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58)
058 불사조의 깃털
파울과 이야기를 나눈 이후에도 적당한 일은 나오지 않았다.
며칠 기다려봤지만 없다.
그래도 일이 언제 나올지 모르니까 일단 길드에 가기는 하는데.
‘오늘도 허탕치려나.’
저절로 어깨가 축 늘어졌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는데, 그보다 먼저 옆에서 약한 소리가 들렸다.
“하아….”
타티아나가 길게 한숨 쉬고 있다.
“라파 씨는 그래도 돈이 있으니까 좋은데, 나는 이제 정말로 돈이 달랑달랑… 하아… 실력이 좋으면 돈을 팡팡 벌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뜻대로 안 되네요. 스승님이 항상 말씀하셨지만, 정말로 인생은 헬이에요.”
이 세상에 헬이라는 말은 없었을 것이다.
지옥을 뜻하는 단어는 따로 있다.
“그… 헬이라는 게 무슨 뜻인지 알아?”
내 말에 타티아나가 다시 긴 한숨을 쉬었다.
“어렵다는 뜻이에요. 마녀만 아는 말이죠. 물론 내가 아는 마녀는 스승님뿐이지만.”
그거 그런 뜻 아니다.
아니, 뭐, 풀어보면 비슷한 이야기긴 한데 헬이 어렵다는 뜻은 아니야.
그리고 마녀들이 쓰는 말도 아마, 아니 절대로 아닐 거다.
그녀의 스승이 굉장히 늙었다고 하길래 나보다 한참 먼저 세대 사람일 줄 알았는데 어쩌면 지구와 여기의 시간 축은 다를지도 모르겠다.
인생은 헬.
그런 말을 쓰는 게 적어도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는 아닐 것이다.
어쩌면 나와 비슷하거나 나보다 조금 나이가 많을까.
정말 그녀의 스승을 만나볼 수 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힘없이 한숨 쉬고 이야기하며 걷는 동안 어느새 길드가 있는 중앙 광장에 도착했다.
길드가 멀리 보였다.
“오늘도 일이 없으면 그냥 마수나 몇 마리 잡으러 가자.”
마수는 종류에 따라 조금 다르지만, 의뢰서가 없어도 대부분 길드에서 매입해 준다고 들었다.
마수 고기나 가죽, 내장과 뿔 같은 건 나름대로 꾸준한 수요가 있는 모양이다.
“렐라 때문인가요?”
타티아나가 살짝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렐라를 내가 납치해온 셈일지도 모른다는 건 그녀한테도 이야기했다.
“응, 어쩌면 받아주지 않을까 하고.”
저절로 어깨가 내려갔다.
렐라는 귀엽다.
함께 있으면서 정도 많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대로 함께 있고 싶었다.
하지만 렐라의 어미가 살아있다면, 그리고 받아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렇다면 어미의 품에 돌려보내는 일이 옳을 것이다.
나로서는 정말로 저 녀석을 훌륭하고 제대로 된 불사조로 길러낼 자신도 없고.
불사조가 아니라 새로 길러낼 수 있을지도 미심쩍다.
렐라 저 녀석, 나름대로는 날려고 노력하는 것 같은데 전혀 날지 못하는 거야.
날개를 퍼덕이면서 눈에 힘을 빡 줘서 얼핏 보면 그럴싸해 보이지만 위에서 아래로 그냥 떨어지기만 했다.
하아.
야생 동물은 사람 손이 타면 어미가 다시 기르지 않지만, 타티아나 얘기를 들어보면 불사조는 여느 야생동물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매우 오래 사는 생물이면서도 새끼는 평생 한두 마리밖에 낳지 않기 때문에, 부모와 자식의 정이 여느 야생동물보다 훨씬 깊다고 한다.
그러니 인간의 냄새가 많이 묻어있는 새끼라도 어쩌면 알아볼지 모른다.
“….”
과연 그럴까.
동물은 냄새로 상대를 구분하고 알아본다는데 혹시 공격해오는 것은 아닐까.
어젯밤에 했던 번민이 다시 덮쳐왔다.
하아.
한숨 쉬자, 머리 위에서 렐라가 내 머리를 콕 쪼았다.
“삐빗!”
한숨 쉬지 말라는 모양이다.
어쩌면 내가 우울해한다고 생각해 위로해 주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
아니, 그건 아니겠지, 아마.
그 정도의 눈치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냥 내가 자꾸 한숨 쉬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을 거다.
한숨 쉬며 광장을 가로질러 걷는데, 길드 문이 활짝 열리는 게 보였다.
제니가 밖으로 뛰다시피 서둘러 나온다.
상당히 급한 모양이다.
그녀의 손에 종이가 한 장 들려 있었다.
‘설마 또 마수가 습격해온 건 아니겠지.’
나도 모르게 걸음이 조금 빨라지는데, 제니가 나를 보았다.
“라파 씨! 타티아나 씨!”
제니가 우리를 향해 달려온다.
아무래도 그녀는 우리를 찾아 나온 모양이다.
우리 앞까지 서둘러 온 제니가 숨을 몰아쉬면서 입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아무래도 딱 맞는 일을 찾기가 어려워서… 다른 길드에 연락해 봤거든요. 그랬더니 마침 그쪽에서도 우리한테 일을 연계하려던 참이었다고 하더군요.”
제니가 종이를 들어 보이면서 웃었다.
“불사조 깃털을 구해달라는 의뢰예요.”
“….”
마치 자로 잰 듯한 타이밍이다.
안 그래도 불사조를 찾아가려던 참이었는데.
하지만 이 의뢰를 받아야 하는가 하면, 조금 곤란하다.
불사조가 설마 말이 통하는 존재는 아닐 것이다.
깃털 한 장만 주세요, 한다고 곱게 줄 리 없다.
강제로 빼앗아야 한다.
‘하지만….’
불사조는, 의외로 여기저기 많이 보이는 드래곤보다 훨씬 희귀한 생물이라고 한다.
그들이 사는 장소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타티아나가 나를 처음 만났을 때 불사조가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 줄 수 있다고 뽐내며 말한 건, 그만큼 그게 귀중한 정보이기 때문이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그렇다고 안다.
그러니 내가 불사조를 잡으러 간다고 하면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마의숲밖에 없고, 거기에 불사조가 산다면 아마 렐라 어미일 것이다.
애초에 렐라를 되돌려 줄 생각이라 가볼까 생각한 거니 간다면 당연히 그곳으로 갈 생각인데, 가는 김에 깃털도 뽑는다고 하면 그건 아무래도 좀 이상하지.
마음속으로 갈등하고 있는데 제니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한데 이 의뢰, 조건이 좀 까다로워요. 지금까지 불사조 깃털이 의뢰로 나올 경우에는 부러지거나 털이 많이 빠져도 상관없다는 게 암묵의 룰이었는데, 이번에는 깃털이 손상되어서는 안 된다는 게 조건입니다.”
하지만 불사조는 강하고, 무엇보다 불을 사용하는 마수다.
아무 손상 없이 불사조를 잡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둥지에 가면 떨어진 깃털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사람이 접근하는 걸 불사조가 가만 놔둘 리 없다.
손상 없는 깃털을 구하는 건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래서 이 일에 손대겠다는 모험가가 없었다고 해요. 헬가가 활동할 때는 손상 없는 깃털도 종종 의뢰로 나오고 제대로 소화됐지만, 지금은 그렇게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상당히 어려운 의뢰기 때문에 보수도 높습니다.”
아직 대답하지 않았지만, 제니는 당연히 내가 이 일을 받는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길드 쪽으로 향하면서 곧바로 설명에 들어갔다.
“조건 중 하나에는 깃털을 구한 뒤에 구매자가 지정한 곳까지 직접 배달한다는 것도 있어요. 보수는 그 자리에서 지급한다고 합니다. 아,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돼요. 의뢰한 곳은 역사가 깊은 상가기 때문에 속임수의 가능성은 없습니다.”
드문 일이지만, 배달한 물품을 받은 뒤 모험가를 죽이거나, 물건만 받고 의뢰인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의뢰인이 돈 가져올 테니 잠시만 기다리라고 말해 차를 마시며 혼자 앉아있다 보면, 어느새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거다.
“그런 일을 막기 위해서 고가 의뢰인 경우에는 보증금도 받지만 완전히 막을 수는 없거든요.”
제니가 그렇게 말하며 얼굴을 찌푸렸다.
“다만 기간이 굉장히 촉박해요. 이런 일은 기한이 연 단위도 종종 있는데, 마감까지 한 달도 남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불사조가 어디에 있는지 수소문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것도 이쪽으로 의뢰 이야기가 건너오게 된 이유인데요.”
길드를 코앞에 두고 제니가 걸음을 멈췄다.
“솔직히 다른 분이었으면 이 의뢰는 우리 쪽에서도 받지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라파 씨와 타티아나 씨라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말하기 조금 어려운지 숨을 들이마시고 결심한 것처럼 나를 보았다.
“마의숲에 불사조가 살고 있어요.”
알고 있어.
거기에 살았으니까.
제니는 우리를 길드 안쪽 자리로 안내했다.
이곳으로 들어오는 건 처음인 것 같다.
툭 터진 하나의 공간이지만, 이 안쪽은 책장과 물건으로 막혀 다른 곳과 구분되어 있었다.
제니는 책상에서 상자를 하나 꺼내 테이블에 올렸다.
안에는 몇 장의 낡은 지도가 들어 있었다.
제니가 그중 한 장을 꺼내 테이블에 놓았다.
“이건 마의숲과 그 주변을 그린 지도예요.”
산은 삼각형의 산 모양으로, 도시는 작은 선을 둘러싼 성으로 그려져 있다.
현대 지도와는 많이 다르다.
꼭 아이가 그려놓은 것 같았다.
“우리 길드는 여기에 있습니다.”
제니가 지도의 성 모양을 짚었다.
“그리고 마의숲은 이곳이죠.”
손가락이 약간 떨어진 숲으로 이동한다.
“마의숲은 굉장히 위험한 곳이에요.”
마수가 너무 많고 강해, 깊은 곳까지 들어가서 살아 돌아온 사람은 거의 없다.
있어도 매우 소수였다.
그래서 마의숲을 부르는 다른 이름은 죽음의 숲이다.
그렇게 위험한 곳이기는 하지만 마수와 특이한 약초가 많기 때문에 많은 모험가가 실력을 키워 그곳에 도전하고, 해마다 죽는 이가 생겼다.
모험가가 마의숲에 간다고 하면 대부분 가장자리의 얕은 장소를 뜻했다.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불사조는 얕은 숲에는 없어요. 깊은 곳까지, 아마 중심부까지 들어가야 합니다.”
제니의 손가락이 숲 가운데를 찔렀다.
“불사조가 어디에 사는지, 어느 지역에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드물게 목격담이 들리죠. 길드에서는 그런 정보를 모아두고 있어요. 언제 어디서 필요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마수에 대한 건 사소한 거라도 모두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니는 지도의 중심부를 둥글게 손가락으로 짚었다.
“우리 예상으로는 불사조가 사는 곳은 이쪽이에요.”
“….”
타티아나가 가만히 지도를 보다 물었다.
“그런데, 이 숲은 거의 나라 하나 만큼 큰 거죠?”
“그래요.”
“그렇다면 지금 짚은 곳도 도시 몇 개보다 큰 거 아닌가요?”
제니가 작게 한숨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그 말은 결국 불사조가 사는 곳은 모른다는 뜻이 아닐까.
“문제는 또 있습니다.”
제니가 진지한 얼굴로 나와 타티아나를 보았다.
“마의숲에는 헬가가 살고 있죠. 물론 숲이 너무 크기 때문에 그녀와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추적대가 들어갔어도 발견된 적이 없으니까요.”
제니가 살짝 나를 쳐다본다.
“하지만 만날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그 경우 전투가 될 수도 있어요. 다만 라파 씨는 에노르토스 출신이니 적어도 추적대와는 헬가의 대응이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이 일은 거절해도 괜찮습니다.”
타티아나가 뭐라고 말하기 어려운 표정으로 제니와 나를 번갈아 보았다.
타티아나는 내가 헬가의 아들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 아마 이 대화가 굉장히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나도 그래.
나중에 제니가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를 생각하면 양심도 찔리고, 낯간지럽기도 하고, 뭐라 말할 수 없는 심정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 헬가의 아들이라고 밝힐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나는 헛기침을 조금 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일을 맡겠습니다.”
어머니를 만나면 불사조 둥지가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자.
둥지에는 적어도 한 개 정도 깃털이 떨어져 있겠지.
그 드물다는 불사조가 여러 마리 살고 있을 것 같지는 않으니, 아마 그곳에 있는 놈은 렐라 어미일 거다.
죽이고 싶지도, 닭털 뽑듯이 아프게 뽑고 싶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