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69)
069 사라문즈 공국의 공주
“… 그런데, 클라우스… 네 아버지는 어떻게 지내느냐?”
공작이 시선을 떨어뜨리며 물었다.
나와 이야기하면서도 가끔 뭔가 묻고 싶은 기색이 있었는데, 아버지 얘기가 궁금했던 것 같다.
“….”
20년 넘게 소식조차 듣지 못했을 테니 당연한 일이겠지.
하지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납치범인 어머니와 하하호호 너무 잘 지낸다고 말하기는 좀.
대답하기가 곤란하다.
내가 난처한 표정을 짓자 공작의 이마에 작은 주름이 생겼다.
표정에 그늘이 진다.
“솔직하게 말해다오. 괜찮아.”
아, 오해했구나.
아버지 상황이 좋지 않아 대답하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런 걱정을 할 정도면 그냥 진실을 말하는 편이 나을 거다.
“아버지는 잘 지내고 계십니다. 숲이기 때문에 귀족처럼 생활할 수는 없지만 필요한 물건은 다 있고 어려움은 없어요. 어머니와 아버지는 뭐랄까, 평범한 부부로 살고 계시죠.”
“… 평범한 부부…?”
공작의 표정이 이상하다.
알겠어, 그 마음.
나도 숲에서 밖에 나와 부모의 사정을 들었을 때 그런 표정이었다.
공작과 내 생각에는 다소 차이가 있을 테지만 결론은 비슷할 것이다.
“저는 숲에서 나오기 전까지 아버지 어머니가 사랑의 도피를 한 게 아닐까 생각했었죠. 어머니가 아버지를 더 사랑하는 건 어린 눈에도 보일 정도였지만, 아버지도 어머니를 아끼십니다. 정말 평범한 부부예요.”
“… 뭐… 클라우스가… 그… 여자를 아낀다고…?”
공작의 표정이 정말 뭐라고 표현하기 어렵게 변했다.
어머니 외모를 생각하면 공작이 놀라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내 부모였기 때문에 별생각 없지만, 내 아내가 될 사람이 나랑 똑같이 생겼다면, 그래, 절대로 평범하게 부부로 살지 못했을 거다.
“….”
미안해, 어머니.
절대로 안 될 것 같아.
나는 인간이 외모보다는 내면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내 아내로 내 얼굴은 아니다.
정말로 미안해요, 엄마. 나는 미녀가 좋다.
“….”
이 얼굴로 여자한테 인기 끌 일은 없으니 나를 보고 자연스럽게 웃어주는 타티아나는 귀중한 사람이다.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생활에 대해 약간 이야기했다.
바느질 서툰 어머니 대신 아버지가 구멍 난 셔츠를 수선하려다 바늘에 찔렸던 일이나 그래서 어머니가 놀라 얼굴이 백지장처럼 되었던 일.
어머니가 너무 과보호라, 유난히 추운 겨울이 되었을 때는 두꺼운 털로 아버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덮는 코트를 만들었다.
아버지가 그걸 입고 걸어 다니면 털괴물처럼 보였다.
게다가 짐승의 털가죽은 상당히 무겁기 때문에 움직이기도 힘들다.
결국 그 코트는 하루 만에 창고로 들어갔다.
하루는 어머니가 드문 마수를 사냥해왔다.
아버지가 처음 보는 마수라며 잘했다고 칭찬해 주자 한동안 그 마수가 집안에 넘쳤다.
초기에 그만두라고 말했으면 됐을 텐데, 아버지가 자꾸만 칭찬했기 때문에 어머니의 행동에 박차가 걸렸다.
침대 외에는 발 디딜 자리가 없을 정도가 되어 겨우 정신 차린 어머니를 보고 아버지가 배꼽을 잡고 웃었다.
“집이 숲속에 떨어져 있다 보니 오락거리가 없기 때문인 것 같아요. 아버지는 그런 식으로 장난을 자주 치시죠.”
내가 그렇게 말하자, 놀란 표정으로 듣던 공작의 눈매가 자연스럽게 누우며 웃었다.
눈꼬리에 잡힌 주름이 약간 젖은 것 같다.
“클라우스가 그런 일을 하다니,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구나. 조금 더 들려다오.”
그때였다.
링… 링… 어디에선가 맑은 종소리가 울렸다.
“시간이 다 됐구나. 듣고 싶은 것 말해두고 싶은 게 아직 많은데….”
공작이 작게 숨을 쉬었다.
“얘야, 오늘 한 이야기나 나와의 만남은 비밀이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네 동행에게도.”
“예, 할아버님.”
발테르 공작은 테이블 위에서 내 손을 강하게 한 번 잡았다.
몸을 일으켜 이마에 살짝 닿는 듯한 키스를 한다.
아니, 좀 부끄러운데요.
이 나이, 이 덩치로 할아버지한테 키스를 받다니, 이 나라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부끄럽다.
얼굴이 벌겋게 되자, 공작이 웃으면서 두건을 머리에 뒤집어썼다.
“다음에는 공작가에서 보자꾸나.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고 있겠다.”
공작이 막 몸을 일으키는데, 정원과 연결된 문으로 타티아나의 모습이 조금 보였다.
이제 막 목욕을 마치고 돌아온 모양이다.
하녀가 뭔가 말하자 타티아나가 고개를 돌렸다.
떠나려던 공작이 잠시 서서 그녀의 모습을 보았다.
왠지 모르지만 가만히 쳐다본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려 그 자리를 떠났다.
공작은 왔을 때처럼 정원을 가로질러 멀어졌다.
나타날 때는 공작이 걸을 때마다 바람이 일어났지만 지금은 조용하다.
공작이 했던 말을 되새김질해 본다.
‘감정 제어가 안 돼서 그렇다고 했지.’
공작의 모습을 보면 원수 아들이라 그랬던 건 아닐 것이다.
‘단순히 기뻐서.’
이야기하는 동안 충분히 느낄 만큼 공작, 할아버지는 손자를 만나 기뻐했다.
원수 취급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평범한 할아버지 손자 관계가 된 것 같다.
기분이 조금 이상하다.
나는 공작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쳐다보았다.
근데 엄청 빠르네.
나처럼 바람을 이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는데, 나름의 방법이 있는 모양이다.
‘아, 그런데 이건 어떻게 되는 거지?’
공작의 바람 때문에 정원이 엉망이다.
‘설마 나한테 물어내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언뜻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한 것도 아니고, 뭐, 괜찮겠지.
“와, 와우, 이건 다 뭐죠? 여기만 태풍이라도 불었어요?”
타티아나가 문으로 나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방으로 막 들어가려던 참에 하녀가 말을 걸어서, 그녀는 공작의 모습을 보지 못한 것 같다.
“글쎄?”
나는 어깨를 움찔하며 걸음을 옮겼다.
“시간이 좀 걸렸네. 뭘 한 거야?”
말을 돌리려고 묻자, 타티아나의 얼굴이 환해졌다.
“목욕이죠. 여기 엄청나요. 꽃잎을 띄운 물에 목욕을 하더라구요. 나 머리에 향유도 발랐어요. 자, 맡아보세요.”
타티아나가 머리를 내 얼굴에 들이밀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아까부터 좋은 냄새가 난다.
나도 모르게 코가 벌렁거렸다.
피부도 평소보다 세 배 정도 투명해진 것 같고, 전체적으로 촉촉한 느낌으로 굉장히 예쁘다.
“….”
나름대로 이성은 철통이라고 생각하지만, 타티아나는 예쁘고 냄새는 너무 좋고, 이대로 승천할 것 같아.
좋지 않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냄새를 잘 맡지 못한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타티아나가 조금 더 몸을 밀며 머리를 흔들었다.
“어때요? 이제 냄새가 나나요?”
하나로 묶은 머리카락 밑으로 하얀 목덜미가 보였다.
본능이 불끈거린다.
내 마음이 짐승이 될 것 같아.
반쯤은 이미 짐승이다.
안 돼, 라파. 너는 인간이야. 짐승이 아니다.
나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응, 향기 좋네. 근데 배고프지 않아?”
시선으로 테이블을 가리키자, 타티아나는 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며 그쪽으로 톡톡 뛰어갔다.
하아아아아아아… 아쉽다. 압도적으로 아쉽다.
“뭐야, 이거. 엄청 맛있어요!”
타티아나 마음에도 든 모양이다.
그녀가 이것저것 먹는 동안 의뢰인이라는 남자가 찾아왔다.
불사조 깃털을 건네자 남자는 공손히 받은 뒤 금화 주머니를 내주었다.
약간의 대화를 나누는 동안, 어쩐지 이 남자도 내가 만난 사람이 공작이라는 건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남자도 상회에서도, 단순히 이곳에서 내가 누군가와 만날 거라는 사실만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 정도로 철저한 비밀이라면 역시 공작가가 날 원수 취급할지 모른다는 처음의 걱정은 당연한 것이었다.
‘인간의 모습을 한 정령이라.’
문득 어릴 적 아버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강해져라, 라파. 네 엄마를 뛰어넘을 만큼, 최강의 전사라는 네 엄마보다 훨씬 더 강해져.]그 말을 했을 때 아버지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나는 내가 강하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지만, 아버지는 혼자 힘으로는 그럴 수 없다.
어쩌면 매일 매순간, 평생 감금당해 아이만 낳는 인생이 닥쳐올지도 모른다고 공포에 잠겨 있었을지도 모른다.
전생에 가난하고 평범한 인간이었기 때문에 알 수 있다.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현실이 얼마나 마음을 좀먹는지 나는 안다.
아마 태어날 때부터 특별한 신분, 특별한 인간이었던 공작은 모를 것이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숲에서 살게 된 뒤에야 겨우 마음 놓고 웃게 되었던 게 아닐까.
문득 어머니, 아버지가 보고 싶어졌다.
*
개인실로 들어가자, 집사장이 조용히 술을 준비했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집사장은 그가 원하는 걸 내놓는다.
술을 한 모금 머금고 천장을 바라본다.
손자의 얼굴이 커다랗게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헬가와 정말 똑같이 생겼더군. 생각과는 다른 아이였어.”
“마음에 들지 않으셨습니까?”
조용히 옆에 서 있던 집사장이 물었다.
그의 말뜻을 알았을 텐데 일부러 다르게 말한다.
발테르 공작은 작게 웃었다.
“그럴 리 없겠지.”
우리 인간으로 태어난 정령은 주변에 자신의 정령을 몰고 다닌다.
그 정령이 많을수록 힘이 강한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자신의 정령과 소통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클라우스가 바로 그런 케이스였다.
그런 경우 부모의 정령은 자식에게 내려가는 것 같다.
정말 그런지, 왜 그렇게 되는 건지는 모르겠다.
단지 추정일 뿐이다.
“클라우스는 그 아이를 공작으로 기르지 않았더군.”
“….”
집사장의 눈이 약간 커졌다.
클라우스는 이상을 현실로 구현해놓은 듯한 후계자였다.
더러운 방법을 사용하는 경우가 다소 있지만, 그것까지 포함해서 클라우스는 공작에 가장 알맞은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정확한 판단력, 혈육조차 자를 수 있는 냉정과 결단력, 흠잡을 데 없는 외모와 매너.
태어나면서부터 공작으로 길러진 클라우스는 공작 자신보다 더 공작에 가깝다.
하지만 라파는 달랐다.
“매너나 능력은 괜찮은 것 같아. 잠깐 봤지만 완벽해. 어릴 때부터 모자라지 않도록 잘 교육한 것 같더군. 아마 귀족 사회에 대해서도 충분히 가르쳤을 거야. 공작으로 세워도 충분할 걸세.”
“그런데 왜 공작으로 키워지지 않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집사장의 말에 공작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 아이를 만났을 때의 느낌, 대화하면서 느꼈던 그 아이의 생각을 가만히 더듬어 본다.
“그 아이는 두 가지 경우를 상정하고 길렀던 것 같아. 공작과 에노르토스의 전사. 둘 중 어느 쪽으로도 살아갈 수 있도록.”
“그럴 리가.”
집사장이 드물게 동요를 보였다.
그 마음은 충분히 안다.
공작 역시 라파와 대화하면서 그걸 느끼고 당황했다.
이 세상 모든 것을 공작의 눈으로 판단하도록 길러진 클라우스다.
보라색 눈동자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아는 클라우스가 설마 그걸 놓도록 기르다니, 믿을 수 없었다.
인간이 아닌 정령.
그 피는 한 번 끊기면 돌아오지 않는다.
서서히 평범한 인간의 가문으로 전락해 보편적인 마법사밖에 나오지 않게 될 것이다.
그걸 알면서.
거기까지 생각한 뒤 공작은 아, 소리를 냈다.
“그런가.”
공작은 혀를 찼다.
“클라우스의 경고야. 라파를 공작가의 조각으로 취급하지 말라는.”
“… 과연.”
집사장도 알아차린 모양이다.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라파를 서투르게 정략적으로 대하거나 사용하면, 귀족으로서 자라지 않은 그 아이는 모두 버리고 도망친다.
부모와 당주가 결정하면 따르는 귀족 자제와는 다르다.
클라우스가 그런 식으로 길렀을 것이다.
공작 자신은 충분히 손자 마음을 살펴 행동할 생각이지만, 귀족으로서 어쩔 수 없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경우가 있다.
클라우스는 그것조차 하지 말라는 거다.
그 아이의 마음을 자유롭게 두라고.
“약혼자 후보 명단은 일단 멈추게. 대신 사라문즈 공국에 공주가 있는지 확인해 줘.”
라파의 존재를 안 직후, 곧바로 약혼자 후보 명단을 만들기 시작했다.
귀족 자제의 혼인은 빠르고, 공작가와 격이 맞는 가문은 많지 않다.
적은 수의 가문에서 약혼자를 찾아야 하므로 잘못하면 적당한 여성은 모두 혼약이 성립하고 문제 있는 여성만 남을 수도 있다.
그래서 적당한 여성이 있는지 서둘러 조사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라파에게 정략결혼은 맞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길러지지 않았다.
라파에게 이미 친밀한 여성이 있다면 그쪽을 약혼자로 맞이하는 게 좋다.
“사라문즈 공국은 이미 혼인했거나 열 살 이하의 공주밖에 없어서 후보에서 제외했습니다만.”
“그건 나도 알고 있네. 하지만 오늘 물마법사라는 아가씨를 봤어.”
“….”
“그녀의 얼굴이 공왕비와 똑같더군.”
“물마법은 사라문즈 공왕가가 유명하지요. 거기에 왕비를 닮은 얼굴이면.”
집사장이 고개를 숙였다.
“즉시 알아보겠습니다.”
왕가에서 뭔가 손을 내밀기 전에 가급적 약혼을 마무리하고 싶다.