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59)
059 불사조가 나를 쫓아온 것 같다
라파가 있는 도시에서 거의 매일 보고서가 올라온다.
발테르 공작은 그 보고서를 아침과 저녁, 그리고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들여다보았다.
이미 아는 내용이고 매일의 보고서에는 항상 비슷한 일과가 적혀 있지만, 여러 번 보고 또 봐도 그때마다 금세 다시 보고 싶어졌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발테르 공작은 이미 여러 번 읽은 보고서에 시선을 주었다.
… 오늘도 그분께서는 평소와 같이 해가 뜨기 직전 여관 뒤뜰에 나오셨습니다.
아름다운 백금 머리는 다른 사람보다 훨씬 빨리 자라 이제 어깨를 덮을 정도가 되었고, 여전히 작은 새를 아끼시는 모습입니다.
이마에서 작은 생채기를 발견하였는데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아마 작은새의 짓일 거라고 생각됩니다.
피부 상태를 확인한 결과 여전히 독의 문제는 없는 것으로 보이며, 건강도 매우 양호하다고 판단됩니다.
세안을 마치신 뒤에는 항상 하시는 동작이 이어집니다.
팔을 천천히 옆으로 펼쳐 내린 뒤 다시 위로 올리는 동작을 반복하신 뒤에는 옆으로 몸을 기울이며 한쪽 팔을 들어 같은 방향으로 내미십니다… 노를 젓는 듯한 동작이 반복된 뒤에는 다시 처음의 동작으로 되돌아가십니다.
그 일련의 동작을 마치신 뒤에는 가볍게 도끼를 휘둘러 몸을 푸시는 바, 항상과 마찬가지로 바람이 일어나 사방으로 뻗어나갑니다.
매번 뵙는 장면이오나 이 미천한 마음은 그때마다 감격으로 떨리어 나도 모르는 사이 몸을 내밀고 있습니다.
오늘은 식인개미의 습격 이후 계속 이어지는 건물 복구 작업에 참여하시어, 다른 이가 여러 명 달라붙어 드는 기둥을 혼자 세우고, 흩어진 돌은 가루로 만드는 작업을 하셨습니다.
이전에도 보고드린 바와 같이, 바람 마법의 세심한 사용에는 다소 어려움을 겪는 듯하십니다.
작은새가 작업 중 방해하는 바람에 마음의 균형이 깨지셨는지, 바닥에 흩어진 돌을 마법으로 짓이기자 땅이 깊이 팼습니다.
다시 바닥을 메우느라 시간이 걸려, 이후 그 작업에서는 제외되실 듯합니다.
그분께서는 매우 난처하신 듯 머리를 긁고 계셨습니다.
보고서를 읽다 무심코 웃음소리가 샜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인데도 볼 때마다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잠시 웃다, 발테르 공작은 문득 고개를 들었다.
언제 왔는지 집사장이 곁에 서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집사장이 고개를 조금 내렸다.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한다.
“불사조 깃털의 의뢰는 무사히 도련님께 수리되었습니다.”
“그래.”
발테르 공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될 거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불사조가 목격된 적이 있는 마의숲과 가장 가까운 도시 엔데스.
직접 그곳으로 의뢰를 넣으면 누군가 공작가의 흔적을 찾아낼지 모른다.
그 때문에 일부러 가까운 도시의 길드에, 상회를 통해 건너건너 의뢰했다.
왕도 쪽으로 의뢰가 가지 않도록 짧은 기한의 조건을 달고, 거기에 불사조 깃털이 상하면 안 된다는 것까지 넣으면 의뢰를 받을 수 있는 모험가는 거의 없다.
헬가가 활동할 때는 종종 그런 의뢰를 내는 곳이 있었지만, 그걸 받을 수 있는 건 그 당시에도 헬가뿐이었다.
지금은 라파 외에는 그런 조건을 맞출 수 없다.
알고서 의뢰를 넣은 것이다.
저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결정된 거나 마찬가지라고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마음이 춤을 추는 것처럼 들뜬다.
발테르 공작의 마음을 아는지, 집사장이 은은한 미소를 띠었다.
“깃털의 배달 장소는 왕도와 가까운 도시로 정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무관에게는 도련님께서 오시는 날에 맞추어 주인님의 일정을 비우도록 말해두었습니다. 당분간은 조금 바쁘실지 모르겠네요.”
“아아.”
발테르 공작은 흠, 헛기침했다.
안 그래도 바쁜 일정이 더욱 조밀해진다고 생각하면 벌써부터 조금 지치지만, 얼굴은 제멋대로 웃고 있었다.
‘곤란한 일이야.’
클라우스가 납치된 날조차도 이렇게 감정이 마음대로 움직여 드러나지는 않았다.
그때만 해도 아들을 되찾을 거라고 믿고 있었으니까.
다름 아닌 공작가의 후계자를 단 한 명한테 빼앗겨 이십 년 넘게 되돌리지 못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들을 데리고 오는 것이 불가능할지 모른다고 알게 된 처음 몇 년 동안, 그의 마음은 모르는 사이 깊은 곳에서부터 절망했던 것 같다.
그 절망 때문에, 그는 클라우스의 메시지를 받았을 때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의심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오랫동안 노력해도 얻지 못했는데 이런 행운이 있을 리 없다고, 믿고 싶지만 믿지 못하는 마음의 갈등이 어쩌면 지금까지 계속 수면 밑으로 이어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보고서로 이미 알고 있는데도 어떻게든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확실하게 그 아이는 공작가의 보라색 눈동자를 잇고 있다고.
그리고 클라우스가 그걸 염두에 두고 교육해 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다.
발테르 공작은 가볍게 한숨 쉬었다.
“인간이라는 건 참으로 어리석구나.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이 나이 들어 이런 행동에 나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지금 만나서는 안 된다.
확인만 하는 거라면 다른 방법도 얼마든지 있었다.
한데도 직접 자기 눈으로 보고 싶다는 유혹을 떨치지 못한다.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자, 집사장이 고개를 조금 숙였다.
“저는 이번 일이 기쁩니다. 주인님께서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당신 마음대로 뭔가를 원하고 누려보신 적이 없지요. 공작으로서는 훌륭한 일이지만, 저는 항상 그걸 마음 아프게 생각해왔습니다.”
그것은 공작이라는 자리에 앉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공작이라는 이름 밑에는 수많은 가문과 영민이 딸려 있고, 그의 말 한마디, 결정 하나하나가 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그가 무심코 원한다고 한마디 함으로써 누군가의 아버지가, 딸이, 혹은 어떤 가문이 영원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발테르 공작이라는 지위는 그만큼 무거운 것이다.
그걸 알면서 어찌 말 한마디라 해도 함부로 뱉을 수 있을까.
자신뿐 아니라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피붙이에 대한 정조차 끊으며 마음을 억눌러 살아왔다.
클라우스도 그렇게 키운 아이였다.
태어나면서부터 차기 공작으로 교육해, 마음가짐에서부터 지식, 예절에 이르기까지 다른 자식들과는 전혀 다른 강도의 배움을 익히도록 강제했다.
클라우스를 되찾으려고 혼신의 힘을 다한 것은 단지 보라색 눈동자 때문만이 아닌 것이다.
만일 클라우스가 아닌 아이를 공작으로 삼으려면, 처음부터 다시 교육해야 한다.
단순한 지식만이라면 성인이 되어서도 배우게 할 수 있고, 업무적인 능력이 모자라면 보좌관을 둠으로써 해결할 수 있지만, 공작으로서 가져야 할 판단력과 정신은 성인이 된 이후 교육하는 건 어렵다.
마누엘은 그런 점에서 이미 탈락이었다.
공작으로 삼기에는 생각이 너무 얕다.
그 아이는 보라색 눈동자만이 클라우스의 가치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다르다.
전혀 다르다.
클라우스는 차기 공작으로 자랐기 때문에 중요한 존재인 거다.
한데 무엇보다 냉정한 공작이어야 할 자신이 손자를 보고 싶다는 마음 한 점에 매달려 이런 식으로 결정해버렸다.
누가 보면 비웃기 딱 알맞다.
집사장도 그런 자신의 얕은 마음을 알 것이다.
집사장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주인님, 한 번쯤은, 긴 인생에서 단 한 번 정도는 바라는 걸 원한다고 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글쎄, 집사의 표본이라 불리는 자네의 말로는 이상하군. 그대의 부친이 나 어릴 적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지. 주인이 잘못된 길을 가면 목숨을 걸고 반대하는 것이 올바른 집사라고. 지금은 나를 혼내야 하는 게 아닌가?”
발테르 공작이 웃자, 집사장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주인이 계속 바란다면, 함께 불 속으로 뛰어들더라도 그 뒤를 따르는 것이 집사입니다. 그러니 지금의 제 행동에는 아무 잘못도 없지요.”
“고작 손자 만나려는 걸 두고 불 속에 뛰어드는 거라는 말은 좀 심하지 않은가.”
발테르 공작이 일부러 눈썹을 찌푸리자, 집사장이 새침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만큼 공작님께서 올바른 길만 걸어오셨으니까요. 이만한 일도 제가 볼 때는 놀라운 일탈입니다.”
“… 그런가.”
그게 집사장이 말해주는 최상급의 찬사 같아서, 왠지 얼굴에 열이 약간 올랐다.
집사장이 문득 미소를 띠었다.
“하지만 저도 매우 궁금합니다. 클라우스님이 직접 기르신 도련님이 과연 어떤 분이실는지.”
“보고서만으로는 클라우스와 정반대인 것 같더군.”
그게 과연 클라우스처럼 겉보기와 속이 다른 걸지, 아니면 정말로 보이는 것과 똑같은 아이일지.
클라우스라면 분명 그 아이를 차기 공작으로 길렀을 것이다.
보라색 눈동자의 비밀을 알고 있는 그 아이가 단지 이용되기만 할 신분으로 자기 자식을 길렀을 리 없다.
분명 공작이 되게끔 교육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보고서의 내용과는 맞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야.”
발테르 공작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보고서에 시선을 주었다.
가지런한 글자가 라파의 일상을 담담히 적고 있다.
그 글자를 손가락으로 가만히 따라가며 보는 동안, 집사장은 슬그머니 자리를 비웠다.
*
이미 한 번 왔던 길이라 돌아가는 건 쉬울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 세계에는 표지판이 없다.
여러 번 말했지만 없는 거야.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허허벌판과 숲길이고, 나무나 바위, 어느쯤에서 만나는 시냇물이나 마을만이 올바르게 가고 있는지 아닌지를 말해주었다.
그걸 가지고 어떻게 길을 찾는지 매번 이상하다.
이 세계 사람들은 몸속에 나침반이라도 가지고 태어나나.
적어도 나한테는 그런 편리한 물건이 없다.
제니가 간단하게 지도를 그려주고 그 옆에 세세히 설명을 적었지만, 며칠 걷다 보니 어느새 눈치채지 못한 사이 잘못된 길에 접어들어 있었다.
이제 슬슬 나와야 하는 마을이 하루 반을 지났는데도 보이지 않아.
그 마을을 지나면 마의숲이라고 했는데, 마을은커녕 마의숲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길을 잘못 들었어도 어쨌든 마의숲이 보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뭔가가 잘못됐다.
심지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길을 접어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타티아나가 있어서 좀 낫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녀도 이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데다 마의숲까지는 가본 적이 없어서 길을 모르겠다고 한다.
“지도만으로는 역시 어렵네요. 일단 한 번 가본 길은 확실하게 기억할 수 있는데.”
그건 대단하다.
나는 한 번 갔던 길도 뒤돌아서면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다.
지구에 살 때는 내가 길치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는데.
아니, 내비게이션과 표지판이 없으면 지구의 누구도 나처럼 길치였을 것이다.
허허벌판에서 동서남북을 구별할 수 있는 사람조차 없을 거라고 생각해.
해가 기울어 있는 걸 보고 동서를 아는 나는 대단한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하늘을 보다 나는 고개를 떨궜다.
동서만 안다고 해서 길을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세계의 지도는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어.
어쨌든 다시 되돌아가면서 제니가 그려준 것과 비슷한 장소를 찾아야 한다.
할머니처럼 구부러진 나무라든가 다른 것보다 미묘하게 큰 삼각형 바위라든가.
어쩐지 오다가 그런 걸 본 것 같기도 하지만 비슷한 게 다섯 개쯤 있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아.
고개를 떨구는데, 우리보다 한참 앞서 뛰어다니던 렐라가 갑자기 멈춰 섰다.
“삐빗!”
왜인지는 모르지만 되돌아온다.
날개를 퍼덕이는 모습이 조금 당황한 것 같다.
내 앞까지 곧바로 달려온 렐라가 발등을 콕콕 쪼았다.
올려달라는 신호다.
아프다, 이 녀석아.
나는 얼른 손을 내밀어 렐라를 잡았다.
빨리 올려주지 않으면 계속 쫀다.
느낌 탓인지 모르겠는데, 렐라의 부리가 점점 더 단단해지는 것 같다.
어제와 오늘을 비교하면 잘 몰라도, 열흘 전과 오늘의 강도는 확실하게 다르다.
‘조금씩 커지고는 있는 건가.’
보기에는 여전히 작지만.
머리에 렐라를 올려주자, 녀석이 요란하게 날개를 퍼덕였다.
“삐빗, 삐빗!”
오늘따라 유난히 시끄럽다.
흥분한 것 같은데 대체 왜 그러는 건지.
“렐라야, 왜 그러니?”
타티아나가 까치발을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렇게 해도 내 머리 위는 보이지 않을 텐데 그녀는 매번 그런 행동을 한다.
톡톡 위로 몸을 튕기던 타티아나가 문득 동작을 멈췄다.
“어!”
그녀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진다.
렐라에게 무슨 일이 있나 했지만, 가만히 보니 그녀의 시선은 렐라 위를 향하고 있었다.
“왜 그래?”
이상해서 고개를 돌려 하늘을 보자, 아주 먼 곳에 태양이 두 개 있었다.
큰 태양과 작은… 태양?
“어라.”
태양처럼 빛나는 게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태양이 날아다닐 리 없는데.
“저, 저, 저, 저거, 혹시 불사조 아닌가요?”
타티아나가 손가락으로 날아오는 태양을 가리키며 말했다.
설마, 그럴리는 없지.
만일 저게 불사조리고 해도 어떻게 우리가 여기에 있는 걸 알겠… 아니, 가만있어봐라.
‘… 그러고 보니까 나 숲에서 나올 때도 길을 잃었었구나.’
도시를 찾아 숲을 나왔을 때, 한참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 순간 길이 없어진 적이 있었다.
문득 내 시선이 옆을 향했다.
활처럼 이상한 모양으로 길게 뻗은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길을 잃어버렸을 당시에도 저 나무를 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설마.’
새끼를 잃었다고 십 년 넘게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죽일 기회만 노리던 거대곰이 생각났다.
다시 하늘을 쳐다보자, 아까보다 날아오는 태양이 조금 크게 보였다.
아직 모습이 확실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저건.
“진짜로 불사조 같은데.”
설마 새끼 데려왔다고 반가워서 마중 오는 건 아닐 것이다.
“어쩌지.”
잘은 모르겠지만 새도 냄새를 쫓아 추적할 수 있는 모양이다.
저 불새는 아무래도 나와 렐라 냄새를 쫓아온 것 같아.
진짜 어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