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4)
004 작고 초라한 새를 만났다
집에서 일정 거리까지는 어머니와 나의 영역이고, 태어나 지금까지 계속 돌아다닌 곳이라 집 앞마당이나 마찬가지다.
위험한 장소, 안전한 곳은 물론이고 어디에 어떤 동물이 살고 있는지조차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영역을 벗어나면 나에게도 이 숲은 미지의 세계다.
밖에서 살다 들어온 어머니, 아버지와는 달리, 나는 처음부터 그 숲 중심지에서 태어나 살아온 거야.
달걀 속 노른자처럼 숲속 작은 집 근처에만 머물렀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숲인지, 얼마나 가야 숲이 끝나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물론 출발하기 전에 이야기는 들었다. 어디로 가야 도시가 나오는지 정도는.
그러나 어머니가 가르쳐 준 건 단순하다.
동쪽만 아니라면 어느 방향으로 가도 도시는 나온다는 것이다.
다만 굉장히 오래 걸어야 한다. 이 숲은 작은 나라 하나 정도의 넓이이기 때문에.
동쪽으로는 산맥이 있다고 들었다.
산맥을 넘기는 굉장히 힘드니 그쪽으로는 가지 말라고 어머니가 몇 번이나 당부했었다.
어머니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산맥으로 길을 잘못 접어들면 거의 죽는다고 봐야겠지.
“….”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집을 떠난 지 열흘.
집에서 출발할 때와 비슷한 풍경이 어제도 그제도 이어졌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까 본 것과 비슷한 나무와 수풀이 여기에도 똑같이 줄지어 서 있다.
태양이 뜨고 지는 방향을 가늠해서 진행했으니, 나는 분명히 서쪽을 향해 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정말로 잘 가고 있는 건가.
이쪽으로 계속 가고만 있으면 정말 도시가 나오나.
“하아.”
자신이 없다.
나 자신이 숲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집 근처, 어머니가 알려준 길이 있어서였던 모양이다.
어머니가 없는 지금의 나는, 눈 감고 코끼리 코를 만지면서 이게 꼬리인가 다리인가 고민하는 꼴인 것 같아.
‘일단은 어머니가 그려준 지도가 있기는 한데.’
나는 수중에 있는 종이를 한번 쳐다본 뒤 길게 한숨 쉬었다.
동그라미 몇 개 그려놓은 게 지도의 다였다.
가장 커다란 동그라미가 숲.
그 왼쪽에는 왕도라고 쓴 동그라미, 왕도와 숲 밑으로도 동그라미가 하나.
출발할 때는 이 지도로 방향은 가늠할 수 있으니 됐다고 생각했지만, 며칠 걸어본 뒤 생각하니 이건 쓸 수 없겠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겠는데 이런 지도가 있어 봤자지.
내비게이션이 절실하다.
게다가 숲 동그라미 옆이 왕도라고 하지만, 왕도에 가기 전까지는 수도 없이 많은 마을과 작은 도시가 있을 거다.
어머니는 그걸 모두 생략한 거야.
“….”
진짜 쓸모없네, 이 지도.
어머니는 대체 어떻게 이 숲의 지리를 알고 안쪽으로 찾아들어와 집을 짓고 산 거지?
아니, 길을 알아서 집을 만든 게 아니라 그냥 숲으로 들어와 돌아다니다 적당한 곳에 집을 지은 것뿐인가.
어머니라면 그럴 수 있었을 것 같다.
나는 하늘을 쳐다본 뒤 다시 한숨을 열 번 정도 쉬고 나무를 모으기 시작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먹이를 노리고 다니는 짐승이 활개 칠 밤이 온다.
모닥불이 없으면 하루 종일 그런 놈들을 경계하면서 밤을 지내야 할 것이다.
“….”
짐승이 불을 무서워해서 정말 다행이다.
나는 나무를 모아 불을 피우고, 아까 잡은 새를 긴 나뭇가지에 꽂아 빙글빙글 돌려가며 굽기 시작했다.
커다란 새 한 마리를 통째로 구운 게 오늘 저녁이다.
어느 정도 익어 고소한 냄새가 풍기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타닥타닥 나뭇가지 타는 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절박한 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삣- 삣- 삣삣삣- 삣-.
마치 새가 호루라기를 부는 것 같다.
집에서였다면 그런 소리는 모른 척 무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나 혼자.
하루 종일 대화할 상대도 없다.
중얼중얼 혼잣말하며 걷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열흘쯤 되니까 이제 조금은 심심하고, 뭔가 오락거리가 필요해졌다.
나는 커다란 몸을 일으켜 새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향했다.
소리는 수풀이 우거진 비탈길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풀과 덩굴이 너무 높이 자라 땅이 보이지 않는다.
내 키가 2미터는 훌쩍 넘을 텐데, 풀은 그보다 더 크게 자라 있었다.
경험 없는 사람이라면 맨땅이라고 생각해 발을 디뎠다 굴러떨어질 것 같은 곳이다.
흠, 이렇게 수풀이 우거진 곳이라니, 가시나무 같은 게 있을 수도 있고, 여기를 헤치고 들어가는 게 왠지 귀찮아졌다.
‘새 구이도 이제 거의 다 됐고, 그냥 가서 밥이나 먹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막 몸을 돌리려는데, 안쪽에서 그르르 하는 짐승 소리와 함께 요란한 새 울음이 들렸다.
삐삐삐삐삣- 삐삣- 삐삣삣- 삐비비삐삣!
음, 뭐랄까, 새가 자신을 먹으려는 포식자와 싸우고 있는 것 같다.
왠지 어릴 때 곰과 싸우던 나 같은 생각이 들어 가만있을 수 없는 기분이 되었다.
골리앗과 다윗이 싸운다면, 그건 편들어줘야지.
좋아, 그렇게 생각했다면 서두르자.
나는 등에 꽂아 두었던 도끼를 빼 수풀을 향해 휘둘렀다.
강한 바람과 함께 수풀 덩어리가 무 잘리듯 베여 사라졌다.
두어 번 그렇게 풀을 베며 나아가자 가시나무가 다른 풀과 뒤엉켜 자라는 지점이 나왔다.
수풀이 너무 우거져 잘 보이지는 않지만, 새소리는 그곳에서 울리고 있다.
내가 강하기는 하지만 피부가 강철인 것은 아니다.
가시에 찔리면 나도 아프다.
나는 몸이 닿지 않게 조심하면서, 도끼를 수풀 사이로 밀어 넣었다.
틈 사이로 안쪽을 이리저리 살피자, 땅에서 가까운 부분이 동공처럼 조금 비어 있었다.
족제비 두 마리가 새 한 마리를 구석에 몰아넣고 있었다.
족제비는 내 모습을 보고도 도망치지 않았다.
수풀이 나와 놈들 사이를 막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순간적으로 위험과 이득을 저울질해 보고, 상황이 불리해지면 충분히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어라.”
내 눈이 둥글어졌다.
족제비한테 대들고 있는 새가 작을 거라고는 생각했다.
소리가 큰 새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뭐, 숲에서 오래 살다 보면 왠지 모르게 그런 정도는 느껴지는 거지.
물론 틀릴 때도 있지만.
실제로도 이 새는 작다.
그러나 이렇게 작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족제비한테 대들 정도면 그래도 비둘기 정도는 될 줄 알았어.
하지만 삐빗거리며 대차게 족제비한테 대들고 있는 새는 기껏해야 갓 태어난 병아리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내 손가락만 하려나.
정말로 작다.
그 작은 새를 족제비 두 마리가 몰아넣은 채 거의 물어 죽이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놈들!”
나는 버럭 소리치면서 도끼를 수평으로 그었다.
가시나무와 뒤엉켜 있는 굵은 가지들이 한순간에 사라져 바닥으로 흩어진다.
다시 도끼를 쳐들었을 때 이미 족제비 두 마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족제비가 사라지자, 작은 새는 마치 나를 위협하려는 듯 피… 작은 소리를 내곤 바닥에 쓰러졌다.
손을 내밀자, 쓰러진 채 작은 부리로 나를 쪼려고 한다.
하지만 다음 순간에는 건전지 떨어진 인형처럼 작은 머리가 톡 내 손바닥 위로 떨어졌다.
숨은 쉬고 있는 걸 보면 기절한 모양이다.
새를 데리고 모닥불로 돌아가 찬찬히 살피자, 의외로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깃털이 조금 빠졌을 뿐이다.
그리고 왠지는 모르겠지만 털의 일부분이 살짝 불에 그을린 것 같았다.
깃털 색은 약간 지저분해 보이는 잿빛이다.
만져보면 아직 어려서 그런지 보송보송하고 부드러웠다.
“너처럼 어린 새끼가 어쩌다 어미와 떨어져서 이런 곳에 뒹굴고 있었던 거냐?”
이 숲은 어떤 종이든 새끼가 살아가기에는 절망적인 곳이다.
내가 아니었다면 이 작은 새는 족제비가 아니어도 금세 다른 놈에게 먹혔을 것이다.
흠, 그렇게 생각하면 적어도 숲에서 나갈 때까지는 데리고 다니는 게 좋으려나.
어딘가 민가가 나타나면 그 근처에 두는 것도 괜찮을 거다.
적어도 숲보다는 안전하겠지.
나는 모닥불 앞에 근처의 나뭇잎을 조금 긁어모아 새를 올렸다.
푹신한 나뭇잎에 작은 새가 폭 들어간다.
‘귀엽네.’
왠지 내 속에 있는 뭔가가 치유되는 기분이 들었다.
이래서 동물을 키우는 건가.
나는 어머니가 챙겨준 소금을 조금 뿌려 새 구이를 우적우적 씹으면서 기절한 새한테 말을 걸었다.
“꼬마야, 네 생각에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도시로 갈 수 있을 것 같으냐.”
“….”
당연히 기절한 새한테는 대답이 없다.
“내 생각에는 말이다, 아무래도 나는 길을 잃어버린 것 같아.”
“….”
“뭐, 어딘가 정해진 목적지도 없는 거고, 조금쯤 헤매도 상관은 없는데, 아무래도 영원히 숲에서 못 나가게 될 것 같아서 조금 불안한 거지.”
“….”
“이곳에 태어나서는 원숭이처럼 숲에서 뛰어다니며 컸지만 그래봤자 집 근처였고, 나는 전생에는 문명인이었거든. 등산도 한 번 해본 적이 없었단 말이지. 그래서인지 내비가 없으면 정말 모르겠어.”
태양의 위치만 보고 길을 찾는 건 정말로 무리인 것 같다.
나는 작게 한숨 쉰 뒤 소금 주머니 입구를 단단히 묶었다.
소금은 귀중품이다.
숲에 사는 우리 집에서는 고기보다도 구하기 어려운 품목이었다.
어머니가 처음 숲에 집을 지을 때 소금만큼은 충분히 준비했다고 하지만, 이곳에 자리 잡은 지 벌써 이십 년이 훌쩍 지났다.
비축해놓은 소금도 이제 슬슬 바닥이 난 상태고, 나중에 돈을 벌면 집에 소금을 사서 돌아가고 싶다.
좋은 선물이 될 거다.
“그런데 말이다, 나 나중에 집에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
나름대로 길은 기억하면서 가고 있고, 표식도 남기고는 있지만, 과연 그것만으로 집을 찾을 수 있을까.
사방이 다 똑같아 보이니, 이런 곳에서는 지도를 만들어봤자 큰 의미가 없는 것 같고, 정말로 자신이 없다.
아무래도 이제 부모님과는 영영 이별일 것 같다.
길을 찾지 못해서.
왠지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한 것 같아 길게 한숨 쉬는데, 새가 퍼뜩 머리를 들었다.
기절할 때처럼 깨어나는 것도 기습적이다.
“삐비비비비, 삐비빗, 삐비비비!”
내가 적이라고 생각했는지, 작은 새가 날개를 파득거리며 뒤뚱뒤뚱 나뭇잎에서 뛰쳐나갔다.
뽈뽈뽈뽈.
나름대로는 서두르는 것 같은데, 굉장히 느리다.
“이 녀석, 그러다 또 족제비한테 잡힌다.”
새가 다치지 않게 살짝 잡아 다시 나뭇잎으로 되돌렸지만, 이 녀석, 족제비한테 대들 정도로 대찬 놈이었지. 포기하지 않고 뽈뽈 다시 뛰어나갔다.
몇 번이나 그런 공방을 하면서, 나는 녀석의 이름을 정했다.
“잠시 함께 있는 거라고 해도 이름이 없으면 불편하겠지. 너는 렐라다. 재투성이 신데렐라의 렐라.”
왜냐하면 이 녀석, 깃털 색이 잿빛이라서 그런지 뽈뽈 뛰어가는 모습이 마치 굴뚝에 빠졌던 것처럼 보이는 거다.
내 말에서 뭔가 느꼈는지, 작은 새가 나를 향해 삐빗 삐빗 요란하게 울었다.
아직 날지도 못하면서 날개를 파닥파닥하며 위협한다.
“나쁜 거 아니야. 신데렐라는 나중에 왕자님이랑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공주님이니까. 너도 나중에 자라면 그 잿빛 털도 조금은 예뻐지겠지.”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으로 살짝 녀석을 쓰다듬자, 화가 났는지 작은 부리로 나를 쪼기 시작했다.
하아, 이 녀석, 정말 귀엽네.
작아서 눈 부릅뜨고 덤비는 것조차 귀엽다.
“잠시 숲을 나갈 때까지 잘 부탁한다, 렐라야.”
“삐빗! 삐비비비비비!”
렐라도 기쁜 건지,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 전혀 안 기쁜 것 같아.
렐라는 부모의 원수라도 만난 것처럼 나를 향해 지지배배 맹렬히 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