 가죽은 안 되네. 알겠나? 배야!”
“배도 팔면 돈이 되지만, 그래도 가장 가격이 낮은 부위지. 그러니까 도끼로 찍을 때는 배로 부탁하네. 그리고 가급적 상처가 적게 해주게.”
“배 쪽의 가죽도 팔 수 있지. 부탁하네, 막내.”
“우리 딸이 내년에 혼인하네. 부탁함세.”
“우리 어머니가….”
“우리 아버지가….”
“우리 할머니가….”
대머리와 늙은 대머리, 애꾸, 이름을 모르는 다른 길드의 모험가까지 나한테 고개를 숙이며 부탁했다.
모두 처음에는 웃으면서 어차피 가죽은 상처도 잘 나지 않고 공격해도 찢어지지 않으니 뭐니 말하더니, 마지막에는 핏발 선 눈으로 바람이든 뭐든 절대로 배를 공격하라고 부탁하는 거야.
내가 보인 바람 마법의 위력이 어쩐지 위험해 보였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어머니처럼 아무 생각 없이 드래곤과 싸울 수는 없는 거다, 나는.
싸울 때는 굳이 배를 찢어야 해.
도끼로 배를 찍는 거야.
목이 아니라.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게 더 어려운 거 아닌가?
뒤집어야 한다는 말이잖아.
게다가 배조차 가급적 상처 없게 해달래.
난이도 장난 아니네.
‘하아.’
요 며칠 동안 사람들과 많이 친해졌고, 때로 야만인이라며 이유 없이 싫어하는 놈이 있으면 내가 나서기 전에 우리 길드의 다른 사람들이 먼저 나섰다.
왜 우리 막내 구박하느냐고.
기왕이면 그 사람들이 한몫 잡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
나도 이걸로 돈 벌어서 좋은 숙소 가고 싶고.
게다가 어차피 내가 대부분 갖는 거다.
“….”
까짓것 해보자구.
내가 생각하는 동안, 수컷들은 드디어 본격적인 싸움에 들어갈 모양이다.
두 놈의 목구멍에서 으르릉거리는 소리가 조금씩 높아졌다.
두 마리의 꼬리 끄트머리가 허공으로 약간 들린다.
놈들은 상대방을 보면서 원을 그리는 것처럼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너머로 드래곤이 두 마리 더 보였다.
한 마리는 연못 바로 옆에 있는 조금 작은 개체고, 다른 한 마리는 더 멀리 있었다.
그놈을 향해 다가가는 모험가들의 모습이 나무 사이로 보인다.
이쪽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아마 다른 방향에서도 모험가들이 드래곤을 향해 다가가고 있을 거다.
‘좋아, 이제 슬슬….’
그렇게 생각하며 손에 걸친 그물을 조금 풀었을 때였다.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9인파티가 움직였다.
뭔가가 내 등을 향해 날아온다.
‘아! 검정이다!’
직감하는 순간, 나는 몸을 돌리며 허공에 도끼를 그었다.
도끼날이 딱딱한 창을 자른다.
드래곤을 찌르려고 준비한 긴 창이 나를 향해 들어오고 있었다.
뚝 잘린 창을 들고, 남자가 얼이 빠져 나를 나를 보았다.
설마 그 순간에 내가 몸을 돌려 막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
놀라게 해서 미안하지만, 어머니한테 맞으면서 배운 거다.
조금만 정신 줄 놓으면 죽을, 그런 실전 상황에서 배웠어.
네놈처럼 서툰 공격은 눈 감고 귀 막아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말 정말 미안하지만 너 서툴러.
그 실력으로 암살해서 먹고살 생각이었다면, 돌아가서 엄마 젖부터 먹고 다시 와라.
아니, 그건 힘들겠구나.
“이제 죽을 테니까.”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놈의 머리통을 날려버린다.
그러자 이번에는 옆에서 다시 공격이 들어왔다.
채찍이다.
한 놈이 허리에 혁대처럼 감고 있는 게 묘하게 생겼다 싶더니, 그게 놈의 무기였던 모양이다.
채찍은 도끼 쥔 내 손목에 촤르륵 소리 내며 감겼다.
상당히 길구나, 채찍이라는 게.
책이나 그림에서나 봤지, 실제로는 처음 본다.
채찍으로 한 놈이 나를 잡자, 그게 기회라고 생각한 것 같다.
아니면 원래 그런 식으로 싸우는 놈들이던가.
다른 놈 둘이 동시에 나를 향해 긴 창을 찔러왔다.
나는 채찍을 감은 채 그대로 도끼를 위로 쳐올렸다.
“뭐! 뭐야!”
“헉!”
“괴물!”
채찍이 감긴 채로 움직일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한꺼번에 여러 놈 입에서 비명 같은 외침이 터졌다.
놀라는 건 이해해.
하지만 너희도 생각 좀 해봐라.
아이가 어른 몸에 새끼줄 던져 감는다고 해서 어른이 움찔이라도 하겠냐.
나랑 너희들은 힘에서 어른과 아이, 아니 잭과 콩나무의 거인과 1살짜리 아기만큼이나 차이가 나는 거야.
채찍을 감은 채로 세 놈의 머리를 깨버렸을 때였다.
서로를 바라보며 싸우려던 드래곤이 결국엔 우리에게 눈을 돌렸다.
뭐, 그렇게 되겠지.
나는 몰라도 이놈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있으니까.
나는 우선 9인파티를 내버려 두고 드래곤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나를 죽이려는 놈들은 죽어도 돈이 되지 않지만, 드래곤은 다르다.
죽으면 돈이 되고, 잘못해서 날아가 버리면 다른 모험가한테 내가 엄청나게 원망받는 거야.
이 세상, 뭐니 뭐니 해도 돈이 최고라는 건 지구 이세계 공통이다.
일단 돈부터 해결하자.
나는 전신에 바람을 둘렀다.
몰려온 공기가 내 등을 부드럽게 밀어준다.
서로 노려보고 있던 두 마리의 드래곤이 나를 보고, 나뭇가지가 모두 흔들릴 정도의 포효를 울렸다.
공기가 진동하는 것 같다.
하하.
미안하지만 그건 이쪽도 할 수 있어.
나는 왠지 즐거운 마음으로 도끼에 바람을 모았다.
드래곤에게 상처를 내지 않고 잡으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온몸을 두드려서 내부를 부숴버리는 것.
나는 도끼에 바람을 잔뜩 담은 뒤 팔을 뒤로 한껏 젖혔다.
야구 방망이 휘두르는 것처럼 도끼를 허공에 뿌린다.
도끼에서 바람이 일어나 두 마리의 드래곤을 향해 날아갔다.
태풍이 휘몰아치는 것처럼 주변의 공기가 휩쓸려 지나간다.
주변의 나무가 모조리 뽑혀 드래곤을 향해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