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67)
067 보라색 눈동자의 의미
한 걸음 한 걸음, 남자가 가까이 올 때마다 점점 더 피부가 저릿하다.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이상해.’
처음에는 바람 마법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닌 것 같아.
내 이복형제를 사칭했던 남자가 스스로를 바람 마법사라고 말했지만 정말로 그런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나는 나 외의 바람 마법사를 모른다.
내가 옳다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피부가 저릿한 이 감각은 아무래도 마법과는 다른 것 같다.
마법과는 종류가 다른, 조금 더 본능적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름이 돋거나 오싹해지는 것과 흡사한 느낌이다.
‘이건 조금 혼란스럽군.’
남자의 몸에서는 분명 부자연스러운 바람이 휘몰아치지만 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바람이 멋대로 몸에서 흘러 튀는 것처럼 보인다.
나와 가까워지면서 남자의 몸에서 일어나는 바람은 더욱 세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흙먼지만 휘몰아치더니 어느새 나뭇가지가 꺾이고 꽃송이가 바람에 뜯어져 허공으로 날렸다.
나뭇가지와 꽃송이가 떨어져 남자 뒤쪽으로 지저분한 꽃길이 만들어졌다.
어떻게 한다.
상대가 적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없다.
문득 어머니의 말씀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내가 3살인가 4살인가, 어릴 때 들었던 것이다.
[상대가 누구인지, 어떤 목적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정체를 모르는 자가 가까이 오면 일단 죽일 준비부터 해라.]나는 숨을 들이마시고 하체에 무게중심을 옮겼다.
등에 메고 있던 도끼를 뺀다.
바람 마법사와 싸울 때는 어떻게 하는 게 정석인지 모르겠지만, 어머니는 항상 말씀하셨다.
상대가 공격하기 전에 먼저 죽이면 장땡이라고.
마법이라곤 한 톨도 사용할 수 없는 어머니지만, 그것 하나로 이 세계 최강이 되었다.
‘마법사든 드래곤, 불사조든, 어머니보다 빠른 사람은 없지.’
내가 집을 나서기 전 어머니는 더 이상 나를 막을 자신이 없다고 말씀하셨지만, 그건 살짝 아들 편애다.
나도 바람을 이용해 남보다 빠르게 움직이지만, 어머니는 나보다 더 빠르다.
어머니가 진심으로 죽이려고 덤비면 나는 그 자리에서 죽는 수밖에 없다.
내가 아무리 힘이 강해도 그걸 사용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으니까.
아, 하는 순간 머리가 떨어져 있을 거야.
어머니는 아마 육체적인 면에서 천재 중의 천재에 속할 것이다.
‘좋아, 살기가 느껴지는 순간 죽인다.’
살기가 없어도 바람이 갑자기 움직이는 순간 죽이자.
무슨 행동이라도 일단 낯선 걸 하면 일단 도끼부터 날려.
그렇게 생각하고 도끼 쥔 손에 힘을 주는데, 남자가 약간의 거리를 두고 멈춰셨다.
남자가 가만히 나를 보다 입을 열었다.
“과연…. 자세가 훌륭하다. 낭비 없구나. 실전에 특화된 것이다. 헬가가 잘 가르쳤어.”
“….”
어머니 지인인가.
하지만 조금 이상하다.
이 남자의 억양이나 말투는 평민의 것이 아니었다.
귀족, 그중에서도 아버지처럼 고급 언어를 사용하는 귀족인 것 같다.
남자의 억양이나 말투가 엔데스 영주 일족인 파울보다는 아버지에 가까웠다.
어머니 지인 중에 귀족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 남자의 말은 왕국어다.
어머니는 원래 왕국어를 사용하지 못한다고 들었다.
어머니 지인이라고 하기에는 앞뒤가 맞지 않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이 남자의 목소리가 조금 묘했다.
왠지 울음을 참고 있는 듯 들렸다.
남자가 잠시 말을 하지 않는 걸 보면 진짜 울음을 참느라 그러는 건지도 모른다.
확신할 수는 없어도 두건이 파르르 떨리는 걸 보면 그런 것 같아.
‘대체 뭐지.’
어쨌든 적은 아닌 것 같다.
그러고 보니 피부가 저릿하던 감각이 어느새 누그러들었다.
아직 피부가 약간 튀는 듯한 느낌은 있지만 처음 느꼈던 것 같은 요란함은 없다.
남자가 두건 속에서 목을 가다듬더니 입을 열었다.
“방금 느낀 감각에 주의해야 한다. 그건 같은 눈동자를 가진 사람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이니까.”
남자가 말하며 두건을 벗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햇빛에 반짝이는 백금발이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 박힌 것처럼 빛나는 보라색 눈동자.
얼굴 윤곽에서 콧대와 입가, 턱선에 이르기까지, 내가 아는 얼굴과 비슷한 사람이 거기에 서 있었다.
“….”
아버지가 늙으면 이런 모습이 될까.
아버지와 닮았다.
정말 많이 닮았다.
누가 봐도 부자간이라는 걸 알 만큼 닮았어.
“설마….”
내가 중얼거리자 남자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웃는 것 같다.
“목소리가 아버지를 닮았구나.”
확정이네, 이거.
내 아버지의 아버지다.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아마 지금의 내 얼굴은 바보를 열 개쯤 합해놓은 것보다 더 바보 같을 것이다.
아버지의 개인 집사가 나타났을 때는 잡몹이라는 느낌이었다.
그러면 보통 그 뒤에 나타나는 건 거물이어도 중간 보스일 것이다.
그게 순서겠지.
갑자기 잡몹에서 라스트 보스로 건너뛰는 건 대체 어느 나라 룰이야.
아버지가 어머니한테 납치당한 지 20년이 훌쩍 넘었다.
아버지 부인과 애인은 물론이고, 공작가의 추적대도 죽였다고 들었다.
추적대의 경우에는 한두 번이 아니라 여러 번이다.
아무리 내가 아버지 핏줄을 잇고 있어도 원한은 있을 것이다.
미운 여자의 자식이라는 기분이 아예 없지는 않겠지.
거기에 나는 어머니 판박이니, 얼굴을 보면 싫어도 아버지가 당한 일이 떠오른다.
나라면 그래.
이렇게 두건까지 쓰고, 호위 한 명 없이 내 앞에 나타난 걸 보면 적대하거나 죽이려는 건 아니겠지만, 나는 미운 놈이다.
근데 왜 일부러 찾아오는 거야.
공작가에 혈육이 부족해서 나 아니면 대 이을 남아가 없는 것도 아닐 텐데.
상대의 의도를 잡을 수 없어서 무슨 태도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잠시 굳어있는데, 남자가 입을 열었다.
“나는 네 할아버지다.”
알아요.
“아버지에게 내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느냐?”
왠지 보통의 조손처럼 이야기하려는 모양이다.
“….”
아무래도 불사조 깃털 의뢰는 공작가에서 낸 것 같다.
무슨 의도인지 몰라서 조금 무섭지만, 상대방이 굳이 옛 사정을 쑤시지 않는데 내가 말을 꺼내는 것도 이상하겠지.
여기서는 구렁이 담 넘어가듯 은근슬쩍 넘기고 다음부터는 관계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좋겠다.
심장에 좋지 않으니 정말로 만나고 싶지 않아.
나는 도끼를 다시 등에 꽂고 몸을 숙였다.
어릴 적 아버지에게 수천 번 반복해서 배운 동작으로 절한다.
옷차림과는 맞지 않지만 상대가 귀족이니 이렇게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할아버님. 저는 라파라고 합니다. 저는 단순히 오겐과 헬가의 자식으로 자라, 아버지의 출신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러니 아버지 어머니 일로 나를 탓하지 말아달라는 은근한 표현이다.
할아버지, 발테르 공작이 낮은 소리로 웃었다.
“그렇게 경계하지 않아도 괜찮아. 아직 대외적으로는 아직 밝힐 수 없지만, 너는 내 핏줄. 오늘은 단순히 할아버지가 손자를 만나러 온 것이다.”
에… 그래?
어머니가 죽인 사람들의 원한은 괜찮은가.
내 표정이 미묘했던 모양이다.
발테르 공작이 웃으며 안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이리 오너라. 짧은 시간밖에 없다. 그동안 해두고 싶은 말도 있으니 서두르자.”
정원에는 작은 테이블이 있었다.
바람을 막기 위한 울타리가 둘러져, 속으로 들어가면 바람이 닿지 않는다.
의자 옆에는 보온을 위한 듯 보이는 담요가 놓여 있었다.
공작과의 만남을 위해 준비된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그쪽으로 걸어가는 동안에도 공작의 몸에서는 바람이 쏟아져 나와 사방으로 퍼지고 있었다.
흙먼지가 날려 아름답던 정원이 엉망이 되었다.
바람막이가 있어봤자 공작때문에 그 안도 엉망이 되어 버릴 것 같다.
“곤란한 일이야. 널 만나니 반가운 마음에 제어가 되지 않는구나. 이래 봬도 마법사로서는 누구보다 완벽하다는 말을 듣고 있는데.”
테이블에 도착하자, 공작이 내 몸 주위로 손가락을 몇 번 휘저어 공간을 만지더니 가만히 내 얼굴을 보았다.
“바람의 흐름이 있구나. 지금은 바람을 제어하고 있느냐?”
“네.”
“평상시에도?”
“네. 아버지가 평소에도 바람을 조금씩 흘리며 제어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계속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호오.”
공작의 눈이 가늘어졌다.
입술 끝이 올라간다.
“그래, 힘들었겠구나. 클라우스는 때로 가혹한 면이 있지.”
“….”
기억하지 못할 만큼 어릴 때부터 해온 일이다.
전혀 힘들지 않았다.
처음 아기가 걸을 수 있게 될 때까지는 수없이 실패하고 힘들어도, 일단 걷는 걸 배운 뒤부터는 그게 자연스러운 것과 비슷할 거다.
어릴 때부터 계속 해온 일이기 때문에 힘들다는 감각이 없었다.
오히려 너무 제어에만 치중했기 때문에 꺼내 사용하는 것이 어렵지.
내가 그렇게 설명하자, 발테르 공작은 멍하니 나를 보다 갑자기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잠시는 공작의 몸에서 나오는 바람이 심하게 흔들렸지만, 그것은 조금씩 잠잠해졌다.
공작이 웃음을 멈추고 잠시 지나자 바람은 완전히 가라앉았다.
의식적으로 바람을 제어한 모양이다.
“처음 태어날 때부터 발에 족쇄를 채우면 그게 무거운지도 모른다는 건가. 클라우스가 널 어떻게 길렀는지 알 것 같구나.”
그렇게 말하면 아버지가 왠지 끔찍한 사람인 것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아무렇지 않다.
처음부터 족쇄 같은 건 없었다고 생각해.
“앉거라. 시간이 얼마 없으니 우선 바람을 이용하는 방법부터 가르쳐주마. 보통은 제어하는 걸 배우는 것이 가장 어려운데, 너는 그 단계를 완벽하게 익혔으니 나머지는 요령만 익히면 쉬울 게야.”
공작의 눈빛이 아주 조금 흐려졌다.
“클라우스는 마법을 사용할 수 없었으니 몸으로 익혀야 하는 요령은 가르치지 못했을 것이다. 하고 싶어도 못 했겠지.”
공작은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마법사가 바람을 이용하는 방법은 모두 다르다. 보통은 스승이 방법을 가르치면 자기 것으로 소화해 내는 식으로 배우지.”
공작이 테이블 위로 손을 내밀었다.
손을 달라는 건가.
내가 손을 내밀자 조용히 잡고 입을 열었다.
“내 바람의 흐름을 느껴보아라.”
말과 동시에 가느다란 바람이 손바닥을 간지럽히며 솟아 조금씩 밖으로 퍼졌다.
“….”
뭘 말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
바람을 흘리는 건 나도 한다.
큰 힘을 사용할 때도 작은 바람을 일으킬 때도 요령은 똑같다.
지금 공작이 하는 것도 비슷할 것이다.
내 의문을 공작도 아는 모양이다.
빙그레 웃더니 다시 바람을 흘렸다.
“의식을 집중해. 너는 아까 나를 처음 만났을 때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을 것이다. 피부가 저릿하고 이 공간의 공기 전체가 움직이는 것 같지 않았더냐?”
“….”
“그것은 보라색 눈동자를 가진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느끼는 감각이다. 그때의 감각을 의식하고 내가 흘리는 바람을 느껴봐.”
나는 공작이 하라는 대로 손바닥으로 흐르는 바람에 의식을 돌렸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잠시 그렇게 하고 있는 동안 뭔가가 톡톡 공기 중에서 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미리 뭔가 있다고 알지 못하면 느껴지지 않았을 것 같은, 정말 미세한 것이었다.
정말 다른 게 있었는지 문득 의심할 만큼 내가 느낀 것은 희미했다.
하지만 한 번 이건가 싶은 느낌이 들자, 비슷한 것이 또 느껴졌다.
뭔가 공기 속에 톡톡 튀는 것이 섞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공기 속에 뭐가 있어.
왠지 조금 소름이 돋았다.
공작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알겠느냐?”
“….”
공기속에 있는 게 뭔지는 모르지만, 아마 보통 사람은 못 느끼는 걸 거다.
왠지 좋지 않은 예감을 느끼며, 나는 침을 삼켰다.
“혹시… 보라색 눈동자에 뭔가 의미가 있습니까?”
내가 묻자 공작이 미소 지었다.
“그래, 의미가 있지. 보라색 눈동자는 정령의 증거다.”
나왔다, 판타지.
마법까지는 괜찮아.
하지만 인간도 아닌 정령은 좀 너무한 것 아닌가.
이제 진지하게 내가 소설의 세계에 환생한 게 아닌지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