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46)
046 정령의 계약
영주군 자체는 그리 뛰어난 병사가 아니었다.
도적단에 비하면 약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가세한 것으로 단번에 기세가 올랐다.
반면 도적단은 두목은 물론 부두목까지 나한테 죽었다.
부두목이 누구였는지는 모르지만 그렇다고 한다.
최초에 죽인 놈일지도 모르겠다.
그놈도 한스만큼은 아니지만 꽤 크고 칼놀림이 좋았으니까.
도적단은 사기가 저하되면서 본래 힘의 절반도 내지 못했다.
뭐, 도망치고 싶어 엉덩이를 빼고 싸우면 당연히 그렇게 될 것이다.
이길 전투도 지게 된다.
도망치는 놈이 속출했다.
하지만 도적이 도망칠 수 있는 방향은 한정되어 있고, 그 한쪽에는 내가 있었다.
영주군과 상인들의 호위, 그리고 왠지 모르지만 상당히 강한 가죽장인한테 몰린 도적들은 일부는 잡히고, 대부분은 죽었다.
‘괴력의 한스’는 몇 개의 도시에서 현상금이 걸려 있다고 한다.
특히 두목과 부두목의 목에는 따로 추가금이 있어서 내가 받는 돈은 상당할 것 같다.
사람들이 내 등을 두드리며 축하했지만, 나는 그걸 기뻐할 상황이 아니다.
팔에 갑옷이 붙어 있는 거야.
그것도 추정이긴 하지만 주인의 불행을 부르는 저주의 갑옷이.
“….”
진짜 어떻게 하면 좋지.
나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인간은 적응력이 뛰어난 동물이다.
처음에는 저주의 아이템인가 싶어 나를 피하던 사람들도, 팔갑옷이 그저 가만히 내 팔에 붙어 있을 뿐인 걸 알자 금세 평상시로 돌아갔다.
병사들은 그저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힘내세요 말할 뿐이지만, 가죽 장인들은 내 등을 팡팡 치며 웃는다.
“우하하하하! 그거 정말 멋진데.”
“움직이지도 않잖아. 꿈쩍도 않네.”
“누가 만들었는지 몰라도 정말 대단하구만. 사람 팔에 붙어있잖아”
즐거운 모양이다.
나는 정말 죽겠는데.
도적을 몇 명 더 붙잡고 물어봤지만 팔갑옷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없었다.
겨우 알아낸 건, 한스가 팔갑옷을 낀 이후 점점 그 팔이 우람하게 커졌다는 사실뿐이었다.
원래는 갑옷을 낀 팔도 다른 팔과 똑같았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정말 울고 싶었다.
실제로 눈물도 조금 나왔어.
여기에서 더 괴물 같아지면 나는 진짜, 진짜….
‘안 돼.’
고개를 숙이고 구석에 쭈그려 앉아있던 나는 벌떡 일어났다.
‘저주라고 하면 마녀지.’
정식 이름은 없지만 일단 마녀라고 스스로를 말하는 타티아나한테 가보자.
그녀라면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산기슭 마을을 떠났다.
도시로 돌아가는 도중 뒤늦게 출발한 영주군과 모험가들을 만났다.
피난민처럼 수레, 마차가 어지럽게 한데 몰려 병사들과 함께 달리고 있었다.
나를 발견하자 모험가들의 눈이 등잔만 해졌다.
“어! 라파 씨?”
“라파 씨 아닙니까.”
“마을은! 마을은 어떻게 됐습니까? 설마 벌써 몰살….”
내가 돌아가는 게 너무 빠르자 벌써 도적에게 몰살된 건 아닌가 싶어 다들 놀란 모양이다.
“괜찮아요. 마을은 괜찮습니다. 벌써 도적은 잡았어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누군가의 탄식이 들렸다.
“역시….”
한 사람이 큭, 소리를 내며 손으로 얼굴을 덮고 있었다.
“역시 너무 늦었군요.”
말을 제대로 안 듣는 사람이네.
하지만 다른 사람 귀에는 제대로 들렸던 것 같다.
“바, 방금 한 말이 사실입니까? 벌써 끝났어요?”
“설마.”
“라파 씨가 아무리 강해도 그런 일은….”
사람들이 대번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믿을 수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길게 얘기할 틈이 없다.
내 몸에 붙어 있는 갑옷의 저주가 언제 발동될지 모르는 거야.
한스는 서서히 팔이 굵어졌다고 하지만, 그는 마법사가 아니었다.
마법사에 대해서 어떻게 작동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몇몇 사람의 시선이 내 팔과 갑옷으로 향했다.
마을이 안전하다고 알자 내가 붙이고 있는 갑옷에 관심이 간 모양이다.
그들의 시선이 못 박힌 듯 나를 따라오는 걸 느끼며 나는 허둥지둥 그 자리를 떠났다.
나는 상당히 서둘렀지만 도시까지는 물리적인 거리가 있다.
마음이 급하다고 해서 순간 이동처럼 눈 깜짝할 새에 도착할 수는 없다.
어쩔 수 없이 며칠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중 하루는 비가 내렸다.
어스름할 무렵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 늦가을 비는 꽤 차갑고 흙길은 질척해졌다.
이런 상황에서는 달릴 수 없다.
아니, 달릴 수는 있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사고가 나거나 지금까지 그런 적은 없어도 감기에 걸릴 수도 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을 떠올리며, 나는 어쩔 수 없이 걸음을 멈추고 비 피할 곳을 찾았다.
나는 굵은 나무를 찾아 그 밑에 자리 잡았다.
이럴 때를 대비해 가지고 다니던 가죽을 가지에 걸쳐 간이 텐트를 만든 뒤 젖은 나뭇가지를 모아 살짝 바람을 흘린다.
나는 바람을 적게 움직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피부에 바람을 미끄러뜨리며 나뭇가지를 만지작거리면 적당히 바람이 주위로 흩어진다.
잠시 시간을 들여 나뭇가지를 말린 뒤 불을 피우고, 나는 그 자리에 벌렁 누웠다.
며칠 잠을 거의 자지 않은 몸은 피곤한데 잠은 오지 않았다.
그래도 억지로 눈을 감고 있는데, 뭔가 탁탁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뜨고 고개를 돌리자, 렐라가 갑옷을 향해 날갯짓하며 달려가 부리로 콕콕 쪼고 있었다.
눈에 힘이 들어가 있는 걸 보면 싸우는 모양이다.
왜 갑옷하고 싸우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고 가만히 보는데, 문득 팔갑옷 안에서 뭔가가 일렁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뭔가가 술렁술렁하며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들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느낌이 꼭 뭔가가 말하는 것 같아.
오싹해졌다.
역시 이 팔갑옷에는 뭔가가 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원래부터 없던 잠이 확 달아난다.
“삐빗!”
한 번 물러났던 렐라가 뒤뚱거리며 다시 달려와 갑옷에 덤벼들었다.
“삐비빗!”
콕콕, 쫀다.
렐라야, 혹시 나를 지키려고 해주는 거야?
그래서 이 안에 있는 뭔가와 싸우고 있어?
고마운 마음에 렐라를 안으려고 손을 내밀자, 렐라가 화를 내며 나를 쪼았다.
“삐빗! 삐빗!”
“….”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를 지키려고 한 게 아니라, 단순히 새로 나타난 적과 싸우는 게 즐거웠던 것 같다.
그 뒤, 나는 뜬눈으로 그 밤을 지새웠다.
도저히 저주의 팔갑옷에서 뭔가가 술렁거리는 걸 알면서 잠을 잘 생각은 들지 않았다.
게다가 왠지 모르지만 갑옷이 내 팔을 끌어당기는 듯한 기분이 든다.
처음에는 단지 끝이 닿았을 뿐이지만 순식간에 내 팔에 철썩 붙어버린 것처럼, 어느 순간이 되면 내 팔이 갑옷 속으로 쑥 들어가 버릴지 모른다는, 아니 분명히 그럴 거라는 예감이 있었다.
하룻밤이 내게는 억만년처럼 느껴졌다.
간신히 도시에 도착한 것은 성문이 닫히기 직전이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밖에서 하룻밤을 지냈어야 할 거다.
도적단의 습격은 문지기에게도 알려진 것 같다.
나를 보자 그동안 안면이 익은 문지기와 병사들이 궁금한 듯 입을 열었다.
“마을은 어떻게 됐소?”
“무사합니까?”
“이렇게 빨리 돌아온 걸 보면 역시….”
나는 그들의 시선이 내 팔과 갑옷을 향하는 걸 느끼며 왼손을 번쩍 들었다.
“괜찮아요. 마을은 무사합니다. 나는 바빠서 이만.”
멈추지도 않은 채 그대로 도시를 가로질러 달린다.
느낌 탓인지 며칠 사이 오른팔이 조금 커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말 서둘러야지, 잘못하면 괴물이 된다.
숙소에 도착해, 여관 주인의 놀란 얼굴도 모른 척하고 이인실로 달려 올라갔다.
손잡이를 돌리자 방문은 잠겨있었다.
내가 말한 대로 타티아나는 문을 잠그고 있었던 모양이다.
“타티아나, 나야, 라파.”
내가 말하자마자 곧바로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라파 씨?”
밝은 목소리와 함께 타티아나의 금발머리가 튀어나왔다.
“굉장히 빨랐네요. 사람들 말로는 시간이 꽤 걸릴 거라고….”
그녀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그녀는 나보다 키가 작다.
모든 사람이 나에 비하면 작지만, 그녀는 많이 작다.
내 어깨는 그녀의 머리보다 높고, 그녀의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내 배와 팔일 것이다.
그래서 금방 알았겠지.
타티아나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팔에 붙어 있는 게 뭐예요?”
“갑옷이….”
뭣부터 설명해야 할까.
나는 작게 숨을 쉬었다.
“음, 갑옷인 줄은 아는데.”
타티아나가 다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키득 웃었다.
“갑옷을 왜 붙이고 있어요?”
그러니까, 나도 그게 궁금해.
내가 대강 일어난 일을 말하자, 타티아나는 마치 자기 방인 것처럼 나를 안으로 불러들이고 작은 주머니에서 허브 같은 걸 꺼내 차를 두 잔 우렸다.
“마침 차를 마시려던 참이었어요. 마녀는 원래 차를 좋아하고 즐기는 거니까요.”
왜인지는 모르지만 약간 자랑하는 것처럼 말한 타티아나가 찻잔을 내 앞에 내려놓고 빙긋 웃었다.
“우선…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에요. 당신이 없는 동안 매일 마녀의 기도를 올렸죠. 화살이 피해가기를 바라는 기도와 뭘 먹어도 배가 아프지 않기를 기원하는 것, 당신이 가는 길목에 악의가 덮치지 않도록 하는 기도도 하고, 저주를 피하는 액막이 기도도 했어요.”
타티아나가 내 팔에 붙은 갑옷을 이리저리 보았다.
“그 기도에 큰 힘은 없지만, 그래도 저주를 막는 정도의 효과는 있었을 텐데. 물론 아주 큰 저주라든가 악의로 똘똘 뭉친 건 막을 수 없었을지 모르지만요.”
통통통, 타티아나가 갑옷을 두드려본다.
그래봐야 철 소리밖에 나지 않는데.
“원래 주인은 모습이 어땠어요?”
“한스? 그 도적은 이걸 낀 후부터 조금씩 팔이 커졌다고 하더군. 그냥 봐도 차이가 확연할 만큼 한쪽 팔만 컸어. 힘이 강해진 것도 이 갑옷을 낀 뒤부터라고 들었다.”
“흠. 갑옷을 끼지 않은 곳은 평범했나요?”
나는 쉽게 어깨가 뽑혔던 한스를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타티아나는 잠시 생각하더니 갑옷에 손을 대고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들어라, 정령아. 내 말에 응답하라, 너의 모습을 보여라.”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갑옷이 번쩍거리지도, 뭔가 소리가 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문득 뭔가가 느껴졌다.
나는 팔갑옷을 보았다.
거기에서 뭔가가, 아주 미세한 바람 같은 것이 술렁거린 것 같다.
“저기, 나도 확신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어쩌면 이건 정령의 갑옷일지도 몰라요.”
“정령의 갑옷?”
“그래요. 스승님한테 들은 적이 있어요. 나는 그게 단순한 전설이라고 생각했지만.”
곤란한 얼굴로 타티아나가 나를 보았다.
“아주 오래전에 천재 마도구사가 있었대요. 정령의 갑옷은 그 사람이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게.”
타티아나가 말을 못 하고 우물쭈물하다 어깨를 으쓱했다.
“그 마도구사는 평범한 사람도 정령의 힘이 있으면 마법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대요. 그래서 갑옷에 정령을 가뒀다고 들었어요.”
만일 이게 그거면… 진짜 저주 아니냐.
정령이 화가 나 저주의 갑옷이 된 거.
“이거 떼어낼 수 있을까? 스승님이 저주를 무효화 시키는 방법 같은 거 말해주지 않았어?”
내가 묻자 타티아나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은 못 들었어요. 아, 하지만 계약하는 걸 가르쳐 주셨죠. 정령의 계약이라는 게 있거든요. 그걸로 정령의 힘을 빌릴 수 있대요. 이 갑옷 안에 정말로 정령이 있다면 아마 효과가 있을 거예요.”
“….”
“하지만 그건 보통 사람은 할 수 없어요. 마녀와 정령의 계약이니까. 스승님이 그랬거든요. 보통 사람은 정령과 계약할 수 없다고.”
타티아나가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 한스라는 도적 팔이 이상해진 건 아마 계약 없이 이 갑옷을 사용했기 때문일 거예요. 부작용인 거죠.”
정령이라는 게 과연 어떤 존재인지는 누구도 정확하게 모른다.
하지만 마녀의 기도와 주문은 정령에 관계된 게 많고, 마녀는 정령의 힘을 빌려 뭔가를 이룬다고 생각되어졌다.
마녀 자신이 특별한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정령의 힘을 잠시 빌리는 거라는 인식이다.
“나는 그렇게 배웠거든요. 적어도 정령은 마녀한테 나쁜 걸 하지 않아요. 마녀를 지켜주고 마녀를 사랑해 주는 존재죠.”
타티아나는 그렇게 말한 뒤 나를 보았다.
“아까 이 갑옷에 내가 주문을 외웠잖아요. 그때 느낀 건데, 이 갑옷에 나쁜 기운은 없는 것 같아요. 정확하게 어떻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 마녀한테는 그냥 그런 것 같다고 느껴지거든요.”
타티아나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 갑옷은 당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해요.”
그럴 리가 있냐.
“계약을 해보는 게 어때요? 안 되면 그냥 안 되는 거니까.”
“….”
뭔가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게 낫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 타티아나가 주문을 외웠을 때, 나는 확실히 뭔가가 이 안에 있는 걸 느꼈다.
그게 정령인지 뭔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전 밤 혼자 있을 때 느꼈던 오싹함과는 조금 달랐다.
타티아나가 마녀라서인지는 몰라도, 그녀가 주문을 외운 순간, 아주 조금, 진짜 코딱지만큼 작은 부분에서 기분 좋은 걸 느낄 수 있었다.
타티아나가 말한 계약인지 뭔지가 나와 이 갑옷 속에 있는 걸 연결시키지는 못한다 해도, 어쨌든 이 안에 있는 뭔가의 기분을 누그러뜨려줄 거다.
저주를 안 내리는 방향으로.
그렇게 확신하고 허락하자, 타티아나가 곧바로 갑옷에 손을 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