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68)
068 잘못하면 젖소가 되는 거야
계절은 이미 겨울이다.
방안이 아닌 외부 정원은 아무래도 추웠다.
물론 나는 괜찮아.
피부가 두껍기도 하지만, 마의숲은 여기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춥기 때문에 단련되어 있다.
마의숲은 겨울이 되면 입김이 공기로 나가자마자 하얗게 얼어붙는 곳이다.
숨 쉴 때마다 콧구멍이 얼어 달라붙고, 운동하다 땀이 배면 서리 내린 것처럼 피부가 하얗게 얼어붙었다.
어릴 때부터 그런 환경에서 자란 내게 이 정도 추위는 껌이지.
하지만 발테르 공작은 나이가 많으니 이런 외부 자리에 앉아있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 안쪽으로 들어가자고 권하려는데, 공작이 한쪽에 접혀있던 담요를 집어 들었다.
담요 사이로 얼핏 납작한 철 수통이 보였다.
뜨거운 물을 넣은 뒤 두꺼운 천으로 감싸 보온에 사용하는 것이다.
이불 속에 넣어두면 아침까지 따뜻하게 잘 수 있다.
모양은 다르지만 엔데스의 여관과 마의숲 집에도 몇 개 있었다.
그쪽은 물이 아니라 숯을 담는다.
미리 그런 물건까지 준비해 두다니, 귀족을 상대로 하는 상회는 준비성이 좋다.
이런 소소한 일에까지 신경을 쓰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공작이 담요를 든 채 몸을 조금 구부렸다.
내 무릎에 그걸 올린다.
“날이 춥구나. 잘못하면 감기에 걸린다.”
“… 그… 감사합니다.”
설마 그걸 나한테 올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내 옆에도 똑같은 게 있는데.
만일 추우면 나는 내 몫의 담요를 끌어당겨 덮으면 되지 않을까.
각자 덮을 수 있게 준비되어 있는데 일부러 상대방에게 덮어줄 필요까지는 없다.
심지어 나는 덮을 필요도 없는데.
마의숲에 있을 때 아버지는 밤마다 숯 넣은 구리통을 세 개씩 침대에 넣고 잤지만, 나는 한 개도 넣지 않았다.
보온통은 의외로 전기장판보다 후끈거려서 처음에는 따끈하고 기분 좋아도 한 시간만 있으면 더워 죽는다.
어머니는 근성으로 그 더위를 참고 아침까지 아버지랑 누워 있었지만, 잠잘 때는 살짝 추운 정도가 잠이 잘 와 딱 좋다.
나는 어머니에 비하면 추위를 잘 참는 편은 아니어도 이 정도 날씨에 담요가 필요한 허약자는 아니다.
“….”
어쨌든, 이건 아무래도 내가 상대를 덮어줘야 하는 상황인 거겠지.
어쩔 수 없네.
나는 내 몫의 담요를 공작의 무릎에 올렸다.
왠지 조금 낯간지럽다.
“이런… 고맙구나.”
공작이 부드럽게 웃는다.
웃는 눈매가 아버지의 것과 겹쳤다.
나와 아버지는 전혀 닮지 않았지만, 공작은 정말로 아버지와 많이 닮았다.
젊었을 적에는 이분도 미남으로 꽤나 인기가 있었을 것 같다.
그 유전자가 왜 나한테는 손톱의 때만큼도 이어지지 않은 건지, 조금 슬퍼졌다.
‘그나저나 아버지는 괜찮으실까.’
이제 겨울로 접어들면 숲은 모든 것이 얼어붙는다.
마의숲 겨울은 아버지에게 끔찍할 만큼 추울 것이다.
게다가 아버지는 의외로 외로움을 탄다.
어머니야 아버지 한 명만 있으면 시베리아 벌판이나 북극에 혼자 떨어져도 얼마든지 행복할 테지만, 아버지에게 둘만의 그 숲은 너무 적막한 것이 아닐까.
‘조금 걱정이네.’
잠시 생각에 잠기는데 공작이 내 손을 잡았다.
“얘야. 이 나라 왕조가 처음 시작된 일화를 알고 있느냐?”
“예.”
내가 어릴 때 아버지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신화와 각 나라의 역사, 이 나라 왕국이 시작되었을 무렵의 상황이나 굵직한 전쟁들.
별다른 오락거리가 없는 숲에서 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내 마음을 한없이 두근거리게 했다.
내가, 아니 어린 라파가 전사를 인생의 목표로 삼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가 원인이다.
광대한 대륙을 둘러싼 온갖 음모와 전쟁 이야기는 어린아이의 상상력을 부풀려, 꼬마였던 당시의 나는 현실과 이야기를 잘 구분하지 못했다.
그 어중간한 시기에, 멧돼지를 잡아 메고 오거나 손쉽게 마수 모가지를 자르는 어머니의 모습은 강하게 내 마음을 쳤다.
어렸던 나는 그런 것들을 한데 뭉뚱그려 헤라클레스나 오디세우스 같은 영웅을 전사라고 생각했던 거다.
아직도 기억난다.
종횡무진 도끼를 휘두르며 뱀 머리 백 개 정도 달린 마수를 깨부수는 내 멋진 공상 속의 모습이.
커가면서 조금씩 내가 그리는 전사의 모습은 변해갔지만, 정말 어릴 적 처음의 소망은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해준 이야기 중에 방금 공작이 말한 아레논 왕국의 시조 이야기가 있었다.
아레논 왕국을 세운 사람은 백금발과 보라색 눈동자를 가진 신의 아들이다.
신이 이 땅의 인간을 위해 사람 형상을 한 자식을 내려보냈다고 한다.
전생을 기억한 뒤로는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거창한 이야기인가 속으로 웃었지만, 어릴 때는 진심으로 믿었다.
“그 이야기는 왕가가 만들어낸 것이지만 완전한 허구인 것은 아니다. 다만 신이 아니라 정령이었을 뿐이지.”
그게 정말이라고?
내 표정이 이상했던 모양이다.
공작이 크게 웃었다.
“하하. 믿을 수 없느냐.”
“….”
네.
전혀 믿을 수 없다.
이 세계에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인간에게는 유전자라는 것이 있어서 머리카락이나 눈동자 색, 부모의 형질이 자식에게 전해진다.
당연히 눈동자 색도 그런 범주의 것이다.
과학적으로 이미 증명되어 있는, 물론 이 세상에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고 마법이라는 괴상한 현상도 있지만, 어쨌든 인간의 몸은 그런 것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거기에 정령이 개입할 여지는 전혀 없다.
물론 어린 라파였다면 눈을 반짝이면서 그 말을 믿었겠지만, 지금의 나는 네, 그렇군요 하며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어리고 순박하지 않다.
“글쎄, 눈에 보이는 증거라면 나 역시 너에게 내밀 수 없겠구나. 하지만 이 세상에 마법이 있는 것 자체가 정령이 존재한다는 증거다. 네가 사용하는 바람이나 물, 불의 바람이 모두 정령이 일으키는 것이야.”
“….”
공작이 내 표정을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적고 많음의 차이일 뿐, 정령은 어디에나 있다.”
보통의 마법사는 정령과 통하는 인간이다.
그게 과연 어떤 건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없지만, 그 인간의 뭔가가 정령의 마음에 들어 희망을 이뤄주는 거라고 한다.
마법사의 주문에 정령이 언급되는 이유는 그래서다.
진실을 알지 못한 채 인간은 보이지 않은 정령에 의지해 마법을 사용하고, 때로 정령의 축복을 원한다.
문득 엔데스에 있는 영주의 딸이 떠올랐다.
능력은 미미하고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수준이라도, 어쨌든 그 적은 능력조차 정령이 이뤄주는 거라고 하면.
‘그 오만하고 성격 나쁜 여자도 마음에 들어 하는 정령이 있다는 건가.’
나라면 금화를 트럭으로 갖다줘도 싫어할, 아니, 트럭으로 한 대 정도면 조금쯤은 말을 들어줄 생각도 할 것 같기는 한데, 흠.
대체 호감의 기준이 뭐야.
정령에게 있어 선하고 악한 것, 추하고 아름다운 것은 상관없는 모양이다.
“왕가에서 내려오는 비화가 있지.”
거기에 따르면, 먼 옛날 한 여성이 아버지를 알 수 없는 아이를 낳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남몰래 남자와 통정한 것인가 의심했지만, 태어난 아이는 눈과 머리카락이 특이하고 그 당시에는 없었던 기묘한 힘을 가졌다.
손을 휘저으면 바람이 일어나고, 큰 소리로 울면 새와 나비가 날아와 주위를 돌며 어른다.
밤이나 낮이나, 아이와 모친 주위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두 사람이 지나갈 때면 갑자기 온갖 나무에서 꽃이 피기도 하고, 두 사람을 욕한 자에게는 불행한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가뭄이 들어도 두 사람이 사는 주위에서는 비가 내린다.
홍수가 나 강이 넘쳐도 물길이 두 사람의 집 근처에 닿으면 갈라져 다른 길로 향했다.
그쯤 되자 사람들도 여성이 인간과 정을 통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아이가 이 왕국의 시조다.
공작가는 왕가에서 뻗어 나온 가문이다.
초기에는 왕위 계승권을 포기한 왕자가 공작가의 가문에 입양되어 가문을 잇는 일도 종종 있었고, 양가의 혼인은 지금까지도 몇 대에 한 번 정도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왕가 내부의 이야기는 공작가에도 자연스럽게 흘렀다.
“하지만 왕가에서도 신화는 신화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단순히 필요해서 만들어진 거라고.”
초기에는 대부분의 왕족이 보라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그저 왕족은 강력한 마법사 일족이라고만 생각했다.
눈동자에 뭔가 의미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보통 인간과 같은 사람이 점점 더 많이 태어나게 되었다.
보라색 눈동자의 수가 적어지면서, 나중에야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번 끊어지면 그 피에서는 더 이상 태어나지 않는 거야. 절대로.”
“그게 무슨 뜻입니까?”
“보라색 눈동자를 가진 부모에게서 그런 자식이 태어나지 못하면 그쪽에서는 더 이상 같은 눈동자가 나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
유전이라는 건 그렇게 되어있지 않다.
다음 대에서 태어나지 않아도 그다음, 혹은 몇 대 뒤에 다시 나타날 수 있는 게 유전인데, 완전히 끊긴다고?
그건 좀 이상한데.
공작이 나를 보고 조금 웃었다.
아마 내 표정은 멍청했다 멈칫했다 찡그렸다, 대강 그런 모습으로 여러 번 번갈아 가며 바뀌고 있을 거다.
응, 이 얼굴로 그런 표정이면 뭔가 상당히 기묘하네.
공작이 웃는 것도 당연하다.
“너는 표정이 자주 변하는구나.”
그렇습니까.
아버지도 가끔 그런 말을 하긴 했는데, 비슷한 얼굴의 할아버지에게 또 들으니 느낌이 이상하다.
내 표정이 또 변한 모양이다.
공작은 다시 웃더니 조금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지금까지 한 이야기를 미루어 보면 알겠지만, 우리는 보통 마법사와는 다른 종류의 인간이다. 굳이 말하자면 인간으로 태어난 정령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
“….”
그 말 한마디로 아까부터 공작이 하던 이야기가 차락 차락 소리 내며 연결되기 시작했다.
정령.
보라색 눈동자.
한 번 끊어지면 끝인 핏줄.
줄어드는 숫자.
지금은 왕가와 공작가를 모두 합해 열 명도 안 된다고 했던가.
거기에 보라색 눈동자를 갖고 태어났는데 마법을 쓸 수 없는 아버지.
아, 이거 안 좋은 방향이다.
나도 모르게 움찔하면서 엉덩이가 뒤로 빠졌다.
대번 경계 태세가 된다.
공작의 눈이 가늘어졌다.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차린 모양이구나.”
“….”
나는 잠깐 경계했지만, 곧바로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차근차근 내가 알아듣도록 이야기한 걸 보면 공작은 단순히 내가 이해했으면 하고 바랐던 것뿐이다.
할아버지와 싸워야 하거나 이 저택 주변을 누군가가 포위하고 있는 건 아니다.
만일 나쁜 마음을 가졌다면 나한테 설명해줄 필요가 없었다.
공작의 표정이 진지하게 변했다.
“내 말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이야기를 들어보자.”
“….”
역시 부자간이구나.
아버지와 똑같다.
아버지도 곧잘 이야기 끝에 이런 식으로 테스트하곤 했다.
아버지는 못 한다고 화를 내거나 다그치는 성격이 아니었지만, 뭔가 가르칠 때는 제대로 이해할 때까지 이야기를 달리하면서 되풀이한다.
틀리면 그만큼 이야기는 더 불어나서 처음 시작이 뭐였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할 만큼 범위가 광대해졌다.
‘아버지는 그런 식으로 할아버지한테 배운 건가.’
그럴 것 같아.
정답을 내놓지 못하면 계속 이 문답이 이어질지도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어깨가 축 처졌다.
“보라색 눈동자는 후계자의 증명이 아니라, 단순히 피를 잇는 역할이라고 이해했습니다.”
“더 간단하게 말하라고 하면 어떻게 표현하겠느냐?”
“새끼 낳는 젖소라고.”
후계자가 되기 위해 반드시 보라색 눈동자여야 하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그런 사람의 힘이 강했기 때문에 조건이 맞았을 뿐.
당사자에게 힘이나 능력이 없다면, 그 피를 얻기 위해서 어딘가에 가둬두고 자식만 낳게 할 수도 있다.
공작은 내게 말하고 싶은 걸 거다.
공작가뿐 아니라 왕가에서도 숫자가 적은 이 눈동자의 인간을 노리고 있다고.
잘못하면 진짜 지하감옥에 끌려가 씨종자가 될지도 모른다.
공작이 빙그레 웃었다.
나는 정답을 맞힌 것 같다.
그런데 어째서 처음부터 툭 까놓고 말하지 않고 이렇게 빙빙 돌려서 알려주는 거지.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성격이 나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