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39)
039 클라우스의 메시지
일부 산간 지방에 눈이 내렸다는 보고가 올라와 있다.
전년과 다를 바 없는 시기지만 올해는 눈이 많이 올 거라는 관측사의 말이 있었다.
고질적으로 매년 사고가 나는 지역은 이미 몇 달 전부터 정비가 시작되었다.
그래도 매년 다시 길이 막히고 영민이 죽는다.
올해는 어떨지.
그런 생각을 하다 발테르 공작은 눈을 감았다.
‘마의숲에는 더 많은 눈이 내리겠지.’
그곳은 사람은커녕 짐승조차 살기 어렵다.
지형은 험하고 어지러워 갔던 곳조차 다시 찾기 어렵고, 거칠고 강한 마수가 수두룩해 강자 위에 강자가 있었다.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눈이 내리면 먹을 걸 찾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그런 곳에서 벌써 이십오 년째인가.’
아직 살아있는지, 단지 그것만이라도 알고 싶어 병사를 보낸 것이 이십오 년이다.
그중 몇 번은 몰살당하고, 몇 번은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그리고 몇 번은….
발테르 공작은 부적처럼 지니고 다니던 클라우스의 반지를 손에 잡았다.
반지에 달려있던 보석은 이미 깨졌다.
아무것도 없는 보석의 자리를 만지작거리자 겨우 이게 현실이다, 그것은 꿈이 아니었다고 느껴졌다.
클라우스의 반지에 붙어있던 아름다운 보석은 공작 자신이 깼다.
그 안에 반드시 클라우스의 메시지가 있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거기에는 클라우스가 보낸 짧은 말이 담겨 있었다.
[헬가를 정부인으로.]단지 한마디.
다른 아무것도 없이 그 한마디뿐이었다.
이 반지는 공작가에 대대로 내려오는 보물이다.
보라색 눈동자를 가진 인간은 피를 몇 방울 떨어뜨리는 것으로 그 안에 약간의 단어를 담을 수 있다.
피로 적는 것이니 많이는 아니어도, 적어도 몇 마디 정도는 더 담을 수 있었을 것이다.
사는 지역이 어디인지, 하다못해 방향이나, 아니면 자신이 보낸 말의 뜻을 뒷받침하는 설명 하나만이라도.
하지만 클라우스는 단지 한마디 말만을 반지에 담아 보냈다.
그 말이 뜻하는 건 아버지가 알아서 해석하라고 비웃는 것 같았다.
그 아이는 그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아버지로서의 사랑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항상 공작으로서의 입장이 먼저였다.
클라우스한테는 아버지가 아닌 공작으로서의 모습만이 보였을지도 모른다.
발테르 공작은 반지 쥔 손에 힘을 담았다.
‘생각해볼 필요도 없어.’
클라우스의 말이 뜻하는 건 하나뿐이다.
둘 사이에 낳은 자식을 혼외자로 만들지 말라는 것.
정부인으로 삼으라는 말에 그 외의 다른 뜻은 있을 수 없다.
클라우스가 굳이 반지를 보내 당부할 정도면 보라색 눈동자의 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그렇게 믿고 오랜 세월을 견뎌왔다.
희망을 계속 붙들고 있었다.
하지만 헬가는 이 반지에 무슨 뜻이 있었는지 몰랐던 것 같다.
토벌대가 숲으로 들어가면 헬가는 그들을 역으로 추적해서 병사 수를 줄였다.
어느 정도 수가 줄어들면 토벌대는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헬가는 항상 절묘할 만큼의 숫자만을 남기고 사라졌었다.
하지만 이 반지를 받은 날은 달랐다고 들었다.
헬가는 마치 증오하는 것처럼 우리 병사를 학살했다.
이전에는 단순히 추적대의 수를 줄여 돌아가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그날은 이 세상 모든 걸 죽이려고 날뛰는 야수 같았다고 한다.
마치 심장에 상처 입은 야수처럼, 헬가는 전에 없이 심하게 잔인했다.
살아남은 건 단 한 명.
이 반지를 가져온 대장뿐이었다.
아마 숲을 나올 때까지 죽지 않도록 헬가가 지켜보았을 것이다.
분노로 이글거리면서.
헬가는 이 반지를 보낸 것이, 클라우스의 구조 요청이라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그래도 그 아이 말에 따라 전달해준 걸 보면.’
아마 헬가는 클라우스의 말을 무시하거나 함부로 다루지 않을 거다.
클라우스는 공작이 걱정한 것과 달리 잘살고 있을지 모른다.
노예처럼 비참한 생활을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아마 아니다.
조용히 문이 열리고 집사장이 들어왔다.
눈으로 가까이 오라고 신호하자 집사장이 다가온다.
고개를 숙이고 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정보상의 말이 사실이었습니다.”
“진짜… 더냐.”
“예, 공작님.”
집사장이 기쁜 얼굴로 미소 지었다.
그는 보라색 눈동자가 공작가에 소중하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어째서 중요한 건지, 그 진실된 내용은 모른다.
그래도 집사장은 한 번도 묻지 않았다.
그것이 당주와 후계자만 아는 비밀이라는 것도 제대로 이해하기 때문에.
“그분은 무역 도시 엔데스에 계신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바람 마법의 건은, 평소에 사용하지 않는 듯하나 드래곤을 일격에 잡을 정도입니다. 1차 보고서에서 특이한 사항은 보이지 않았지만 다소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어 추가 조사를 지시했습니다.”
“마음에 걸리는 건?”
“그분 근처에 떠돌이 무희가 있는데, 조금 수상한 행적이 보입니다.”
가슴이 섬뜩해졌다.
설마 벌써.
“왕가인 것 같으냐?”
“….”
집사장은 잠시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그건 아닌 듯합니다. 왕가로 보기에는 흔적을 숨기려는 노력이 전혀 보이지 않고, 방향도 다르기 때문에. 아직 왕가에서 눈치챈 것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눈동자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나돌지 않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분께서는 키가 매우 크신 듯하니, 올려다보며 눈동자 색까지 확인하는 경우는 그다지 없겠지요. 보더라도 그게 특별한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적을 겁니다. 정보상에 붙어있는 자에게도 그 남자가 왕가와 연락한 흔적은 전혀 없다고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공작은 무겁게 숨을 쉬었다.
보라색 눈동자가 태어나지 않아 절박한 것은 왕가가 더하다.
이쪽은 당주인 그 외에도 클라우스에 손자가 더해졌지만, 왕가에는 왕과 나이 어린 공주 한 명뿐이었다.
왕세자는 보라색 눈동자가 아니다.
이쪽에 손자가 태어났다는 걸 알면, 거기에 아직 공작가 손이 닿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면 무슨 짓을 해올지 모른다.
그 아이 근처에 왕가가 접근하는 건 막아야 한다.
‘후우.’
공작은 작게 숨을 쉬었다.
최선은 그 아이를 공작가로 데려오는 것이지만, 다른 가문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당분간은 어렵다.
물 밑에서 작업은 하고 있지만 아직 멀었다.
각 가문마다 체면이 걸려 있기 때문에 진척이 별로 없었다.
공작은 클라우스의 반지를 꽉 쥐며 입을 열었다.
“이름은 알고 있는가?”
“라파… 그분의 성함은 라파라고 합니다.”
집사장의 늙은 눈가에 주름이 잡혔다.
눈으로 웃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공작의 입가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라파.”
그것은 오래전, 공작가의 전설을 만든 이의 중간 이름이었다.
“그 이름을….”
힘을 전혀 사용하지 못했던 클라우스는 어린 시절 풍랑을 일으켜 적군의 배를 가라앉힌 영웅의 이야기를 좋아했다.
손자의 이름에는 그 영웅처럼 자라라는 마음이 담겨 있을 것이다.
문득 집사장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공작님, 정말로 그분 곁에 호위를 두지 않으십니까?”
라파의 주위에는 정보원만 몇 명 두기로 했다.
왕가가 접근했을 때, 혹은 다른 가문에서 간교한 함정을 짜 사회적으로 얽매려 할 때 도움을 주거나 공작가에 알릴 사람들이다.
그 안에는 약간의 무력도 섞여 있지만 손자의 몸을 지키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발테르 공작은 짧게 웃었다.
“클라우스의 일이다. 손자가 준비되지 않았다면 내보내지 않았을 거야. 방금의 보고를 들어도 그렇고, 그 아이의 무력은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하긴… 클라우스 님의 성격으로 미루어 짐작하면 그렇겠지요.”
집사장이 씁쓸한 표정으로 미소 지었다.
아름다운 장미에는 가시가 있다고 하지만, 클라우스는 가시 두른 장미가 아니라 아름다운 꽃으로 위장한 가시다.
“…..”
문득 헬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녀가 클라우스의 여자를 모두 죽이고 납치한 것도 아들이 의도한 대로였을지 모른다.
진실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클라우스가 부추겼을 가능성이 있었다.
클라우스의 여자 중에는 그 아이의 안전을 위협하는 자가 다수 있었으니까.
“마누엘 님은 어떻게 할까요?”
집사장이 주저하는 것처럼 물었다.
마누엘은 라파를 암살하려고 했다.
‘바보 같은 놈.’
발테르 공작은 무거운 한숨을 내뱉었다.
클라우스가 볼 때는 마누엘도 단순히 피가 연결된 적이다.
그 아이에게 같은 어머니를 둔 형제라는 사실은 아무 의미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자식이다.
비록 평범한 눈동자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자신의 아들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없었다.
중요하지 않다고 해서 자식이 아닌 건 아니다.
“….”
공작으로서 결단해야 할 때는 망설이지 않는다.
클라우스에게도, 마누엘에게도, 그 밖의 다른 자식에게도, 언제나 그래왔다.
그래도 지금이 그 순간은 아니었다.
마누엘에게는 아직 기회를 줄 수 있다.
“경고를 하게. 은밀하게. 한 번 더 그런 일을 하면 놔두지 않는다고 내가 그러더라고, 은밀하게 알려 둬.”
“알겠습니다.”
집사장은 조용히 절을 한 뒤 물러갔다.
발테르 공작은 반지를 꽉 쥐었다.
만나고 싶다.
클라우스의 아들, 우리 가문을 이어갈 손자를 지금 만나고 싶다.
‘하지만 안 돼. 아직은 때가 아니야.’
공작가가 그를 받아들일 생각이라는 사실을 알릴 시기는 아직 멀었다.
다른 가문과의 협상이 어느 정도 끝나고, 그 아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야 한다.
서투르게 처리하면 사방이 적이 되어 버릴 거다.
왕가가 들쑤실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집사장이 있는 동안 억누르던 감정이 소용돌이쳐 방안에 작은 바람이 일었다.
발테르 공작은 날아다니는 서류 종이를 보면서 문득 웃었다.
손자, 라파는 어떤 식으로 바람을 다룰까.
전설에 남을 만큼 강한 마법사였던 조상도 그 아이와 같았다.
조상의 부친은 보라색 눈동자를 가졌으되 힘을 전혀 사용하지 못했다고 한다.
똑같은 일이 클라우스에게 벌어졌을 때 혹시나 하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아마, 그만큼 강한 아이가 태어나는 게 아닐까 라고.
하지만 아무리 많은 여자를 맞게 해도 임신의 징후가 보이지 않았다.
겨우 아이를 낳았다 생각하면 다른 남자의 자식인 경우까지 있었다.
그래서 초조했다.
혹시 클라우스에게 씨가 없는 건 아닌가 하고, 거기에 생각이 미쳐 눈이 흐려졌어.
클라우스의 마음을 생각하지 못하고 계속 그 곁에 여자를 밀어 넣었다.
발테르 공작은 바람을 가라앉히며 아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 녀석.’
나중에야 클라우스가 일부러 마녀의 약을 복용해 아이를 낳지 않도록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생명을 위협당하고 납치당할 위기를 겪으면서, 그 아이는 자식을 낳는 게 위험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공작가 내부에도 왕가와 통하는 자가 있었다.
마누엘은 항상 클라우스를 죽이고 싶어 했다.
만일 보라색 눈동자를 가진 아기가 태어나면 분명 알지 못하는 사이에 빼앗기거나 죽을 거라고, 공작가에는 구멍이 나 있어 아무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 아이에게 힘이 있다면 또 달랐겠지만, 호위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클라우스에게는 사방이 위협으로만 보였을지 모른다.
호위조차 그 아이는 어쩌면 믿지 않았다.
‘그래. 지금은 확신할 수 있어.’
그 아이는 자신의 의지로 납치당한 거다.
어째서 클라우스는 아버지를, 그를 믿지 못했던 걸까.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클라우스와 손자를 지켰을 텐데, 그 아이는 아버지한테 기대지 않고 마의숲으로 도망쳤다.
‘어쩌면 나조차 적으로 보였던 걸지 모르지.’
보라색 눈동자를 가진 아이가 태어나면 빼앗아 간다고 생각했나.
아니면 자기에게 그랬던 것처럼 손자에게도 여자를 밀어 넣어 자식을 낳게 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씨로만 다룰 거라고.
“….”
클라우스가 옳았을지도 모른다.
공작가를 위해 자신은 그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테르 공작은 작게 한숨 쉬고 머리를 흔들었다.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두자.
지금은 손자를 데려올 준비에 전력을 다할 시간이다.
‘아, 어쩌면 클라우스도 돌아올지 모르겠군.’
공작이 손자를 이용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면, 클라우스도 자식을 위해 공작가로 올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급하구나.’
헬가와 다른 가문의 원한을 서둘러 정리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
클라우스가 움직이기 전에.
헬가가 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
마음이 급해졌다.
*
마녀의 저주에 대해 듣고 며칠이 지난 뒤, 나는 여느 때처럼 침대에 누워있었다.
평상시라면 마녀가 똑똑 두드릴 시간이다.
하지만 오늘은 왠지 늦다.
‘안 오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면 또 왠지 궁금해진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조금 걱정되었다.
그녀는 낮에 무희로 춤을 추고, 그러다 보면 이상한 놈들도 꼬인다.
내일은 아침 일찍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하러 가볼까 생각하는데, 문고리가 달각달각 소리를 내며 열렸다.
마녀가 밤마다 오기 때문에 이 시간에는 열쇠를 걸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문을 두드렸다.
멋대로 열고 들어오지 않는다.
나는 침대 옆에 두었던 도끼를 잡았다.
‘드래곤 학살자라고 소문이 나 있는 사람 방에 침입하다니, 간덩이가 부었구나.’
조용히 일어나 문 옆에 가서 선다.
등잔불이 흔들리는 가운데 녹슨 경첩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원수인가 아니면 좀도둑일까.
누가 들어올지 조금 궁금해하는데 사람 머리가 스윽 안으로 기울었다.
응?
도끼 쥔 손에서 힘이 빠졌다.
뮤엘이었다.
“….”
뮤엘의 손에 작은 칼이 들려 있다.
칼을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괜찮아, 뮤엘. 당신은 할 수 있어. 용기를 내.”
뮤엘 뒤에서 작은 목소리가 소곤소곤 들렸다.
마녀다.
문 뒤에 서 있다 한 발자국 나가자 도로테가 날 보더니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기쁜 것처럼 방긋 웃는다.
남의 방에 사람 죽이러 오는 원수 응원하면서 그렇게 기쁘게 웃지 마라.
내가 작게 한숨 쉬자 도로테가 소곤소곤 말했다.
“뮤엘이 드디어 용기를 냈어요. 스스로 문을 열다니 큰 발전이죠.”
아니, 발전은 다른 데서 해줬으면 좋겠어.
살해당하기 위해서 기다려야 하는 나도 좀 생각해달라구.
음유시인은 마녀의 응원을 받으면서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로 침대 옆까지 다가갔다.
그의 눈에는 뭐가 보이는 걸까.
잘은 모르지만 현실이 제대로 보이는 건 아니다.
뮤엘은 침대 옆에 서더니 두 팔을 높이 들었다.
나는 뒤에 있는데, 침대를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